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첫 승리 ‘부산 아시아드 경기장’…지금은 “비싼 잔디 화분”

입력 2021.02.07 (07:00) 수정 2021.02.07 (12:45)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부산 아시아드 주 경기장. 지난해 태풍 마이삭으로 인한 강풍 피해로 지붕막이 9장 훼손됐다. 부산 아시아드 주 경기장. 지난해 태풍 마이삭으로 인한 강풍 피해로 지붕막이 9장 훼손됐다.

" 태풍만 오면 날아가는데…"

평소 부산 아시아드 주 경기장을 자주 찾는다는 주민 손연식씨가 휑하니 뚫린 지붕막을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벌써 5개월째입니다. 그리고 벌써 29장째입니다.

지난 해 8월 초속 35m의 순간 최대풍속을 몰고 온 태풍 마이삭 당시 주 경기장 지붕막 9장이 종잇장처럼 찢어졌습니다.

지붕막 가격은 한 장에 3억 원. 독일에서 수입해야 하는 이 귀한 몸을 모두 교체하려 27억 원이 듭니다.

그 예산을 마련하지 못해 아시아드 경기장은 한겨울에도 이가 빠진 것 마냥 훤한 속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 2200억 최첨단 경기장 어쩌다 이렇게 됐나?

부산 아시아드 주경기장. 2002년 아시안게임에 참가했던 국가들의 깃발이 지금도 걸려있다. 경기장은 지난해 태풍 마이삭으로 인한 강풍 피해로 지붕막이 9장 훼손됐다.부산 아시아드 주경기장. 2002년 아시안게임에 참가했던 국가들의 깃발이 지금도 걸려있다. 경기장은 지난해 태풍 마이삭으로 인한 강풍 피해로 지붕막이 9장 훼손됐다.

아시아드 주 경기장의 모습이 원래 이랬던 건 아닙니다. 2002년 월드컵과 부산아시안게임을 앞두고 2001년 문을 연 아시아드 주 경기장은 반 돔형구장으로 만들어졌습니다. 2200억 원이 넘는 예산이 들어갔습니다.

특수 케이블을 엮어 지붕을 떠받치는 인장 케이블 돔형태였는데 국내 최초로 사용된 공법입니다.

지금은 골칫거리가 된 96개의 하얀색 지붕막은 바다의 돛을 형상화해 항구도시 부산을 표현했습니다.

월드컵 첫 승리의 감동이 있었던 아시아드 주 경기장의 영광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2002년 9월 태풍 루사로 주 경기장 지붕막 곳곳이 훼손됐고, 2003년 태풍 매미로도 큰 피해를 겪었습니다. 그렇게 뜯겨나간 지붕막만 20장인데, 지난 해 태풍으로 9장이 추가됐습니다.

■ 최초 강도의 1/3에 불과… 강풍 피해 우려

문제는 이게 끝이 아닐 거란 겁니다. 아시아드 경기장의 지붕막은 초속 40m의 바람도 견디게 설계가 되었습니다. 내구연한도 30년은 될 것으로 내다보았는데 개장 20년이 흐르며 그 성능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습니다.

부산시 체육시설관리사업소가 이번에 훼손된 지붕막의 강도를 측정해봤더니 인장강도가 원자재와 비교할 때 최저 33.7%에 그치는 거로 나타났습니다.

원래 강도의 1/3에 불과한 셈인데 이번에 뜯겨나간 지붕막은 개장 당시 설치한 것들입니다.

이미 부분부분 구멍이 나거나 찢어지는 곳아 많아서 매년 100여 곳을 땜질식으로 수리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해마다 1억 4천만 원 가량이 쓰입니다.

아시아드 주 경기장의 노후화는 이뿐만이 아닌데요. 종합운동장으로 만들어져 육상트랙이 있지만 이 역시 세월이 흐르며 제대로 된 경기가 힘듭니다. 바닥 이곳저곳에 구멍이 뚫린 데다 갈라진 곳도 많기 때문입니다. 경기를 하려면 다시 트랙을 조성해야 하는데 13억 원은 필요할 거로 예상됩니다.

■ 부산시 이달 중 용역 착수 계획…"다양한 활용 방안 고민해야"

부산 아시아드 주 경기장 내부 육상 트랙 곳곳은 갈라지고 구멍이 뚫려있다. 부산 아시아드 주 경기장 내부 육상 트랙 곳곳은 갈라지고 구멍이 뚫려있다.

이처럼 아시아드 주 경기장의 유지관리를 위한 계속 들어가고 있는데 수익은 턱없이 못 미치는 실정입니다. 경기장 규모가 크다 보니 프로 축구구단으로 부터 외면받았고, 코로나19로 인해 그나마 가뭄에 콩 나듯 있던 대형 콘서트마저 열리지 못합니다.

부산시는 우선 지붕막 관련 용역이라도 이달 중 시작할 계획입니다. 석 달 정도 걸리는 이 용역으로 지붕막 복구 방안의 얼개가 짜여질 듯합니다.

하지만 예산만 하염없이 들어가는 경기장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을 해보자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습니다.

