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여 년 만에 찾아낸 히틀러의 말, 그 흥미진진한 추적기

입력 2021.01.26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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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이탈리아 중서부 토스카나 주에 있는 항구도시 리보르노의 한 저택. 두 남자가 은밀한 대화를 나눕니다. 집주인인 노인은 미술계의 유명한 장사꾼이었고, 또 다른 남자는 45살의 네덜란드 예술 탐정 아르뛰어 브란트(Arthur Brand). 브란트는 15년 전에 인연을 맺은 노회한 미술상의 긴급 호출을 받고 막 이곳에 도착한 참이었죠. "왜 저를 부르신 건가요?" 노인은 빔프로젝터를 켜고 브란트에게 슬라이드 몇 장을 보여줍니다. 수수께끼의 시작.

노인은 이 상황을 한껏 즐깁니다. "아돌프 히틀러가 무척이나 소중히 여긴 나머지 되도록 자기 곁에 가까이 두기를 원했던 물건." 마지막 슬라이드가 화면에 뜨자, 나치 지도자 히틀러의 집무실이 있었던 독일 베를린 국가수상부 건물 뒤편이 보였죠. 정원으로 이어지는 계단 난간 양쪽에 서 있는 거대한 조각상 두 점. <걷는 말(Walking Horses)>이란 이름이 붙은 이 늠름한 청동 조각상들은 유명한 나치 조각가 요제프 토락(Josef Thorak, 1889~1952)의 작품이었죠.


당대 최고의 지성들이 모인 학문과 예술의 도시 빈(Wien)에서 화가가 되길 꿈꿨던 젊은 날의 히틀러. 하지만 빈의 미술 아카데미에 지원했다가 두 번이나 낙방. 이미 사진이 발명된 마당이라 히틀러의 사실적인 화풍은 구태의연한 기법으로 외면을 당합니다. 그나마 히틀러가 생계를 이을 수 있도록 그림을 사준 건 역설적이게도 대부분 유대인들이었습니다. 그리고 훗날 막강한 권력을 손에 쥔 히틀러는 돈으로 예술가들을 삽니다. 몇몇 예술가들은 히틀러의 총애에 기꺼이 고개를 조아렸죠.

히틀러가 몹시도 사랑했던 세 조각가가 있었습니다. 아르노 브레커(Arno Breker, 1900~1991), 프리츠 클림쉬(Fritz Klimsch, 1870~1960), 그리고 또 한 사람 요제프 토락. 노인은 점점 궁금증이 커지는 브란트에게 또 다른 사진을 보여줍니다.


이럴 수가. 브란트는 놀라서 물었죠. "아니, 이게 뭐예요?" 흑백이 아닌 컬러 사진에 포착된 히틀러의 말들. 이 사진은 어느 네덜란드의 미술품 상인이 거래를 타진하기 위해 노인에게 보낸 것이었습니다. 사라진 줄로 알았던 청동 말 조각상이 70년 동안 감쪽같이 숨었다가 이제야 그 모습을 드러냈다고? 브란트는 두말할 것도 없는 가짜라고 말합니다. "나는 영 퍼센트라고 봐요."

암스테르담으로 돌아온 우리의 주인공 브란트는 함께 일하는 동료들에게 여행에서 있었던 일을 들려줍니다. 1945년 4월 연합군이 베를린에 맹폭격을 가하면서 청동 말 조각상 역시 흔적도 없이 파괴돼 사라졌을 것이다! 브란트는 동료들에게 1930년대 말에 찍힌 요제프 토락의 사진을 보여줍니다.


청동 말 조각상과 똑같은 형태의 축소 모형을 석고로 제작하고 있는 모습. 브란트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요제프 토락은 거대한 말 조각상 외에도 저 작은 석고 모형으로 소형 청동 말 조각상 5점을 만들어 나치 고위 간부들에게 선물로 줬다. 그러니 상식적으로 봤을 때 난데없이 등장한 청동 말 조각상은 누군가 보관해오던 소형 조각상을 토대로 최근에 새로 만든 복제품이다.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였죠.

