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 반도체 ‘승자독식’은 TSMC 몫?…삼성의 미래는?

입력 2021.01.26 (07:00) 수정 2021.01.26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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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1칩이 뭐야? 외계인 데려다 만들었다는 애플 새 맥북 시리즈

애플이 만든 새 맥북 프로와 맥북 에어가 화제다. 인텔 CPU를 버리고 M1이라는 자체 개발 칩을 장착했는데 그 성능이 놀랍다는 것. '프로그램 10개를 동시에 띄워도 쌩쌩하다. 소음이나 발열은 느껴지지 않고, 배터리는 온종일 간다.' 칩 말고는 바뀐 게 없는데 이렇게 달라지니, "애플이 외계인을 데려다 고문해 만들었을 것"이란 소리까지 나온다. 노트북의 새 역사를 창조했다는 이 M1 칩. 실은 외계인이 아니고 5나노 미세 공정으로 TSMC가 만들었다.

2021년 1월 세계 최고 반도체 기업은 TSMC

타이완의 파운드리 업체 TSMC가 삼성전자(반도체 부문)를 제쳤다. 지난해 영업이익이 삼성보다 TSMC가 많다는 얘기다. 매출액은 53조 원 수준으로 삼성보다 적지만 영업이익은 22조 원을 넘어 20조 원 수준으로 예상되는 삼성보다 2조 원 이상 많다. 무려 42.3%에 달하는 '애플 부럽지 않은' 영업이익률 덕분이다. 매체들은 인텔 바로 뒤에 있는 삼성이 TSMC에게도 뒤처진 3등이 되었다고 야단이다.


하지만 TSMC의 영업이익은 2019년에도 삼성전자 수준이었다. 현재 환율 (1원=39.5NT달러) 기준으로 계산하면 14조 7천억 원에 달해 삼성보다 많다. 어쩌면 새삼스럽지 않다는 얘기다. 지난 10년간 영업실적을 봐도, 메모리 슈퍼사이클 때를 제외하면 영업이익 상으로 '비슷한' 회사다.


게다가 TSMC는 사실. 2등도 아니고 1등이다. 시가총액에서 그렇다. 전 세계 반도체 기업 시가총액 1등이다. 저무는 해 인텔은 지난 1년 10% 이상 내리면서 TSMC 시가총액의 반도 안 되고, 지난 1년 그래도 주가가 50% 이상 오른 삼성 역시 시가총액에서 TSMC에 못 미친다. 삼성 주가가 50% 오르는 동안 TSMC는 100% 이상 오르는 초고속 상승 행진을 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TSMC 규모다. 매출이나 영업이익 측면에서 삼성전자의 '반도체 부분' 하나와 비교할 만한, 규모는 그리 크지 않은(?) 회사란 점이다. 직원 수는 10만 명이 넘는 삼성의 절반(4만 8천 명)에 못 미치고, 매출은 가전과 스마트폰 등을 합친 삼성전자의 3~4분의 1 수준에 그친다.

그런데도 2021년 1월 현재 세계 투자자들이 최고의 반도체 회사로 인정한 회사는 TSMC다. 투자자들은 성장성, 전망을 보기 때문. 매출과 영업이익 1위인 인텔이 두 회사 시가총액의 반도 안되는 상황이 이를 말해준다.

왜일까? 단적으로 올해 TSMC의 투자 규모를 보면 된다. TSMC는 올해 시설투자 예상 전망치를 250~280억 달러로 제시했다. 올 한해만 30조 원을 투자하겠다고 한 것. 그만큼 수요가 '폭발'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애플은 2년 뒤 출시될 아이폰14용 3나노 공정 A16 칩을 벌써 주문했다. '지구에서 가장 투자 많이 하는 기업'이 시가총액도 비싼 건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TSMC의 부상... '깨진 무어의 법칙'에서 이야기를 시작해야 한다

고객의 요청에 따라 칩을 만들어줄 뿐인 파운드리 회사 TSMC는 어떻게 이렇게 각광받게 된 것일까.

