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책상 내리쳤던 日 스가…NHK 간판 앵커 ‘또’ 내리나

입력 2021.02.09 (14:40) 수정 2021.02.09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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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27일 아침, 일본 공영방송 NHK 정치부장석 전화가 울렸습니다. 야마다 마키코(山田眞貴子) 총리관저 내각 공보관이었습니다. 우리로 따지면 청와대 홍보수석쯤 됩니다. 야마다는 “총리가 지금 무척 화났어요. 그렇게 파고들다니 사전 협의와는 다르잖아요. 뭐라 말 좀 해 봐요”라며 따지듯 물었다고 합니다.

야마다는 NHK 관리·감독기관인 총무성 출신입니다. 이 항의 전화 이후 일본 방송가에선 "또 한 명의 앵커가 정권 압력에 날아갈 것"이라는 풍문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그리고 석 달 여가 흐른 2월 9일, 일본 언론들은 NHK가 스가 총리에게 '불편한 질문'을 한 앵커를 3월 말에 교체할 것이라고 보도했습니다. 소문은 사실이 된 걸까요?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가 지난해 10월 26일 국회에서 첫 ‘소신표명 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 출처 : 일본 총리관저]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가 지난해 10월 26일 국회에서 첫 ‘소신표명 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 출처 : 일본 총리관저]

■ 반복된 '불편한 질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총리는 지난해 10월 26일, 취임 이후 첫 국회 ‘소신표명 연설’을 했습니다. 집권 청사진을 밝히는 자리였습니다. 그리고는 곧바로 NHK 저녁 프로그램 ‘뉴스워치9’에 생방송 출연했습니다. 연설 내용을 재차 홍보할 기회로 여겼겠죠. 이례적으로 국회 개원 첫날, 특정 언론사를 골라 생방송에 나서주는 나름의 ‘특혜’를 줬으니 기대감도 컸을 겁니다.

하지만 프로그램 진행자인 아리마 요시오(有馬嘉男)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그는 현안인 ‘일본 학술회의 인사 논란’을 물고 늘어졌습니다. 스가 총리는 10월 초, 학술회의가 추천한 후보 105명 가운데 정부 정책에 반대 의견을 표명한 적이 있는 6명을 단체 회원으로 임명하지 않아 ‘학문의 자유 침해’ 논란을 자초했습니다.

"총리 자신이 좀 더 알기 쉬운 말로 직접 (임명 거부 이유를) 설명하실 필요가 있는 것 아닌가요.”
“총리의 설명을 원하는 국민의 목소리도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가 지난해 10월 26일 NHK 뉴스 프로그램에 출연해 학술회의 인사 관련 질문이 반복되자 불쾌한듯 책상을 내려치는 듯한 행동을 보이고 있다. [사진 출처 : NHK 화면]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가 지난해 10월 26일 NHK 뉴스 프로그램에 출연해 학술회의 인사 관련 질문이 반복되자 불쾌한듯 책상을 내려치는 듯한 행동을 보이고 있다. [사진 출처 : NHK 화면]

■ 책상 내리친 스가

질문이 반복되자 스가 총리 표정이 험악해졌습니다. “설명할 수 있는 것도, 할 수 없는 것이 있다”며 씩씩댔습니다. 앵커를 노려보거나 탁자를 내리치려는 듯한 행동까지 보였습니다. 당시 일본 주간지 ‘겐다이(現代) 비즈니스’는 “스태프 모두가 숨을 죽이고, 마른 침을 삼켰다”고 현장을 묘사했습니다.

아사히(朝日)신문 역시 지난해 12월 "소신 표명 이야기 듣고 싶다고 불러놓고 학술회의에 대해 묻다니, 전혀 거버넌스(통치)가 먹혀들지 않는다"는 사카이 마나부(坂井学) 관방 부장관의 발언을 전한 적도 있습니다.

NHK는 아리마 앵커의 하차에 대해 '총리관저 압력설'을 강하게 부인하고 있습니다. 한 관계자는 “아리마 앵커는 2017년부터 4년 간이나 뉴스워치9 진행을 맡아왔으며 이전에 다른 프로그램을 진행했던 것과 합하면 7년간 앵커를 지냈다”며 “본인과 협의로 올해 ‘임기 만료’가 예정돼 있었던 것으로 스가 총리에 대한 질문과는 관계가 없다”라고 전했습니다.

