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SK 건설 현장서도 “월급이 안 나와요”…이유는?

입력 2021.02.13 (08:00) 수정 2021.02.13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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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 현장에서 임금이 밀리는 일, 어제오늘만의 일은 아닐 겁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발생한 임금체불 금액은 1조 5,830억여 원, 이 가운데 건설업 분야의 임금 체불액은 2,779억 원으로 제조업에 이어 전체 업종 중 2위를 차지했습니다.

임금 체불은 공사 규모와 현장을 가리지 않습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대기업이 발주한 건설현장에서도 일당이 밀리는 일은 비일비재합니다. 두 가지 현장 사례를 통해 건설현장에서 임금체불이 왜 발생하는지, 이를 막을 대안은 없는지 살펴보겠습니다.


■ 한 달 치 임금 밀린 건설노동자…"삼성에서 돈을 안 줬다는데"

A 씨는 지난해 평택 삼성 반도체 공장 건설현장에서 하도급 업체 소속으로 두 달간 일했습니다. 첫 달 급여는 예정된 날짜에 제대로 입금됐지만, 둘째 달 급여는 지급일 기준 3주가 지나서야 지급됐습니다.

평일은 물론, 토요일까지 현장에 나가 일한 대가로 받기로 한 돈은 350만 원. A 씨를 비롯해 하도급 업체 소속 직원 100명은 하도급업체 사장에게 왜 급여가 제날짜에 들어오지 않느냐고 따져 물었습니다.

하도급업체 사장은 '1월 급여 관련해 1월 중 지급 예정으로 1차 공지하였으나 물산에서 긴급 기성으로 수령을 해도 2월 5일에 지급이 가능하다는 연락을 받았다'며 '1월 급여는 2월 5일에 지급될 예정이니 양해를 부탁한다'고 직원들에게 공지했습니다.

 지난달 삼성물산의 한 하도급업체가 소속 노동자들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 지난달 삼성물산의 한 하도급업체가 소속 노동자들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

여기에서 '물산'은 원청업체인 삼성물산을, '기성'은 건설현장에서 공사 중간에 공사가 진행된 만큼을 정산해서 주는 공사 대금인 기성금을 의미합니다. 하도급업체 사장의 말을 요약하면, '삼성물산에서 기성금을 예정대로 주지 않아 일당 지급이 늦어진다'는 의미입니다.


■ 삼성이 정말 돈을 안 줬을까...취재해보니

'삼성이 돈을 안 줘 임금이 체불됐다'는 하도급업체 사장의 주장, 확인해봤습니다. 업체 사장은 KBS와의 통화에서 "삼성물산이 1월 기성금을 주지 않은 건 명백한 사실"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또 "우리가 돈을 받아 놓고 일부러 임금을 체불했겠느냐"며 "기성금을 못 받아 일용직 노동자뿐 아니라 직원들 모두에게 급여가 나오지 않는 상황"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번엔 원청업체의 해명을 들어볼 차례입니다. 삼성물산 측은 KBS에 "하도급업체에 매달 정상적으로 기성금을 지급해왔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하도급법 제 18조 '부당한 경영간섭의 금지' 조항에 원청사가 협력사에 자재비나 노무비 세부지급 내역 등 경영 정보를 요구할 수 없도록 하고 있어 파악에 한계가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돈을 제때 줬다'는 삼성물산과 '못 받았다'는 하도급 업체, 누구 말이 맞는 걸까요?


■ '추가 공사대금' 놓고 입장 갈리는 원하청

결과적으로 보면 삼성물산과 하도급업체의 주장은 모두 절반의 진실을 담고 있습니다. 당초 삼성물산은 하도급업체와 계약할 때 공사 '진행 물량'에 맞춰 기성금을 지급하는 것으로 입찰 계약을 맺습니다. 그러니까 삼성물산 측은 공정률에 따라 절차대로 돈을 준 게 맞습니다.