이번 주 영국의 더 이코노미스트 지는 그 설명을 저 유명한 반도체 업계 '무어의 법칙'으로부터 시작했다. 마이크로 칩의 밀도(혹은 성능)가 18개월~24개월 정도마다 2배로 늘어난다는 이 법칙은 반세기 만에 깨져버렸다. 기술적 한계, 또는 자본비용의 문제 때문이다. '몇 나노'를 따질 정도로 칩이 작아지다 보니 만들기 어려워졌다. 과거에는 성능 향상을 이룰 때마다 원가가 떨어져 기술경쟁이 과열됐지만 이젠 천문학적인 비용까지 든다. 자연히 '무어의 법칙'과 함께 성능 향상을 위한 무한속도 경쟁의 시대가 저물어가고 있다.


주도권을 잃은 건 '표준 CPU 칩'시대의 황제 인텔이다. 지난 수십 년 컴퓨터 성능 향상의 역사는 '펜티엄', '셀러론', '듀얼-쿼드코어' 등과 같은 인텔 주도 표준 CPU 칩의 이름과 함께 했다. 하지만 인텔은 이제 (여전히 1위라곤 하지만) 기술과 양산에서 삼성이나 TSMC에 뒤처지고 있다. 두 회사는 이미 상용화한 7나노 양산 체제 진입에 인텔은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다. 2023년이나 되어야 양산이 된다는데, 그 덕에 한때 경쟁 상대로도 여기지 않던 AMD에도 뒤지는 상황이 됐고 사장은 짐을 쌌다. 일부 공정은 '외주'를 주겠다는 비상선언까지 했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다. (2023년이면 삼성과 TSMC는 3나노 기술로 제품을 만들 것으로 보인다. )

인텔의 ‘표준 칩’ 시대가 저물고 ‘맞춤 칩’ 시대가 왔다.

인텔이 뒤처진 사이 애플, 아마존, 구글 등 미국의 IT 공룡들은 직접 '맞춤형 칩'을 설계해 사용하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표준적 성능향상의 시대가 가고 각 회사가 자신의 회사에 최적화된 칩을 직접 설계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애플은 네트워킹과 모바일 디바이스에 최적화된 아이폰용 A 시리즈 칩에 이어 맥북용 M 시리즈까지 직접 만들기 시작했다. 저 발열, 저소음, 긴 사용시간... 모바일 기기는 인텔보다 애플이 더 잘 알 테니까, 맞춤형 칩을 애플이 더 잘 만드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애플을 제외한 스마트폰 두뇌(AP) 시장은 퀄컴이 장악했다. 퀄컴도 '스냅드래곤' 같은 칩을 직접 만든다. (그 뒤에 엑시노스를 만드는 삼성 등이 있다. )

클라우드 서비스 세계 1위 아마존은 자체 서버 칩 Graviton(그라비톤)을 들고 나왔다. 클라우드 컴퓨팅 서버에 최적화된 설계를 했다. 성능이 인텔 칩보다 뛰어난 것은 아니지만 '가성비'가 좋다. 아마존 AWS가 가격경쟁력을 바탕으로 세계 시장을 휩쓰는 데 공헌하고 있다. 아마존은 AI 기술에 최적화된 ‘인퍼런시아’라는 새 칩도 설계해 사용하기 시작했다.

구글은 AI 연산에 최적화된 TPU 시스템을 판다. 클라우드 상에서 제공되는 맞춤형 머신러닝 주문형 반도체인데, 얼마 전 삼성 빅스비의 AI 모델 학습속도를 18배 향상시켰다는 기사가 떴다.

