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님 나빠요” 월급 못 받고 귀국…깨진 코리안드림
입력 2021.02.10 (07:00)
수정 2021.02.10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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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 23살이던 캄보디아인 스레이레악 씨는 비전문 취업 비자(E-9)로 한국에 들어와 경기 양평의 한 농장에 취업했습니다. 아픈 부모님과 네 동생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서였습니다.
한 달에 휴일은 단 이틀이었고, 하루 10시간 넘게 일했습니다.
겨울이 되자 온난한 캄보디아 날씨에 익숙한 스레이레악 씨는 젖은 채소를 수확하다가 손이 동상에 걸렸습니다. 그렇게 힘들게 일했는데 월급이 밀리기 시작했습니다.
사장 원 모 씨는 “겨울이라 채솟값이 떨어져 힘들다. 여름에 꼭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겨울이 지나고 여름이 되어도 계속 월급이 제대로 지급되지 않았습니다. 어느 달은 70만 원, 또 어느 달은 20만 원만 나왔습니다.
그렇게 1년 동안 모두 1,100만 원을 못 받았습니다.
한국어가 서툰 스레이레악 씨는 임금 체불을 어떻게 신고해야 하는지, 신고한 뒤에도 한국에서 계속 일을 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습니다.
버틸 수 있는 만큼 버티다가, 또 다른 캄보디아 출신 노동자의 소개로 이주민 지원 단체를 찾았고 노동청에 임금 체불 진정을 넣었습니다.
캄보디아 출신 스레이레악 씨가 체불 임금 지급을 요구하며 농장 사장과 통화 중이다
노동청 고발로 농장 사장 원 씨는 벌금 400만 원형을 받았습니다. 그래도 밀린 임금은 안 줬습니다.민사 소송도 승소했습니다. 노동청 진정부터 민사소송까지 2년이 흘렀고 스레이레악 씨 손에 남은 건 “1,100만 원을 지급하라”는 승소 판결문뿐입니다.
■ 끝내 월급 못 받고 귀국 예정…소액체당금도 못 받아
민사 소송에서 승소하면 소액체당금을 신청할 수 있습니다. 소액체당금은 생계를 위협받는 노동자를 대신해 국가가 밀린 임금을 긴급하게 지급하는 제도로 최대 천만 원까지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스레이레악 씨는 소액체당금을 받을 수 없는 노동자입니다. 산재 보험에 가입한 노동자만 소액체당금을 신청할 수 있는데 스레이레악 씨가 일했던 5인 이하 소규모 농장은 산재 보험 의무 가입 대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대신 외국인을 위한 체불 임금 보증보험이 있지만, 한도가 200만 원에 그칩니다.
다음 달 스레이레악 씨는 비자가 만료돼 한국을 떠나야 합니다. 끝내 사장은 체불된 임금을 한 푼도 지급하지 않았습니다.
어렵게 전화 통화가 연결된 사장 원 씨에게 캄보디아로 돌아갈 비행기 표라도 살 수 있게 50만 원이라도 달라고 호소했지만, “줄 돈이 있었으면 진작 줬다”고 답했습니다.
■ 11시간 일했는데 임금은 8시간만큼만?…사장 "일하는 사이사이 3시간 쉬었다"
또 다른 캄보디아 출신 A씨는 경남 밀양의 농장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최근 두 달 치 월급을 못 받아 노동청에 임금 체불로 농장주를 신고했습니다.
A씨는 새벽 6시 10분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 농장에 나와 일했습니다. 11시 50분부터 12시 30분까지 점심시간에만 쉴 수 있었습니다.
매일 11시간 가까이 일했는데 임금은 하루 8시간만큼만 최저임금으로 계산해 받아왔습니다. 사장 박 모 씨는 일한 만큼 돈을 달라는 A씨의 요구를 거부했습니다.
캄보디아 출신 A씨가 일했던 경남 밀양의 농장
취재진을 만난 박 사장은 A씨가 일을 하는 사이사이 매일 3시간씩 휴게 시간을 가졌다고 주장했습니다. 오전에 컵라면을 먹으면서 한 시간, 점심 한 시간, 오후 간식을 먹으면서 또 한 시간을 쉰다는 것입니다. 비닐하우스 농장안에서 3시간 휴식이 가능한 것이냐고 되물었지만, 박 씨는 “농사일하는 사람들은 다 그렇게 쉰다”고 답했습니다.
