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학교로 오세요”…주택·일자리·치료·돌봄까지

입력 2021.01.31 (07:00) 수정 2021.01.31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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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교생이 14명인 충북 옥천 청성초등학교 전교생이 14명인 충북 옥천 청성초등학교

■ 농촌 학생 수 급감… 폐교 위기에 놓인 작은 학교들

굽이굽이 농로를 따라 가다보면 나오는 한 초등학교. 충북 옥천군에서 학생 수가 가장 적은 청성초등학교입니다. 아기자기하게 잘 꾸며진 교실이 무색할 정도로 학교는 텅 비었습니다. 운동장엔 적막만 감돕니다.

이 학교의 전교생은 14명입니다. 학급은 한 학년에 하나씩, 한 반에 많아야 3명입니다. 내년에도 전교생 20명을 채우지 못하면 분교장으로 격하될 위기에 놓였습니다. 교직원, 학부모들의 찬반 투표에 따라 근처 학교와 통폐합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 관내에서 제일 큰 면적이 큰 곳이 청성면인데, 이 큰 마을에 학교 하나 없다는 게 말이나 됩니까. 어떻게든 살려야 합니다." <이주찬, 충북 옥천군 청성면 산계3리 이장>


■ ① 전학 가정에 주택, 일자리까지 제공

1995년부터 신서분교장, 화성분교장, 묘금분교장 등이 이 학교로 통폐합됐습니다. 청성초등학교마저 사라지면 이 마을에는 초등학교가 한 곳도 없게 됩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마을 주민들은 한마음 한 뜻으로 초등학교 살리기에 나섰습니다. 안 그래도 주민이 많이 없는데, 자라나는 꿈나무마저 키울 곳이 없다면 마을 자체가 소멸 위기에 내몰릴까 우려해서입니다.

가장 중점을 두고 있는 건, 전학 가정에 '살 집'을 제공하는 지원책입니다. 학교 총동문회에서는 마을의 빈 집부터 찾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먼저 마을회관 한 층 전체를 새로운 주거 공간으로 개조했습니다. 자치단체에서 조성한 '귀농인을 위한 집'도 활용하기로 했습니다.

초등학생 자녀를 둔 전입자에게 해당 주택을 1년간 무상으로 제공하기로 한 겁니다. 이런 지원책 덕에, 3가구가 이 마을에 새로 둥지를 틀 수 있게 됐습니다.

'일자리'도 제공하기로 했습니다. "보통 처음 귀농하면, 어떻게 생계를 꾸려갈 지 '초기 정착'을 가장 힘들어한다"는 게 마을 주민들의 설명입니다.

주민들은 누군가 외지에서 전학만 온다면, 보호자가 어떤 작물을 재배하고, 어떤 일을 구하든지 다방면으로 힘껏 돕겠다는 각오입니다.

지역 면사무소, 근처 포도연구소 등의 공공 일자리를 제공하는 방안도 논의하고 있습니다. 마을 대단위 가족 기업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도 주기로 했습니다.

‘아토피 완화 치유학교’로 특화한 충북 청주 문의초등학교 도원분교장.‘아토피 완화 치유학교’로 특화한 충북 청주 문의초등학교 도원분교장.

■ ② 친환경 공간으로 탈바꿈… '아토피 완화 치유학교'

작은 대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새소리 가득한 충북 청주 농촌의 한 학교. 저출산, 농촌 인구 감소로 갈수록 학생이 줄자, 문의초등학교 도원분교장은 9년여 전부터 재정비에 들어갔습니다.

충청북도교육청은 이 분교장을 '아토피 완화 치유학교'로 지정했는데요. 충북에 딱 1곳, 아예 특색있는 학교로 만들어 곳곳의 학생들을 모이게 하자는 취지였습니다. 몸과 마음의 치유를 위해 전원 생활을 꿈꾸는 학생과 학부모에게 문을 활짝 열었습니다.

