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2+2=4” 폭스뉴스에 3조 소송…“민주주의 손실 비용 물어내야”
입력 2021.02.10 (06:01)
수정 2021.02.10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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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최대 방송사 중 하나죠, 폭스뉴스가 지난 4일 우리 돈으로 3조 원 대 소송을 당했습니다. 전자투표 소프트웨어 개발사인 스마트매틱이라는 회사가 낸 소송입니다.
고소장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지구는 둥글다. 2+2=4다 조 바이든과 카말라 해리스는 2020년 대선에서 승리했다. |
자, 이게 무슨 일일까요?
미국 수정헌법 1조. 의회는 종교의 자유,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 집회 결사의 자유를 금지하는 법안을 제정해서는 안된다. |
미국은 수정헌법 1조에서부터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습니다. '언론의 자유' 하면 미국을 떠올릴 만큼, 언론인, 그리고 언론사의 자유는 뿌리깊이 보장되어 왔습니다. 그런데 그런 미국도 최근 달라지고 있습니다. 바로 트럼프 때문입니다.
■트럼프로 인해 꽃피웠던 팩트체크
트럼프 대통령 재임 시절, '팩트체크'는 언론사의 강력한 무기로 부상했습니다. 정치인의 거짓말, 트럼프의 거짓말, 특히 언론사의 거짓말을 검증하는 무기. 여기서 '거짓말'은 허위 정보 뿐 아니라 맥락을 의도적으로 거세함으로써 사실을 왜곡해 들려주는 '거짓말'도 포함됐습니다. 특히 언론사들의 가짜뉴스가 여기에 속했습니다. 정치인 누군가가 한 말을 의도적으로 짜깁기해서 들려주면 해당 정치인은 그런 말을 했다는 것 자체는 '사실' 이지만, 보도된 발언은 '진실'이 아닙니다. 오히려 '거짓'에 가까워지는 거죠.
CNN과 워싱턴포스트, 뉴욕타임즈 등 미국 유수의 언론들은 트럼프의 4년 동안 '팩트체크'라는 새로운 장르에 부심했습니다. 팩트체크는 기실 언론사의 본령임에도 불구하고, 과연 무엇이 팩트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하며 기사를 써온 겁니다.
'사실의 파편'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 4년의 결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언론사들은 그동안 '사실 보도'를 했다는 것 만으로도 죄를 면해왔습니다. 앞으로도 그럴까요?
■3조원 대 소송당한 폭스뉴스 ..."이제 시작이야"
선거에서 졌다는 걸 인정하는 대신 선거가 조작됐다고 주장해온 트럼프 진영은 거액의 소송에 직면하기 시작했습니다.
시작은 도미니언 투표 시스템이었습니다. 도미니언 투표 시스템은 개표기를 만드는 회사인데,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이자 트럼프의 변호사에게 지난달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소송 가액은 13억 달러, 우리 돈으로 1조 4천억 원입니다. 도미니언 시스템이 조작돼서 선거에서 졌다는 허위 주장을 줄기차게 해서 회사의 명예가 훼손됐고, 손실이 컸다는 게 소송 이유입니다. 도미니언시스템은 "줄리아니가 끝이 아니야, 이제 시작이야"라며 줄소송을 예고한 상탭니다.
트럼프, 트럼프 측근들의 허위정보를 그대로 전달하고, 음모를 부풀려 3조원 대 고소를 당한 폭스뉴스 [루 돕스 투나잇]
여기에 스마트매틱, 역시 선거시스템을 개발해온 회사인데 전자투표 소프트웨어 업체가 가세했습니다. 스마트매틱은 폭스뉴스 간판 앵커 루 돕스와 마리아 바르티로모, 줄리아니 변호사 등 에 대해 27억 달러, 우리 돈으로 3조 원의 명예훼손 소송을 냈습니다.
이들이 제기한 276쪽 분량의 고소장이 바로 "지구는 둥글다, 2+2=4다"로 시작하는 그 고소장입니다. 조 바이든과 카말라 해리스가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했다는 것을 부정해온 이들, 그 과정에서 스마트매틱이 연루되어 있다는 음모론이 얼마나 얼척없는 지를 보여주기 위한 고소장의 첫 문장인 셈이죠.