두 달 치 월급을 주지 않은 건 A가 일을 제대로 안 해서 손해를 봤기 때문이라고 해명합니다. 하루에 깻잎 13~15개 상자를 수확해야 하는데 A씨가 7개의 상자밖에 못 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앞서 A씨는 연장 수당을 주지 않는 사장에게 직장을 옮길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사장 박 씨에게 그렇게 일을 못 하는 A씨를 왜 해고하지 않았느냐고 묻자 “일손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답했습니다. 또 임금 안 준 건 맞지만 “노동청에 신고한 게 기분 나빠서” 주기 싫다고도 했습니다.
A씨는 스레이레악 씨가 그랬듯, 체불 임금을 받기 위한 긴 조사 과정을 거쳐야 할 것입니다.
■ 정부 소개한 사업장에서 임금 체불…"고용노동부는 악덕 직업소개소"
비전문 취업 비자(E-9)로 한국에 오는 외국인 노동자들은 직장을 선택할 ‘자유’가 없습니다.
정부가 알선한 농장이나 공장에만 취업할 수 있고, 이직할 때도 성폭력이나 석 달 이상 임금체불 등 특별한 사유가 발생하지 않는 한 반드시 고용주의 허가를 받아야만 합니다.
외국인 노동자를 지원하는 활동가인 김이찬 '지구인의 정류소' 대표는 "고용노동부가 외국인 노동자를 여기서 일하게 소개를 했는데 고용주가 임금 지불 능력이 없는 것입니다. 이런 걸 대비해서 소액체당금 제도가 있는데 거기서도 배제돼 있죠."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산재 보험도 안 되고 임금 체부을 일삼는 악덕 사업장을 외국인 노동자에게 알선하는 고용노동부를 "악덕 직업소개소"라고 표현했습니다.
A씨의 두 달 치 임금을 주지 않은 농장 사장 박 씨는 밀양을 떠나는 취재진을 향해 "A씨가 처음 우리 농장에 왔을 때 옷도 사주고 잘해줬다. 딸처럼 대해줬는데 노동청에 신고까지 했다"며 하소연했습니다.
사장님께 되묻고 싶었습니다.
사장님 따님이 외국에 나가 비닐하우스에서 지내며 농장에서 하루 10시간 넘게 일했는데 월급도 못 받고 있다면, 어떤 생각이 드시겠냐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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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정2021-02-10 17:53:44
5년 전 23살이던 캄보디아인 스레이레악 씨는 비전문 취업 비자(E-9)로 한국에 들어와 경기 양평의 한 농장에 취업했습니다. 아픈 부모님과 네 동생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서였습니다.
한 달에 휴일은 단 이틀이었고, 하루 10시간 넘게 일했습니다.
겨울이 되자 온난한 캄보디아 날씨에 익숙한 스레이레악 씨는 젖은 채소를 수확하다가 손이 동상에 걸렸습니다. 그렇게 힘들게 일했는데 월급이 밀리기 시작했습니다.
사장 원 모 씨는 “겨울이라 채솟값이 떨어져 힘들다. 여름에 꼭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겨울이 지나고 여름이 되어도 계속 월급이 제대로 지급되지 않았습니다. 어느 달은 70만 원, 또 어느 달은 20만 원만 나왔습니다.
그렇게 1년 동안 모두 1,100만 원을 못 받았습니다.
한국어가 서툰 스레이레악 씨는 임금 체불을 어떻게 신고해야 하는지, 신고한 뒤에도 한국에서 계속 일을 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습니다.
버틸 수 있는 만큼 버티다가, 또 다른 캄보디아 출신 노동자의 소개로 이주민 지원 단체를 찾았고 노동청에 임금 체불 진정을 넣었습니다.
노동청 고발로 농장 사장 원 씨는 벌금 400만 원형을 받았습니다. 그래도 밀린 임금은 안 줬습니다.
민사 소송도 승소했습니다. 노동청 진정부터 민사소송까지 2년이 흘렀고 스레이레악 씨 손에 남은 건 “1,100만 원을 지급하라”는 승소 판결문뿐입니다.
