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저신용자 ‘신파일러’의 대출 비결은…빅 데이터?

입력 2021.02.13 (08:00) 수정 2021.02.13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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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금융 이력 부족자 신파일러(Thin-Filer)
은행 3.5% vs. 저축은행 16.72%…‘신용 양극화’
“중신용자, 부실률 비해 고이자 부담”
빅데이터 도입한 ‘신용평가’ 새 모델…양극화 메울까


"은행 창구 직원이 사업자등록증에 업체 등록일만 보고 나가라고 하더라고요. 어쩔 수 없이 나왔죠 뭐."

온라인에서 유리컵 등 생활용품을 판매하는 박세린 씨가 은행에서 사업자금을 빌리려다 돌아서 나온 이야기입니다.

지난해 박 씨 상점에서 판매하는 컵은 상당한 입소문을 타고 팔리고 있었습니다. 박 씨 생각엔 매출액이 충분히 나와서 상환능력은 있었습니다. 하지만 매출 정산 시차 때문에 다음 발주를 못 하고 있던 겁니다.

이른바 1금융권에서는 돈 빌리기가 어려웠던 박 씨, 결국 좋은 조건에 3천만 원을 빌렸답니다. 어떻게 돈을 빌렸을까요?


■'신파일러'가 뭐길래...금융이력 부족한 사람들

박 씨 같은 사람들을 신파일러(Thin-Filer)라고 부릅니다. 딱딱한 정의는 '과거 3년간 금융거래 기록(대출/신용카드/연체)이 없는 고객'입니다.

이런 신파일러가 1,000만 명이라는 분석도 있는데요. 이런 분들은 지금은 폐지된 제도인 신용등급이 보통 높지 않습니다.


그래서 중·저신용자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실제로 중앙대 경영학부 여은정 교수 연구에 따르면, 신파일러의 등급별 분포는 3등급에 17.8%, 4등급에 43.7%, 5등급에 34.3% 6등급에 4.2%가 분포돼 있습니다.


■ 3.5% vs. 16.72%...'신용 양극화'

이런 신파일러는 어느 정도 이자로 돈을 빌릴 수 있을까요?

한국은행이 사상 최저로 금리 기조를 유지하고 있지만, 이들에게 이른바 제1금융권의 낮은 이자는 언감생심입니다.


지난해 12월 기준 은행에서 나간 신용대출 평균금리는 연 3.5%였습니다. 신파일러들이 주로 찾는 저축은행은 연 16.72%였습니다.

'중간'은 찾기 어렵습니다.

고소득 직장인이나 전문직이 아니라면, 은행권 대출을 거절 받는 게 예삿일이죠. 이렇게 '신용 양극화', '신용단층'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겁니다.


■금융회사는 "빚 갚을 능력 어떻게 평가하나?"

학계에서는 이런 신용 양극화 현상을 '시장실패'라고 보고 있습니다. 특히, 중신용자는 은행권 대출 거절 시 고금리 대출을 이용하게 될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금융회사 처지에서는 빚 갚을 능력을 평가할 방법으로 금융기관 사이 공유되는 '신용도' 외에는 마땅한 게 없습니다. 하지만 그 이력이 부족하면 신용도는 물음표겠죠.

그래서 금융회사도 돈 빌리는 사람의 '불량률'(안 갚을 확률)이 어떨지 정확히 계산하지 못하고, 높은 금리를 부르는 겁니다.

이런 구조가 자리 잡은 건 금융회사가 높은 이자를 제시해도 그 이자에 빌리고 싶은 사람이 많은 탓일 겁니다.


■ '중신용'이래도 돈 잘 갚아요, 이자는 왜 이래?

신용등급이 낮다고, 돈도 그만큼 안 갚을까요?

데이터로 보면 조금 다릅니다.


신용등급별 평균 대출금리는 비교적 선형관계입니다. 등급이 낮은 만큼 금리도 매우 높게 책정되는 구조입니다.



그런데 신용등급별 불량률을 보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중신용자 그룹 이후 급격하게 증가하는 모습입니다.

결국, 신파일러 등 4~6등급 정도 되는 중신용자들이 실제 불량률에 비해서 높은 이자로 대출받고 있다는 걸 시사하는 겁니다.


■신파일러에게 4.9%에 3천만 원...배경은 '빅데이터'

다시 박 씨 이야기로 돌아옵니다.

박 씨는 연 4.9% 이자에 3천만 원을 빌렸습니다. 한도는 4,200만 원까지 나왔다고 합니다. 비교적 '저금리'에 가까운 대출 조건입니다.