이들은 고소장에서, [루 돕스, 투나잇]이라는 폭스뉴스의 프로그램은 "유고 차베스 전 베네수엘레 대통령이 스마트매틱이 프로그램 개발에 관여했다"는 시드니 파월, 트럼프 대통령 변호인의 주장을 그대로 방송했다라고 적시하고 있습니다. 차베스는 사회주의, 좌파의 아이콘으로 미국에서 공산주의의 음모론을 부각시킬 때 사용하는 전형적인 상징입니다. 그런데 차베스는 2013년에 사망했으니, 2020년 미국의 대통령 선거에 사용된 소프트웨어 개발에 관여했다는 것은 허무맹랑한 소리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폭스뉴스는 이걸 제지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스마트매틱은 또 줄리아니 변호사가 선거를 '도둑질'이라고 거짓으로 표현하고 수십만 장의 '불법 투표용지'가 발견됐다고 주장했는데도 [루 돕스 투나잇]은 이를 제지하지 않았고, 돕스 앵커는 오히려 "이번 선거는 미국 대통령을 전복시키려는 4년 반 동안의 노력의 끝"이라고 주장해 허위정보를 일부러 퍼뜨려 회사에 막대한 손실을 끼쳤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정치인, 공인의 거짓말' 어떻게 보도할 것인가
공인을 어떻게 다뤄야 할 것인가, 공인의 말을 어떻게 보도할 것인가.
이제 언론사들은 보다 실체적 문제를 고민해야할 때가 왔습니다.
허위정보와 음모론을 지속적으로 제기해 온 트럼프 전 대통령의 변호사 시드니 파월
시드니 파월은 허위정보를 전파했고, 음모론을 떠벌렸지만, 어찌됐든 현직 대통령의 변호인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언론은 파월의 말을 보도하지 말아야 할까요?
뉴욕타임즈는 하버드 로스쿨 교수로 미국 정치의 허위정보와 급진주의를 연구해온 요차이 벤클로 교수의 말을 빌어 "민주주의를 망친 댓가를 치러야 할 것"이라고 썼습니다. 벤클로 교수는 그동안 우파 단체들이 분노를 부추기며 전국적으로 그들의 가짜뉴스를 퍼져나가게 만들었다며 "폭스 뉴스에 대한 명예훼손 소송은 그들이 민주주의에 끼친 해약의 비용을 내도록 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부정선거에 대한 트럼프의 지나친 거짓말을 그대로 받아 이야기한 방송사 앵커들 역시 예전처럼 느슨한 언론 자유라는 잣대로 허용되지 않을 것"이라고도 했습니다.
가짜 뉴스와 허위정보, 조작 정보가 민주주의에 해악을 끼쳤고, 그로 인해 측정할 수 없는 손실을 입은 것은 확실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미국은 수정헌법 1조로 언론 자유를 보장한 국가입니다. 소송이 어떻게 전개될 지는 수정헌법 전문가들도 예측하기 어렵다며 마틴 개르버스 변호사는 말합니다.
■"폭스 뉴스에 대한 소송이 앞으로 제가 지지하는 언론사에도 똑같이 활용되지 않겠습니까?"
폭스뉴스, 더 나아가 뉴스맥스, 브라이트바트 같은 저질 악성 허위 매체가 득세할 수 있었던 것은 트럼프의 악의적인 거짓말과 가짜정보를 자극적으로 물어날랐기 때문입니다. 조작된 가짜뉴스를 알면서도 퍼뜨리는 매체들에 철퇴를 가해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그 판단이, 그 기준이 계속해서 공정할 것이라고, 혹은 상식적일 것이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요?