■ 끝내 월급 못 받고 귀국 예정…소액체당금도 못 받아
민사 소송에서 승소하면 소액체당금을 신청할 수 있습니다. 소액체당금은 생계를 위협받는 노동자를 대신해 국가가 밀린 임금을 긴급하게 지급하는 제도로 최대 천만 원까지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스레이레악 씨는 소액체당금을 받을 수 없는 노동자입니다. 산재 보험에 가입한 노동자만 소액체당금을 신청할 수 있는데 스레이레악 씨가 일했던 5인 이하 소규모 농장은 산재 보험 의무 가입 대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대신 외국인을 위한 체불 임금 보증보험이 있지만, 한도가 200만 원에 그칩니다.
다음 달 스레이레악 씨는 비자가 만료돼 한국을 떠나야 합니다. 끝내 사장은 체불된 임금을 한 푼도 지급하지 않았습니다.
어렵게 전화 통화가 연결된 사장 원 씨에게 캄보디아로 돌아갈 비행기 표라도 살 수 있게 50만 원이라도 달라고 호소했지만, “줄 돈이 있었으면 진작 줬다”고 답했습니다.
■ 11시간 일했는데 임금은 8시간만큼만?…사장 "일하는 사이사이 3시간 쉬었다"
또 다른 캄보디아 출신 A씨는 경남 밀양의 농장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최근 두 달 치 월급을 못 받아 노동청에 임금 체불로 농장주를 신고했습니다.
A씨는 새벽 6시 10분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 농장에 나와 일했습니다. 11시 50분부터 12시 30분까지 점심시간에만 쉴 수 있었습니다.
매일 11시간 가까이 일했는데 임금은 하루 8시간만큼만 최저임금으로 계산해 받아왔습니다. 사장 박 모 씨는 일한 만큼 돈을 달라는 A씨의 요구를 거부했습니다.
취재진을 만난 박 사장은 A씨가 일을 하는 사이사이 매일 3시간씩 휴게 시간을 가졌다고 주장했습니다. 오전에 컵라면을 먹으면서 한 시간, 점심 한 시간, 오후 간식을 먹으면서 또 한 시간을 쉰다는 것입니다.
비닐하우스 농장안에서 3시간 휴식이 가능한 것이냐고 되물었지만, 박 씨는 “농사일하는 사람들은 다 그렇게 쉰다”고 답했습니다.
두 달 치 월급을 주지 않은 건 A가 일을 제대로 안 해서 손해를 봤기 때문이라고 해명합니다. 하루에 깻잎 13~15개 상자를 수확해야 하는데 A씨가 7개의 상자밖에 못 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앞서 A씨는 연장 수당을 주지 않는 사장에게 직장을 옮길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사장 박 씨에게 그렇게 일을 못 하는 A씨를 왜 해고하지 않았느냐고 묻자 “일손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답했습니다. 또 임금 안 준 건 맞지만 “노동청에 신고한 게 기분 나빠서” 주기 싫다고도 했습니다.
A씨는 스레이레악 씨가 그랬듯, 체불 임금을 받기 위한 긴 조사 과정을 거쳐야 할 것입니다.
■ 정부 소개한 사업장에서 임금 체불…"고용노동부는 악덕 직업소개소"
비전문 취업 비자(E-9)로 한국에 오는 외국인 노동자들은 직장을 선택할 ‘자유’가 없습니다.
정부가 알선한 농장이나 공장에만 취업할 수 있고, 이직할 때도 성폭력이나 석 달 이상 임금체불 등 특별한 사유가 발생하지 않는 한 반드시 고용주의 허가를 받아야만 합니다.
외국인 노동자를 지원하는 활동가인 김이찬 '지구인의 정류소' 대표는 "고용노동부가 외국인 노동자를 여기서 일하게 소개를 했는데 고용주가 임금 지불 능력이 없는 것입니다. 이런 걸 대비해서 소액체당금 제도가 있는데 거기서도 배제돼 있죠."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산재 보험도 안 되고 임금 체부을 일삼는 악덕 사업장을 외국인 노동자에게 알선하는 고용노동부를 "악덕 직업소개소"라고 표현했습니다.
A씨의 두 달 치 임금을 주지 않은 농장 사장 박 씨는 밀양을 떠나는 취재진을 향해 "A씨가 처음 우리 농장에 왔을 때 옷도 사주고 잘해줬다. 딸처럼 대해줬는데 노동청에 신고까지 했다"며 하소연했습니다.
사장님께 되묻고 싶었습니다.
사장님 따님이 외국에 나가 비닐하우스에서 지내며 농장에서 하루 10시간 넘게 일했는데 월급도 못 받고 있다면, 어떤 생각이 드시겠냐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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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아름 기자 areum@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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