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전화벨이 울렸다…​하고픈 말보다 듣고픈 말

입력 2021.02.04 (17:15) 수정 2021.02.04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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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오늘(4일) 오전 8시 25분부터 57분까지 32분간 전화 통화를 했습니다. 지난 1월 20일 바이든 대통령의 취임 이후 14일 만에 이뤄진 한미 정상 간 첫 통화입니다.

통역 시간을 제외하면 두 정상이 나눈 통화는 15분 정도일 겁니다.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없는 만큼 서로가 서로에게 하고 싶은 말을 어떻게 잘 전달하느냐가 중요하겠죠.

문재인 대통령이 하고 싶었던 말, 바이든 대통령이 하고 싶었던 말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통화 뒤 양국이 낸 자료를 비교해 보면 한미 양측이 서로 어디에 우선순위를 뒀는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 동맹 이어 '북한 문제'에 밑줄

한미 정상 통화에서 가장 관심을 끌었던 건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대해 두 정상이 어떤 접근을 할지였습니다.

지난달 27일 이뤄졌던 한미 외교장관의 첫 통화 때, 한국은 북핵 문제의 시급성을 강조한 반면, 미국은 한미일 협력에 방점을 찍었습니다. 그래서 북핵 문제가 미국의 우선순위에서 밀린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낳았습니다.

오늘 보도자료를 보면 미국 백악관은 '한미동맹'에 이어 '북한 문제' 해결을 두 번째 의제로 배치했습니다. 외교장관 통화에 비하면 우선순위를 끌어올린 셈입니다.

다만 미국 측은 구체적인 방법론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두 정상이 북한에 대해 긴밀히 협조하기로 합의했다(The two leaders agreed to closely coordinate on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라고만 했습니다.

구체적인 내용은 우리 보도자료에 담겨 있습니다.

청와대는 "바이든 대통령은 한반도 문제 해결의 주된 당사국인 한국 측의 노력을 평가하고, 한국과의 같은 입장이 중요하다며, 한국과 공통 목표를 위해 긴밀히 협력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고 밝혔습니다.

또 "양 정상은 가급적 조속히 포괄적인 대북 전략을 함께 마련해 나갈 필요가 있다는 점에 인식을 같이했다"고 전했습니다. '포괄적'인 대북전략이 어떤 것인지는 구체적으로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 '북핵' 대신 '북한·한반도 문제'로 표현

흥미로운 점은 오늘 양국이 '북핵'을 특정하지 않고 '북한 문제', '한반도 문제'라는 표현을 썼다는 겁니다.

박원곤 한동대 교수는 "바이든의 정책 검토가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정도 선에서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며 "우리 정부가 원하는 '싱가포르 선언으로부터 논의 시작'은 언급되지 않았는데, 현시점에서 그 이야기를 미국이 받기는 어려워 보인다"고 분석했습니다.

미국은 일본 정상과의 통화 직후 보도자료에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의 필요성을 확인했다'고 한 바 있습니다.


■ 한국 자료에 더 강조된 '중국' 이슈

중국과 경쟁 중인 바이든 행정부가 지금껏 한국에 제시한 메시지를 보면, '민주주의 국가들의 중국 견제', '인도 태평양 지역의 협력', '한미일 안보 협력' 등이 주를 이룹니다.

그런데 미국은 이번 통화 내용을 발표하면서 이 세 가지 표현을 모두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뒤이어 진행한 호주 정상과의 통화에선 '중국 견제', '인도 태평양 지역의 협력'이 포함됐는데 말입니다.

오히려 이 세 표현을 보도자료에 담은 건 한국이었습니다. 청와대는 "두 정상이 역내 평화, 번영의 핵심 동맹임을 재확인했다", "인도-태평양 지역 협력을 넘어 민주주의, 인권 및 다자주의 증진에 기여하는 포괄적 전략 동맹을 발전시키기로 했다", "한일 관계 개선과 한미일 협력이 역내 평화와 번영에 중요하다는데 공감했다"고 전했습니다.

'역내 평화와 번영', '인도 태평양 지역의 협력' 등은 중국과 대립각을 세우는 표현으로 인식돼왔습니다. 중국과 대립하는 미국이 자주 사용하는 용어이고, 한국은 적극적으로 쓰지 않던 표현입니다. 그런데 미국이 아니라 한국이 더 적극적으로 이런 표현을 쓴 겁니다.

