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2011년 월가점령 그리고 2021년 ‘게임스톱’…개미들의 반란

입력 2021.01.31 (15:16) 수정 2021.01.31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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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가 점령'(occupy wall street) 시위...그리고 '로빈후드'

2011년 9월, 미국 '자본주의의 심장'이라는 뉴욕 월가에서 'occupy wall street'(월가를 점령하라) 구호를 내걸고 반(反)월가 시위가 시작됐다. 시위대는 2008년 미국발 세계금융위기 이후 심화된 미국의 빈부 격차 문제를 성토하고, 미국 대형 금융사들의 탐욕과 부도덕성에 거세게 항의했다. 미국의 '1%'에 저항하는 '99%' 였다.

당시, 월가에서 일하고 있었지만 '월가 점령' 운동에 적극 공감했던 두 청년 테네브와 바트. 미국 명문 스탠퍼드 대학교 동문인 두 사람은 이 월가 시위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거래 수수료 없는 온라인 무료주식거래 앱을 2014년 말 출시했다. 이름하여 중세 영국의 의적의 이름을 딴 '로빈후드'다.

'로빈후드'가 내세운 기치는 '주식 거래 1건당 10달러를 내는 일을 그만두라'였다. 거래 수수료로 거액의 성과급과 연봉을 챙기는 대형 금융사들의 '부'를 시민들에게 돌려주겠다고도 했다. 수수료 수익이 없으니 영업점, 투자 보고서 등을 안 만들어 비용을 최소화했다.

온라인 쇼핑하듯 주식을 거래할 수 있는 로빈후드에 이른바 '젊은 개미'들은 열광했고, 결과는 '대박'이었다. 로빈후드는 출시 4년 만에 이용자 400만 명, 거래 종목 만 개, 주식 거래액 1,500억 달러의 성과를 냈다. 두 청년 테네브와 바트는 기업가치로 봤을 때 억만장자 대열에도 올랐다.

로빈후드 이용자의 절반 이상은 20~30대다. 로빈후드는 현재 1,300만 개 계좌가 개설된 미국 개인 투자자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주식거래 플랫폼이다.

■ '게임스톱'과 '공매도' 전쟁..그리고 로빈후드의 배신?

지난주 뉴욕증시를 뒤흔든 기업, 비디오게임 유통업체 '게임스톱'이다. 사실 코로나19 사태 훨씬 이전부터 온라인 게임에 밀려 대대적으로 매장 폐쇄에 들어간 게임기 소매점이다. 이 게임스톱의 주가가 이달 들어 난데 없이 1,700% 이상이 올랐다. 이달 초만 해도 한 주에 10달러대였던 주식이 340달러를 넘어선 거다.

한 줄 정리하자면 이렇다. 대형 헤지펀드들이 '게임스톱'의 주가 하락에 베팅하는 대량 공매도에 나서자 이에 분노한 '개미 군단'들이 대량 집중 매수에 나서며 이른바 '게임스톱 살리기'에 나선 것이다.

'내 어릴 적 추억이 담긴 게임스톱 돌리도!'라고나 할까...개인 투자자들의 힘으로 게임스톱 주가가 치솟으면서 공매도 회사들은 우리 돈 수십조 원의 손실을 봤다. 이런 개미들의 주식거래가 가능한 건 '로빈후드' 같은 온라인 무료주식거래 앱 때문이라는 얘기도 나왔다.

현지시간 지난 목요일(28일), 고공행진 하던 게임스톱 주가가 44%가 빠졌다. 로빈후드가 개인들의 게임스톱 거래를 매도만 가능하게 '제한'한 거다. 시장의 변동성이 커지는 걸 우려해서라고 했다. 그런데 헤지펀드의 주식 거래는 그대로 놔둔 게 알려지면서 개인투자자들은 '로빈후드의 배신'이라며 분노했고,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로빈후드를 '응징'하자는 목소리가 거세졌다.

(사실 로빈후드는 지난해 말 미국 증권거래위원회로부터 6천5백만 달러(우리 돈 약 711억원)의 벌금을 부과받았다. 고객 수수료 수익이 없는 로빈후드는 고객들의 주식거래 주문 정보를 대형 증권회사에 넘겨 일종의 보상금을 받아 챙겼는데, 이와 관련한 정확한 정보를 고객들에게 알리지 않았다.)

