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만 원 짜리 ‘냉동굴비’…전통굴비는 없다?

입력 2021.02.08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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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시중에 판매되는 굴비 선물 세트 대부분, 건조 시간 짧고 급속 냉동해 생산
굴비 선물세트 10개 중 9개, '냉동 굴비' 대신 '말린 굴비'라고만 표시·광고
냉동된 굴비를 일반 택배차로 이동…해동 우려도


올 설에도 코로나 19에 따른 사회적 거리 두기를 위해 가족, 친지를 직접 만나기가 어려워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선물이라도 정성껏 준비해 마음을 나누려는 분들이 있을 텐데요. 실제로 유통업체에서는 한우와 와인 등 고가의 선물 세트 판매량이 늘었습니다.

설 선물로 인기가 높은 상품 중 굴비도 있습니다. 영광 칠산 앞바다에서 잡은 참조기를 천일염으로 섶간(참조기 아가미에 천일염을 켜켜이 재서 간을 하는 염장 기법)한 뒤 수개월 말려 오랫동안 보관하며 먹는 전통 음식이 바로 영광굴비입니다. 재료도 귀한 데다 만드는 방법 역시 까다로워서 값비싼 음식이라고 알려져 있죠.

영광 법성포 특유의 지리적, 기후적 조건 속에서 말려 일반 굴비와 맛이 다르다며, 대형 유통업체 등에선 영광굴비 선물 세트를 수십만 원에서 수백만 원에 팔고 있습니다. 특히 한 유명 호텔에서 판매하는 굴비 선물 세트는 전통의 맛을 살린 '재래 굴비'라면서 10마리에 250만 원에 판매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들 굴비가 사실은 전통 방식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제조되고 있다는 제보가 KBS에 들어왔습니다.

■ 고가의 굴비 선물세트, 전통과 다르게 만들어진다?

KBS 취재진이 전남 영광군 법성포의 영광굴비 생산업체들을 직접 찾아가 봤습니다. 굴비 생산 과정을 묻는 질문에 업체들은 과거보다 건조 시간이 짧아졌다고 말합니다. 염장한 참조기를 최소 100일간 말려 만들었던 전통 방식과 달리, 지금은 물기만 빼는 수준으로 짧게는 4, 5시간에서 길어야 24시간 안팎이라는 설명입니다.

이렇게 건조 기간이 대폭 축소된 이유는 우선 오래 말려 퍽퍽한 굴비보다는 수분 함량이 많은 굴비를 요즘 소비자들이 더 선호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들 업체가 만든 굴비의 수분 함량은 약 70% 수준입니다.


이렇게 물기만 빼내는 수준으로 짧게 말린 굴비는 급속 냉동됩니다. 말리는 기간이 축소되면서 변질 부패할 가능성이 높아진 탓에 그대로 냉동을 해야만 상품성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영광군에 등록된 굴비 생산업체 460여 곳 가운데 99%가 이렇게 굴비를 냉동해 판매하고 있다는 게 영광군청 관계자의 설명입니다. 특히나 선물 세트로 만들어진 굴비는 거의 다가 냉동으로 유통되고 있습니다.

■ 10개 중 9개는 '냉동 굴비' 아닌 '말린 굴비'라고만 광고해 판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시중에 판매되는 굴비 선물 세트에는 '냉동 굴비'라는 표기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법성포의 햇빛과 바닷바람에 말려 만든 굴비라는 설명은 공통적으로 찾아볼 수 있었지만, 이 굴비가 마지막에 냉동을 거쳐 생산됐다는 설명을 찾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이달 3일 KBS 취재진이 대형유통업체 온라인몰 3곳에서 판매되는 굴비 선물 세트 140여 개를 직접 조사해봤더니, '냉동 굴비' 표기를 한 상품은 16개에 그쳤습니다. 10개 중 1개 꼴입니다.