그럼에도 이번 결정이 스가 총리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 데 대한 징계성 조치라는 의혹은 가시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스가 총리가 과거 뉴스 진행자들에 대한 보복성 인사 조치를 몇 차례 주도한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일본 도쿄 시부야구 NHK 본사 전경일본 도쿄 시부야구 NHK 본사 전경

■ 반복되는 하차, 하차

항의 전화를 한 야마다는 재집권에 성공한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2013년 말, 홍보담당 총리 비서관으로 발탁한 인물입니다. 1885년 내각제도 창설 이후 첫 여성 총리 비서관이었습니다. 그는 2년 동안 스가 관방장관 밑에서 언론 대책을 맡았습니다. 이후 총무성으로 복귀했다가 스가가 총리가 된 지난해 9월, 재지명돼 또다시 관저 내 유일한 여성 비서관이 됐습니다.

전화 한 통에 NHK가 위축된 건 당연했습니다. 야마다는 아베 정권 시절, NHK에 종종 압력을 넣어왔기 때문입니다. 앵커 하차나 기자 인사에까지 간여했다고 합니다. 예컨대 NHK 앵커인 쿠니야 유코(国谷裕子)는 상대의 허점을 파고 들어가는 질문으로 유명했습니다. 그는 지난 23년간 NHK 간판 해설 프로그램인 ‘클로즈-업 현대’를 진행하다 2015년 12월 갑자기 하차 통보를 받았습니다.

동료들은 그가 스가 관방장관을 인터뷰하는 과정에서 “새 안보 법안으로 일본이 다른 나라 전쟁에 휘말릴 수 있다”며 추궁했기 때문이라고 추정했습니다. 관저 측은 당시에도 NHK에 전화해 “관방장관이 화났다”고 맹렬히 항의했다고 합니다. 비슷한 시기, 쿠니야 외에도 TV 아사히의 메인뉴스 프로그램인 ‘보도 스테이션’의 진행자와 TBS의 메인뉴스 앵커도 정부를 비판한 이유로 모두 방송에서 하차했습니다.

쿠니야는 하차 1년 뒤 낸 책 ‘캐스터의 일’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차 통보를 받았을 때 스가 관방장관 인터뷰가 생각났다. (중략) 저널리즘이 ‘물어야 할 것을 묻는’ 자세를 관철할 때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포스트 트루스’(post-truth·탈 진실)의 세계를 뒤엎을 수 있다고 믿고 싶다.”

세월호 참사 당시 KBS 보도국장에게 전화해 방송 편성에 영향을 끼친 혐의로 기소된 이정현 전 청와대 홍보수석에게 1월 16일 유죄 판결이 확정됐다.세월호 참사 당시 KBS 보도국장에게 전화해 방송 편성에 영향을 끼친 혐의로 기소된 이정현 전 청와대 홍보수석에게 1월 16일 유죄 판결이 확정됐다.

■ 한국 42위, 일본 66위

박근혜 정권 때 청와대 홍보수석이던 이정현은 세월호 참사가 터진 2014년 4월 KBS 보도국장 에게 전화했습니다. “다른 데도 아니고 9시 뉴스 앞에다가 해경이 잘못한 것처럼 그런 식으로 내고 있잖아요.” “온 나라가 어려운데 이 시점에서 해경하고 정부를 두들겨 패야지만 그게 맞습니까.” 이렇게 닦달했습니다.

전화하고 6년 가까이 흐른 올해 1월에서야 이정현에 대한 벌금형이 확정됐습니다. 방송에 간섭 하는 행위를 규제하는 방송법을 어긴 사례로 처벌되는 첫 사례였습니다. 법이 만들어지고 무려 30년 만이었습니다.