실제로 아토피 피부염, 천식 질환 등을 앓는 학생들이 많이 찾기 시작했습니다. 너무 외딴 곳이 아니라, 충북 청주 시내와 가깝다는 것도 큰 장점으로 꼽혔습니다. 아토피 치유학교가 된 뒤, 해마다 5명에서 많게는 10명의 신입생이 입학하고 있습니다.

피부 치료에 효능이 있다고 알려진 편백나무 교실, 천연 잔디 운동장까지, 학교 안은 말그대로 학생들을 위한 '생태 체험장'입니다.

학생들의 건강을 생각해 급식엔 친환경 재료를 사용하고, 자연과의 접촉 기회를 늘리기 위해 수시로 야외 수업을 하고 있는데요. 학생들을 위한 친환경 학교가, 조용한 농촌에 생기를 불어넣고 있습니다.

‘공동 학구제’를 도입한 충북 진천 백곡초등학교‘공동 학구제’를 도입한 충북 진천 백곡초등학교

■ ③ '공동 학구' 도입… 작은 학교 선호하는 부모도 생겨

최근 5년 동안 학생 수가 40명까지 줄어든 충북 진천 백곡초등학교. 작년엔 신입생 수가 3명까지 급감했습니다. 개교 이래 최대 위기였습니다.

마을 주민 자체가 계속 줄어, 외부에서 신입생이 일부러 오지 않는 한 학교를 유지하기 어렵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해결책으로 '공동 학구제'를 도입하기로 했습니다. 근처 큰 학교와 작은 학교를 '공동 통학 구역'으로 묶는 겁니다.

이 학교는 올해부터 근처 대규모 아파트 단지 두 곳을 '공동 학구 대상지'로 선정했습니다. 큰 학교인 삼수초등학교만 갈 수 있었던 아파트 학생들은, 작은 학교인 백곡초등학교도 선택할 수 있게 됐습니다.

주소를 원래 이 학구로 따로 옮기지 않고, 이 학교로 전·입학할 수 있게 된 겁니다.

학생들에게 학교 선택권을 늘리자, 올해 백곡초등학교 신입생이 작년보다 3배 이상 늘었습니다. 학생 수가 적어서 망설이던 학부모들도 차츰 관심을 갖고 이 학교를 살펴보기 시작했는데요.

여기에는 '돌봄'의 영향이 적지 않습니다. 코로나19 감염 사태로 돌봄 공백이 커진 가운데, 전원 등교가 가능하다는 점이 학부모들의 마음을 흔든 겁니다.

실제 코로나19 감염 사태 이후에는 학교 측에 '등교가 가능한지', '방역수칙 전제 하에 수업은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묻는 학부모들이 급증했습니다.

작은 학교는 학생 수가 적어서 1/3 , 2/3 등교가 아니라 '매일, 전교생 등교'가 가능해서입니다. 맞벌이를 하거나, 돌봄에 여력이 없는 근처 학부모들에게 안성맞춤인 겁니다.

학생 밀집도가 낮아, 코로나19 상황 속에서도 안전 수칙을 지켜면서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는 것도 큰 장점으로 꼽힙니다.

전교생 모두 등교해도 50~60여 명. 방과 후 수업, 방학 돌봄까지 공백 없이 진행됐습니다. 학부모 입장에선, 학교 폭력에 대한 우려도 상대적으로 적을 수밖에 없습니다.

적은 인원으로, 소외되는 학생 없이 상대적으로 세심한 돌봄이 가능하다는 작은 학교의 매력을 느끼는 학부모도 점점 늘어가고 있습니다.

지난 1982년 이후, 전국에서 문을 닫은 학교는 3,800여 곳이나 됩니다. 출산율 저하, 학령 인구 감소로 더 이상 폐교를 막을 수는 없는 상황. 지역 사회는 마을과 학교를 살리기 위해 저마다 다양한 대책을 내놓고 있습니다.