박원곤 한동대 교수는 "매우 흥미로운 지점"이라면서 "한국이 바이든 정부의 코드를 맞춰주는 분위기가 읽힌다"고 밝혔습니다.

■ 미국이 '중국' 강조하지 않은 이유는?

미국이 한국에 '중국 문제'를 적극적으로 내세우지 않은 배경에도 관심이 쏠립니다.

이에 대해 서정건 경희대 교수는 "우리 통화에 중국 이야기가 빠졌으므로 대중국 압박에 있어서 한국을 빼고 할 거다는 식으로 확대해석하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서정건 교수는 "바이든 대통령이 일부러 전략적으로 단어 하나하나 단어를 골라서 넣고 빼고 하는 사람이 아닌 데다, 정상 간 첫 축화 통화를 한 것이기 때문에 단어 선택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고 설명했습니다.


■ 미국의 핵심 관심사로 떠오른 '미얀마'

이번 통화에서 주목할 점은 미얀마 문제가 한미 정상 간 통화에서도 핵심 의제가 됐다는 겁니다. 미국은 한미동맹, 북한에 이어 세 번째로 이 문제를 적었습니다.

미국은 한국에 이어 진행한 호주 정상과의 통화에서도 미얀마 문제를 언급했습니다.

바이든 정부의 대외 정책의 핵심 기조는 '자유민주주의의 복원'이고 더구나 미얀마의 민주화는 오바마 행정부의 큰 성과 중의 하나였습니다. 바이든 대통령 당선 이후 미얀마의 민주주의가 역행하는 사건이 발생했기 때문에, 미국 입장에선 우선순위에 놓을 수밖에 없습니다.

바이든 정부가 대외정책을 풀어가는 방식이 동맹국의 적극적인 참여를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미얀마 군부에 대한 비판 의견 표명 등을 요구할 수 있습니다. 또 미국이 '제재'를 검토하고 있는데, 현실화될 경우 한국의 적극적인 동참을 요구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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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2-04 17:15:05
    • 수정2021-02-04 20:14:37
    취재K

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오늘(4일) 오전 8시 25분부터 57분까지 32분간 전화 통화를 했습니다. 지난 1월 20일 바이든 대통령의 취임 이후 14일 만에 이뤄진 한미 정상 간 첫 통화입니다.

통역 시간을 제외하면 두 정상이 나눈 통화는 15분 정도일 겁니다.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없는 만큼 서로가 서로에게 하고 싶은 말을 어떻게 잘 전달하느냐가 중요하겠죠.

문재인 대통령이 하고 싶었던 말, 바이든 대통령이 하고 싶었던 말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통화 뒤 양국이 낸 자료를 비교해 보면 한미 양측이 서로 어디에 우선순위를 뒀는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 동맹 이어 '북한 문제'에 밑줄

한미 정상 통화에서 가장 관심을 끌었던 건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대해 두 정상이 어떤 접근을 할지였습니다.

지난달 27일 이뤄졌던 한미 외교장관의 첫 통화 때, 한국은 북핵 문제의 시급성을 강조한 반면, 미국은 한미일 협력에 방점을 찍었습니다. 그래서 북핵 문제가 미국의 우선순위에서 밀린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낳았습니다.

오늘 보도자료를 보면 미국 백악관은 '한미동맹'에 이어 '북한 문제' 해결을 두 번째 의제로 배치했습니다. 외교장관 통화에 비하면 우선순위를 끌어올린 셈입니다.

다만 미국 측은 구체적인 방법론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두 정상이 북한에 대해 긴밀히 협조하기로 합의했다(The two leaders agreed to closely coordinate on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라고만 했습니다.

구체적인 내용은 우리 보도자료에 담겨 있습니다.

청와대는 "바이든 대통령은 한반도 문제 해결의 주된 당사국인 한국 측의 노력을 평가하고, 한국과의 같은 입장이 중요하다며, 한국과 공통 목표를 위해 긴밀히 협력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고 밝혔습니다.