유통업체 측은 수산물의 경우 냉동 상태 여부를 기재하도록 한 규정이 없기 때문에, 문제 될 게 없다는 입장입니다. 또 상품 보관 방법에 수령 후 즉시 냉동 보관하라고 안내하고 있어 이 상품이'냉동 굴비'임을 알린 것과 다름 없다고 설명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 "귀하게 만든 상품이라 믿고 상응한 대가를 지불한 소비자에 대해선 엄연한 기망"

이진우 소비자연대 자문 변호사는 이 같은 판매 행위가 기망(허위의 사실을 말하거나 진실을 은폐함으로써 상대방을 착오에 빠지게 하는 행위)이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굴비라면 당연히 오랫동안 말려서 만든 식품이라고 생각해 비싼 값을 지불한 소비자의 경우 이처럼 냉동한 굴비라는 걸 알았다면 애초에 구매하지 않았을 수 있기 때문이죠.

아울러 이진우 변호사는 "굴비가 왜 그렇게 고가이고 귀하게 여기나요. 제조 과정에서 손이 많이 가고 엄격한 심사 과정이 들어가기 때문 아닌가요? 그런데 이 모든 것을 생략하면서 전통 방식으로 하면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는 식으로 어설프게 만드는 건 굴비라는 전통 식품에 대한 모독이죠"라며 전통 굴비를 표방하는 생산업체의 생산 방식도 바로잡아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 독일의 맥주 순수령…우리 '전통 굴비'에 대한 정의는?

실례로 독일에는 '맥주 순수령'이 있습니다. 맥주를 주조할 때 물, 맥아, 효모, 홉만 넣어야 한다고 명시한 법인데요. 독일에서는 이 순수령을 지키지 않고 다른 첨가제를 넣은 맥주는 맥주가 아니라고 보는 것이죠. 독일의 양조장들은 맥주 순수령을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는데요. 맥주 종주국으로서 맥주에 대한 자부심이 엿보이는 제도이자 문화입니다.


전통 식품인 굴비에 대한 정의를 어떻게 내려야 할지 우리도 고민일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요. 과거 판례를 하나 소개하려 합니다. 2013년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참조기를 소금간하고 물기만 뺀 뒤 급속 냉동하는 방법으로 만들어진 굴비는 굴비라고 부를 수 없고, '냉동 간조기'라고 부르는 것이 정확하다는 내용을 보도한 적이 있습니다.

이에 대해 굴비 생산업자들은 현대식 제조 방법에 의한 것도 영광굴비라며, 정정보도를 청구했는데요. 이에 대해 서울고등법원은 사전적 정의나 관련 문헌, 소비자 인식을 토대로 봤을 때 생산업체 측 주장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생산업체들은 즉각 대법원에 상고했지만, 대법원은 심리불속행 판결로 상고를 기각했습니다. 다시 말해, 현대식 제조법으로 생산된 굴비는 굴비라고 부를 수 없다는 쪽에 법원이 손을 들어준 것이죠.

■ '냉동 굴비'를 일반 택배차로 이동…해동 우려도

이 밖에 냉동 굴비의 운반 과정도 문제가 되는데요. 냉동 상태의 굴비 상품이 일부를 제외하곤 냉동 차량이 아닌 일반 택배차로 이동되고 있어 해동될 우려가 큽니다. 식약처 규정을 살펴보면, 냉동된 식품은 냉동 차량으로 이동돼야 합니다. 만약 해동이 된 경우엔 24시간 내로 냉장 유통해야 하고, 이때 해동된 수산물은 재냉동해서는 안 됩니다.


유통업체들은 지금이 겨울철인 데다, 상품 안에 보냉재를 충분히 넣어 운반하기 때문에 해동될 우려는 적다고 설명합니다. 또 아직 이와 관련해 소비자들의 불만 사항도 접수된 바가 거의 없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러나 겨울철이라 해도 영상의 기온이 더 잦은 요즘 날씨를 보면, 안심하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굴비를 구매한 소비자들 가운데 큰 탈이 없었다는 건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그렇다고 이 같은 판매 행위가 모두 정당화될 수 있을까요? 앞으로 K푸드의 하나로 세계적 각광을 받을지 모를 우리 전통 굴비가 조금 더 깐깐한 자존심과 자부심으로 생산·판매된다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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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50만 원 짜리 ‘냉동굴비’…전통굴비는 없다?
    • 입력 2021-02-08 15:26:40
    취재K
시중에 판매되는 굴비 선물 세트 대부분, 건조 시간 짧고 급속 냉동해 생산<br />굴비 선물세트 10개 중 9개, '냉동 굴비' 대신 '말린 굴비'라고만 표시·광고<br />냉동된 굴비를 일반 택배차로 이동…해동 우려도