가능했던 배경은 '빅데이터'였습니다. 박 씨 매장의 매출정보가 주요 변수였습니다.

매출 성장세는 어떤지, 반품률은 어떤지, 고객 반응에 빨리 대응하는지, 고객 평가는 또 어떤지…. 수천 가지의 변수가 신용평가의 잣대가 됐습니다.

미래에셋과 이 같은 상품을 내놓은 김태경 네이버 파이낸셜 대출서비스 리더는 "평가하는 입장에선 '성실성'이 가장 중요하다"면서 "이 같은 지표들이 성실성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또 "현재 해당 대출상품의 성과도 상당히 괜찮은 편"이라며 "대출상품 출시 3달 정도지만 연체는 없다"고도 말했습니다.

이런 대출 상품은 카카오뱅크나 케이뱅크, 토스뱅크 등 인터넷전문은행 등이 상품을 내놨거나 출시할 계획입니다.

카카오뱅크는 카카오 서비스에서 나오는 빅데이터가, 케이뱅크는 스마트폰 사용 내역 등이 신용평가에 활용되는 재료로 사용될 예정입니다. 각자 나름대로 장점을 살린 신용평가법입니다.


■사람의 신용, 무엇으로 평가해야 하는가?

함무라비 법전에 곡식을 빌려주고 이자로 받는 규정이 있을 정도로 '대부업'은 오래된 영역입니다. 긴 역사 속에서도 사람의 '신용'을 평가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지금처럼 '금융거래 이력'만으로만 사람의 신용을 평가하는 것은 모두가 동의할만한 신용평가는 아닐 겁니다.

빅데이터가 실제로 그 대안이 될 수 있을지는 두고 볼 일입니다.

이순호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이 같은 현상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 데이터 공유'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이 위원은 "특정 금융회사나 특정 업종에서만 해당 빅데이터를 쓰는 게 아니라 모두에게 데이터 접근권을 주고 합당한 금리를 정하는 방식이 도입되도록 논의를 시작할 단계"라고 말했습니다.

아직 이 같은 중금리 신용대출은 전체 가계대출의 1% 미만에 머물러 있습니다. '중간 지대'가 갈 길이 멀다는 소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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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저신용자 ‘신파일러’의 대출 비결은…빅 데이터?
    • 입력 2021-02-13 08:00:13
    • 수정2021-02-13 17:2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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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 이력 부족자 신파일러(Thin-Filer)<br />은행 3.5% vs. 저축은행 16.72%…‘신용 양극화’<br />“중신용자, 부실률 비해 고이자 부담”<br />빅데이터 도입한 ‘신용평가’ 새 모델…양극화 메울까

"은행 창구 직원이 사업자등록증에 업체 등록일만 보고 나가라고 하더라고요. 어쩔 수 없이 나왔죠 뭐."

온라인에서 유리컵 등 생활용품을 판매하는 박세린 씨가 은행에서 사업자금을 빌리려다 돌아서 나온 이야기입니다.

지난해 박 씨 상점에서 판매하는 컵은 상당한 입소문을 타고 팔리고 있었습니다. 박 씨 생각엔 매출액이 충분히 나와서 상환능력은 있었습니다. 하지만 매출 정산 시차 때문에 다음 발주를 못 하고 있던 겁니다.

이른바 1금융권에서는 돈 빌리기가 어려웠던 박 씨, 결국 좋은 조건에 3천만 원을 빌렸답니다. 어떻게 돈을 빌렸을까요?


■'신파일러'가 뭐길래...금융이력 부족한 사람들

박 씨 같은 사람들을 신파일러(Thin-Filer)라고 부릅니다. 딱딱한 정의는 '과거 3년간 금융거래 기록(대출/신용카드/연체)이 없는 고객'입니다.

이런 신파일러가 1,000만 명이라는 분석도 있는데요. 이런 분들은 지금은 폐지된 제도인 신용등급이 보통 높지 않습니다.


그래서 중·저신용자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실제로 중앙대 경영학부 여은정 교수 연구에 따르면, 신파일러의 등급별 분포는 3등급에 17.8%, 4등급에 43.7%, 5등급에 34.3% 6등급에 4.2%가 분포돼 있습니다.


■ 3.5% vs. 16.72%...'신용 양극화'

이런 신파일러는 어느 정도 이자로 돈을 빌릴 수 있을까요?

한국은행이 사상 최저로 금리 기조를 유지하고 있지만, 이들에게 이른바 제1금융권의 낮은 이자는 언감생심입니다.


