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외할머니와 손주들까지…다문화가족의 안타까운 죽음

입력 2021.02.02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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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시간 갑자기 일어난 화재...일가족 3명 참변

2021년 새해 첫 달의 마지막 날인 1월 31일 새벽 3시쯤. 강원도 원주시의 한 철거 예정 지역 주택 밀집 지역에서 다문화가족이 화재로 참변을 당했습니다.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 수천 km 떨어진 한국으로 들어온 필리핀 할머니와 10살도 안 된 어린 손자, 손녀가 화마를 피하지 못했습니다. 함께 자고 있던 어머니는 겨우 목숨을 건졌습니다.

지난해, 함께 살고 있던 아이들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아이들을 돌볼 사람이 필요해 아이들의 외할머니, 자신의 친어머니를 한국으로 모셨던 건데 불과 1년도 안 돼서 화마가 들이닥친 겁니다.

아이들의 아버지는 생계를 위해 타국으로 일을 떠나있던 상황. 사고 소식을 듣고 황급히 고국으로 돌아왔습니다.

화재 이후 다시 찾아간 현장화재 이후 다시 찾아간 현장

좁다란 길에 언덕으로 다닥다닥 집이 붙어 있는 곳. 소방차가 진입할 수조차 없는 달동네 좁은 길. 소방대원들은 화재 현장 근처 소화전을 이용해 1시간 20여 분 만에 불길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화재 참사 소식을 듣고 울음이 터져 나왔다며 피해자 가족들을 설명하는 이웃 주민화재 참사 소식을 듣고 울음이 터져 나왔다며 피해자 가족들을 설명하는 이웃 주민

"넉넉지 못한 살림에도 아이들은 밝았는데..."

이웃 주민들은 화재 피해자 가족들이 이 마을로 온 것을 5년 전쯤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숨진 어린이들의 부모는 넉넉하지 못한 살림에 맞벌이를 하면서 생계를 이어왔습니다. 어느 날에는 집에 연탄이 떨어졌다며, 이웃집에서 연탄 15장을 빌려 가기도 했다고 어떤 이웃은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지난해 여름, 어린아이들을 돌봐주던 친할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맞벌이 부부였던 이들은 직장에 나간 사이 아이들을 돌봐줄 사람으로, 지난해 여름 무렵 필리핀에 살고 있던 70대 외할머니를 모셔왔습니다.

이웃 주민들은 이 할머니가 지낸 시간이 길지 않지만, 좋은 기억으로 남았다고 회상합니다.

어느 때는 우산을 지팡이 삼아 짚고 다니기도 하면서, 아이들을 돌봐준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힘든 걸음으로 연탄이나 급식, 도시락을 받기 위해 원주 밥상공동체 연탄은행에 다니면서 종종 끼니를 해결한 것으로 회상합니다.

아이들도 어른들을 보면 꾸벅 인사를 하며, 참 바르게 잘 자라주고 있었다면서, 이번 화재 소식을 듣고 울음이 터져 나왔다고 얘기합니다.

외할머니가 온 뒤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 지난해 9~10월 무렵 어머니는 다니던 공장에서 실직하게 됐고, 생계는 더 막막해졌습니다.

결국, 그해 연말쯤 아버지는 일자리를 찾아 중국으로 떠나게 됐습니다. 이렇게 불이 난 집에는 다문화가정 외할머니와 어머니, 어린아이들, 이렇게 4명이 살고 있었습니다.

화재 현장에서 빠져나온 어머니는 이미 화상을 입은 상태. 불길이 거세 친어머니와 아이들에게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아이들을 봐주겠다며 필리핀에서 자신에게 온 친어머니와 남겨진 자식들도 같은 날 밤에 모두 잃고 혼자 남겨진 겁니다.

2월 1일,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등 관계 기관 합동 화재현장감식2월 1일,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등 관계 기관 합동 화재현장감식

■ "보일러 없어서"…재개발 지역 석유 난로에서 시작된 참사

현재 발화 추정 지점은 참사가 발생한 집의 바로 아랫집에 있던 석유 난로입니다. 보일러를 설치하려면 집 구조 변경이 필요한 상황. 재개발 예정 지역인 만큼, 재개발조합의 승인과 시청 인허가가 필요합니다.

이 절차를 거치더라도 비용이 문제입니다. 결국, 석유 난로를 쓰던 아랫집에서 불이 나 이런 일이 빚어진 것으로 경찰과 소방 당국은 추정하고 있습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등 관계 기관은 합동 감식과 정밀 감정을 통해 정확한 화재 원인과 당시의 상황 등을 조사하고 있습니다.

