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 등장해 최장수 장관…강경화의 다음 역할은?

입력 2021.01.20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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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행정부의 시작을 함께했던 '원년 멤버' 중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켜 왔던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전격 교체됐습니다. 후임으로는 정의용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지명됐는데요.

강 장관은 문재인 대통령의 5년 임기를 끝까지 채워, '오경화'가 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로 문 대통령의 두터운 신임을 받아 왔습니다. 지난 연말부터 개각 발표가 이어져 왔지만, 정치권 안팎에서 외교부장관이 인사 대상으로 거론되지는 않았습니다. 그 만큼 강 장관 교체는 의외의 인사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입니다.

강 장관의 등장은 처음부터 파격이었습니다. 2017년 5월, 문 대통령은 청와대 춘추관에서 직접 인선 결과를 발표하며 강 장관에 대해 “비(非)외무고시 출신의 외교부 첫 여성 국장이며, 한국 여성 중에 유엔 최고위직에 임명되는 등 우리나라 최초, 최고의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외교 전문가”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강 장관은 원어민에 가까운 뛰어난 영어 실력을 통해, 임기 내내 여러 차례 해외 주요 언론사와 영어 인터뷰에 나서며 'K 방역'의 성과를 알리는 역할을 했습니다. 지난해 3월, 강 장관이 영국 공영방송 BBC의 '앤드루 마 쇼'에 출연해 한국의 방역 시스템을 설명했을 때에는 '이 여성이 영국 총리였으면 좋겠다'는 댓글까지 달리는 등, 해외 네티즌들로부터 뜨거운 반응이 쏟아졌는데요.

하지만 상대적으로 국내의 평가는 해외만큼 후하지는 못했습니다. 우선 임기 초반, '구겨진 태극기 게양' 등 여러 의전 실수가 잇따른 데 대해 외교부 수장으로서 비판을 받았고요. 후반에는 주뉴질랜드 한국대사관에서 발생한 외교관 성추행 사건 등 각종 성 비위·기강 해이 사건이 잇따르면서 본인 자신도 '리더십의 한계를 느낀다'고 자책해야 했습니다.


또 문재인 정부의 핵심 국정과제인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추진과정에서 외교부의 존재감이 두드러지지 못하다는 지적에도 오래 시달려야 했습니다. 주로 청와대에서 내려진 결정을 수동적으로 이행하는 데에 그쳤을 뿐, 북핵 협상의 돌파구를 적극적으로 만들지 못했다는 건데요.

중대한 사안일수록 부처 단독으로 결정을 내리기 힘든 건 사실이지만, 강제징용·'위안부' 배상 판결 등으로 꽉 막힌 한일 관계에서도,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추진에서도 외교부가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했다는 평가는 꼬리표처럼 강경화 장관을 따라다녔습니다.

■ 강 장관 스스로 의식했던 '패싱' 논란

이른바 '패싱(passing ·무시) 논란'은 강 장관 스스로도 의식할 수 밖에 없던 문제 중 하나였습니다. 연평도 해역에서 우리 공무원이 피살됐던 지난해 9월, 강 장관은 청와대·정부 외교 안보 긴급회의에 참석 요청을 받지 못했습니다.

'청와대가 의도적으로 외교부를 패싱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반박했지만, 당시 강 장관은 “그 부분은 분명히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에서 직접 문제를 제기했다”라고 밝혔습니다.

또 최근에는 북한의 코로나19 대응을 두고 "북한을 더욱 북한답게 만들었다고 생각한다"고 국제무대에서 말했다가, 김여정 당시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으로부터 "망언"이라는 비판을 들었고요.

지난해 10월엔 정부가 해외여행을 극히 자제해 달라고 당부하는 상황에서, 남편이 요트를 사러 미국으로 떠난 사실이 KBS 취재로 드러나면서 개인사까지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강 장관은 사과하면서 남편에 대해 "말린다고 말려질 사람이 아니다" 라고 말해, 남편의 출국과는 별개로 뜻밖의 공감을 얻기도 했습니다.