반면, 하도급업체는 처음에 입찰 계약을 따낼 때 최저 금액으로 공사금액을 산정합니다. 바로 여기에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실제 공사를 진행하다 보면 공사 인원이 더 필요하거나 공사 기간이 연장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도급업체는 '공사를 하며 추가로 든 비용'에 대해 원청업체인 삼성물산에 기성금을 신청해 받습니다.

바로 이 '추가 신청분'에 대한 이견 때문에 공사현장의 임금 체불이 발생합니다. 삼성물산은 '기성금을 제때 줬다', 하도급업체에선 '기성금을 못 받았다'고 주장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애당초 '기성금'의 의미를 서로 다르게 해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 재하청업체 노동자들이 SK건설 현장 사무실 점거한 이유는?

그렇다면 하도급업체 아래 또다른 하도급업체, 이른바 재하청업체가 있는 경우는 어떨까요?

지난해 12월 SK 하이닉스 반도체 건설현장에서 일하던 재하청 업체 소속 노동자 150명이 원청인 SK건설 현장 사무실을 점거했습니다. 이들은 지난해 10월부터 11월까지 두 달 일한 임금 23억 원을 원청에서 책임지고 지급하라고 요구했습니다.

 지난해 12월 임금이 체불된 재하청 업체 소속 노동자들이 SK건설 현장 사무실을 점거하고 있다. (사진 제공: 건설노동조합 경기도지부) 지난해 12월 임금이 체불된 재하청 업체 소속 노동자들이 SK건설 현장 사무실을 점거하고 있다. (사진 제공: 건설노동조합 경기도지부)

재하청업체 소속 노동자들이 원청인 SK건설까지 찾아간 건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직접적으로 임금을 줘야 할 재하청업체는 하청업체에서 기성금을 주지 않아 임금을 못 준다고 했고, 하청업체 측은 재하청업체에 줄 돈을 다 줬다며 책임을 미루며 버텼습니다.

두 달 넘게 돈을 못 받게 된 노동자들은 노동청에도 도움을 요청했지만, '한 달이 걸릴 수도 있고 1년이 걸릴 수도 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고 합니다. 원청업체인 SK건설을 찾아가 농성을 벌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입니다.


■밀린 임금 '대신 지급'한 SK건설, 일부 노동자 '출입 제한'도

결국, SK건설은 노동자들이 밀린 두 달치 임금 23억 원을 전액 지급했습니다. 하지만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습니다. SK건설 사무실 점거 시위에 나선 노동자들의 출입이 1주일간 차단됐던 겁니다.

건설노조 경기지부가 문제를 제기하면서 이 문제는 현재 일단락된 상태입니다.

SK건설 측은 "재하청업체 소속 노동자들의 체불된 임금을 대신 지급했다"고 밝혔습니다. 또 일부 노동자들의 출입 제한에 대해선 "하청업체와 재하청업체 사이의 계약이 종료되면서 출입이 제한된 것"이라고 해명했습니다.


■공공기관 발주처에 적용된 '임금직접지급제'…대안 될 수 있을까?

유독 건설현장에 비일비재한 임금체불, 대안이 없는 걸까요? 공공기관이 발주한 건설현장의 경우 2018년부터 노동자들의 급여를 하도급업체에서 인출하지 못하도록 하는 '임금 직접 지급제'를 적용하기 시작했고, 이 덕분에 공공 건설 현장의 임금 체불 문제는 다소 완화됐습니다.