언론사에 대한 거액의 명예훼손 소송은 언론사의 입에 재갈을 물리는 수단으로 악용되어 왔습니다. 수정헌법 1조에서의 언론의 자유를 금하는 어떠한 입법도 금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언론의 입에 재갈을 물리는 방법은 최후의 수단이어야 합니다. 그 전에 언론은 "공인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공인의 거짓말, 혹은 가짜 정보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를 뼈 아프게 고민해서 내놓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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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1-02-10 06:01:10
- 수정2021-02-10 17:53:45
미국의 최대 방송사 중 하나죠, 폭스뉴스가 지난 4일 우리 돈으로 3조 원 대 소송을 당했습니다. 전자투표 소프트웨어 개발사인 스마트매틱이라는 회사가 낸 소송입니다.
고소장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지구는 둥글다. 2+2=4다 조 바이든과 카말라 해리스는 2020년 대선에서 승리했다. |
자, 이게 무슨 일일까요?
미국 수정헌법 1조. 의회는 종교의 자유,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 집회 결사의 자유를 금지하는 법안을 제정해서는 안된다. |
미국은 수정헌법 1조에서부터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습니다. '언론의 자유' 하면 미국을 떠올릴 만큼, 언론인, 그리고 언론사의 자유는 뿌리깊이 보장되어 왔습니다. 그런데 그런 미국도 최근 달라지고 있습니다. 바로 트럼프 때문입니다.
■트럼프로 인해 꽃피웠던 팩트체크
트럼프 대통령 재임 시절, '팩트체크'는 언론사의 강력한 무기로 부상했습니다. 정치인의 거짓말, 트럼프의 거짓말, 특히 언론사의 거짓말을 검증하는 무기. 여기서 '거짓말'은 허위 정보 뿐 아니라 맥락을 의도적으로 거세함으로써 사실을 왜곡해 들려주는 '거짓말'도 포함됐습니다. 특히 언론사들의 가짜뉴스가 여기에 속했습니다. 정치인 누군가가 한 말을 의도적으로 짜깁기해서 들려주면 해당 정치인은 그런 말을 했다는 것 자체는 '사실' 이지만, 보도된 발언은 '진실'이 아닙니다. 오히려 '거짓'에 가까워지는 거죠.
CNN과 워싱턴포스트, 뉴욕타임즈 등 미국 유수의 언론들은 트럼프의 4년 동안 '팩트체크'라는 새로운 장르에 부심했습니다. 팩트체크는 기실 언론사의 본령임에도 불구하고, 과연 무엇이 팩트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하며 기사를 써온 겁니다.
'사실의 파편'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 4년의 결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언론사들은 그동안 '사실 보도'를 했다는 것 만으로도 죄를 면해왔습니다. 앞으로도 그럴까요?
■3조원 대 소송당한 폭스뉴스 ..."이제 시작이야"
선거에서 졌다는 걸 인정하는 대신 선거가 조작됐다고 주장해온 트럼프 진영은 거액의 소송에 직면하기 시작했습니다.
시작은 도미니언 투표 시스템이었습니다. 도미니언 투표 시스템은 개표기를 만드는 회사인데,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이자 트럼프의 변호사에게 지난달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소송 가액은 13억 달러, 우리 돈으로 1조 4천억 원입니다. 도미니언 시스템이 조작돼서 선거에서 졌다는 허위 주장을 줄기차게 해서 회사의 명예가 훼손됐고, 손실이 컸다는 게 소송 이유입니다. 도미니언시스템은 "줄리아니가 끝이 아니야, 이제 시작이야"라며 줄소송을 예고한 상탭니다.
여기에 스마트매틱, 역시 선거시스템을 개발해온 회사인데 전자투표 소프트웨어 업체가 가세했습니다. 스마트매틱은 폭스뉴스 간판 앵커 루 돕스와 마리아 바르티로모, 줄리아니 변호사 등 에 대해 27억 달러, 우리 돈으로 3조 원의 명예훼손 소송을 냈습니다.
이들이 제기한 276쪽 분량의 고소장이 바로 "지구는 둥글다, 2+2=4다"로 시작하는 그 고소장입니다. 조 바이든과 카말라 해리스가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했다는 것을 부정해온 이들, 그 과정에서 스마트매틱이 연루되어 있다는 음모론이 얼마나 얼척없는 지를 보여주기 위한 고소장의 첫 문장인 셈이죠.