올 설에도 코로나 19에 따른 사회적 거리 두기를 위해 가족, 친지를 직접 만나기가 어려워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선물이라도 정성껏 준비해 마음을 나누려는 분들이 있을 텐데요. 실제로 유통업체에서는 한우와 와인 등 고가의 선물 세트 판매량이 늘었습니다.

설 선물로 인기가 높은 상품 중 굴비도 있습니다. 영광 칠산 앞바다에서 잡은 참조기를 천일염으로 섶간(참조기 아가미에 천일염을 켜켜이 재서 간을 하는 염장 기법)한 뒤 수개월 말려 오랫동안 보관하며 먹는 전통 음식이 바로 영광굴비입니다. 재료도 귀한 데다 만드는 방법 역시 까다로워서 값비싼 음식이라고 알려져 있죠.

영광 법성포 특유의 지리적, 기후적 조건 속에서 말려 일반 굴비와 맛이 다르다며, 대형 유통업체 등에선 영광굴비 선물 세트를 수십만 원에서 수백만 원에 팔고 있습니다. 특히 한 유명 호텔에서 판매하는 굴비 선물 세트는 전통의 맛을 살린 '재래 굴비'라면서 10마리에 250만 원에 판매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들 굴비가 사실은 전통 방식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제조되고 있다는 제보가 KBS에 들어왔습니다.

■ 고가의 굴비 선물세트, 전통과 다르게 만들어진다?

KBS 취재진이 전남 영광군 법성포의 영광굴비 생산업체들을 직접 찾아가 봤습니다. 굴비 생산 과정을 묻는 질문에 업체들은 과거보다 건조 시간이 짧아졌다고 말합니다. 염장한 참조기를 최소 100일간 말려 만들었던 전통 방식과 달리, 지금은 물기만 빼는 수준으로 짧게는 4, 5시간에서 길어야 24시간 안팎이라는 설명입니다.

이렇게 건조 기간이 대폭 축소된 이유는 우선 오래 말려 퍽퍽한 굴비보다는 수분 함량이 많은 굴비를 요즘 소비자들이 더 선호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들 업체가 만든 굴비의 수분 함량은 약 70% 수준입니다.


이렇게 물기만 빼내는 수준으로 짧게 말린 굴비는 급속 냉동됩니다. 말리는 기간이 축소되면서 변질 부패할 가능성이 높아진 탓에 그대로 냉동을 해야만 상품성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영광군에 등록된 굴비 생산업체 460여 곳 가운데 99%가 이렇게 굴비를 냉동해 판매하고 있다는 게 영광군청 관계자의 설명입니다. 특히나 선물 세트로 만들어진 굴비는 거의 다가 냉동으로 유통되고 있습니다.

■ 10개 중 9개는 '냉동 굴비' 아닌 '말린 굴비'라고만 광고해 판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시중에 판매되는 굴비 선물 세트에는 '냉동 굴비'라는 표기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법성포의 햇빛과 바닷바람에 말려 만든 굴비라는 설명은 공통적으로 찾아볼 수 있었지만, 이 굴비가 마지막에 냉동을 거쳐 생산됐다는 설명을 찾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이달 3일 KBS 취재진이 대형유통업체 온라인몰 3곳에서 판매되는 굴비 선물 세트 140여 개를 직접 조사해봤더니, '냉동 굴비' 표기를 한 상품은 16개에 그쳤습니다. 10개 중 1개 꼴입니다.