이 때문에 민간 건설 현장에도 '임금 직접 지급제'를 점차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다만 공공 분야가 아닌 민간 건설현장의 계약 조건을 강제할 수는 없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결국 임금체불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선 현재 관행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건설현장에서의 재하청 고리를 끊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이종수 참여연대 노동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은 "다단계 하도급 구조에서는 각각의 건설 회사들이 가져가는 이윤이 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가장 밑바닥에 있는 회사까지 가면 공사비는 부족할 수밖에 없다"며 "가급적 원청이 직접 시공할 수 있도록 정부가 제도들을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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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성·SK 건설 현장서도 “월급이 안 나와요”…이유는?
    • 입력 2021-02-13 08:00:12
    • 수정2021-02-13 17:28:54
    취재K

건설 현장에서 임금이 밀리는 일, 어제오늘만의 일은 아닐 겁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발생한 임금체불 금액은 1조 5,830억여 원, 이 가운데 건설업 분야의 임금 체불액은 2,779억 원으로 제조업에 이어 전체 업종 중 2위를 차지했습니다.

임금 체불은 공사 규모와 현장을 가리지 않습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대기업이 발주한 건설현장에서도 일당이 밀리는 일은 비일비재합니다. 두 가지 현장 사례를 통해 건설현장에서 임금체불이 왜 발생하는지, 이를 막을 대안은 없는지 살펴보겠습니다.


■ 한 달 치 임금 밀린 건설노동자…"삼성에서 돈을 안 줬다는데"

A 씨는 지난해 평택 삼성 반도체 공장 건설현장에서 하도급 업체 소속으로 두 달간 일했습니다. 첫 달 급여는 예정된 날짜에 제대로 입금됐지만, 둘째 달 급여는 지급일 기준 3주가 지나서야 지급됐습니다.

평일은 물론, 토요일까지 현장에 나가 일한 대가로 받기로 한 돈은 350만 원. A 씨를 비롯해 하도급 업체 소속 직원 100명은 하도급업체 사장에게 왜 급여가 제날짜에 들어오지 않느냐고 따져 물었습니다.

하도급업체 사장은 '1월 급여 관련해 1월 중 지급 예정으로 1차 공지하였으나 물산에서 긴급 기성으로 수령을 해도 2월 5일에 지급이 가능하다는 연락을 받았다'며 '1월 급여는 2월 5일에 지급될 예정이니 양해를 부탁한다'고 직원들에게 공지했습니다.

 지난달 삼성물산의 한 하도급업체가 소속 노동자들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
여기에서 '물산'은 원청업체인 삼성물산을, '기성'은 건설현장에서 공사 중간에 공사가 진행된 만큼을 정산해서 주는 공사 대금인 기성금을 의미합니다. 하도급업체 사장의 말을 요약하면, '삼성물산에서 기성금을 예정대로 주지 않아 일당 지급이 늦어진다'는 의미입니다.


■ 삼성이 정말 돈을 안 줬을까...취재해보니

'삼성이 돈을 안 줘 임금이 체불됐다'는 하도급업체 사장의 주장, 확인해봤습니다. 업체 사장은 KBS와의 통화에서 "삼성물산이 1월 기성금을 주지 않은 건 명백한 사실"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또 "우리가 돈을 받아 놓고 일부러 임금을 체불했겠느냐"며 "기성금을 못 받아 일용직 노동자뿐 아니라 직원들 모두에게 급여가 나오지 않는 상황"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번엔 원청업체의 해명을 들어볼 차례입니다. 삼성물산 측은 KBS에 "하도급업체에 매달 정상적으로 기성금을 지급해왔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하도급법 제 18조 '부당한 경영간섭의 금지' 조항에 원청사가 협력사에 자재비나 노무비 세부지급 내역 등 경영 정보를 요구할 수 없도록 하고 있어 파악에 한계가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돈을 제때 줬다'는 삼성물산과 '못 받았다'는 하도급 업체, 누구 말이 맞는 걸까요?


■ '추가 공사대금' 놓고 입장 갈리는 원하청

결과적으로 보면 삼성물산과 하도급업체의 주장은 모두 절반의 진실을 담고 있습니다. 당초 삼성물산은 하도급업체와 계약할 때 공사 '진행 물량'에 맞춰 기성금을 지급하는 것으로 입찰 계약을 맺습니다. 그러니까 삼성물산 측은 공정률에 따라 절차대로 돈을 준 게 맞습니다.