인텔을 제치고 미국 내 반도체 기업 시가총액 1위에 등극한 NVIDIA는 ‘지포스’로 유명 그래픽카드 회사에서 '연산과 그래픽 처리'에 강한 AI 시대 선두기업이 됐다. 이젠 칩 설계업체 ARM까지 인수한 NVIDIA는 CPU 중심의 인텔 체계를 벗어나 GPU를 중심으로 한 새 컴퓨팅 표준을 향해 나아가려 한다.

빅테크 회사들은 이제 AI면 AI, 모바일이면 모바일, 클라우드면 클라우드, 각자 필요에 맞게 칩을 직접 설계해서 쓰는 시대가 됐다. 조만간 MS(마이크로소프트)마저 인텔과 결별하고 자체 칩을 시도할 거란 얘기가 나오고 있다.

표준화된 칩의 급속한 발전이 주도하던 시장이 제각각 알아서 설계하는 시장으로 변한다.

'맞춤 칩'의 시대, 모든 제조는 TSMC '한 길'로 통한다

IT 공룡들이 이렇게 각자의 비즈니스에 딱 맞는 ‘맞춤형 칩’을 쓸 수 있는 이유. 설계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아마존 등 일부는 인수합병을 통해 제조도 직접 하지만 대량 정밀 생산 상황에 놓이면 제조는 외부의 몫이 된다. 바로 이 반도체 제조(파운드리)의 유일한 별, 그게 바로 TSMC다.


TSMC를 '아웃소싱 하청회사' 정도로 오해하던 시절은 갔다. 첨단(Cutting edge) 파운드리는 오히려 꿈을 가능하게 해주는 꿈의 공장에 가깝다. 초미세공정으로 천문학적인 수량의 칩을 만들어 줄 수 있는 세계에서 유일한 회사다. 그래서 첨단 파운드리는 이곳에 몰린다. 애플은 벌써 아이폰14용 3나노 공정 A16 칩 발주를 넣어뒀다. 이 수요 급증 때문에 TSMC는 1년에 30조 원을 시설투자에 쏟아붓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주완 포스코 경영연구원 연구위원은 "TSMC는 고객사만 3~4천 개가 넘는 파운드리사이고, 아주 오래전부터 세계 물량의 50% 안팎을 독과점해오던 회사"라고 말한다. 게다가 "메모리 반도체 제조업은 '물건을 만들어서 시장에 내다 파는' 사업이지만, 파운드리는 주문이 들어온 걸 만드는 사업이다. 이 때문에 메모리 시장은 사이클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다. 항상 '공급과잉'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파운드리는 그런 게 없다. 주문받고 만드니 재고는 없다. 꾸준한 수익을 거둘 수 있다"는 분석이다.

게다가 미세공정에 들어가면서 자본비용이 급격히 높아졌다. 플라즈마 에칭 장비나 진공 디포지션 기기, 기기 무게만 180톤에 달하는 리쏘그라피 기기 가격은 상상을 초월한다. 특히 극미세공정에 들어가며 각광받는 EUV 장비 등은 한 대에 2천억 원에 달하고 유지비용도 엄청나다. 초미세 첨단 공정 파운드리는 더욱더 아무나 할 수 없는 사업이 되어가고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글로벌 첨단 칩 산업이 '각자 알아서 설계한 뒤 3개 업체가 제조하는 시대'를 맞았다고 평가한다. (TSMC와 인텔, 그리고 다행히도 삼성전자) 5년 전만 해도 25개 업체가 있던 시장이다. 그리고 최신 기술 필요한 파운드리 50% 이상은 TSMC가 하고 있다. 기술적으로 삼성보다 수개월 앞서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TSMC로의 집중. 반도체 제조가 승자독식 산업이 되어가고 있다.

게다가 코로나... TSMC 폭발적 성장의 전기

안 그래도 강력하던 TSMC에게 코로나19는 새로운 전기가 되었다. AI 시대, 코로나로 인한 비대면 온라인 업무 폭증 시대. 빅테크의 부상과 함께 반도체 시장은 급팽창하고 있다. 메모리와 달리 사이클이 없고 부침이 없다.