■청문회 가게 된 헤지펀드와 로빈후드...다시 "'월가의 탐욕'을 벌하라"

개인 투자자들은 거래 제한 조치로 손해를 봤다며, 로빈후드를 상대로 집단소송을 제기했다. 정치권도 일제히 '개미' 편에 섰다. 미 연방의회는 로빈후드 등 개인 투자자의 거래를 막은 플랫폼과 공매도를 일삼는 헤지펀드 등을 대상으로 청문회를 열겠다고 밝혔다.

월가 비판에 앞장서 왔던 민주당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도 "헤지펀드, 사모펀드, 부자 투자자들은 그동안 증시를 개인 카지노처럼 갖고 놀면서 다른 사람들만 비용을 치르게 했다"는 내용의 성명을 냈다.

2008년 금융위기를 촉발했던 월가의 대형 투자자들과 금융사들은 이번 팬데믹 기간 주식시장 활황 덕에 또 한 번 자산을 크게 불리는 데 성공했다. 이번 게임스톱 사태는 이런 월가에 대한 개인투자자들의 복수 심리가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2011년 '월가 점령' 시위가 10년 만에 온라인에서 부활한 것이다.

정치권과 검찰 수사로까지 가게 됐으니 이번 '게임스톱' 사태는 쉽게 끝날 것 같지는 않다. 우려도 잇따르고 있다. 게임스톱의 주가 하락으로 대규모 손실을 본 헤지펀드들이 손실 충당을 위해 보유 주식을 매도하기 시작하면 시장은 불안해질 수 있다. 게임스톱의 주가가 기업 가치에 비해 너무 과한 건 맞으니, 결국 개인 투자자들의 손실이 크지 않을까 하는 거다.

하지만 주식시장의 향방은 어느 누구도 예측하기 힘들다. 혹시 또 모르지 않나, 미국 민주당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의 말처럼 '증시를 개인 카지노처럼 갖고 노는 1% 부자'들에 맞선 개미들이 시장을 움직이는 '뉴노멀'이 자리를 잡게 될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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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1-31 15:16:30
    • 수정2021-01-31 15:33:10
    특파원 리포트
■'월가 점령'(occupy wall street) 시위...그리고 '로빈후드'

2011년 9월, 미국 '자본주의의 심장'이라는 뉴욕 월가에서 'occupy wall street'(월가를 점령하라) 구호를 내걸고 반(反)월가 시위가 시작됐다. 시위대는 2008년 미국발 세계금융위기 이후 심화된 미국의 빈부 격차 문제를 성토하고, 미국 대형 금융사들의 탐욕과 부도덕성에 거세게 항의했다. 미국의 '1%'에 저항하는 '99%' 였다.

당시, 월가에서 일하고 있었지만 '월가 점령' 운동에 적극 공감했던 두 청년 테네브와 바트. 미국 명문 스탠퍼드 대학교 동문인 두 사람은 이 월가 시위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거래 수수료 없는 온라인 무료주식거래 앱을 2014년 말 출시했다. 이름하여 중세 영국의 의적의 이름을 딴 '로빈후드'다.

'로빈후드'가 내세운 기치는 '주식 거래 1건당 10달러를 내는 일을 그만두라'였다. 거래 수수료로 거액의 성과급과 연봉을 챙기는 대형 금융사들의 '부'를 시민들에게 돌려주겠다고도 했다. 수수료 수익이 없으니 영업점, 투자 보고서 등을 안 만들어 비용을 최소화했다.

온라인 쇼핑하듯 주식을 거래할 수 있는 로빈후드에 이른바 '젊은 개미'들은 열광했고, 결과는 '대박'이었다. 로빈후드는 출시 4년 만에 이용자 400만 명, 거래 종목 만 개, 주식 거래액 1,500억 달러의 성과를 냈다. 두 청년 테네브와 바트는 기업가치로 봤을 때 억만장자 대열에도 올랐다.

로빈후드 이용자의 절반 이상은 20~30대다. 로빈후드는 현재 1,300만 개 계좌가 개설된 미국 개인 투자자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주식거래 플랫폼이다.

