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에 어려운 사정에도 사재 털어 100억 기부한 70살 기업가

입력 2021.01.2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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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억을 기부하고자 합니다.”

지난해 10월 30일. 한국장학재단에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기부 희망자는 경기도 파주에서 한 주방용품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김용호 대표였습니다.

이후 기부 절차는 일사천리로 진행됐습니다. 기부 담당자와 만난 자리에서 김 대표는 “이런 건 흔들리면 안 된다”며 약정서에 사인을 했습니다. 약정한 날짜인 12월 30일, 50억이 입금됐습니다.

50억도 거액인데 며칠 뒤 전화 한 통이 또 걸려왔습니다. 또 김 대표였습니다. 곧 있으면 정기 예금을 타니 또 기부를 하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는 정기 예금을 탄 날인 1월 13일 50억을 입금했습니다. 그렇게 보름 사이 총 100억을 기부한 겁니다.

한국장학재단은 국가 재원으로 운영하는 ‘국가장학금’ 말고도 개인이나 법인의 기부를 받아 ‘푸른 등대’ 기부 장학금을 운영하고 있는데 100억 원은 개인 기부액으로는 최대액입니다.

■23년 회사 운영하며 모은 ‘개인 재산’ 털어...“내 돈 아니라 생각”

법인도 아니고 개인이 선뜻 100억 원이란 돈을 기부하는 건 이례적인 일입니다. 복권에라도 당첨돼 '돈벼락'이라도 맞은 걸까요.

김 대표가 운영하는 회사는 연 매출 100억 원 정도 되는 주방용품회사입니다. 플라스틱 컵부터 음식 저장용기, 식판, 휴지통 등을 만들어 팔고 있습니다. 음식업계가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으면서 김 대표의 회사도 2020년 매출이 30% 정도 크게 줄었습니다.

그런데도 100억 원을 기부할 수 있었던 건 회삿돈이 아닌 10여 년 간 회사 생활과 23년 회사 운영하며 모은 개인 자산을 털었기 때문입니다. 김 대표는 “개인 자산 중 IMF로 문을 닫아 세를 주던 공장 건물이 있는데 그걸 팔고, 살던 아파트를 처분하는 등 자산을 모아 기부한 것”이라며 “30년 넘게 모은 자산이다”라고 밝혔습니다.

■"코로나19로 친구 2명 사망"..."기부 못 하고 죽으면 눈 제대로 못 감을 것 같아"

개인 자산을 처분하면서까지 기부를 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오랫동안 계획한 일이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김 대표는 "공수래공수거, 빈손으로 간다는 것이 생활신조다"라며 "제 돈이 아니고 큰 범위로 보면 사회적인 부분이기에 번 만큼의 돈을 다시 환원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라고 강조했습니다.

실제로 김 대표의 기부는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5년 동안 파주 지역 고등학교 두 곳에 한 학기당 30만 원~40만 원씩 31명에게 장학금을 줘왔고 노인 요양시설 등에도 기부를 꾸준히 해왔습니다. 그는 1억 원 이상 고액 기부자 모임인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이기도 합니다.

조금씩 기부 금액을 늘려오다가 '100억'을 기부해야겠다고 결심한 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해서입니다. 김 대표는 "최근 코로나로 친구 2명이 사망했다. 기부 못 하고 죽으면 눈을 제대로 못 감을 것 같아서 결정했다"라며 "70살 동안 살아온 인생을 정리하고 싶었다"라고 밝혔습니다.

고심하고 고대했던 일이기에 기부처도 여러 군데 물색했습니다. 탱크를 사서 국방부에 기부할까, 건물을 사서 구청에 환원할까 여러 고민을 했습니다. 그러던 중 회사 직원 한 명이 한국장학재단에서 국가장학금을 받으며 대학을 다녔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어린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김 대표는 "어린 시절 가정형편이 어려워 신문 배달 아르바이트로 중·고등학교를 다닐 수 있었다"라며 "그러다 보니 공부할 시간적 여유가 없어 공부를 잘하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가정 형편이 어려운 대학생들은 아르바이트나 직장을 다니면서 학비를 마련하는데 그런 부담을 좀 덜어주고 싶다"라며 "돈이 없어서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 하는 저소득 가정의 학생들이나 한부모 가정, 다문화 가정 등에 쓰였으면 좋겠다"라고 덧붙였습니다.

자녀들은 아버지의 이런 통 큰 기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김 대표는 “1차로 50억 기부했다고 하니 딸들이 아버지가 오랫동안 마음에 가지고 있던 일이니 잘하셨다면서도 채팅창에 우는 이모티콘을 보내긴 하더라”라면서도 “자식들한테도 증여세 물고 줄 만큼 줬고 더 바라면 그건 돈이 아니라 독이 된다고 생각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이어 "딸들도 소액이지만 기부를 계속해오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김 대표는 "빌 게이츠 등 외국의 부호들이 기부하는 게 재산이 많아서 하는 게 아니다. 몸에 배어있기 때문"이라며 "베풀고 나누다 보면 마음이 편해진다. 한번 해봐라. 중독성 있다"라고 말하며 웃었습니다.


한국장학재단은 어제(25일) 기탁식을 열고 김 대표에게 감사패를 전달했습니다. 이정우 한국장학재단 이사장은 "기부하신 분의 취지를 최대한 살려, 어려운 학생들을 발굴해내 장학금을 주겠다"라며 "나아가서는 장학금을 받은 이들도 공수 장학금의 정산을 실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한국장학재단은 기부받은 100억 원으로 '공수 김용호 장학금'을 신설해 오는 2학기부터 저소득 대학생들 상대로 생활비 지원 장학금 신청을 받을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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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로나19에 어려운 사정에도 사재 털어 100억 기부한 70살 기업가
    • 입력 2021-01-26 09:00:03
    취재K

“50억을 기부하고자 합니다.”

