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동채소 대놓고 털어 가는데…검거율 떨어지고 왜?
입력 2021.02.09 (11:22)
수정 2021.02.09 (16:23)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수확을 앞둔 브로콜리가 줄기째 칼로 베어졌다.
제주지역 월동채소 수확을 앞두고 농산물 도난사건이 잇따르고 있다.
범인들이 대놓고 범행을 저지르고 있지만, 주변에 방범용 CCTV가 없는 농가들이 표적이 돼 경찰이 잡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 자기 밭인 것마냥 들어와 '싹둑'
제주시 애월읍 지역에서 브로콜리 농사를 짓는 김미정 씨. 지난 주말 자기 밭 주변을 지나가다 기이한 장면을 목격한다.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 2명이 자기 밭에서 브로콜리 수확을 하고 있던 것이다.
"저기, 누구세요?"
김 씨에 따르면, 그 사람들은 70대로 보이는 할머니들로, 서쪽인 애월읍과 정반대 지역에 사는 서귀포시 표선면 사람들이었다. 자기 밭인 것마냥 들어와 수확하는 척 농산물을 훔치고 있던 것이다.
김 씨는 "할머니들이 끌고 온 승용차 트렁크에는 호미와 칼 등 각종 농업 용구가 가득했고, 우리 밭 브로콜리가 한가득 실려 있었다"며 "표선면에서 수확 장비를 싣고 애월읍까지 온 거면 계획된 범행이 아니면 뭐냐"라고 말했다.
이렇게 도둑맞은 브로콜리만 6백 송이, 약 30박스 분량이다. 김 씨는 "양은 얼마 되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너무 속상하다"며 "안 그래도 요즘 월동채소 가격도 많이 하락해서 수입이 안 좋은 상태인데, 진짜 농민들 두 번 울리는 거"라며 한탄했다.
김창석 씨네 밭 앞에 ‘경찰 순찰 중’ 경고 문구가 있지만, 올해 들어 5차례나 속수무책으로 절도를 당했다.
도둑맞은 건 이곳만이 아니다. 여기서 차로 10분 거리의 김창석 씨네 브로콜리밭에도 도둑이 들었다. 올해 들어서만 벌써 다섯 번이나 피해를 봤다고 한다.
'경찰 순찰 중' 경고 문구를 밭 앞에 붙여 놨지만 소용없었다.
김창석 씨는 도둑 잡는 걸 사실상 포기했다. 김 씨는 "오전에 도둑이 든 걸 발견해 내쫓고 점심을 먹고 오면, 오후에 또 다른 도둑이 들어 밭을 털고 있다"며 "여러 사람이 함께 지나가다가도 들러서 잘라 가버려 속수무책이다"라고 토로했다.
김창석 씨는 "특히, 브로콜리 수확은 한 번에 끝나는 게 아니고 6~7번에 걸쳐서 장기간 이뤄지는데, 도둑들이 열매 부분만 따가는 게 아니라 줄기째 잘라가기 때문에 한해 농사 수확 자체를 망치게 된다"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들 브로콜리 농가들에 따르면, 이 마을 일대 수십 농가가 이 같은 수법의 농산물 절도 피해를 당했다.
그래픽 김민수
■ 방범용 CCTV 없는 농가만…떨어지는 '검거율'
최근 3년 동안 제주 지역 농산물 절도 신고 건수는 꾸준히 줄었다. 2017년도 52건에서 2019년도 36건으로 절반 가까이 줄어든 것이다. 농산물 절도가 줄어들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문제는 '검거율'이다. 2017년도 73%에 달했던 검거율이 3년 사이 55%로 떨어지는 등 20%p 가까이 줄어든 것이다.
왜 이렇게 검거율이 떨어진 걸까? 경찰은 농산물 절도범의 수법에 주목한다. 절도범들이 방범용 CCTV가 없는 '감시 사각지대'에 놓인 농가만을 노려 범행을 저지른다는 것이다.
한 경찰 관계자는 "방범용 CCTV가 없는 곳에서 범행을 저지르니, 절도범을 특정하기 어렵고 잡기도 힘들다"며 "신고가 들어와 출동하면 이미 달아난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경찰은 농산물 절도 예방과 검거를 위해 치안 활동을 강화하고 있다. 감시 사각지대에 놓인 농산물 절도 취약지역을 매일 순찰하고, 리사무소와 핫라인(직통선)을 구축하는 등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경찰은 "작은 양이라고 하더라도 남의 밭에서 훔치면 '절도 혐의'로 입건된다"고 경고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월동채소 대놓고 털어 가는데…검거율 떨어지고 왜?
