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인 미만 사업장’의 비극…노동법 사각지대

입력 2021.01.12 (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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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광주광역시의 한 소규모 폐기물 재생업체에서 50대 여성 근로자가 분쇄 작업 도중 기계에 끼어 숨졌습니다. 사고 당시 '2인 1조'의 안전 수칙도, 최소한의 안전장치도 없었던 것으로 파악되고 있는데요. 근로기준법조차 예외로 적용되는 5인 미만 사업장의 관리 대책이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 안전 수칙 무시된 근로 현장


51살 여성 근로자인 A 씨가 숨진 건 지난 11일 낮 12시 40분쯤. 광주광역시 광산구 소재 한 폐플라스틱 재생공장에서 폐기물을 분쇄하는 기계에 팔이 끼여 순식간에 몸이 말려들었습니다. 목격자의 신고로 119가 출동해 구조에 나섰지만, A 씨는 과다 출혈로 현장에서 숨졌습니다.

광주지방고용노동청 등은 사고 당시 기본적인 안전 수칙들이 지켜지지 않은 정황을 확인했습니다. 산업 현장 근로자의 안전을 위한 '2인 1조' 수칙은 무시됐고, 낡은 분쇄 기계에는 비상 정지 버튼 말고는 어떠한 안전장치도 없었습니다. 혼자서 작업을 했을 A 씨에게는 무용지물이었을 겁니다.

산재가 난 사업장은 과거에도 안전 규정을 지키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지난해 파쇄기에 몸이 끼어 숨진 고(故) 김재순 사고 이후 한국산업안전공단의 점검 때 안전 규정을 지키지 않은 게 적발된 겁니다. 당시 분쇄기 등 위험한 기계 장비로 일할 때 안전거리를 유지할 수 있도록 컨베이어 벨트를 설치하라는 지적을 받았지만, 권고에 그치면서 개선은 없었습니다.

위험은 예견됐지만, 대책은 없었습니다. 상시 근로자가 4명뿐이었던 사고 사업장. 전문가들은 현행법상 5인 미만 사업장은 근로기준법 등의 적용을 받지 않아 근로 여건이나 안전에 허점이 발생한다고 말합니다.

사업주가 마음만 먹으면 부당 해고가 가능하고, 밤늦게까지 일을 시켜도 법정 수당을 줄 의무도 없습니다. 근로자의 안전을 위한 설비 교체나 정비도 먼 얘기입니다. 업체 규모가 작다는 이유로 각종 산업안전보건교육 대상에서 제외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김세영 광주시 비정규직지원센터 상담실장은 "5인 미만 사업장은 노동법적인 부분에서 빠져나갈 구멍이 많고, 또 대상이 아니다 보니까 당국의 관리 감독에서도 소홀한 측면이 분명히 존재한다"고 지적했습니다.

■ '5인 미만 사업장' 대책 절실


반복되는 산재에 광주지역 노동단체가 12일 정부와 노동 당국을 규탄하고 나섰습니다. 최소한의 안전장치와 안전 매뉴얼만 있었다면, 또 당국의 관리 감독만 제대로 이뤄졌다면 막을 수 있었던 죽음이라는 겁니다. 특히 지난해 5월 고 김재순 사고가 있었던 광주에서 또다시 닮은꼴 사고가 발생했다며 광주지방고용노동청에 제대로 된 사고 조사와 책임자 처벌, 재발 방지 대책을 촉구했습니다.

규탄 기자회견에서는 지난 8일 국회를 통과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도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이 법에서도 5인 미만 사업장은 빠져 있어 위험한 작업 환경에 대한 경영자의 책임을 물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종욱 민주노총 광주본부장은 "정부와 국회는 가장 열악한 곳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안전과 생명을 외면한 채 중대재해기업처벌법에서 5인 미만 사업장을 제외시켰다"라면서 "누더기가 된 법으로는 노동자와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고 비판했습니다.