국제 언론감시단체 국경없는기자회(RSF)가 공개한 ‘2020 언론자유도’에서 한국은 42위, 일본은 66위였습니다. 한국은 아시아 국가 가운데 선두였지만, 전 세계로 보면 여전히 ‘낯 뜨거운’ 수준 입니다. 2010년 11위이던 일본은 아베 총리의 9년 장기 집권을 거치며 후퇴에 후퇴를 거듭했습니다. 한일 언론의 현실이 교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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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 리포트] 책상 내리쳤던 日 스가…NHK 간판 앵커 ‘또’ 내리나
    • 입력 2021-02-09 14:40:12
    • 수정2021-02-09 16:23:41
    특파원 리포트

지난해 10월 27일 아침, 일본 공영방송 NHK 정치부장석 전화가 울렸습니다. 야마다 마키코(山田眞貴子) 총리관저 내각 공보관이었습니다. 우리로 따지면 청와대 홍보수석쯤 됩니다. 야마다는 “총리가 지금 무척 화났어요. 그렇게 파고들다니 사전 협의와는 다르잖아요. 뭐라 말 좀 해 봐요”라며 따지듯 물었다고 합니다.

야마다는 NHK 관리·감독기관인 총무성 출신입니다. 이 항의 전화 이후 일본 방송가에선 "또 한 명의 앵커가 정권 압력에 날아갈 것"이라는 풍문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그리고 석 달 여가 흐른 2월 9일, 일본 언론들은 NHK가 스가 총리에게 '불편한 질문'을 한 앵커를 3월 말에 교체할 것이라고 보도했습니다. 소문은 사실이 된 걸까요?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가 지난해 10월 26일 국회에서 첫 ‘소신표명 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 출처 : 일본 총리관저]
■ 반복된 '불편한 질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총리는 지난해 10월 26일, 취임 이후 첫 국회 ‘소신표명 연설’을 했습니다. 집권 청사진을 밝히는 자리였습니다. 그리고는 곧바로 NHK 저녁 프로그램 ‘뉴스워치9’에 생방송 출연했습니다. 연설 내용을 재차 홍보할 기회로 여겼겠죠. 이례적으로 국회 개원 첫날, 특정 언론사를 골라 생방송에 나서주는 나름의 ‘특혜’를 줬으니 기대감도 컸을 겁니다.

하지만 프로그램 진행자인 아리마 요시오(有馬嘉男)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그는 현안인 ‘일본 학술회의 인사 논란’을 물고 늘어졌습니다. 스가 총리는 10월 초, 학술회의가 추천한 후보 105명 가운데 정부 정책에 반대 의견을 표명한 적이 있는 6명을 단체 회원으로 임명하지 않아 ‘학문의 자유 침해’ 논란을 자초했습니다.

"총리 자신이 좀 더 알기 쉬운 말로 직접 (임명 거부 이유를) 설명하실 필요가 있는 것 아닌가요.”
“총리의 설명을 원하는 국민의 목소리도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가 지난해 10월 26일 NHK 뉴스 프로그램에 출연해 학술회의 인사 관련 질문이 반복되자 불쾌한듯 책상을 내려치는 듯한 행동을 보이고 있다. [사진 출처 : NHK 화면]
■ 책상 내리친 스가

질문이 반복되자 스가 총리 표정이 험악해졌습니다. “설명할 수 있는 것도, 할 수 없는 것이 있다”며 씩씩댔습니다. 앵커를 노려보거나 탁자를 내리치려는 듯한 행동까지 보였습니다. 당시 일본 주간지 ‘겐다이(現代) 비즈니스’는 “스태프 모두가 숨을 죽이고, 마른 침을 삼켰다”고 현장을 묘사했습니다.

아사히(朝日)신문 역시 지난해 12월 "소신 표명 이야기 듣고 싶다고 불러놓고 학술회의에 대해 묻다니, 전혀 거버넌스(통치)가 먹혀들지 않는다"는 사카이 마나부(坂井学) 관방 부장관의 발언을 전한 적도 있습니다.

NHK는 아리마 앵커의 하차에 대해 '총리관저 압력설'을 강하게 부인하고 있습니다. 한 관계자는 “아리마 앵커는 2017년부터 4년 간이나 뉴스워치9 진행을 맡아왔으며 이전에 다른 프로그램을 진행했던 것과 합하면 7년간 앵커를 지냈다”며 “본인과 협의로 올해 ‘임기 만료’가 예정돼 있었던 것으로 스가 총리에 대한 질문과는 관계가 없다”라고 전했습니다.

