890억짜리 정부청사…청소 노동자 휴게실은 ‘화장실’

입력 2021.01.06 (16:17) 수정 2021.01.07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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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6월 문을 연 나라키움 부산통합청사2020년 6월 문을 연 나라키움 부산통합청사


"정부기관의 업무공간 부족 문제를 해결하고 행정 효율성을 높이는 것은 물론, 도시환경을 개선함으로써…."

지난해 6월 889억 원의 예산을 들여 지은 나라키움 부산통합청사가 문을 열 당시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가 낸 보도자료입니다.

부산지방식품의약품안전청, 동남지방통계청,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부산사무소 등 3개 정부기관이 새로운 청사에 입주했습니다.

낡은 정부기관의 청사를 새로 지어 쾌적한 업무공간을 만들었다는 말처럼 공무원들의 업무공간에는 예쁜 카페 같은 휴식공간이 생겼습니다. 청사 4층의 대로를 향해 뚫린 큰 창으로는 햇볕이 들어옵니다. 야외 정원도 있습니다.

통합청사는 제16회 대한민국 토목건축기술대상에서 업무용 최우수상을 받았습니다.


■창문은 없고, 습기는 있는 노동자들의 지하 휴게실

나라키움 부산통합청사 지하3층 주차장 한쪽에 여성 청소노동자들의 휴게실(오른쪽 문)이 자리잡고 있다.나라키움 부산통합청사 지하3층 주차장 한쪽에 여성 청소노동자들의 휴게실(오른쪽 문)이 자리잡고 있다.

빛이 도저히 스며들지 못하는 지하 3층. 누구에게는 부족한 주차난을 해결하기 위한 공간 정도일 지하주차장 한쪽에 ‘대기실’이라 쓰인 작은 방 2개 있습니다.

11명 여성 청소노동자들의 휴식 공간입니다. 여기서 쉬기도 하고 도 먹습니다. 모두 둘러 앉기도 버거운 방에 전자레인지, 냉장고, 사물함이 있습니다.

그 위 지하 1층에는 시설관리나 방호, 청소를 맡은 남자 노동자들이 쉬는 휴게실이 있습니다. 20명이 이 공간을 함께 사용합니다.

24시간 근무하는 직원들이 쪽잠을 청하는 공간. 소파가 있고 접이식 간이침대가 있습니다. 창문은 없고 햇빛도 없습니다.

일하는 공간 대부분은 지상인데 쉬는 장소는 지하이다 보니 여성 청소노동자들은 틈틈이 장애인 화장실에서 걸레를 빨며 휴식을 취했습니다.

앉아 쉴 수 있는 의자를 가져다 놓았는데 회사에서 치우라는 말이 나와 지금은 없습니다.

■탈의실 없어 빈 사무실 전전...캠코자산관리 "대책 마련 중"

미화 등 남성 노동자들이  탈의실로 활용하고 있는 빈 사무실. 미화 등 남성 노동자들이 탈의실로 활용하고 있는 빈 사무실.
회사는 공기업인 한국자산관리공사의 자회사 캠코시설관리입니다. 일부 노동자들이 수개월 전부터 회사에 휴게공간을 확충해달라고 요구했지만 아직 받아들여 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는 동안 사물함까지 두기에는 휴게공간이 너무 좁다며 남성 노동자들은 공무원들이 쓰지 않는 빈 사무실로 사물함을 옮겼습니다. 그전까지 비어있던 사무실은 노동자들의 휴게실보다 넓었습니다.

사실 이런 일은 여느 기업체든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화려한 빌딩의 어둡고 후미진 공간은 통상 약자의 공간으로 채워지니까요.

불과 지난해 건축 관련 상을 받은 건물조차 이런 공식이 적용되는 모습은 어찌 보면 우리 사회의 자화상이 아닐까요.

캠코 측 관계자는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며 “ 예산을 확보해 개선에 나서겠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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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90억짜리 정부청사…청소 노동자 휴게실은 ‘화장실’
    • 입력 2021-01-06 16:17:33
    • 수정2021-01-07 13:25:01
    취재K
2020년 6월 문을 연 나라키움 부산통합청사

"정부기관의 업무공간 부족 문제를 해결하고 행정 효율성을 높이는 것은 물론, 도시환경을 개선함으로써…."

지난해 6월 889억 원의 예산을 들여 지은 나라키움 부산통합청사가 문을 열 당시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가 낸 보도자료입니다.

부산지방식품의약품안전청, 동남지방통계청,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부산사무소 등 3개 정부기관이 새로운 청사에 입주했습니다.

낡은 정부기관의 청사를 새로 지어 쾌적한 업무공간을 만들었다는 말처럼 공무원들의 업무공간에는 예쁜 카페 같은 휴식공간이 생겼습니다. 청사 4층의 대로를 향해 뚫린 큰 창으로는 햇볕이 들어옵니다. 야외 정원도 있습니다.

통합청사는 제16회 대한민국 토목건축기술대상에서 업무용 최우수상을 받았습니다.


■창문은 없고, 습기는 있는 노동자들의 지하 휴게실

나라키움 부산통합청사 지하3층 주차장 한쪽에 여성 청소노동자들의 휴게실(오른쪽 문)이 자리잡고 있다.
빛이 도저히 스며들지 못하는 지하 3층. 누구에게는 부족한 주차난을 해결하기 위한 공간 정도일 지하주차장 한쪽에 ‘대기실’이라 쓰인 작은 방 2개 있습니다.

11명 여성 청소노동자들의 휴식 공간입니다. 여기서 쉬기도 하고 도 먹습니다. 모두 둘러 앉기도 버거운 방에 전자레인지, 냉장고, 사물함이 있습니다.

그 위 지하 1층에는 시설관리나 방호, 청소를 맡은 남자 노동자들이 쉬는 휴게실이 있습니다. 20명이 이 공간을 함께 사용합니다.

24시간 근무하는 직원들이 쪽잠을 청하는 공간. 소파가 있고 접이식 간이침대가 있습니다. 창문은 없고 햇빛도 없습니다.

일하는 공간 대부분은 지상인데 쉬는 장소는 지하이다 보니 여성 청소노동자들은 틈틈이 장애인 화장실에서 걸레를 빨며 휴식을 취했습니다.

앉아 쉴 수 있는 의자를 가져다 놓았는데 회사에서 치우라는 말이 나와 지금은 없습니다.

■탈의실 없어 빈 사무실 전전...캠코자산관리 "대책 마련 중"

미화 등 남성 노동자들이  탈의실로 활용하고 있는 빈 사무실. 회사는 공기업인 한국자산관리공사의 자회사 캠코시설관리입니다. 일부 노동자들이 수개월 전부터 회사에 휴게공간을 확충해달라고 요구했지만 아직 받아들여 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는 동안 사물함까지 두기에는 휴게공간이 너무 좁다며 남성 노동자들은 공무원들이 쓰지 않는 빈 사무실로 사물함을 옮겼습니다. 그전까지 비어있던 사무실은 노동자들의 휴게실보다 넓었습니다.

사실 이런 일은 여느 기업체든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화려한 빌딩의 어둡고 후미진 공간은 통상 약자의 공간으로 채워지니까요.

불과 지난해 건축 관련 상을 받은 건물조차 이런 공식이 적용되는 모습은 어찌 보면 우리 사회의 자화상이 아닐까요.

캠코 측 관계자는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며 “ 예산을 확보해 개선에 나서겠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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