-
- 입력 2021-02-09 11:22:16
- 수정2021-02-09 16:23:42
제주지역 월동채소 수확을 앞두고 농산물 도난사건이 잇따르고 있다.
범인들이 대놓고 범행을 저지르고 있지만, 주변에 방범용 CCTV가 없는 농가들이 표적이 돼 경찰이 잡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 자기 밭인 것마냥 들어와 '싹둑'
제주시 애월읍 지역에서 브로콜리 농사를 짓는 김미정 씨. 지난 주말 자기 밭 주변을 지나가다 기이한 장면을 목격한다.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 2명이 자기 밭에서 브로콜리 수확을 하고 있던 것이다.
"저기, 누구세요?"
김 씨에 따르면, 그 사람들은 70대로 보이는 할머니들로, 서쪽인 애월읍과 정반대 지역에 사는 서귀포시 표선면 사람들이었다. 자기 밭인 것마냥 들어와 수확하는 척 농산물을 훔치고 있던 것이다.
김 씨는 "할머니들이 끌고 온 승용차 트렁크에는 호미와 칼 등 각종 농업 용구가 가득했고, 우리 밭 브로콜리가 한가득 실려 있었다"며 "표선면에서 수확 장비를 싣고 애월읍까지 온 거면 계획된 범행이 아니면 뭐냐"라고 말했다.
이렇게 도둑맞은 브로콜리만 6백 송이, 약 30박스 분량이다. 김 씨는 "양은 얼마 되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너무 속상하다"며 "안 그래도 요즘 월동채소 가격도 많이 하락해서 수입이 안 좋은 상태인데, 진짜 농민들 두 번 울리는 거"라며 한탄했다.
도둑맞은 건 이곳만이 아니다.
여기서 차로 10분 거리의 김창석 씨네 브로콜리밭에도 도둑이 들었다. 올해 들어서만 벌써 다섯 번이나 피해를 봤다고 한다.
'경찰 순찰 중' 경고 문구를 밭 앞에 붙여 놨지만 소용없었다.
김창석 씨는 도둑 잡는 걸 사실상 포기했다. 김 씨는 "오전에 도둑이 든 걸 발견해 내쫓고 점심을 먹고 오면, 오후에 또 다른 도둑이 들어 밭을 털고 있다"며 "여러 사람이 함께 지나가다가도 들러서 잘라 가버려 속수무책이다"라고 토로했다.
김창석 씨는 "특히, 브로콜리 수확은 한 번에 끝나는 게 아니고 6~7번에 걸쳐서 장기간 이뤄지는데, 도둑들이 열매 부분만 따가는 게 아니라 줄기째 잘라가기 때문에 한해 농사 수확 자체를 망치게 된다"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들 브로콜리 농가들에 따르면, 이 마을 일대 수십 농가가 이 같은 수법의 농산물 절도 피해를 당했다.
■ 방범용 CCTV 없는 농가만…떨어지는 '검거율'
최근 3년 동안 제주 지역 농산물 절도 신고 건수는 꾸준히 줄었다. 2017년도 52건에서 2019년도 36건으로 절반 가까이 줄어든 것이다. 농산물 절도가 줄어들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문제는 '검거율'이다. 2017년도 73%에 달했던 검거율이 3년 사이 55%로 떨어지는 등 20%p 가까이 줄어든 것이다.
왜 이렇게 검거율이 떨어진 걸까? 경찰은 농산물 절도범의 수법에 주목한다. 절도범들이 방범용 CCTV가 없는 '감시 사각지대'에 놓인 농가만을 노려 범행을 저지른다는 것이다.
한 경찰 관계자는 "방범용 CCTV가 없는 곳에서 범행을 저지르니, 절도범을 특정하기 어렵고 잡기도 힘들다"며 "신고가 들어와 출동하면 이미 달아난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경찰은 농산물 절도 예방과 검거를 위해 치안 활동을 강화하고 있다. 감시 사각지대에 놓인 농산물 절도 취약지역을 매일 순찰하고, 리사무소와 핫라인(직통선)을 구축하는 등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경찰은 "작은 양이라고 하더라도 남의 밭에서 훔치면 '절도 혐의'로 입건된다"고 경고했다.
-
-
박천수 기자 parkcs@kbs.co.kr
박천수 기자의 기사 모음
-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
좋아요
0
-
응원해요
0
-
후속 원해요
0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