그럼에도 이번 결정이 스가 총리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 데 대한 징계성 조치라는 의혹은 가시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스가 총리가 과거 뉴스 진행자들에 대한 보복성 인사 조치를 몇 차례 주도한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일본 도쿄 시부야구 NHK 본사 전경
■ 반복되는 하차, 하차

항의 전화를 한 야마다는 재집권에 성공한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2013년 말, 홍보담당 총리 비서관으로 발탁한 인물입니다. 1885년 내각제도 창설 이후 첫 여성 총리 비서관이었습니다. 그는 2년 동안 스가 관방장관 밑에서 언론 대책을 맡았습니다. 이후 총무성으로 복귀했다가 스가가 총리가 된 지난해 9월, 재지명돼 또다시 관저 내 유일한 여성 비서관이 됐습니다.

전화 한 통에 NHK가 위축된 건 당연했습니다. 야마다는 아베 정권 시절, NHK에 종종 압력을 넣어왔기 때문입니다. 앵커 하차나 기자 인사에까지 간여했다고 합니다. 예컨대 NHK 앵커인 쿠니야 유코(国谷裕子)는 상대의 허점을 파고 들어가는 질문으로 유명했습니다. 그는 지난 23년간 NHK 간판 해설 프로그램인 ‘클로즈-업 현대’를 진행하다 2015년 12월 갑자기 하차 통보를 받았습니다.

동료들은 그가 스가 관방장관을 인터뷰하는 과정에서 “새 안보 법안으로 일본이 다른 나라 전쟁에 휘말릴 수 있다”며 추궁했기 때문이라고 추정했습니다. 관저 측은 당시에도 NHK에 전화해 “관방장관이 화났다”고 맹렬히 항의했다고 합니다. 비슷한 시기, 쿠니야 외에도 TV 아사히의 메인뉴스 프로그램인 ‘보도 스테이션’의 진행자와 TBS의 메인뉴스 앵커도 정부를 비판한 이유로 모두 방송에서 하차했습니다.

쿠니야는 하차 1년 뒤 낸 책 ‘캐스터의 일’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차 통보를 받았을 때 스가 관방장관 인터뷰가 생각났다. (중략) 저널리즘이 ‘물어야 할 것을 묻는’ 자세를 관철할 때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포스트 트루스’(post-truth·탈 진실)의 세계를 뒤엎을 수 있다고 믿고 싶다.”

세월호 참사 당시 KBS 보도국장에게 전화해 방송 편성에 영향을 끼친 혐의로 기소된 이정현 전 청와대 홍보수석에게 1월 16일 유죄 판결이 확정됐다.
■ 한국 42위, 일본 66위

박근혜 정권 때 청와대 홍보수석이던 이정현은 세월호 참사가 터진 2014년 4월 KBS 보도국장 에게 전화했습니다. “다른 데도 아니고 9시 뉴스 앞에다가 해경이 잘못한 것처럼 그런 식으로 내고 있잖아요.” “온 나라가 어려운데 이 시점에서 해경하고 정부를 두들겨 패야지만 그게 맞습니까.” 이렇게 닦달했습니다.

전화하고 6년 가까이 흐른 올해 1월에서야 이정현에 대한 벌금형이 확정됐습니다. 방송에 간섭 하는 행위를 규제하는 방송법을 어긴 사례로 처벌되는 첫 사례였습니다. 법이 만들어지고 무려 30년 만이었습니다.

국제 언론감시단체 국경없는기자회(RSF)가 공개한 ‘2020 언론자유도’에서 한국은 42위, 일본은 66위였습니다. 한국은 아시아 국가 가운데 선두였지만, 전 세계로 보면 여전히 ‘낯 뜨거운’ 수준 입니다. 2010년 11위이던 일본은 아베 총리의 9년 장기 집권을 거치며 후퇴에 후퇴를 거듭했습니다. 한일 언론의 현실이 교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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