아직 여러 절차가 남아 있지만, 정의용 전 실장이 청문회를 통과한다면 강 장관은 길었던 외교부 수장으로서의 자리에서 물러나게 됩니다. 이번 개각에 대한 강 장관의 공식 입장은 아직 나오지 않았는데요.

떠나는 강 장관을 두고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는 "한미동맹에 충직한 지원군이었으며 전 세계에 한국의 국격을 향상시켰다"고 말했고,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는 "문재인 정부의 최장수 각료, 외교부 첫 여성장관"이자 "대한민국 외교의 존재감"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지금, 강 장관은 자신에게 어떤 평가를 하고 있을까요.

■ "첫 여성 장관으로 기를 쓰고 하고 있지만..."

지난해 11월, 강 장관은 한 포럼에 참석해 “여성으로서 처음 외교부 장관이라는 막중한 자리에서 기를 쓰고 다 하고 있습니다만, 나도 간혹 ‘여성이기 때문에 이런가’ 하는 걸 느낄 때가 있다”고 솔직한 소회를 털어놨습니다.

“남성 위주의 기득권 문화 속에서 내가 과연 받아들여지고 있나 하는 질문을 스스로 할 때가 없지 않다”고도 했는데요. “그럴 때마다 그냥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한다"며 간결한 정답을 내놓긴 했지만, 장관으로선 보기 드물게 여러 심경을 담아낸 솔직한 얘기였습니다.

강 장관의 퇴임 뒤 역할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그가 주변에 '쉬고 싶다'는 얘기를 종종 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4년 가까이 현 정부의 외교정책을 총괄한 경험, 국제무대에서 활동한 이력 덕분에 그의 휴식시간은 그리 길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강 장관은 역대 38명의 외교장관 중 첫 여성이었습니다. 임기 초 일각의 의구심과는 달리 그는 문재인 정부에서 가장 장수한 장관으로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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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반짝 등장해 최장수 장관…강경화의 다음 역할은?
    • 입력 2021-01-20 17:40:56
    취재K

문재인 행정부의 시작을 함께했던 '원년 멤버' 중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켜 왔던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전격 교체됐습니다. 후임으로는 정의용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지명됐는데요.

강 장관은 문재인 대통령의 5년 임기를 끝까지 채워, '오경화'가 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로 문 대통령의 두터운 신임을 받아 왔습니다. 지난 연말부터 개각 발표가 이어져 왔지만, 정치권 안팎에서 외교부장관이 인사 대상으로 거론되지는 않았습니다. 그 만큼 강 장관 교체는 의외의 인사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입니다.

강 장관의 등장은 처음부터 파격이었습니다. 2017년 5월, 문 대통령은 청와대 춘추관에서 직접 인선 결과를 발표하며 강 장관에 대해 “비(非)외무고시 출신의 외교부 첫 여성 국장이며, 한국 여성 중에 유엔 최고위직에 임명되는 등 우리나라 최초, 최고의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외교 전문가”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강 장관은 원어민에 가까운 뛰어난 영어 실력을 통해, 임기 내내 여러 차례 해외 주요 언론사와 영어 인터뷰에 나서며 'K 방역'의 성과를 알리는 역할을 했습니다. 지난해 3월, 강 장관이 영국 공영방송 BBC의 '앤드루 마 쇼'에 출연해 한국의 방역 시스템을 설명했을 때에는 '이 여성이 영국 총리였으면 좋겠다'는 댓글까지 달리는 등, 해외 네티즌들로부터 뜨거운 반응이 쏟아졌는데요.

하지만 상대적으로 국내의 평가는 해외만큼 후하지는 못했습니다. 우선 임기 초반, '구겨진 태극기 게양' 등 여러 의전 실수가 잇따른 데 대해 외교부 수장으로서 비판을 받았고요. 후반에는 주뉴질랜드 한국대사관에서 발생한 외교관 성추행 사건 등 각종 성 비위·기강 해이 사건이 잇따르면서 본인 자신도 '리더십의 한계를 느낀다'고 자책해야 했습니다.