지난해 12월 기준 은행에서 나간 신용대출 평균금리는 연 3.5%였습니다. 신파일러들이 주로 찾는 저축은행은 연 16.72%였습니다.

'중간'은 찾기 어렵습니다.

고소득 직장인이나 전문직이 아니라면, 은행권 대출을 거절 받는 게 예삿일이죠. 이렇게 '신용 양극화', '신용단층'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겁니다.


■금융회사는 "빚 갚을 능력 어떻게 평가하나?"

학계에서는 이런 신용 양극화 현상을 '시장실패'라고 보고 있습니다. 특히, 중신용자는 은행권 대출 거절 시 고금리 대출을 이용하게 될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금융회사 처지에서는 빚 갚을 능력을 평가할 방법으로 금융기관 사이 공유되는 '신용도' 외에는 마땅한 게 없습니다. 하지만 그 이력이 부족하면 신용도는 물음표겠죠.

그래서 금융회사도 돈 빌리는 사람의 '불량률'(안 갚을 확률)이 어떨지 정확히 계산하지 못하고, 높은 금리를 부르는 겁니다.

이런 구조가 자리 잡은 건 금융회사가 높은 이자를 제시해도 그 이자에 빌리고 싶은 사람이 많은 탓일 겁니다.


■ '중신용'이래도 돈 잘 갚아요, 이자는 왜 이래?

신용등급이 낮다고, 돈도 그만큼 안 갚을까요?

데이터로 보면 조금 다릅니다.


신용등급별 평균 대출금리는 비교적 선형관계입니다. 등급이 낮은 만큼 금리도 매우 높게 책정되는 구조입니다.



그런데 신용등급별 불량률을 보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중신용자 그룹 이후 급격하게 증가하는 모습입니다.

결국, 신파일러 등 4~6등급 정도 되는 중신용자들이 실제 불량률에 비해서 높은 이자로 대출받고 있다는 걸 시사하는 겁니다.


■신파일러에게 4.9%에 3천만 원...배경은 '빅데이터'

다시 박 씨 이야기로 돌아옵니다.

박 씨는 연 4.9% 이자에 3천만 원을 빌렸습니다. 한도는 4,200만 원까지 나왔다고 합니다. 비교적 '저금리'에 가까운 대출 조건입니다.

가능했던 배경은 '빅데이터'였습니다. 박 씨 매장의 매출정보가 주요 변수였습니다.

매출 성장세는 어떤지, 반품률은 어떤지, 고객 반응에 빨리 대응하는지, 고객 평가는 또 어떤지…. 수천 가지의 변수가 신용평가의 잣대가 됐습니다.

미래에셋과 이 같은 상품을 내놓은 김태경 네이버 파이낸셜 대출서비스 리더는 "평가하는 입장에선 '성실성'이 가장 중요하다"면서 "이 같은 지표들이 성실성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또 "현재 해당 대출상품의 성과도 상당히 괜찮은 편"이라며 "대출상품 출시 3달 정도지만 연체는 없다"고도 말했습니다.

이런 대출 상품은 카카오뱅크나 케이뱅크, 토스뱅크 등 인터넷전문은행 등이 상품을 내놨거나 출시할 계획입니다.

카카오뱅크는 카카오 서비스에서 나오는 빅데이터가, 케이뱅크는 스마트폰 사용 내역 등이 신용평가에 활용되는 재료로 사용될 예정입니다. 각자 나름대로 장점을 살린 신용평가법입니다.


■사람의 신용, 무엇으로 평가해야 하는가?

함무라비 법전에 곡식을 빌려주고 이자로 받는 규정이 있을 정도로 '대부업'은 오래된 영역입니다. 긴 역사 속에서도 사람의 '신용'을 평가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지금처럼 '금융거래 이력'만으로만 사람의 신용을 평가하는 것은 모두가 동의할만한 신용평가는 아닐 겁니다.

빅데이터가 실제로 그 대안이 될 수 있을지는 두고 볼 일입니다.

이순호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이 같은 현상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 데이터 공유'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이 위원은 "특정 금융회사나 특정 업종에서만 해당 빅데이터를 쓰는 게 아니라 모두에게 데이터 접근권을 주고 합당한 금리를 정하는 방식이 도입되도록 논의를 시작할 단계"라고 말했습니다.

아직 이 같은 중금리 신용대출은 전체 가계대출의 1% 미만에 머물러 있습니다. '중간 지대'가 갈 길이 멀다는 소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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