반면, 하도급업체는 처음에 입찰 계약을 따낼 때 최저 금액으로 공사금액을 산정합니다. 바로 여기에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실제 공사를 진행하다 보면 공사 인원이 더 필요하거나 공사 기간이 연장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도급업체는 '공사를 하며 추가로 든 비용'에 대해 원청업체인 삼성물산에 기성금을 신청해 받습니다.

바로 이 '추가 신청분'에 대한 이견 때문에 공사현장의 임금 체불이 발생합니다. 삼성물산은 '기성금을 제때 줬다', 하도급업체에선 '기성금을 못 받았다'고 주장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애당초 '기성금'의 의미를 서로 다르게 해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 재하청업체 노동자들이 SK건설 현장 사무실 점거한 이유는?

그렇다면 하도급업체 아래 또다른 하도급업체, 이른바 재하청업체가 있는 경우는 어떨까요?

지난해 12월 SK 하이닉스 반도체 건설현장에서 일하던 재하청 업체 소속 노동자 150명이 원청인 SK건설 현장 사무실을 점거했습니다. 이들은 지난해 10월부터 11월까지 두 달 일한 임금 23억 원을 원청에서 책임지고 지급하라고 요구했습니다.

 지난해 12월 임금이 체불된 재하청 업체 소속 노동자들이 SK건설 현장 사무실을 점거하고 있다. (사진 제공: 건설노동조합 경기도지부)
재하청업체 소속 노동자들이 원청인 SK건설까지 찾아간 건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직접적으로 임금을 줘야 할 재하청업체는 하청업체에서 기성금을 주지 않아 임금을 못 준다고 했고, 하청업체 측은 재하청업체에 줄 돈을 다 줬다며 책임을 미루며 버텼습니다.

두 달 넘게 돈을 못 받게 된 노동자들은 노동청에도 도움을 요청했지만, '한 달이 걸릴 수도 있고 1년이 걸릴 수도 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고 합니다. 원청업체인 SK건설을 찾아가 농성을 벌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입니다.


■밀린 임금 '대신 지급'한 SK건설, 일부 노동자 '출입 제한'도

결국, SK건설은 노동자들이 밀린 두 달치 임금 23억 원을 전액 지급했습니다. 하지만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습니다. SK건설 사무실 점거 시위에 나선 노동자들의 출입이 1주일간 차단됐던 겁니다.

건설노조 경기지부가 문제를 제기하면서 이 문제는 현재 일단락된 상태입니다.

SK건설 측은 "재하청업체 소속 노동자들의 체불된 임금을 대신 지급했다"고 밝혔습니다. 또 일부 노동자들의 출입 제한에 대해선 "하청업체와 재하청업체 사이의 계약이 종료되면서 출입이 제한된 것"이라고 해명했습니다.


■공공기관 발주처에 적용된 '임금직접지급제'…대안 될 수 있을까?

유독 건설현장에 비일비재한 임금체불, 대안이 없는 걸까요? 공공기관이 발주한 건설현장의 경우 2018년부터 노동자들의 급여를 하도급업체에서 인출하지 못하도록 하는 '임금 직접 지급제'를 적용하기 시작했고, 이 덕분에 공공 건설 현장의 임금 체불 문제는 다소 완화됐습니다.

이 때문에 민간 건설 현장에도 '임금 직접 지급제'를 점차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다만 공공 분야가 아닌 민간 건설현장의 계약 조건을 강제할 수는 없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결국 임금체불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선 현재 관행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건설현장에서의 재하청 고리를 끊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이종수 참여연대 노동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은 "다단계 하도급 구조에서는 각각의 건설 회사들이 가져가는 이윤이 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가장 밑바닥에 있는 회사까지 가면 공사비는 부족할 수밖에 없다"며 "가급적 원청이 직접 시공할 수 있도록 정부가 제도들을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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