제대욱 부산시의원은 “지금의 아시아드 주 경기장은 1년에 한 번 할까 말까 한 축구경기를 위해 잔디를 키우는 비싸고 큰 화분”이라면서 “예산을 쓰는 애물단지로 두는 게 아니라 다양한 활용방안을 고민해봐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월드컵 첫 승리 ‘부산 아시아드 경기장’…지금은 “비싼 잔디 화분”
    • 입력 2021-02-07 07:00:39
    • 수정2021-02-07 12:45:29
    취재K
부산 아시아드 주 경기장. 지난해 태풍 마이삭으로 인한 강풍 피해로 지붕막이 9장 훼손됐다.
" 태풍만 오면 날아가는데…"

평소 부산 아시아드 주 경기장을 자주 찾는다는 주민 손연식씨가 휑하니 뚫린 지붕막을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벌써 5개월째입니다. 그리고 벌써 29장째입니다.

지난 해 8월 초속 35m의 순간 최대풍속을 몰고 온 태풍 마이삭 당시 주 경기장 지붕막 9장이 종잇장처럼 찢어졌습니다.

지붕막 가격은 한 장에 3억 원. 독일에서 수입해야 하는 이 귀한 몸을 모두 교체하려 27억 원이 듭니다.

그 예산을 마련하지 못해 아시아드 경기장은 한겨울에도 이가 빠진 것 마냥 훤한 속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 2200억 최첨단 경기장 어쩌다 이렇게 됐나?

부산 아시아드 주경기장. 2002년 아시안게임에 참가했던 국가들의 깃발이 지금도 걸려있다. 경기장은 지난해 태풍 마이삭으로 인한 강풍 피해로 지붕막이 9장 훼손됐다.
아시아드 주 경기장의 모습이 원래 이랬던 건 아닙니다. 2002년 월드컵과 부산아시안게임을 앞두고 2001년 문을 연 아시아드 주 경기장은 반 돔형구장으로 만들어졌습니다. 2200억 원이 넘는 예산이 들어갔습니다.

특수 케이블을 엮어 지붕을 떠받치는 인장 케이블 돔형태였는데 국내 최초로 사용된 공법입니다.

지금은 골칫거리가 된 96개의 하얀색 지붕막은 바다의 돛을 형상화해 항구도시 부산을 표현했습니다.

월드컵 첫 승리의 감동이 있었던 아시아드 주 경기장의 영광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2002년 9월 태풍 루사로 주 경기장 지붕막 곳곳이 훼손됐고, 2003년 태풍 매미로도 큰 피해를 겪었습니다. 그렇게 뜯겨나간 지붕막만 20장인데, 지난 해 태풍으로 9장이 추가됐습니다.

■ 최초 강도의 1/3에 불과… 강풍 피해 우려

문제는 이게 끝이 아닐 거란 겁니다. 아시아드 경기장의 지붕막은 초속 40m의 바람도 견디게 설계가 되었습니다. 내구연한도 30년은 될 것으로 내다보았는데 개장 20년이 흐르며 그 성능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습니다.

부산시 체육시설관리사업소가 이번에 훼손된 지붕막의 강도를 측정해봤더니 인장강도가 원자재와 비교할 때 최저 33.7%에 그치는 거로 나타났습니다.

원래 강도의 1/3에 불과한 셈인데 이번에 뜯겨나간 지붕막은 개장 당시 설치한 것들입니다.

이미 부분부분 구멍이 나거나 찢어지는 곳아 많아서 매년 100여 곳을 땜질식으로 수리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해마다 1억 4천만 원 가량이 쓰입니다.

아시아드 주 경기장의 노후화는 이뿐만이 아닌데요. 종합운동장으로 만들어져 육상트랙이 있지만 이 역시 세월이 흐르며 제대로 된 경기가 힘듭니다. 바닥 이곳저곳에 구멍이 뚫린 데다 갈라진 곳도 많기 때문입니다. 경기를 하려면 다시 트랙을 조성해야 하는데 13억 원은 필요할 거로 예상됩니다.

■ 부산시 이달 중 용역 착수 계획…"다양한 활용 방안 고민해야"

부산 아시아드 주 경기장 내부 육상 트랙 곳곳은 갈라지고 구멍이 뚫려있다.
이처럼 아시아드 주 경기장의 유지관리를 위한 계속 들어가고 있는데 수익은 턱없이 못 미치는 실정입니다. 경기장 규모가 크다 보니 프로 축구구단으로 부터 외면받았고, 코로나19로 인해 그나마 가뭄에 콩 나듯 있던 대형 콘서트마저 열리지 못합니다.

부산시는 우선 지붕막 관련 용역이라도 이달 중 시작할 계획입니다. 석 달 정도 걸리는 이 용역으로 지붕막 복구 방안의 얼개가 짜여질 듯합니다.

하지만 예산만 하염없이 들어가는 경기장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을 해보자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습니다.

제대욱 부산시의원은 “지금의 아시아드 주 경기장은 1년에 한 번 할까 말까 한 축구경기를 위해 잔디를 키우는 비싸고 큰 화분”이라면서 “예산을 쓰는 애물단지로 두는 게 아니라 다양한 활용방안을 고민해봐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