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100m 앞 ‘만화카페’…법원 “나쁜 영향 안 준다”

입력 2021.01.10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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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대문구의 한 초등학교에서 100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만화카페. 편안한 자리에서 마음에 드는 만화책을 골라보고, 식사를 하거나 음료를 마실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입니다.

그런데 교육지원청은 "초등학생들의 학습과 교육환경에 나쁜 영향을 준다"며 카페 사장에게 업종을 바꾸거나 폐업·이전하라고 지도했습니다. 카페 사장은 이에 불복해 행정심판과 소송에 나섰는데요.

서울행정법원 행정7부(재판장 김국현)는 최근, 만화카페 대표 A 씨가 서울시 서부교육지원청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습니다. 만화카페가 초등학생들에게 나쁜 영향을 주지 않는다며 카페 측의 손을 들어준 겁니다.

■ 종이만화 대신 웹툰 보는 시대…법원 "인식의 변화 반영돼야"

법원의 판단 근거 중 하나는 '사회 인식의 변화'입니다. 교육지원청의 처분은 만화가 학생들에게 유해하다는 전제에서 이뤄졌죠. 그런데 법원은 현행 청소년보호법 등을 볼 때 만화나 만화대여업 자체를 곧바로 유해한 것으로 볼 순 없다고 밝혔습니다.

우선 만화대여업소에는 청소년이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고, 사회적 인식의 변화에 따라 풍속영업의 범위에서 제외됐습니다. 물론 폭력성이나 선정성이 수반되는 일부 만화가 유해할 순 있지만, 이는 해당 유해물만 청소년유해매체물로 지정해 고시하는 등 별도로 규율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게 법원 판단입니다.

게다가 정부는 지난해 11월 6일, "교육환경보호구역에 설치가 제한되는 시설의 범위에서 만화대여업소를 제외함으로써 변화된 사회 인식 등을 반영해 합리적으로 규제를 개선하겠다"며 교육환경법 개정법률안을 국회에 냈습니다. 이 개정안에 따르면 만화대여업은 모든 구역에서 자유로운 영업이 가능하게 되죠.

재판부는 "이러한 인식의 변화는 이 사건 처분을 위한 심의과정에도 반영되는 것이 옳다"며 "종래 책의 형태로만 만화를 접하던 것과 달리 현재에는 온라인 웹툰의 형태로 쉽게 접근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 1층엔 노래방, 5층엔 당구장…법원 "만화카페 추가된다고 더 나빠지겠나"

법원은 만화카페가 위치한 장소에도 주목했습니다. 만화카페는 상가건물 4층에 있고, 이 건물 지하엔 노래연습장이, 1~2층엔 주점이, 5층엔 당구장이 있는데요.

재판부는 "건물의 이용현황에 비춰 볼 때 4층에 만화대여업이 추가된다는 사정만으로 초등학교 학생들의 학습과 교육환경에 보다 더 나쁜 영향이 미친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특히 노래연습장은 만화대여업처럼 교육환경법에서 정하는 '교육환경보호구역 내에서 금지되는 행위 및 시설'에 해당하는데도 영업이 허용됐습니다. 교육지원청은 "노래연습장은 20년 전에 허용한 것이므로 이 사건 처분을 할 당시와 주변 환경이 동일하지 않다"고 항변했지만, 재판부는 납득하기 어렵다고 봤습니다.

청소년보호법상 노래연습장은 출입과 고용이 둘 다 금지된 업소이고 만화대여업은 고용만 금지된 업소이므로, 오히려 노래연습장이 만화대여업보다 그 유해성이 더 높다는 겁니다.

재판부는 또 초등학교에서 만화카페의 출입문이나 내부 행위가 전혀 보이지 않고, 카페 근처에 미성년자 대상 학원도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만화카페 주변을 통학로로 이용하는 학생이 전체 176명 가운데 단 1명에 불과한 점도 고려됐습니다. 재판부는 학교장마저도 '만화카페가 학습과 교육환경에 지장을 주지 않는다'는 의견을 냈다고 덧붙였습니다.


특히 해당 만화카페가 앞선 소송과정에서 성인만화나 커튼, 블라인드 등을 모두 정리한 점도 유리하게 작용했습니다. 교육지원청은 만화카페가 얼마든지 이를 다시 배치할 수 있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이를 이유로 원고의 영업 자체를 허용하지 않으려는 것은 헌법상 보장된 직업선택의 자유와 재산권의 과도한 제한"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이 판결은 교육지원청이 항소하지 않아, 지난달 15일 확정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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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등학교 100m 앞 ‘만화카페’…법원 “나쁜 영향 안 준다”
    • 입력 2021-01-10 09:01:34
    취재K

서울 서대문구의 한 초등학교에서 100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만화카페. 편안한 자리에서 마음에 드는 만화책을 골라보고, 식사를 하거나 음료를 마실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입니다.