유통업체 측은 수산물의 경우 냉동 상태 여부를 기재하도록 한 규정이 없기 때문에, 문제 될 게 없다는 입장입니다. 또 상품 보관 방법에 수령 후 즉시 냉동 보관하라고 안내하고 있어 이 상품이'냉동 굴비'임을 알린 것과 다름 없다고 설명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 "귀하게 만든 상품이라 믿고 상응한 대가를 지불한 소비자에 대해선 엄연한 기망"

이진우 소비자연대 자문 변호사는 이 같은 판매 행위가 기망(허위의 사실을 말하거나 진실을 은폐함으로써 상대방을 착오에 빠지게 하는 행위)이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굴비라면 당연히 오랫동안 말려서 만든 식품이라고 생각해 비싼 값을 지불한 소비자의 경우 이처럼 냉동한 굴비라는 걸 알았다면 애초에 구매하지 않았을 수 있기 때문이죠.

아울러 이진우 변호사는 "굴비가 왜 그렇게 고가이고 귀하게 여기나요. 제조 과정에서 손이 많이 가고 엄격한 심사 과정이 들어가기 때문 아닌가요? 그런데 이 모든 것을 생략하면서 전통 방식으로 하면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는 식으로 어설프게 만드는 건 굴비라는 전통 식품에 대한 모독이죠"라며 전통 굴비를 표방하는 생산업체의 생산 방식도 바로잡아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 독일의 맥주 순수령…우리 '전통 굴비'에 대한 정의는?

실례로 독일에는 '맥주 순수령'이 있습니다. 맥주를 주조할 때 물, 맥아, 효모, 홉만 넣어야 한다고 명시한 법인데요. 독일에서는 이 순수령을 지키지 않고 다른 첨가제를 넣은 맥주는 맥주가 아니라고 보는 것이죠. 독일의 양조장들은 맥주 순수령을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는데요. 맥주 종주국으로서 맥주에 대한 자부심이 엿보이는 제도이자 문화입니다.


전통 식품인 굴비에 대한 정의를 어떻게 내려야 할지 우리도 고민일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요. 과거 판례를 하나 소개하려 합니다. 2013년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참조기를 소금간하고 물기만 뺀 뒤 급속 냉동하는 방법으로 만들어진 굴비는 굴비라고 부를 수 없고, '냉동 간조기'라고 부르는 것이 정확하다는 내용을 보도한 적이 있습니다.

이에 대해 굴비 생산업자들은 현대식 제조 방법에 의한 것도 영광굴비라며, 정정보도를 청구했는데요. 이에 대해 서울고등법원은 사전적 정의나 관련 문헌, 소비자 인식을 토대로 봤을 때 생산업체 측 주장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생산업체들은 즉각 대법원에 상고했지만, 대법원은 심리불속행 판결로 상고를 기각했습니다. 다시 말해, 현대식 제조법으로 생산된 굴비는 굴비라고 부를 수 없다는 쪽에 법원이 손을 들어준 것이죠.

■ '냉동 굴비'를 일반 택배차로 이동…해동 우려도

이 밖에 냉동 굴비의 운반 과정도 문제가 되는데요. 냉동 상태의 굴비 상품이 일부를 제외하곤 냉동 차량이 아닌 일반 택배차로 이동되고 있어 해동될 우려가 큽니다. 식약처 규정을 살펴보면, 냉동된 식품은 냉동 차량으로 이동돼야 합니다. 만약 해동이 된 경우엔 24시간 내로 냉장 유통해야 하고, 이때 해동된 수산물은 재냉동해서는 안 됩니다.


유통업체들은 지금이 겨울철인 데다, 상품 안에 보냉재를 충분히 넣어 운반하기 때문에 해동될 우려는 적다고 설명합니다. 또 아직 이와 관련해 소비자들의 불만 사항도 접수된 바가 거의 없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러나 겨울철이라 해도 영상의 기온이 더 잦은 요즘 날씨를 보면, 안심하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굴비를 구매한 소비자들 가운데 큰 탈이 없었다는 건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그렇다고 이 같은 판매 행위가 모두 정당화될 수 있을까요? 앞으로 K푸드의 하나로 세계적 각광을 받을지 모를 우리 전통 굴비가 조금 더 깐깐한 자존심과 자부심으로 생산·판매된다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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