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TV 보려면 1억” 현실 외면한 아동학대 수사 지침

입력 2021.01.21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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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0건"

2019년 한 해 동안 어린이집과 유치원에서 발생한 아동학대 발생 건수입니다. 하루 평균 4건 이들 장소에서 아동학대가 발생했다니 적은 수가 결코 아닙니다. 보건복지부가 관련 통계를 내고 있는데, 매년 증가하는 추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아동학대 여부를 가려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 하는 게 바로 CCTV입니다. 아동의 특성상 구체적인 피해와 시기를 특정할 수 없다는 점 때문인데요. 영유아보육법 역시 이런 점을 반영해 보호자가 어린이집에 CCTV 공개를 요청할 수 있다고 정해놓고 있습니다.

영유아보육법 시행규칙은 “열람 요청을 받은 날부터 10일 이내에 열람 장소와 시간을 정하여 보호자에게 통지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법은 그렇게 돼 있는데 정작 CCTV를 보려면 여간 까다로운 일이 아닙니다.

“1억이 듭니다”

최근 부산 기장경찰서가 어린이집 CCTV를 보여달라며 정보공개를 청구한 아동학대 신고 부모에게 이런 안내를 해서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경찰이 이유로 든 건 개인정보 보호입니다.

경찰의 ‘아동학대 수사 업무 매뉴얼’은 CCTV를 열람하려면 피해자는 물론 피의자를 포함한 모든 정보주체의 동의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범죄혐의가 확정되기 전이기 때문에 피의자의 동의도 반드시 필요하다는 거죠.

만약 누구라도 동의를 하지 않는다면 동의한 사람만 나오는 영상 위주로 ‘ 일부 공개’ 또는 ‘ 비식별화’ 조치'를 해야 한다고 되어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비식별화 조치는 흔히 말하는 ‘모자이크’입니다.

이번 정보공개요청에서 아동학대를 신고한 부모가 요청한 분량은 32일 치, 용량으로는 170기가바이트였습니다. 이 모든 영상을 모자이크하는데 드는 비용이 바로 1억 원이었던 겁니다.

■가해자 동의도 필수..."제도적 개선책 고민해야"

부산 기장경찰서부산 기장경찰서
경찰은 이런 규정이 법제처 등의 유권해석을 따른 것으로 어쩔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하지만 CCTV 공개를 가해자가 동의할 가능성이 그리 커 보이지 않는다는 점을 볼 때 현실과 동떨어졌다는 느낌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일선 경찰 역시 이 점을 모르는 건 아닙니다. 한 경찰관은 “경찰도 누군가의 부모일 수 있는데 왜 보여주고 싶지 않겠느냐”면서도 “만약 매뉴얼을 어겨 공개했다가 민사 소송이라도 당한다면 그건 누가 보상해주겠느냐”고 토로했습니다.

이번 사건에서 경찰이 손을 놓고 있었던 건 아닙니다. 기장경찰서는 CCTV를 제공하기 위해 어린이집 측에 전체 원생의 보호자 연락처를 제공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보호자의 동의를 얻어 모자이크 없이 제공하는 방안을 모색했던 건데 어린이집은 거부했습니다.

압수수색이라도 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생각하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영장이라는 게 구체적 범죄 혐의점이 없는 상태에서는 그리 쉽게 나오는 게 아닙니다.

2015년 아동학대를 막아보자며 관련 법을 개정해 어린이집의 CCTV 설치를 의무화했지만, 여전히 제도와 현실은 엇박자를 내고 있는 셈입니다.

이 때문인지 청와대에는 어린이집 CCTV 열람의 상시화를 요구하는 국민청원이 올라왔고 2,800여 명이 동의한 상태입니다.

아동학대 사건을 주로 담당해온 장애인권법센터의 김예원 변호사는 KBS와의 통화에서 " 여기서는 되고 여기서는 안 되는 건 법이 아니다"라며 "법령상 CCTV 설치가 의무화됐다는 건 필요한 사람의 접근이 언제든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는 제도적 취지"라고 강조했습니다.