하지만 수수께끼는 수수께끼로 남을 때 존재감을 드러내는 법. 우연히 소형 말 조각상 가운데 한 점을 소장하고 있는 사람을 벨기에 브뤼셀에서 만나고 돌아온 브란트는 유튜브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나치 기록영화를 동료들에게 다시 보여줍니다. 동영상을 재생한 지 정확하게 9초 뒤에 정지했더니…


히틀러가 청년단 단원들을 사열한 이 장소는 바로 국가수상부 건물 뒤편에 있는 정원. 영상이 촬영된 시점은 히틀러가 자살로 생을 마감하기 직전인 1945년 3월 20일. 그런데 마땅히 말이 있어야 할 자리에 히틀러의 호위병이 서 있군요. 더구나 국가수상부 건물도 멀쩡해 보이고요. 말 조각상은 연합군이 베를린을 폭격하기 전에 이미 다른 곳으로 옮겨진 것이었습니다. 잔뜩 흥분한 브란트와 동료들은 그렇게 지구 상에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모두가 철석같이 믿고 있던 히틀러의 보물을 찾는 모험에 뛰어듭니다.

포기라곤 모르는 네덜란드의 예술 탐정과 그 동료들, 그리고 노련한 경찰과 유명 잡지사 기자까지 합세한 이 전대미문의 나치 예술품 추적기는 손에 땀을 쥐게 할 만큼 흥미진진합니다. 잘 만들어진 첩보영화를 본 것처럼 짜릿한 흥분을 느끼게 하는 장면들의 연속이죠. 게다가 실화라니요! 브란트는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한 나치 미술품 추적기 《히틀러의 사라진 보물》(이더레인, 2021)을 경쾌한 문장으로 써내려갔습니다.


이 이야기의 끝은 물론 해피엔딩입니다. 2015년 5월 20일 수요일, 독일 남서부의 작은 도시 바트뒤르크하임의 한 창고에서 문제의 청동 말 조각상 한 쌍이 발견됩니다. 브란트와 그의 동료들이 조사에 착수한 지 1년 반 만에 거둔 개가였죠. 이 충격적인 소식은 당연히 전 세계 언론에 대서특필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국내에서는 크게 주목을 못 받았던 모양입니다. 과거 KBS 뉴스에는 관련 기사가 없더군요.

다행히 KBS 영상 자료 더미에서 당시 외신이 촬영한 영상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무려 70여 년 만에 세상에 나온 히틀러의 청동 말 조각상, 같아 보이면서도 조금 다른 외신 영상으로 확인해 보시죠.




영상을 보면 말 조각상 곳곳에서 총탄이 뚫고 지나간 구멍이 보입니다. 일부러 그것마저 똑같이 되살린 게 아니라면, 히틀러의 시대에 만들어진 조각상이 원본이라는 움직일 수 없는 증거였죠. 기적적으로 찾아냈기에 망정이지 실은 실패할 개연성이 작지 않았던, 만약 그랬다면 꽤 많은 관련자에게 심대한 부담을 안겼을 작전임이 분명했습니다. 게다가 일을 그르치면 문제의 조각상은 영영 찾을 길이 없어지고 말 수도 있었죠. 경찰에 군 병력까지 투입된 당시 상황을 우리의 주인공 브란트는 이렇게 증언합니다.


히틀러는 자기를 위해 최고의 예술품을 만들어다 바칠 최고의 예술가들에 관해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나의 예술가들은 앞으로 다락방에서가 아니라 군주처럼 생활하게 될 것이다." 뛰어난 조각가라는 사실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었던, 그러나 저자가 1945년 미군 보고서에서 찾아낸 요제프 토락의 사람됨은 '교활, 지배적, 몰염치'였습니다. 또 다른 인물의 증언을 따르면, 요제프 토락은 처음부터 나치 사상에는 별 관심이 없었고 오로지 돈과 명예, 출세의 길을 좇았던 기회주의자로 묘사됩니다. 히틀러의 마음에 쏙 든 조각상은 나치의 영광을 상징하는 신상(神像)이나 다름없었고, 요제프 토락은 히틀러로부터 톡톡한 대가를 받아 군주 못지않은 호화로운 생활을 누렸다고 하죠.