지난해 더불어민주당 윤준병 의원이 고용노동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의하면, 최근 10년간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숨진 근로자는 3,022명으로 전체 산재 사망자의 31.7%에 달합니다. 사업장의 규모가 작다는 이유로 누군가는 법의 보호도 받지 못한 채 일터에서 안타까운 죽음을 맞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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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인 미만 사업장’의 비극…노동법 사각지대
    • 입력 2021-01-12 20:37:22
    취재K

지난 11일 광주광역시의 한 소규모 폐기물 재생업체에서 50대 여성 근로자가 분쇄 작업 도중 기계에 끼어 숨졌습니다. 사고 당시 '2인 1조'의 안전 수칙도, 최소한의 안전장치도 없었던 것으로 파악되고 있는데요. 근로기준법조차 예외로 적용되는 5인 미만 사업장의 관리 대책이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 안전 수칙 무시된 근로 현장


51살 여성 근로자인 A 씨가 숨진 건 지난 11일 낮 12시 40분쯤. 광주광역시 광산구 소재 한 폐플라스틱 재생공장에서 폐기물을 분쇄하는 기계에 팔이 끼여 순식간에 몸이 말려들었습니다. 목격자의 신고로 119가 출동해 구조에 나섰지만, A 씨는 과다 출혈로 현장에서 숨졌습니다.

광주지방고용노동청 등은 사고 당시 기본적인 안전 수칙들이 지켜지지 않은 정황을 확인했습니다. 산업 현장 근로자의 안전을 위한 '2인 1조' 수칙은 무시됐고, 낡은 분쇄 기계에는 비상 정지 버튼 말고는 어떠한 안전장치도 없었습니다. 혼자서 작업을 했을 A 씨에게는 무용지물이었을 겁니다.

산재가 난 사업장은 과거에도 안전 규정을 지키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지난해 파쇄기에 몸이 끼어 숨진 고(故) 김재순 사고 이후 한국산업안전공단의 점검 때 안전 규정을 지키지 않은 게 적발된 겁니다. 당시 분쇄기 등 위험한 기계 장비로 일할 때 안전거리를 유지할 수 있도록 컨베이어 벨트를 설치하라는 지적을 받았지만, 권고에 그치면서 개선은 없었습니다.

위험은 예견됐지만, 대책은 없었습니다. 상시 근로자가 4명뿐이었던 사고 사업장. 전문가들은 현행법상 5인 미만 사업장은 근로기준법 등의 적용을 받지 않아 근로 여건이나 안전에 허점이 발생한다고 말합니다.

사업주가 마음만 먹으면 부당 해고가 가능하고, 밤늦게까지 일을 시켜도 법정 수당을 줄 의무도 없습니다. 근로자의 안전을 위한 설비 교체나 정비도 먼 얘기입니다. 업체 규모가 작다는 이유로 각종 산업안전보건교육 대상에서 제외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김세영 광주시 비정규직지원센터 상담실장은 "5인 미만 사업장은 노동법적인 부분에서 빠져나갈 구멍이 많고, 또 대상이 아니다 보니까 당국의 관리 감독에서도 소홀한 측면이 분명히 존재한다"고 지적했습니다.

■ '5인 미만 사업장' 대책 절실


반복되는 산재에 광주지역 노동단체가 12일 정부와 노동 당국을 규탄하고 나섰습니다. 최소한의 안전장치와 안전 매뉴얼만 있었다면, 또 당국의 관리 감독만 제대로 이뤄졌다면 막을 수 있었던 죽음이라는 겁니다. 특히 지난해 5월 고 김재순 사고가 있었던 광주에서 또다시 닮은꼴 사고가 발생했다며 광주지방고용노동청에 제대로 된 사고 조사와 책임자 처벌, 재발 방지 대책을 촉구했습니다.

규탄 기자회견에서는 지난 8일 국회를 통과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도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이 법에서도 5인 미만 사업장은 빠져 있어 위험한 작업 환경에 대한 경영자의 책임을 물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종욱 민주노총 광주본부장은 "정부와 국회는 가장 열악한 곳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안전과 생명을 외면한 채 중대재해기업처벌법에서 5인 미만 사업장을 제외시켰다"라면서 "누더기가 된 법으로는 노동자와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고 비판했습니다.

지난해 더불어민주당 윤준병 의원이 고용노동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의하면, 최근 10년간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숨진 근로자는 3,022명으로 전체 산재 사망자의 31.7%에 달합니다. 사업장의 규모가 작다는 이유로 누군가는 법의 보호도 받지 못한 채 일터에서 안타까운 죽음을 맞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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