지난해 10월 30일. 한국장학재단에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기부 희망자는 경기도 파주에서 한 주방용품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김용호 대표였습니다.

이후 기부 절차는 일사천리로 진행됐습니다. 기부 담당자와 만난 자리에서 김 대표는 “이런 건 흔들리면 안 된다”며 약정서에 사인을 했습니다. 약정한 날짜인 12월 30일, 50억이 입금됐습니다.

50억도 거액인데 며칠 뒤 전화 한 통이 또 걸려왔습니다. 또 김 대표였습니다. 곧 있으면 정기 예금을 타니 또 기부를 하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는 정기 예금을 탄 날인 1월 13일 50억을 입금했습니다. 그렇게 보름 사이 총 100억을 기부한 겁니다.

한국장학재단은 국가 재원으로 운영하는 ‘국가장학금’ 말고도 개인이나 법인의 기부를 받아 ‘푸른 등대’ 기부 장학금을 운영하고 있는데 100억 원은 개인 기부액으로는 최대액입니다.

■23년 회사 운영하며 모은 ‘개인 재산’ 털어...“내 돈 아니라 생각”

법인도 아니고 개인이 선뜻 100억 원이란 돈을 기부하는 건 이례적인 일입니다. 복권에라도 당첨돼 '돈벼락'이라도 맞은 걸까요.

김 대표가 운영하는 회사는 연 매출 100억 원 정도 되는 주방용품회사입니다. 플라스틱 컵부터 음식 저장용기, 식판, 휴지통 등을 만들어 팔고 있습니다. 음식업계가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으면서 김 대표의 회사도 2020년 매출이 30% 정도 크게 줄었습니다.

그런데도 100억 원을 기부할 수 있었던 건 회삿돈이 아닌 10여 년 간 회사 생활과 23년 회사 운영하며 모은 개인 자산을 털었기 때문입니다. 김 대표는 “개인 자산 중 IMF로 문을 닫아 세를 주던 공장 건물이 있는데 그걸 팔고, 살던 아파트를 처분하는 등 자산을 모아 기부한 것”이라며 “30년 넘게 모은 자산이다”라고 밝혔습니다.

■"코로나19로 친구 2명 사망"..."기부 못 하고 죽으면 눈 제대로 못 감을 것 같아"

개인 자산을 처분하면서까지 기부를 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오랫동안 계획한 일이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김 대표는 "공수래공수거, 빈손으로 간다는 것이 생활신조다"라며 "제 돈이 아니고 큰 범위로 보면 사회적인 부분이기에 번 만큼의 돈을 다시 환원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라고 강조했습니다.

실제로 김 대표의 기부는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5년 동안 파주 지역 고등학교 두 곳에 한 학기당 30만 원~40만 원씩 31명에게 장학금을 줘왔고 노인 요양시설 등에도 기부를 꾸준히 해왔습니다. 그는 1억 원 이상 고액 기부자 모임인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이기도 합니다.

조금씩 기부 금액을 늘려오다가 '100억'을 기부해야겠다고 결심한 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해서입니다. 김 대표는 "최근 코로나로 친구 2명이 사망했다. 기부 못 하고 죽으면 눈을 제대로 못 감을 것 같아서 결정했다"라며 "70살 동안 살아온 인생을 정리하고 싶었다"라고 밝혔습니다.

고심하고 고대했던 일이기에 기부처도 여러 군데 물색했습니다. 탱크를 사서 국방부에 기부할까, 건물을 사서 구청에 환원할까 여러 고민을 했습니다. 그러던 중 회사 직원 한 명이 한국장학재단에서 국가장학금을 받으며 대학을 다녔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어린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김 대표는 "어린 시절 가정형편이 어려워 신문 배달 아르바이트로 중·고등학교를 다닐 수 있었다"라며 "그러다 보니 공부할 시간적 여유가 없어 공부를 잘하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가정 형편이 어려운 대학생들은 아르바이트나 직장을 다니면서 학비를 마련하는데 그런 부담을 좀 덜어주고 싶다"라며 "돈이 없어서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 하는 저소득 가정의 학생들이나 한부모 가정, 다문화 가정 등에 쓰였으면 좋겠다"라고 덧붙였습니다.

자녀들은 아버지의 이런 통 큰 기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김 대표는 “1차로 50억 기부했다고 하니 딸들이 아버지가 오랫동안 마음에 가지고 있던 일이니 잘하셨다면서도 채팅창에 우는 이모티콘을 보내긴 하더라”라면서도 “자식들한테도 증여세 물고 줄 만큼 줬고 더 바라면 그건 돈이 아니라 독이 된다고 생각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이어 "딸들도 소액이지만 기부를 계속해오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김 대표는 "빌 게이츠 등 외국의 부호들이 기부하는 게 재산이 많아서 하는 게 아니다. 몸에 배어있기 때문"이라며 "베풀고 나누다 보면 마음이 편해진다. 한번 해봐라. 중독성 있다"라고 말하며 웃었습니다.


한국장학재단은 어제(25일) 기탁식을 열고 김 대표에게 감사패를 전달했습니다. 이정우 한국장학재단 이사장은 "기부하신 분의 취지를 최대한 살려, 어려운 학생들을 발굴해내 장학금을 주겠다"라며 "나아가서는 장학금을 받은 이들도 공수 장학금의 정산을 실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한국장학재단은 기부받은 100억 원으로 '공수 김용호 장학금'을 신설해 오는 2학기부터 저소득 대학생들 상대로 생활비 지원 장학금 신청을 받을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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