"이것들은 실은 다 박물관으로 가야 마땅합니다. 우리 인류 역사상 가장 피비린내 나는 기간의 시대상을 신랄하게 반영해 주고 있으니까요." 브란트가 만난 한 미술품 수집가의 말입니다. 브란트와 동료들, 경찰, 언론인까지 나서서 그토록 히틀러의 유산을 찾아내고자 했던 이유이기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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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0여 년 만에 찾아낸 히틀러의 말, 그 흥미진진한 추적기
    • 입력 2021-01-26 07:00:14
    취재K
2014년 이탈리아 중서부 토스카나 주에 있는 항구도시 리보르노의 한 저택. 두 남자가 은밀한 대화를 나눕니다. 집주인인 노인은 미술계의 유명한 장사꾼이었고, 또 다른 남자는 45살의 네덜란드 예술 탐정 아르뛰어 브란트(Arthur Brand). 브란트는 15년 전에 인연을 맺은 노회한 미술상의 긴급 호출을 받고 막 이곳에 도착한 참이었죠. "왜 저를 부르신 건가요?" 노인은 빔프로젝터를 켜고 브란트에게 슬라이드 몇 장을 보여줍니다. 수수께끼의 시작.

노인은 이 상황을 한껏 즐깁니다. "아돌프 히틀러가 무척이나 소중히 여긴 나머지 되도록 자기 곁에 가까이 두기를 원했던 물건." 마지막 슬라이드가 화면에 뜨자, 나치 지도자 히틀러의 집무실이 있었던 독일 베를린 국가수상부 건물 뒤편이 보였죠. 정원으로 이어지는 계단 난간 양쪽에 서 있는 거대한 조각상 두 점. <걷는 말(Walking Horses)>이란 이름이 붙은 이 늠름한 청동 조각상들은 유명한 나치 조각가 요제프 토락(Josef Thorak, 1889~1952)의 작품이었죠.


당대 최고의 지성들이 모인 학문과 예술의 도시 빈(Wien)에서 화가가 되길 꿈꿨던 젊은 날의 히틀러. 하지만 빈의 미술 아카데미에 지원했다가 두 번이나 낙방. 이미 사진이 발명된 마당이라 히틀러의 사실적인 화풍은 구태의연한 기법으로 외면을 당합니다. 그나마 히틀러가 생계를 이을 수 있도록 그림을 사준 건 역설적이게도 대부분 유대인들이었습니다. 그리고 훗날 막강한 권력을 손에 쥔 히틀러는 돈으로 예술가들을 삽니다. 몇몇 예술가들은 히틀러의 총애에 기꺼이 고개를 조아렸죠.

히틀러가 몹시도 사랑했던 세 조각가가 있었습니다. 아르노 브레커(Arno Breker, 1900~1991), 프리츠 클림쉬(Fritz Klimsch, 1870~1960), 그리고 또 한 사람 요제프 토락. 노인은 점점 궁금증이 커지는 브란트에게 또 다른 사진을 보여줍니다.


이럴 수가. 브란트는 놀라서 물었죠. "아니, 이게 뭐예요?" 흑백이 아닌 컬러 사진에 포착된 히틀러의 말들. 이 사진은 어느 네덜란드의 미술품 상인이 거래를 타진하기 위해 노인에게 보낸 것이었습니다. 사라진 줄로 알았던 청동 말 조각상이 70년 동안 감쪽같이 숨었다가 이제야 그 모습을 드러냈다고? 브란트는 두말할 것도 없는 가짜라고 말합니다. "나는 영 퍼센트라고 봐요."

암스테르담으로 돌아온 우리의 주인공 브란트는 함께 일하는 동료들에게 여행에서 있었던 일을 들려줍니다. 1945년 4월 연합군이 베를린에 맹폭격을 가하면서 청동 말 조각상 역시 흔적도 없이 파괴돼 사라졌을 것이다! 브란트는 동료들에게 1930년대 말에 찍힌 요제프 토락의 사진을 보여줍니다.


청동 말 조각상과 똑같은 형태의 축소 모형을 석고로 제작하고 있는 모습. 브란트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요제프 토락은 거대한 말 조각상 외에도 저 작은 석고 모형으로 소형 청동 말 조각상 5점을 만들어 나치 고위 간부들에게 선물로 줬다. 그러니 상식적으로 봤을 때 난데없이 등장한 청동 말 조각상은 누군가 보관해오던 소형 조각상을 토대로 최근에 새로 만든 복제품이다.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였죠.