작은 학교여서 가능한 것들, 작은 학교여서 더 강점이 되는 여러 유인책들이 소멸 위기에 놓인 배움의 터전을 소생시킬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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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은 학교로 오세요”…주택·일자리·치료·돌봄까지
    • 입력 2021-01-31 07:00:12
    • 수정2021-01-31 09:54:40
    취재K
 전교생이 14명인 충북 옥천 청성초등학교
■ 농촌 학생 수 급감… 폐교 위기에 놓인 작은 학교들

굽이굽이 농로를 따라 가다보면 나오는 한 초등학교. 충북 옥천군에서 학생 수가 가장 적은 청성초등학교입니다. 아기자기하게 잘 꾸며진 교실이 무색할 정도로 학교는 텅 비었습니다. 운동장엔 적막만 감돕니다.

이 학교의 전교생은 14명입니다. 학급은 한 학년에 하나씩, 한 반에 많아야 3명입니다. 내년에도 전교생 20명을 채우지 못하면 분교장으로 격하될 위기에 놓였습니다. 교직원, 학부모들의 찬반 투표에 따라 근처 학교와 통폐합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 관내에서 제일 큰 면적이 큰 곳이 청성면인데, 이 큰 마을에 학교 하나 없다는 게 말이나 됩니까. 어떻게든 살려야 합니다." <이주찬, 충북 옥천군 청성면 산계3리 이장>


■ ① 전학 가정에 주택, 일자리까지 제공

1995년부터 신서분교장, 화성분교장, 묘금분교장 등이 이 학교로 통폐합됐습니다. 청성초등학교마저 사라지면 이 마을에는 초등학교가 한 곳도 없게 됩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마을 주민들은 한마음 한 뜻으로 초등학교 살리기에 나섰습니다. 안 그래도 주민이 많이 없는데, 자라나는 꿈나무마저 키울 곳이 없다면 마을 자체가 소멸 위기에 내몰릴까 우려해서입니다.

가장 중점을 두고 있는 건, 전학 가정에 '살 집'을 제공하는 지원책입니다. 학교 총동문회에서는 마을의 빈 집부터 찾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먼저 마을회관 한 층 전체를 새로운 주거 공간으로 개조했습니다. 자치단체에서 조성한 '귀농인을 위한 집'도 활용하기로 했습니다.

초등학생 자녀를 둔 전입자에게 해당 주택을 1년간 무상으로 제공하기로 한 겁니다. 이런 지원책 덕에, 3가구가 이 마을에 새로 둥지를 틀 수 있게 됐습니다.

'일자리'도 제공하기로 했습니다. "보통 처음 귀농하면, 어떻게 생계를 꾸려갈 지 '초기 정착'을 가장 힘들어한다"는 게 마을 주민들의 설명입니다.

주민들은 누군가 외지에서 전학만 온다면, 보호자가 어떤 작물을 재배하고, 어떤 일을 구하든지 다방면으로 힘껏 돕겠다는 각오입니다.

지역 면사무소, 근처 포도연구소 등의 공공 일자리를 제공하는 방안도 논의하고 있습니다. 마을 대단위 가족 기업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도 주기로 했습니다.

‘아토피 완화 치유학교’로 특화한 충북 청주 문의초등학교 도원분교장.
■ ② 친환경 공간으로 탈바꿈… '아토피 완화 치유학교'

작은 대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새소리 가득한 충북 청주 농촌의 한 학교. 저출산, 농촌 인구 감소로 갈수록 학생이 줄자, 문의초등학교 도원분교장은 9년여 전부터 재정비에 들어갔습니다.

충청북도교육청은 이 분교장을 '아토피 완화 치유학교'로 지정했는데요. 충북에 딱 1곳, 아예 특색있는 학교로 만들어 곳곳의 학생들을 모이게 하자는 취지였습니다. 몸과 마음의 치유를 위해 전원 생활을 꿈꾸는 학생과 학부모에게 문을 활짝 열었습니다.