최근 자동차 회사들이 사이에서 '반도체 없어서 차 못 만든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게 단적인 예다. 반도체 품귀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혼다와 폭스바겐은 이미 생산 차질 빚고 있다. (사실 자동차 반도체는 첨단 반도체는 아니고, 부가가치 높은 편도 아니어서 선도 시장은 아니다. )

자동차 산업이 자율주행으로 이동하면 이같은 트렌드는 가속화된다. 지금은 AI 혁신과 온라인 거래 급증이 파운드리 팽창을 이끌지만 몇 년 안에 자율주행 시스템이 파운드리 팽창을 이끌 거란 전망이 나온다. 테슬라는 벌써 7나노 자율주행 시스템을 설계하고 (당연히) TSMC에 제조를 맡기고 있다. AI와 클라우드, 온라인 시장의 팽창에 더해 자율주행 시장까지 열리면 파운드리는 그야말로 만개할 것이다.


지난해 폭발적으로 성장한 TSMC. 앞으로 당분간 ‘승자독식의 주인공’으로 경쟁자 없는 TSMC의 질주가 이어지리라는 전망이 많다. 2020년은 변곡점이었고, TSMC는 이렇게 업계 총아로 떠올랐다.

삼성 10년간 100조 투입 선언했는데... TSMC는 올해만 30조

파운드리 산업의 80%는 아시아에 있다. 미국은 경쟁력을 잃었다. 미 정부도, 반도체 협회도 알고 있다. 하지만 뾰족이 다른 방법은 없다. 정치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미국 빅테크 대부분이 의존하는 TSMC와 중국의 관계가 깊어지지 않게 '대놓고' 강요하는 일, 그리고 미국에 공장을 짓고 칩을 생산하게 '은연중에' 강요하는 일 정도다.

삼성은 파운드리에서만큼은 아직 TSMC의 경쟁자가 아니다. 삼성은 향후 10년간 100조 원을 투입하겠다고 선언했지만 어쩐지 TSMC의 '올 한해만 30조'에 비하면 적어 보인다. 게다가 삼성의 100조 원은 메모리 산업에도 들어간다. 파운드리만 집중하는 TSMC의 강점이 돋보인다.


게다가 '종합반도체 회사'인 삼성은 '이해충돌' 문제도 풀어야할 숙제다. 애플은 아이폰용 A칩 제조를 처음엔 삼성에 맡겼다가 TSMC로 옮겼다. 스마트폰 등 완제품 경쟁사에 파운드리를 맡긴다면 설계기술 유출 문제나 점유율 잠식 우려를 가질 수밖에 없다. 이런 이유로 지금은 TSMC와 한참 떨어진 점유율의 2위일 뿐이다.


그럼에도 삼성은 파운드리 강화에 사활을 걸고 있다. TSMC처럼 미국에 10조 원 넘는 규모의 첨단 파운드리 공장을 신규 건설한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올해 투자 규모를 TSMC처럼 2~30조로 늘린다는 발표가 임박했단 소문도 심심찮게 나온다. '업황 사이클'을 많이 타는 메모리 반도체 산업의 고질적 문제를 해결하고, 반도체 산업에서의 지속적 성장을 위해선 파운드리를 포기할 수 없단 판단이 선 것.

이주완 연구위원은 희망적인 면을 이렇게 설명한다. "메모리 반도체와 파운드리는 똑같이 기술 집약적이고 엄청난 자본이 필요한 사업이다. 아무나 할 수 없다. 삼성은 이 점에서 유리하다. 미국의 글로벌 파운드리나 UMC는 7나노부터 포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삼성은 불과 2~3년 전만 해도 파운드리에서 4~5위 하던 업체다. 실력이 있으니 향후 실적(트랙레코드)를 잘 쌓아 나가는 게 중요하다."