또 "양 정상은 가급적 조속히 포괄적인 대북 전략을 함께 마련해 나갈 필요가 있다는 점에 인식을 같이했다"고 전했습니다. '포괄적'인 대북전략이 어떤 것인지는 구체적으로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 '북핵' 대신 '북한·한반도 문제'로 표현

흥미로운 점은 오늘 양국이 '북핵'을 특정하지 않고 '북한 문제', '한반도 문제'라는 표현을 썼다는 겁니다.

박원곤 한동대 교수는 "바이든의 정책 검토가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정도 선에서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며 "우리 정부가 원하는 '싱가포르 선언으로부터 논의 시작'은 언급되지 않았는데, 현시점에서 그 이야기를 미국이 받기는 어려워 보인다"고 분석했습니다.

미국은 일본 정상과의 통화 직후 보도자료에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의 필요성을 확인했다'고 한 바 있습니다.


■ 한국 자료에 더 강조된 '중국' 이슈

중국과 경쟁 중인 바이든 행정부가 지금껏 한국에 제시한 메시지를 보면, '민주주의 국가들의 중국 견제', '인도 태평양 지역의 협력', '한미일 안보 협력' 등이 주를 이룹니다.

그런데 미국은 이번 통화 내용을 발표하면서 이 세 가지 표현을 모두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뒤이어 진행한 호주 정상과의 통화에선 '중국 견제', '인도 태평양 지역의 협력'이 포함됐는데 말입니다.

오히려 이 세 표현을 보도자료에 담은 건 한국이었습니다. 청와대는 "두 정상이 역내 평화, 번영의 핵심 동맹임을 재확인했다", "인도-태평양 지역 협력을 넘어 민주주의, 인권 및 다자주의 증진에 기여하는 포괄적 전략 동맹을 발전시키기로 했다", "한일 관계 개선과 한미일 협력이 역내 평화와 번영에 중요하다는데 공감했다"고 전했습니다.

'역내 평화와 번영', '인도 태평양 지역의 협력' 등은 중국과 대립각을 세우는 표현으로 인식돼왔습니다. 중국과 대립하는 미국이 자주 사용하는 용어이고, 한국은 적극적으로 쓰지 않던 표현입니다. 그런데 미국이 아니라 한국이 더 적극적으로 이런 표현을 쓴 겁니다.

박원곤 한동대 교수는 "매우 흥미로운 지점"이라면서 "한국이 바이든 정부의 코드를 맞춰주는 분위기가 읽힌다"고 밝혔습니다.

■ 미국이 '중국' 강조하지 않은 이유는?

미국이 한국에 '중국 문제'를 적극적으로 내세우지 않은 배경에도 관심이 쏠립니다.

이에 대해 서정건 경희대 교수는 "우리 통화에 중국 이야기가 빠졌으므로 대중국 압박에 있어서 한국을 빼고 할 거다는 식으로 확대해석하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서정건 교수는 "바이든 대통령이 일부러 전략적으로 단어 하나하나 단어를 골라서 넣고 빼고 하는 사람이 아닌 데다, 정상 간 첫 축화 통화를 한 것이기 때문에 단어 선택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고 설명했습니다.


■ 미국의 핵심 관심사로 떠오른 '미얀마'

이번 통화에서 주목할 점은 미얀마 문제가 한미 정상 간 통화에서도 핵심 의제가 됐다는 겁니다. 미국은 한미동맹, 북한에 이어 세 번째로 이 문제를 적었습니다.

미국은 한국에 이어 진행한 호주 정상과의 통화에서도 미얀마 문제를 언급했습니다.

바이든 정부의 대외 정책의 핵심 기조는 '자유민주주의의 복원'이고 더구나 미얀마의 민주화는 오바마 행정부의 큰 성과 중의 하나였습니다. 바이든 대통령 당선 이후 미얀마의 민주주의가 역행하는 사건이 발생했기 때문에, 미국 입장에선 우선순위에 놓을 수밖에 없습니다.

바이든 정부가 대외정책을 풀어가는 방식이 동맹국의 적극적인 참여를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미얀마 군부에 대한 비판 의견 표명 등을 요구할 수 있습니다. 또 미국이 '제재'를 검토하고 있는데, 현실화될 경우 한국의 적극적인 동참을 요구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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