실제로 아토피 피부염, 천식 질환 등을 앓는 학생들이 많이 찾기 시작했습니다. 너무 외딴 곳이 아니라, 충북 청주 시내와 가깝다는 것도 큰 장점으로 꼽혔습니다. 아토피 치유학교가 된 뒤, 해마다 5명에서 많게는 10명의 신입생이 입학하고 있습니다.

피부 치료에 효능이 있다고 알려진 편백나무 교실, 천연 잔디 운동장까지, 학교 안은 말그대로 학생들을 위한 '생태 체험장'입니다.

학생들의 건강을 생각해 급식엔 친환경 재료를 사용하고, 자연과의 접촉 기회를 늘리기 위해 수시로 야외 수업을 하고 있는데요. 학생들을 위한 친환경 학교가, 조용한 농촌에 생기를 불어넣고 있습니다.

‘공동 학구제’를 도입한 충북 진천 백곡초등학교
■ ③ '공동 학구' 도입… 작은 학교 선호하는 부모도 생겨

최근 5년 동안 학생 수가 40명까지 줄어든 충북 진천 백곡초등학교. 작년엔 신입생 수가 3명까지 급감했습니다. 개교 이래 최대 위기였습니다.

마을 주민 자체가 계속 줄어, 외부에서 신입생이 일부러 오지 않는 한 학교를 유지하기 어렵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해결책으로 '공동 학구제'를 도입하기로 했습니다. 근처 큰 학교와 작은 학교를 '공동 통학 구역'으로 묶는 겁니다.

이 학교는 올해부터 근처 대규모 아파트 단지 두 곳을 '공동 학구 대상지'로 선정했습니다. 큰 학교인 삼수초등학교만 갈 수 있었던 아파트 학생들은, 작은 학교인 백곡초등학교도 선택할 수 있게 됐습니다.

주소를 원래 이 학구로 따로 옮기지 않고, 이 학교로 전·입학할 수 있게 된 겁니다.

학생들에게 학교 선택권을 늘리자, 올해 백곡초등학교 신입생이 작년보다 3배 이상 늘었습니다. 학생 수가 적어서 망설이던 학부모들도 차츰 관심을 갖고 이 학교를 살펴보기 시작했는데요.

여기에는 '돌봄'의 영향이 적지 않습니다. 코로나19 감염 사태로 돌봄 공백이 커진 가운데, 전원 등교가 가능하다는 점이 학부모들의 마음을 흔든 겁니다.

실제 코로나19 감염 사태 이후에는 학교 측에 '등교가 가능한지', '방역수칙 전제 하에 수업은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묻는 학부모들이 급증했습니다.

작은 학교는 학생 수가 적어서 1/3 , 2/3 등교가 아니라 '매일, 전교생 등교'가 가능해서입니다. 맞벌이를 하거나, 돌봄에 여력이 없는 근처 학부모들에게 안성맞춤인 겁니다.

학생 밀집도가 낮아, 코로나19 상황 속에서도 안전 수칙을 지켜면서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는 것도 큰 장점으로 꼽힙니다.

전교생 모두 등교해도 50~60여 명. 방과 후 수업, 방학 돌봄까지 공백 없이 진행됐습니다. 학부모 입장에선, 학교 폭력에 대한 우려도 상대적으로 적을 수밖에 없습니다.

적은 인원으로, 소외되는 학생 없이 상대적으로 세심한 돌봄이 가능하다는 작은 학교의 매력을 느끼는 학부모도 점점 늘어가고 있습니다.

지난 1982년 이후, 전국에서 문을 닫은 학교는 3,800여 곳이나 됩니다. 출산율 저하, 학령 인구 감소로 더 이상 폐교를 막을 수는 없는 상황. 지역 사회는 마을과 학교를 살리기 위해 저마다 다양한 대책을 내놓고 있습니다.

작은 학교여서 가능한 것들, 작은 학교여서 더 강점이 되는 여러 유인책들이 소멸 위기에 놓인 배움의 터전을 소생시킬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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