[연관기사] ‘아이폰12 출시’ 진격의 애플…삼성전자 5배 가치는 정당한가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025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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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첨단 반도체 ‘승자독식’은 TSMC 몫?…삼성의 미래는?
    • 입력 2021-01-26 07:00:08
    • 수정2021-01-26 15:44:48
    취재K

# M1칩이 뭐야? 외계인 데려다 만들었다는 애플 새 맥북 시리즈

애플이 만든 새 맥북 프로와 맥북 에어가 화제다. 인텔 CPU를 버리고 M1이라는 자체 개발 칩을 장착했는데 그 성능이 놀랍다는 것. '프로그램 10개를 동시에 띄워도 쌩쌩하다. 소음이나 발열은 느껴지지 않고, 배터리는 온종일 간다.' 칩 말고는 바뀐 게 없는데 이렇게 달라지니, "애플이 외계인을 데려다 고문해 만들었을 것"이란 소리까지 나온다. 노트북의 새 역사를 창조했다는 이 M1 칩. 실은 외계인이 아니고 5나노 미세 공정으로 TSMC가 만들었다.

2021년 1월 세계 최고 반도체 기업은 TSMC

타이완의 파운드리 업체 TSMC가 삼성전자(반도체 부문)를 제쳤다. 지난해 영업이익이 삼성보다 TSMC가 많다는 얘기다. 매출액은 53조 원 수준으로 삼성보다 적지만 영업이익은 22조 원을 넘어 20조 원 수준으로 예상되는 삼성보다 2조 원 이상 많다. 무려 42.3%에 달하는 '애플 부럽지 않은' 영업이익률 덕분이다. 매체들은 인텔 바로 뒤에 있는 삼성이 TSMC에게도 뒤처진 3등이 되었다고 야단이다.


하지만 TSMC의 영업이익은 2019년에도 삼성전자 수준이었다. 현재 환율 (1원=39.5NT달러) 기준으로 계산하면 14조 7천억 원에 달해 삼성보다 많다. 어쩌면 새삼스럽지 않다는 얘기다. 지난 10년간 영업실적을 봐도, 메모리 슈퍼사이클 때를 제외하면 영업이익 상으로 '비슷한' 회사다.


게다가 TSMC는 사실. 2등도 아니고 1등이다. 시가총액에서 그렇다. 전 세계 반도체 기업 시가총액 1등이다. 저무는 해 인텔은 지난 1년 10% 이상 내리면서 TSMC 시가총액의 반도 안 되고, 지난 1년 그래도 주가가 50% 이상 오른 삼성 역시 시가총액에서 TSMC에 못 미친다. 삼성 주가가 50% 오르는 동안 TSMC는 100% 이상 오르는 초고속 상승 행진을 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TSMC 규모다. 매출이나 영업이익 측면에서 삼성전자의 '반도체 부분' 하나와 비교할 만한, 규모는 그리 크지 않은(?) 회사란 점이다. 직원 수는 10만 명이 넘는 삼성의 절반(4만 8천 명)에 못 미치고, 매출은 가전과 스마트폰 등을 합친 삼성전자의 3~4분의 1 수준에 그친다.

그런데도 2021년 1월 현재 세계 투자자들이 최고의 반도체 회사로 인정한 회사는 TSMC다. 투자자들은 성장성, 전망을 보기 때문. 매출과 영업이익 1위인 인텔이 두 회사 시가총액의 반도 안되는 상황이 이를 말해준다.

왜일까? 단적으로 올해 TSMC의 투자 규모를 보면 된다. TSMC는 올해 시설투자 예상 전망치를 250~280억 달러로 제시했다. 올 한해만 30조 원을 투자하겠다고 한 것. 그만큼 수요가 '폭발'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애플은 2년 뒤 출시될 아이폰14용 3나노 공정 A16 칩을 벌써 주문했다. '지구에서 가장 투자 많이 하는 기업'이 시가총액도 비싼 건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TSMC의 부상... '깨진 무어의 법칙'에서 이야기를 시작해야 한다

고객의 요청에 따라 칩을 만들어줄 뿐인 파운드리 회사 TSMC는 어떻게 이렇게 각광받게 된 것일까.