원주시는 관계 기관 협조를 통해 피해자들에 대한 주거 대책 등 지원책을 마련할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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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필리핀 외할머니와 손주들까지…다문화가족의 안타까운 죽음
    • 입력 2021-02-02 17:17:16
    취재K

■새벽 시간 갑자기 일어난 화재...일가족 3명 참변

2021년 새해 첫 달의 마지막 날인 1월 31일 새벽 3시쯤. 강원도 원주시의 한 철거 예정 지역 주택 밀집 지역에서 다문화가족이 화재로 참변을 당했습니다.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 수천 km 떨어진 한국으로 들어온 필리핀 할머니와 10살도 안 된 어린 손자, 손녀가 화마를 피하지 못했습니다. 함께 자고 있던 어머니는 겨우 목숨을 건졌습니다.

지난해, 함께 살고 있던 아이들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아이들을 돌볼 사람이 필요해 아이들의 외할머니, 자신의 친어머니를 한국으로 모셨던 건데 불과 1년도 안 돼서 화마가 들이닥친 겁니다.

아이들의 아버지는 생계를 위해 타국으로 일을 떠나있던 상황. 사고 소식을 듣고 황급히 고국으로 돌아왔습니다.

화재 이후 다시 찾아간 현장
좁다란 길에 언덕으로 다닥다닥 집이 붙어 있는 곳. 소방차가 진입할 수조차 없는 달동네 좁은 길. 소방대원들은 화재 현장 근처 소화전을 이용해 1시간 20여 분 만에 불길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화재 참사 소식을 듣고 울음이 터져 나왔다며 피해자 가족들을 설명하는 이웃 주민
"넉넉지 못한 살림에도 아이들은 밝았는데..."

이웃 주민들은 화재 피해자 가족들이 이 마을로 온 것을 5년 전쯤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숨진 어린이들의 부모는 넉넉하지 못한 살림에 맞벌이를 하면서 생계를 이어왔습니다. 어느 날에는 집에 연탄이 떨어졌다며, 이웃집에서 연탄 15장을 빌려 가기도 했다고 어떤 이웃은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지난해 여름, 어린아이들을 돌봐주던 친할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맞벌이 부부였던 이들은 직장에 나간 사이 아이들을 돌봐줄 사람으로, 지난해 여름 무렵 필리핀에 살고 있던 70대 외할머니를 모셔왔습니다.

이웃 주민들은 이 할머니가 지낸 시간이 길지 않지만, 좋은 기억으로 남았다고 회상합니다.

어느 때는 우산을 지팡이 삼아 짚고 다니기도 하면서, 아이들을 돌봐준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힘든 걸음으로 연탄이나 급식, 도시락을 받기 위해 원주 밥상공동체 연탄은행에 다니면서 종종 끼니를 해결한 것으로 회상합니다.

아이들도 어른들을 보면 꾸벅 인사를 하며, 참 바르게 잘 자라주고 있었다면서, 이번 화재 소식을 듣고 울음이 터져 나왔다고 얘기합니다.

외할머니가 온 뒤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 지난해 9~10월 무렵 어머니는 다니던 공장에서 실직하게 됐고, 생계는 더 막막해졌습니다.

결국, 그해 연말쯤 아버지는 일자리를 찾아 중국으로 떠나게 됐습니다. 이렇게 불이 난 집에는 다문화가정 외할머니와 어머니, 어린아이들, 이렇게 4명이 살고 있었습니다.

화재 현장에서 빠져나온 어머니는 이미 화상을 입은 상태. 불길이 거세 친어머니와 아이들에게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아이들을 봐주겠다며 필리핀에서 자신에게 온 친어머니와 남겨진 자식들도 같은 날 밤에 모두 잃고 혼자 남겨진 겁니다.

2월 1일,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등 관계 기관 합동 화재현장감식
■ "보일러 없어서"…재개발 지역 석유 난로에서 시작된 참사

현재 발화 추정 지점은 참사가 발생한 집의 바로 아랫집에 있던 석유 난로입니다. 보일러를 설치하려면 집 구조 변경이 필요한 상황. 재개발 예정 지역인 만큼, 재개발조합의 승인과 시청 인허가가 필요합니다.

이 절차를 거치더라도 비용이 문제입니다. 결국, 석유 난로를 쓰던 아랫집에서 불이 나 이런 일이 빚어진 것으로 경찰과 소방 당국은 추정하고 있습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등 관계 기관은 합동 감식과 정밀 감정을 통해 정확한 화재 원인과 당시의 상황 등을 조사하고 있습니다.

원주시는 관계 기관 협조를 통해 피해자들에 대한 주거 대책 등 지원책을 마련할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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