이제라도 대안을 찾아볼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습니다. 민변 아동권익위원회의 김영주 변호사는 "법이 이러다 보니 현장에서는 부모가 소위 진상짓을 부려 CCTV를 확보해야 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며 "아동학대가 대충 넘어갈 범죄가 아니라는 사회적 합의가 된 만큼 개인정보 침해를 피해 나가면서 제도적 개선책을 찾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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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CTV 보려면 1억” 현실 외면한 아동학대 수사 지침
    • 입력 2021-01-21 15:32:18
    취재K

"1510건"

2019년 한 해 동안 어린이집과 유치원에서 발생한 아동학대 발생 건수입니다. 하루 평균 4건 이들 장소에서 아동학대가 발생했다니 적은 수가 결코 아닙니다. 보건복지부가 관련 통계를 내고 있는데, 매년 증가하는 추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아동학대 여부를 가려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 하는 게 바로 CCTV입니다. 아동의 특성상 구체적인 피해와 시기를 특정할 수 없다는 점 때문인데요. 영유아보육법 역시 이런 점을 반영해 보호자가 어린이집에 CCTV 공개를 요청할 수 있다고 정해놓고 있습니다.

영유아보육법 시행규칙은 “열람 요청을 받은 날부터 10일 이내에 열람 장소와 시간을 정하여 보호자에게 통지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법은 그렇게 돼 있는데 정작 CCTV를 보려면 여간 까다로운 일이 아닙니다.

“1억이 듭니다”

최근 부산 기장경찰서가 어린이집 CCTV를 보여달라며 정보공개를 청구한 아동학대 신고 부모에게 이런 안내를 해서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경찰이 이유로 든 건 개인정보 보호입니다.

경찰의 ‘아동학대 수사 업무 매뉴얼’은 CCTV를 열람하려면 피해자는 물론 피의자를 포함한 모든 정보주체의 동의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범죄혐의가 확정되기 전이기 때문에 피의자의 동의도 반드시 필요하다는 거죠.

만약 누구라도 동의를 하지 않는다면 동의한 사람만 나오는 영상 위주로 ‘ 일부 공개’ 또는 ‘ 비식별화’ 조치'를 해야 한다고 되어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비식별화 조치는 흔히 말하는 ‘모자이크’입니다.

이번 정보공개요청에서 아동학대를 신고한 부모가 요청한 분량은 32일 치, 용량으로는 170기가바이트였습니다. 이 모든 영상을 모자이크하는데 드는 비용이 바로 1억 원이었던 겁니다.

■가해자 동의도 필수..."제도적 개선책 고민해야"

부산 기장경찰서경찰은 이런 규정이 법제처 등의 유권해석을 따른 것으로 어쩔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하지만 CCTV 공개를 가해자가 동의할 가능성이 그리 커 보이지 않는다는 점을 볼 때 현실과 동떨어졌다는 느낌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일선 경찰 역시 이 점을 모르는 건 아닙니다. 한 경찰관은 “경찰도 누군가의 부모일 수 있는데 왜 보여주고 싶지 않겠느냐”면서도 “만약 매뉴얼을 어겨 공개했다가 민사 소송이라도 당한다면 그건 누가 보상해주겠느냐”고 토로했습니다.

이번 사건에서 경찰이 손을 놓고 있었던 건 아닙니다. 기장경찰서는 CCTV를 제공하기 위해 어린이집 측에 전체 원생의 보호자 연락처를 제공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보호자의 동의를 얻어 모자이크 없이 제공하는 방안을 모색했던 건데 어린이집은 거부했습니다.

압수수색이라도 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생각하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영장이라는 게 구체적 범죄 혐의점이 없는 상태에서는 그리 쉽게 나오는 게 아닙니다.

2015년 아동학대를 막아보자며 관련 법을 개정해 어린이집의 CCTV 설치를 의무화했지만, 여전히 제도와 현실은 엇박자를 내고 있는 셈입니다.

이 때문인지 청와대에는 어린이집 CCTV 열람의 상시화를 요구하는 국민청원이 올라왔고 2,800여 명이 동의한 상태입니다.

아동학대 사건을 주로 담당해온 장애인권법센터의 김예원 변호사는 KBS와의 통화에서 " 여기서는 되고 여기서는 안 되는 건 법이 아니다"라며 "법령상 CCTV 설치가 의무화됐다는 건 필요한 사람의 접근이 언제든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는 제도적 취지"라고 강조했습니다.

이제라도 대안을 찾아볼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습니다. 민변 아동권익위원회의 김영주 변호사는 "법이 이러다 보니 현장에서는 부모가 소위 진상짓을 부려 CCTV를 확보해야 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며 "아동학대가 대충 넘어갈 범죄가 아니라는 사회적 합의가 된 만큼 개인정보 침해를 피해 나가면서 제도적 개선책을 찾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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