이번 주 영국의 더 이코노미스트 지는 그 설명을 저 유명한 반도체 업계 '무어의 법칙'으로부터 시작했다. 마이크로 칩의 밀도(혹은 성능)가 18개월~24개월 정도마다 2배로 늘어난다는 이 법칙은 반세기 만에 깨져버렸다. 기술적 한계, 또는 자본비용의 문제 때문이다. '몇 나노'를 따질 정도로 칩이 작아지다 보니 만들기 어려워졌다. 과거에는 성능 향상을 이룰 때마다 원가가 떨어져 기술경쟁이 과열됐지만 이젠 천문학적인 비용까지 든다. 자연히 '무어의 법칙'과 함께 성능 향상을 위한 무한속도 경쟁의 시대가 저물어가고 있다.


주도권을 잃은 건 '표준 CPU 칩'시대의 황제 인텔이다. 지난 수십 년 컴퓨터 성능 향상의 역사는 '펜티엄', '셀러론', '듀얼-쿼드코어' 등과 같은 인텔 주도 표준 CPU 칩의 이름과 함께 했다. 하지만 인텔은 이제 (여전히 1위라곤 하지만) 기술과 양산에서 삼성이나 TSMC에 뒤처지고 있다. 두 회사는 이미 상용화한 7나노 양산 체제 진입에 인텔은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다. 2023년이나 되어야 양산이 된다는데, 그 덕에 한때 경쟁 상대로도 여기지 않던 AMD에도 뒤지는 상황이 됐고 사장은 짐을 쌌다. 일부 공정은 '외주'를 주겠다는 비상선언까지 했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다. (2023년이면 삼성과 TSMC는 3나노 기술로 제품을 만들 것으로 보인다. )

인텔의 ‘표준 칩’ 시대가 저물고 ‘맞춤 칩’ 시대가 왔다.

인텔이 뒤처진 사이 애플, 아마존, 구글 등 미국의 IT 공룡들은 직접 '맞춤형 칩'을 설계해 사용하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표준적 성능향상의 시대가 가고 각 회사가 자신의 회사에 최적화된 칩을 직접 설계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애플은 네트워킹과 모바일 디바이스에 최적화된 아이폰용 A 시리즈 칩에 이어 맥북용 M 시리즈까지 직접 만들기 시작했다. 저 발열, 저소음, 긴 사용시간... 모바일 기기는 인텔보다 애플이 더 잘 알 테니까, 맞춤형 칩을 애플이 더 잘 만드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애플을 제외한 스마트폰 두뇌(AP) 시장은 퀄컴이 장악했다. 퀄컴도 '스냅드래곤' 같은 칩을 직접 만든다. (그 뒤에 엑시노스를 만드는 삼성 등이 있다. )

클라우드 서비스 세계 1위 아마존은 자체 서버 칩 Graviton(그라비톤)을 들고 나왔다. 클라우드 컴퓨팅 서버에 최적화된 설계를 했다. 성능이 인텔 칩보다 뛰어난 것은 아니지만 '가성비'가 좋다. 아마존 AWS가 가격경쟁력을 바탕으로 세계 시장을 휩쓰는 데 공헌하고 있다. 아마존은 AI 기술에 최적화된 ‘인퍼런시아’라는 새 칩도 설계해 사용하기 시작했다.

구글은 AI 연산에 최적화된 TPU 시스템을 판다. 클라우드 상에서 제공되는 맞춤형 머신러닝 주문형 반도체인데, 얼마 전 삼성 빅스비의 AI 모델 학습속도를 18배 향상시켰다는 기사가 떴다.