이들은 고소장에서, [루 돕스, 투나잇]이라는 폭스뉴스의 프로그램은 "유고 차베스 전 베네수엘레 대통령이 스마트매틱이 프로그램 개발에 관여했다"는 시드니 파월, 트럼프 대통령 변호인의 주장을 그대로 방송했다라고 적시하고 있습니다. 차베스는 사회주의, 좌파의 아이콘으로 미국에서 공산주의의 음모론을 부각시킬 때 사용하는 전형적인 상징입니다. 그런데 차베스는 2013년에 사망했으니, 2020년 미국의 대통령 선거에 사용된 소프트웨어 개발에 관여했다는 것은 허무맹랑한 소리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폭스뉴스는 이걸 제지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스마트매틱은 또 줄리아니 변호사가 선거를 '도둑질'이라고 거짓으로 표현하고 수십만 장의 '불법 투표용지'가 발견됐다고 주장했는데도 [루 돕스 투나잇]은 이를 제지하지 않았고, 돕스 앵커는 오히려 "이번 선거는 미국 대통령을 전복시키려는 4년 반 동안의 노력의 끝"이라고 주장해 허위정보를 일부러 퍼뜨려 회사에 막대한 손실을 끼쳤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정치인, 공인의 거짓말' 어떻게 보도할 것인가
공인을 어떻게 다뤄야 할 것인가, 공인의 말을 어떻게 보도할 것인가.
이제 언론사들은 보다 실체적 문제를 고민해야할 때가 왔습니다.
시드니 파월은 허위정보를 전파했고, 음모론을 떠벌렸지만, 어찌됐든 현직 대통령의 변호인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언론은 파월의 말을 보도하지 말아야 할까요?
뉴욕타임즈는 하버드 로스쿨 교수로 미국 정치의 허위정보와 급진주의를 연구해온 요차이 벤클로 교수의 말을 빌어 "민주주의를 망친 댓가를 치러야 할 것"이라고 썼습니다. 벤클로 교수는 그동안 우파 단체들이 분노를 부추기며 전국적으로 그들의 가짜뉴스를 퍼져나가게 만들었다며 "폭스 뉴스에 대한 명예훼손 소송은 그들이 민주주의에 끼친 해약의 비용을 내도록 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부정선거에 대한 트럼프의 지나친 거짓말을 그대로 받아 이야기한 방송사 앵커들 역시 예전처럼 느슨한 언론 자유라는 잣대로 허용되지 않을 것"이라고도 했습니다.
가짜 뉴스와 허위정보, 조작 정보가 민주주의에 해악을 끼쳤고, 그로 인해 측정할 수 없는 손실을 입은 것은 확실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미국은 수정헌법 1조로 언론 자유를 보장한 국가입니다. 소송이 어떻게 전개될 지는 수정헌법 전문가들도 예측하기 어렵다며 마틴 개르버스 변호사는 말합니다.
■"폭스 뉴스에 대한 소송이 앞으로 제가 지지하는 언론사에도 똑같이 활용되지 않겠습니까?"
폭스뉴스, 더 나아가 뉴스맥스, 브라이트바트 같은 저질 악성 허위 매체가 득세할 수 있었던 것은 트럼프의 악의적인 거짓말과 가짜정보를 자극적으로 물어날랐기 때문입니다. 조작된 가짜뉴스를 알면서도 퍼뜨리는 매체들에 철퇴를 가해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그 판단이, 그 기준이 계속해서 공정할 것이라고, 혹은 상식적일 것이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요?
언론사에 대한 거액의 명예훼손 소송은 언론사의 입에 재갈을 물리는 수단으로 악용되어 왔습니다. 수정헌법 1조에서의 언론의 자유를 금하는 어떠한 입법도 금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언론의 입에 재갈을 물리는 방법은 최후의 수단이어야 합니다. 그 전에 언론은 "공인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공인의 거짓말, 혹은 가짜 정보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를 뼈 아프게 고민해서 내놓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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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양순 기자 ysooni@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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