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족했던 독감백신 폐기처분 지경까지…왜?

입력 2021.02.11 (08:05) 수정 2021.02.11 (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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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지자체 보건지소에 남아있는 독감 백신한 지자체 보건지소에 남아있는 독감 백신

“독감 백신 재분배합니다” 장성군 보건소의 수상한 행정

‘전 지역민 무료접종’을 위해 백신을 대량으로 구매한 지자체는 또 있습니다. 전남 장성군인데요.

장성군은 지난해 말, 백신 만 개를 현금을 받고 ‘전배(재분배)’하겠다며 광주지역 민간 의료기관에 공문을 보냈습니다. 공문을 받아든 민간 의료기관은 너무나 황당했습니다.

필요할 땐 한참 부족하던 독감 백신이 장성군에 남았다니요? '돈을 받고' 백신을 판매하는 의약품 판매행위는 특수한 경우가 아니면 제조사나 수입사, 도매상 등만 가능합니다.

질병관리청은 "보건소가 자체 예산으로 구매한 유료접종용 백신을, 돈을 받고 다른 기관에 나누는 것은 '사실상 의약품 판매'고, '지침에도 없는 행위'"라고 설명합니다.

그러니까 장성군이 자체적으로 구매한 백신을 판매하려던 건 현행법에 위배되는 행정이었던 겁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장성군, 애초에 ‘전 지역민 무료접종’도 시행조차 하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전 군민 무료접종의 경우 공직선거법상 단체장의 불법 기부행위에 해당할 수 있는데요.

논란을 없애려면 조례를 만들거나, 보건복지부 지침에 따른 사회보장협의를 해야 하는데, 이런 절차를 거치지 않은 겁니다. 결국 충분한 사전 준비 없이 백신부터 대량으로 구매했다 처리가 힘들게 되자, 법을 어겨가면서까지 판매를 시도했던 겁니다.


왜 문제냐고요? 지자체 백신 확보전이 키운 '공급 불균형'

결과적으로 독감 백신이 많이 남긴 했지만, 전 지역민 무료접종이 나쁘다고만은 볼 수 없지 않느냐고요? 하지만, 지자체들의 백신 확보전은 우리가 지난해 가을 겪었던 백신 부족사태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지자체들이 ‘전 지역민 무료접종’을 하겠다며 추가로 구매한 백신은, 만 19세에서 61세까지 전체 국민이 나눠 맞아야하는 유료접종용 물량 가운데 일부였습니다.

만 19세에서 61세를 대상으로 한 유료접종은 민간 의료기관에서 주로 담당하는데요. 결국 한정된 물량을 가지고 민간 의료기관과 일부 지자체들이 각각 구매에 나서면서 한쪽에서는 남아돌고, 한쪽에서는 부족한 상황이 벌어지게 된 겁니다.

독감백신은 1년 전부터 계획생산에 들어가기 때문에 애초에 제약회사로부터 추가 공급은 불가능했습니다. 질병관리청이 지난해 8월, 전국 지자체에 무료접종 확대를 자제해달라는 협조공문을 보냈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지자체의 백신 구매는 한동안 계속됐습니다. 지역별, 의료기관별 백신 공급 불균형도 현실이 됐습니다. 수요 대비 공급이 부족해지자, 백신 가격도 치솟았습니다.

정부 조달용의 경우 한 개당 8,630원이었던 독감 백신 가격은 시중에서 만 6천원에서 최고 만 9천원대까지 올랐습니다.


공급 불균형에 대처 불가능…“공급체계 일원화해야”

국가예방접종이 시작된 지난해 9월, 일부 자치단체들까지 백신 확보에 뛰어들면서 백신 공급 불균형은 어느 때보다 심각했습니다.

특히 우선 접종 대상자였던 만 12세 이하 어린이 보호자들의 불편이 컸습니다. 하지만, 정부는 수급상황을 전혀 관리하지 못했습니다.

더욱이 12세 이하 어린이용 백신은 국가사업용임에도 불구하고, 청소년이나 어르신용 백신과 다르게 민간 의료기관이 자체적으로 구매해야하는 백신이다보니 애초에 수급관리가 불가능했습니다.

제약회사나 중간 도매상이 공급량을 임의로 조절하더라도 일선 병의원에서는 대처할 수 없었고, 불편은 고스란히 시민들의 몫이었습니다.

이런 혼선을 줄이기 위해선 현행 국가 조달과 민간 자체 구매 두 가지 방식으로 나뉘어있는 백신 공급체계를 일원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수급상황을 실시간 모니터링하고 즉각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미국과 영국, 호주처럼 백신의 구매부터 유통, 수급관리를 정부가 모두 맡는, '중앙조달 방식'으로 바꾸자는 주장이 있습니다. 백신 구매와 접종은 아예 민간에 모두 맡기자는 주장도 있습니다.