인텔을 제치고 미국 내 반도체 기업 시가총액 1위에 등극한 NVIDIA는 ‘지포스’로 유명 그래픽카드 회사에서 '연산과 그래픽 처리'에 강한 AI 시대 선두기업이 됐다. 이젠 칩 설계업체 ARM까지 인수한 NVIDIA는 CPU 중심의 인텔 체계를 벗어나 GPU를 중심으로 한 새 컴퓨팅 표준을 향해 나아가려 한다.

빅테크 회사들은 이제 AI면 AI, 모바일이면 모바일, 클라우드면 클라우드, 각자 필요에 맞게 칩을 직접 설계해서 쓰는 시대가 됐다. 조만간 MS(마이크로소프트)마저 인텔과 결별하고 자체 칩을 시도할 거란 얘기가 나오고 있다.

표준화된 칩의 급속한 발전이 주도하던 시장이 제각각 알아서 설계하는 시장으로 변한다.

'맞춤 칩'의 시대, 모든 제조는 TSMC '한 길'로 통한다

IT 공룡들이 이렇게 각자의 비즈니스에 딱 맞는 ‘맞춤형 칩’을 쓸 수 있는 이유. 설계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아마존 등 일부는 인수합병을 통해 제조도 직접 하지만 대량 정밀 생산 상황에 놓이면 제조는 외부의 몫이 된다. 바로 이 반도체 제조(파운드리)의 유일한 별, 그게 바로 TSMC다.


TSMC를 '아웃소싱 하청회사' 정도로 오해하던 시절은 갔다. 첨단(Cutting edge) 파운드리는 오히려 꿈을 가능하게 해주는 꿈의 공장에 가깝다. 초미세공정으로 천문학적인 수량의 칩을 만들어 줄 수 있는 세계에서 유일한 회사다. 그래서 첨단 파운드리는 이곳에 몰린다. 애플은 벌써 아이폰14용 3나노 공정 A16 칩 발주를 넣어뒀다. 이 수요 급증 때문에 TSMC는 1년에 30조 원을 시설투자에 쏟아붓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주완 포스코 경영연구원 연구위원은 "TSMC는 고객사만 3~4천 개가 넘는 파운드리사이고, 아주 오래전부터 세계 물량의 50% 안팎을 독과점해오던 회사"라고 말한다. 게다가 "메모리 반도체 제조업은 '물건을 만들어서 시장에 내다 파는' 사업이지만, 파운드리는 주문이 들어온 걸 만드는 사업이다. 이 때문에 메모리 시장은 사이클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다. 항상 '공급과잉'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파운드리는 그런 게 없다. 주문받고 만드니 재고는 없다. 꾸준한 수익을 거둘 수 있다"는 분석이다.

게다가 미세공정에 들어가면서 자본비용이 급격히 높아졌다. 플라즈마 에칭 장비나 진공 디포지션 기기, 기기 무게만 180톤에 달하는 리쏘그라피 기기 가격은 상상을 초월한다. 특히 극미세공정에 들어가며 각광받는 EUV 장비 등은 한 대에 2천억 원에 달하고 유지비용도 엄청나다. 초미세 첨단 공정 파운드리는 더욱더 아무나 할 수 없는 사업이 되어가고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글로벌 첨단 칩 산업이 '각자 알아서 설계한 뒤 3개 업체가 제조하는 시대'를 맞았다고 평가한다. (TSMC와 인텔, 그리고 다행히도 삼성전자) 5년 전만 해도 25개 업체가 있던 시장이다. 그리고 최신 기술 필요한 파운드리 50% 이상은 TSMC가 하고 있다. 기술적으로 삼성보다 수개월 앞서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TSMC로의 집중. 반도체 제조가 승자독식 산업이 되어가고 있다.

게다가 코로나... TSMC 폭발적 성장의 전기

안 그래도 강력하던 TSMC에게 코로나19는 새로운 전기가 되었다. AI 시대, 코로나로 인한 비대면 온라인 업무 폭증 시대. 빅테크의 부상과 함께 반도체 시장은 급팽창하고 있다. 메모리와 달리 사이클이 없고 부침이 없다.