그런데 교육지원청은 "초등학생들의 학습과 교육환경에 나쁜 영향을 준다"며 카페 사장에게 업종을 바꾸거나 폐업·이전하라고 지도했습니다. 카페 사장은 이에 불복해 행정심판과 소송에 나섰는데요.

서울행정법원 행정7부(재판장 김국현)는 최근, 만화카페 대표 A 씨가 서울시 서부교육지원청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습니다. 만화카페가 초등학생들에게 나쁜 영향을 주지 않는다며 카페 측의 손을 들어준 겁니다.

■ 종이만화 대신 웹툰 보는 시대…법원 "인식의 변화 반영돼야"

법원의 판단 근거 중 하나는 '사회 인식의 변화'입니다. 교육지원청의 처분은 만화가 학생들에게 유해하다는 전제에서 이뤄졌죠. 그런데 법원은 현행 청소년보호법 등을 볼 때 만화나 만화대여업 자체를 곧바로 유해한 것으로 볼 순 없다고 밝혔습니다.

우선 만화대여업소에는 청소년이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고, 사회적 인식의 변화에 따라 풍속영업의 범위에서 제외됐습니다. 물론 폭력성이나 선정성이 수반되는 일부 만화가 유해할 순 있지만, 이는 해당 유해물만 청소년유해매체물로 지정해 고시하는 등 별도로 규율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게 법원 판단입니다.

게다가 정부는 지난해 11월 6일, "교육환경보호구역에 설치가 제한되는 시설의 범위에서 만화대여업소를 제외함으로써 변화된 사회 인식 등을 반영해 합리적으로 규제를 개선하겠다"며 교육환경법 개정법률안을 국회에 냈습니다. 이 개정안에 따르면 만화대여업은 모든 구역에서 자유로운 영업이 가능하게 되죠.

재판부는 "이러한 인식의 변화는 이 사건 처분을 위한 심의과정에도 반영되는 것이 옳다"며 "종래 책의 형태로만 만화를 접하던 것과 달리 현재에는 온라인 웹툰의 형태로 쉽게 접근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 1층엔 노래방, 5층엔 당구장…법원 "만화카페 추가된다고 더 나빠지겠나"

법원은 만화카페가 위치한 장소에도 주목했습니다. 만화카페는 상가건물 4층에 있고, 이 건물 지하엔 노래연습장이, 1~2층엔 주점이, 5층엔 당구장이 있는데요.

재판부는 "건물의 이용현황에 비춰 볼 때 4층에 만화대여업이 추가된다는 사정만으로 초등학교 학생들의 학습과 교육환경에 보다 더 나쁜 영향이 미친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특히 노래연습장은 만화대여업처럼 교육환경법에서 정하는 '교육환경보호구역 내에서 금지되는 행위 및 시설'에 해당하는데도 영업이 허용됐습니다. 교육지원청은 "노래연습장은 20년 전에 허용한 것이므로 이 사건 처분을 할 당시와 주변 환경이 동일하지 않다"고 항변했지만, 재판부는 납득하기 어렵다고 봤습니다.

청소년보호법상 노래연습장은 출입과 고용이 둘 다 금지된 업소이고 만화대여업은 고용만 금지된 업소이므로, 오히려 노래연습장이 만화대여업보다 그 유해성이 더 높다는 겁니다.

재판부는 또 초등학교에서 만화카페의 출입문이나 내부 행위가 전혀 보이지 않고, 카페 근처에 미성년자 대상 학원도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만화카페 주변을 통학로로 이용하는 학생이 전체 176명 가운데 단 1명에 불과한 점도 고려됐습니다. 재판부는 학교장마저도 '만화카페가 학습과 교육환경에 지장을 주지 않는다'는 의견을 냈다고 덧붙였습니다.


특히 해당 만화카페가 앞선 소송과정에서 성인만화나 커튼, 블라인드 등을 모두 정리한 점도 유리하게 작용했습니다. 교육지원청은 만화카페가 얼마든지 이를 다시 배치할 수 있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이를 이유로 원고의 영업 자체를 허용하지 않으려는 것은 헌법상 보장된 직업선택의 자유와 재산권의 과도한 제한"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이 판결은 교육지원청이 항소하지 않아, 지난달 15일 확정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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