분명한 건 지금의 문제가 근본적으로 개선되지 않는 한, 공급 불균형 문제는 언제든지 재발할 수 있다는 겁니다. 한 치 앞을 내다보지 않고 백신 확보경쟁에 나섰던 지자체들의 과도한 선심성 행정도 반드시 바뀌어야할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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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2021-02-11 08:07:58
    취재K
한 지자체 보건지소에 남아있는 독감 백신
“독감 백신 재분배합니다” 장성군 보건소의 수상한 행정

‘전 지역민 무료접종’을 위해 백신을 대량으로 구매한 지자체는 또 있습니다. 전남 장성군인데요.

장성군은 지난해 말, 백신 만 개를 현금을 받고 ‘전배(재분배)’하겠다며 광주지역 민간 의료기관에 공문을 보냈습니다. 공문을 받아든 민간 의료기관은 너무나 황당했습니다.

필요할 땐 한참 부족하던 독감 백신이 장성군에 남았다니요? '돈을 받고' 백신을 판매하는 의약품 판매행위는 특수한 경우가 아니면 제조사나 수입사, 도매상 등만 가능합니다.

질병관리청은 "보건소가 자체 예산으로 구매한 유료접종용 백신을, 돈을 받고 다른 기관에 나누는 것은 '사실상 의약품 판매'고, '지침에도 없는 행위'"라고 설명합니다.

그러니까 장성군이 자체적으로 구매한 백신을 판매하려던 건 현행법에 위배되는 행정이었던 겁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장성군, 애초에 ‘전 지역민 무료접종’도 시행조차 하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전 군민 무료접종의 경우 공직선거법상 단체장의 불법 기부행위에 해당할 수 있는데요.

논란을 없애려면 조례를 만들거나, 보건복지부 지침에 따른 사회보장협의를 해야 하는데, 이런 절차를 거치지 않은 겁니다. 결국 충분한 사전 준비 없이 백신부터 대량으로 구매했다 처리가 힘들게 되자, 법을 어겨가면서까지 판매를 시도했던 겁니다.


왜 문제냐고요? 지자체 백신 확보전이 키운 '공급 불균형'

결과적으로 독감 백신이 많이 남긴 했지만, 전 지역민 무료접종이 나쁘다고만은 볼 수 없지 않느냐고요? 하지만, 지자체들의 백신 확보전은 우리가 지난해 가을 겪었던 백신 부족사태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지자체들이 ‘전 지역민 무료접종’을 하겠다며 추가로 구매한 백신은, 만 19세에서 61세까지 전체 국민이 나눠 맞아야하는 유료접종용 물량 가운데 일부였습니다.

만 19세에서 61세를 대상으로 한 유료접종은 민간 의료기관에서 주로 담당하는데요. 결국 한정된 물량을 가지고 민간 의료기관과 일부 지자체들이 각각 구매에 나서면서 한쪽에서는 남아돌고, 한쪽에서는 부족한 상황이 벌어지게 된 겁니다.

독감백신은 1년 전부터 계획생산에 들어가기 때문에 애초에 제약회사로부터 추가 공급은 불가능했습니다. 질병관리청이 지난해 8월, 전국 지자체에 무료접종 확대를 자제해달라는 협조공문을 보냈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지자체의 백신 구매는 한동안 계속됐습니다. 지역별, 의료기관별 백신 공급 불균형도 현실이 됐습니다. 수요 대비 공급이 부족해지자, 백신 가격도 치솟았습니다.

정부 조달용의 경우 한 개당 8,630원이었던 독감 백신 가격은 시중에서 만 6천원에서 최고 만 9천원대까지 올랐습니다.


공급 불균형에 대처 불가능…“공급체계 일원화해야”

국가예방접종이 시작된 지난해 9월, 일부 자치단체들까지 백신 확보에 뛰어들면서 백신 공급 불균형은 어느 때보다 심각했습니다.

특히 우선 접종 대상자였던 만 12세 이하 어린이 보호자들의 불편이 컸습니다. 하지만, 정부는 수급상황을 전혀 관리하지 못했습니다.

더욱이 12세 이하 어린이용 백신은 국가사업용임에도 불구하고, 청소년이나 어르신용 백신과 다르게 민간 의료기관이 자체적으로 구매해야하는 백신이다보니 애초에 수급관리가 불가능했습니다.

제약회사나 중간 도매상이 공급량을 임의로 조절하더라도 일선 병의원에서는 대처할 수 없었고, 불편은 고스란히 시민들의 몫이었습니다.

이런 혼선을 줄이기 위해선 현행 국가 조달과 민간 자체 구매 두 가지 방식으로 나뉘어있는 백신 공급체계를 일원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수급상황을 실시간 모니터링하고 즉각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미국과 영국, 호주처럼 백신의 구매부터 유통, 수급관리를 정부가 모두 맡는, '중앙조달 방식'으로 바꾸자는 주장이 있습니다. 백신 구매와 접종은 아예 민간에 모두 맡기자는 주장도 있습니다.

분명한 건 지금의 문제가 근본적으로 개선되지 않는 한, 공급 불균형 문제는 언제든지 재발할 수 있다는 겁니다. 한 치 앞을 내다보지 않고 백신 확보경쟁에 나섰던 지자체들의 과도한 선심성 행정도 반드시 바뀌어야할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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