최근 자동차 회사들이 사이에서 '반도체 없어서 차 못 만든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게 단적인 예다. 반도체 품귀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혼다와 폭스바겐은 이미 생산 차질 빚고 있다. (사실 자동차 반도체는 첨단 반도체는 아니고, 부가가치 높은 편도 아니어서 선도 시장은 아니다. )

자동차 산업이 자율주행으로 이동하면 이같은 트렌드는 가속화된다. 지금은 AI 혁신과 온라인 거래 급증이 파운드리 팽창을 이끌지만 몇 년 안에 자율주행 시스템이 파운드리 팽창을 이끌 거란 전망이 나온다. 테슬라는 벌써 7나노 자율주행 시스템을 설계하고 (당연히) TSMC에 제조를 맡기고 있다. AI와 클라우드, 온라인 시장의 팽창에 더해 자율주행 시장까지 열리면 파운드리는 그야말로 만개할 것이다.


지난해 폭발적으로 성장한 TSMC. 앞으로 당분간 ‘승자독식의 주인공’으로 경쟁자 없는 TSMC의 질주가 이어지리라는 전망이 많다. 2020년은 변곡점이었고, TSMC는 이렇게 업계 총아로 떠올랐다.

삼성 10년간 100조 투입 선언했는데... TSMC는 올해만 30조

파운드리 산업의 80%는 아시아에 있다. 미국은 경쟁력을 잃었다. 미 정부도, 반도체 협회도 알고 있다. 하지만 뾰족이 다른 방법은 없다. 정치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미국 빅테크 대부분이 의존하는 TSMC와 중국의 관계가 깊어지지 않게 '대놓고' 강요하는 일, 그리고 미국에 공장을 짓고 칩을 생산하게 '은연중에' 강요하는 일 정도다.

삼성은 파운드리에서만큼은 아직 TSMC의 경쟁자가 아니다. 삼성은 향후 10년간 100조 원을 투입하겠다고 선언했지만 어쩐지 TSMC의 '올 한해만 30조'에 비하면 적어 보인다. 게다가 삼성의 100조 원은 메모리 산업에도 들어간다. 파운드리만 집중하는 TSMC의 강점이 돋보인다.


게다가 '종합반도체 회사'인 삼성은 '이해충돌' 문제도 풀어야할 숙제다. 애플은 아이폰용 A칩 제조를 처음엔 삼성에 맡겼다가 TSMC로 옮겼다. 스마트폰 등 완제품 경쟁사에 파운드리를 맡긴다면 설계기술 유출 문제나 점유율 잠식 우려를 가질 수밖에 없다. 이런 이유로 지금은 TSMC와 한참 떨어진 점유율의 2위일 뿐이다.


그럼에도 삼성은 파운드리 강화에 사활을 걸고 있다. TSMC처럼 미국에 10조 원 넘는 규모의 첨단 파운드리 공장을 신규 건설한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올해 투자 규모를 TSMC처럼 2~30조로 늘린다는 발표가 임박했단 소문도 심심찮게 나온다. '업황 사이클'을 많이 타는 메모리 반도체 산업의 고질적 문제를 해결하고, 반도체 산업에서의 지속적 성장을 위해선 파운드리를 포기할 수 없단 판단이 선 것.

이주완 연구위원은 희망적인 면을 이렇게 설명한다. "메모리 반도체와 파운드리는 똑같이 기술 집약적이고 엄청난 자본이 필요한 사업이다. 아무나 할 수 없다. 삼성은 이 점에서 유리하다. 미국의 글로벌 파운드리나 UMC는 7나노부터 포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삼성은 불과 2~3년 전만 해도 파운드리에서 4~5위 하던 업체다. 실력이 있으니 향후 실적(트랙레코드)를 잘 쌓아 나가는 게 중요하다."

[연관기사] ‘아이폰12 출시’ 진격의 애플…삼성전자 5배 가치는 정당한가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025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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