■ '게임스톱'과 '공매도' 전쟁..그리고 로빈후드의 배신?

지난주 뉴욕증시를 뒤흔든 기업, 비디오게임 유통업체 '게임스톱'이다. 사실 코로나19 사태 훨씬 이전부터 온라인 게임에 밀려 대대적으로 매장 폐쇄에 들어간 게임기 소매점이다. 이 게임스톱의 주가가 이달 들어 난데 없이 1,700% 이상이 올랐다. 이달 초만 해도 한 주에 10달러대였던 주식이 340달러를 넘어선 거다.

한 줄 정리하자면 이렇다. 대형 헤지펀드들이 '게임스톱'의 주가 하락에 베팅하는 대량 공매도에 나서자 이에 분노한 '개미 군단'들이 대량 집중 매수에 나서며 이른바 '게임스톱 살리기'에 나선 것이다.

'내 어릴 적 추억이 담긴 게임스톱 돌리도!'라고나 할까...개인 투자자들의 힘으로 게임스톱 주가가 치솟으면서 공매도 회사들은 우리 돈 수십조 원의 손실을 봤다. 이런 개미들의 주식거래가 가능한 건 '로빈후드' 같은 온라인 무료주식거래 앱 때문이라는 얘기도 나왔다.

현지시간 지난 목요일(28일), 고공행진 하던 게임스톱 주가가 44%가 빠졌다. 로빈후드가 개인들의 게임스톱 거래를 매도만 가능하게 '제한'한 거다. 시장의 변동성이 커지는 걸 우려해서라고 했다. 그런데 헤지펀드의 주식 거래는 그대로 놔둔 게 알려지면서 개인투자자들은 '로빈후드의 배신'이라며 분노했고,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로빈후드를 '응징'하자는 목소리가 거세졌다.

(사실 로빈후드는 지난해 말 미국 증권거래위원회로부터 6천5백만 달러(우리 돈 약 711억원)의 벌금을 부과받았다. 고객 수수료 수익이 없는 로빈후드는 고객들의 주식거래 주문 정보를 대형 증권회사에 넘겨 일종의 보상금을 받아 챙겼는데, 이와 관련한 정확한 정보를 고객들에게 알리지 않았다.)

■청문회 가게 된 헤지펀드와 로빈후드...다시 "'월가의 탐욕'을 벌하라"

개인 투자자들은 거래 제한 조치로 손해를 봤다며, 로빈후드를 상대로 집단소송을 제기했다. 정치권도 일제히 '개미' 편에 섰다. 미 연방의회는 로빈후드 등 개인 투자자의 거래를 막은 플랫폼과 공매도를 일삼는 헤지펀드 등을 대상으로 청문회를 열겠다고 밝혔다.

월가 비판에 앞장서 왔던 민주당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도 "헤지펀드, 사모펀드, 부자 투자자들은 그동안 증시를 개인 카지노처럼 갖고 놀면서 다른 사람들만 비용을 치르게 했다"는 내용의 성명을 냈다.

2008년 금융위기를 촉발했던 월가의 대형 투자자들과 금융사들은 이번 팬데믹 기간 주식시장 활황 덕에 또 한 번 자산을 크게 불리는 데 성공했다. 이번 게임스톱 사태는 이런 월가에 대한 개인투자자들의 복수 심리가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2011년 '월가 점령' 시위가 10년 만에 온라인에서 부활한 것이다.

정치권과 검찰 수사로까지 가게 됐으니 이번 '게임스톱' 사태는 쉽게 끝날 것 같지는 않다. 우려도 잇따르고 있다. 게임스톱의 주가 하락으로 대규모 손실을 본 헤지펀드들이 손실 충당을 위해 보유 주식을 매도하기 시작하면 시장은 불안해질 수 있다. 게임스톱의 주가가 기업 가치에 비해 너무 과한 건 맞으니, 결국 개인 투자자들의 손실이 크지 않을까 하는 거다.

하지만 주식시장의 향방은 어느 누구도 예측하기 힘들다. 혹시 또 모르지 않나, 미국 민주당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의 말처럼 '증시를 개인 카지노처럼 갖고 노는 1% 부자'들에 맞선 개미들이 시장을 움직이는 '뉴노멀'이 자리를 잡게 될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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