하지만 수수께끼는 수수께끼로 남을 때 존재감을 드러내는 법. 우연히 소형 말 조각상 가운데 한 점을 소장하고 있는 사람을 벨기에 브뤼셀에서 만나고 돌아온 브란트는 유튜브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나치 기록영화를 동료들에게 다시 보여줍니다. 동영상을 재생한 지 정확하게 9초 뒤에 정지했더니…


히틀러가 청년단 단원들을 사열한 이 장소는 바로 국가수상부 건물 뒤편에 있는 정원. 영상이 촬영된 시점은 히틀러가 자살로 생을 마감하기 직전인 1945년 3월 20일. 그런데 마땅히 말이 있어야 할 자리에 히틀러의 호위병이 서 있군요. 더구나 국가수상부 건물도 멀쩡해 보이고요. 말 조각상은 연합군이 베를린을 폭격하기 전에 이미 다른 곳으로 옮겨진 것이었습니다. 잔뜩 흥분한 브란트와 동료들은 그렇게 지구 상에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모두가 철석같이 믿고 있던 히틀러의 보물을 찾는 모험에 뛰어듭니다.

포기라곤 모르는 네덜란드의 예술 탐정과 그 동료들, 그리고 노련한 경찰과 유명 잡지사 기자까지 합세한 이 전대미문의 나치 예술품 추적기는 손에 땀을 쥐게 할 만큼 흥미진진합니다. 잘 만들어진 첩보영화를 본 것처럼 짜릿한 흥분을 느끼게 하는 장면들의 연속이죠. 게다가 실화라니요! 브란트는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한 나치 미술품 추적기 《히틀러의 사라진 보물》(이더레인, 2021)을 경쾌한 문장으로 써내려갔습니다.


이 이야기의 끝은 물론 해피엔딩입니다. 2015년 5월 20일 수요일, 독일 남서부의 작은 도시 바트뒤르크하임의 한 창고에서 문제의 청동 말 조각상 한 쌍이 발견됩니다. 브란트와 그의 동료들이 조사에 착수한 지 1년 반 만에 거둔 개가였죠. 이 충격적인 소식은 당연히 전 세계 언론에 대서특필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국내에서는 크게 주목을 못 받았던 모양입니다. 과거 KBS 뉴스에는 관련 기사가 없더군요.

다행히 KBS 영상 자료 더미에서 당시 외신이 촬영한 영상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무려 70여 년 만에 세상에 나온 히틀러의 청동 말 조각상, 같아 보이면서도 조금 다른 외신 영상으로 확인해 보시죠.




영상을 보면 말 조각상 곳곳에서 총탄이 뚫고 지나간 구멍이 보입니다. 일부러 그것마저 똑같이 되살린 게 아니라면, 히틀러의 시대에 만들어진 조각상이 원본이라는 움직일 수 없는 증거였죠. 기적적으로 찾아냈기에 망정이지 실은 실패할 개연성이 작지 않았던, 만약 그랬다면 꽤 많은 관련자에게 심대한 부담을 안겼을 작전임이 분명했습니다. 게다가 일을 그르치면 문제의 조각상은 영영 찾을 길이 없어지고 말 수도 있었죠. 경찰에 군 병력까지 투입된 당시 상황을 우리의 주인공 브란트는 이렇게 증언합니다.


히틀러는 자기를 위해 최고의 예술품을 만들어다 바칠 최고의 예술가들에 관해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나의 예술가들은 앞으로 다락방에서가 아니라 군주처럼 생활하게 될 것이다." 뛰어난 조각가라는 사실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었던, 그러나 저자가 1945년 미군 보고서에서 찾아낸 요제프 토락의 사람됨은 '교활, 지배적, 몰염치'였습니다. 또 다른 인물의 증언을 따르면, 요제프 토락은 처음부터 나치 사상에는 별 관심이 없었고 오로지 돈과 명예, 출세의 길을 좇았던 기회주의자로 묘사됩니다. 히틀러의 마음에 쏙 든 조각상은 나치의 영광을 상징하는 신상(神像)이나 다름없었고, 요제프 토락은 히틀러로부터 톡톡한 대가를 받아 군주 못지않은 호화로운 생활을 누렸다고 하죠.

"이것들은 실은 다 박물관으로 가야 마땅합니다. 우리 인류 역사상 가장 피비린내 나는 기간의 시대상을 신랄하게 반영해 주고 있으니까요." 브란트가 만난 한 미술품 수집가의 말입니다. 브란트와 동료들, 경찰, 언론인까지 나서서 그토록 히틀러의 유산을 찾아내고자 했던 이유이기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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