또 문재인 정부의 핵심 국정과제인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추진과정에서 외교부의 존재감이 두드러지지 못하다는 지적에도 오래 시달려야 했습니다. 주로 청와대에서 내려진 결정을 수동적으로 이행하는 데에 그쳤을 뿐, 북핵 협상의 돌파구를 적극적으로 만들지 못했다는 건데요.

중대한 사안일수록 부처 단독으로 결정을 내리기 힘든 건 사실이지만, 강제징용·'위안부' 배상 판결 등으로 꽉 막힌 한일 관계에서도,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추진에서도 외교부가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했다는 평가는 꼬리표처럼 강경화 장관을 따라다녔습니다.

■ 강 장관 스스로 의식했던 '패싱' 논란

이른바 '패싱(passing ·무시) 논란'은 강 장관 스스로도 의식할 수 밖에 없던 문제 중 하나였습니다. 연평도 해역에서 우리 공무원이 피살됐던 지난해 9월, 강 장관은 청와대·정부 외교 안보 긴급회의에 참석 요청을 받지 못했습니다.

'청와대가 의도적으로 외교부를 패싱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반박했지만, 당시 강 장관은 “그 부분은 분명히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에서 직접 문제를 제기했다”라고 밝혔습니다.

또 최근에는 북한의 코로나19 대응을 두고 "북한을 더욱 북한답게 만들었다고 생각한다"고 국제무대에서 말했다가, 김여정 당시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으로부터 "망언"이라는 비판을 들었고요.

지난해 10월엔 정부가 해외여행을 극히 자제해 달라고 당부하는 상황에서, 남편이 요트를 사러 미국으로 떠난 사실이 KBS 취재로 드러나면서 개인사까지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강 장관은 사과하면서 남편에 대해 "말린다고 말려질 사람이 아니다" 라고 말해, 남편의 출국과는 별개로 뜻밖의 공감을 얻기도 했습니다.


아직 여러 절차가 남아 있지만, 정의용 전 실장이 청문회를 통과한다면 강 장관은 길었던 외교부 수장으로서의 자리에서 물러나게 됩니다. 이번 개각에 대한 강 장관의 공식 입장은 아직 나오지 않았는데요.

떠나는 강 장관을 두고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는 "한미동맹에 충직한 지원군이었으며 전 세계에 한국의 국격을 향상시켰다"고 말했고,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는 "문재인 정부의 최장수 각료, 외교부 첫 여성장관"이자 "대한민국 외교의 존재감"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지금, 강 장관은 자신에게 어떤 평가를 하고 있을까요.

■ "첫 여성 장관으로 기를 쓰고 하고 있지만..."

지난해 11월, 강 장관은 한 포럼에 참석해 “여성으로서 처음 외교부 장관이라는 막중한 자리에서 기를 쓰고 다 하고 있습니다만, 나도 간혹 ‘여성이기 때문에 이런가’ 하는 걸 느낄 때가 있다”고 솔직한 소회를 털어놨습니다.

“남성 위주의 기득권 문화 속에서 내가 과연 받아들여지고 있나 하는 질문을 스스로 할 때가 없지 않다”고도 했는데요. “그럴 때마다 그냥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한다"며 간결한 정답을 내놓긴 했지만, 장관으로선 보기 드물게 여러 심경을 담아낸 솔직한 얘기였습니다.

강 장관의 퇴임 뒤 역할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그가 주변에 '쉬고 싶다'는 얘기를 종종 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4년 가까이 현 정부의 외교정책을 총괄한 경험, 국제무대에서 활동한 이력 덕분에 그의 휴식시간은 그리 길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강 장관은 역대 38명의 외교장관 중 첫 여성이었습니다. 임기 초 일각의 의구심과는 달리 그는 문재인 정부에서 가장 장수한 장관으로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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