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치우려다…軍에서 22살 청년은 꿈을 잃었습니다

입력 2021.02.15 (07:03) 수정 2021.02.16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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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한 의무와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은 일, 이 극단의 표현 사이에 병역의 의무가 존재합니다.
입대를 고의로 피했다가는 처벌이 따르듯 병역은 대한민국 남성에게 피할 수 없는 의무입니다. 그렇다면 의무를 따르는 개인에게 군은 어떤 모습일까요. 안전하고, 부당하지 않으며, 문제가 생겼을 때 적절한 대응 시스템이 마련된, 국가의 책임을 다하는 곳일까요.
KBS는 올해 이 부분을 집중적으로 들여다보려 합니다.
가야만 하는 군대가 갈 만한 군대의 모습인가, 하는 질문입니다.
오늘은 먼저 '군은 안전한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합니다.

■ 103년 만의 폭설…. 그리고 사고가 났다

2014년 2월의 그 날을 백현민 씨는 지금도 생생히 기억합니다. "강원도에 며칠째 폭설이 내려서 계속 눈을 치웠어요. 부대 근처로 대민 지원을 나갔고 마지막에 부대 제설을 했어요. 지붕에 올라간 것은 오후에, 해 좀 높게 뜨고 나서였어요. 콘크리트로 튼튼하게 지어진 건물이 아니라 슬레이트라고 해야 하나? 그런 건물이어서 눈이 더 쌓이기 전에 지붕을 치우기 시작했어요. 간부고 병사고 할 것 없이 올라가서 치우더라고요. 위에 올라가 있던 간부가, '현민아, 너도 올라와서 치우자'라고 해서 사다리를 타고 지붕으로 올라갔어요. 그런데."

백현민 상병은 순식간에 3m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한 발은 지붕, 한 발은 사다리에 걸친 상태였는데 갑자기 사다리가 접혔던 탓입니다. 오른 손목뼈가 20조각 이상 잘게 부서졌습니다.


백현민 씨는 손목을 완전히 굽힐 수 없게 됐습니다. 만기 제대 후 상이등급 6급 판정을 받았습니다. 아직도 한 달에 한 번 병원에 가고 매일 통증 치료 약을 먹습니다.

입대 전 백현민 씨는 대학 경호학과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경호원이 꿈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운동신경이 좋다는 장점을 살릴 만한 일자리는 찾기 어렵습니다. 방향을 틀어 사무직 일자리를 찾아보고는 있지만, 컴퓨터 키보드를 사용하는 것도, 글씨를 오래 쓰기도 어려워서 제대로 해낼 수 있을 지도 걱정입니다.

"연금 90만 원 받는 것보다 내 힘으로 백만 원 받는 게 더 낫죠. 입대하기 전에 생각하던 장래희망은 날아가 버리고 앞으로 뭐 해야 할지. 고민이 그냥 고민이 아니라 불안해서 고통스러울 정도여서… 인생의 방향을 갑자기 잡을 수도 없는 거잖아요."

■ 5년간 군 안전사고 현황 공개...차 사고 최다

특수하고 위험한 일도 아니었습니다. 겨울철 어느 군대에서든, 어느 장병이든 할 법한 눈을 치우다 생긴 일로 백현민 씨 삶은 군 생활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됐습니다. 사실 군에서는 훈련 외에도 부대관리업무나 다양한 대민지원 작전 등에 투입될 수 있습니다. 활동 범위가 상당히 넓은 만큼 곳곳에 안전사고 위험 요소들이 있습니다.

국회 국방위원회 이채익 위원실(국민의 힘)이 국방부로부터 제출받은 최근 5년간 안전사고 통계 (1명 이상의 중상자가 발생한 인전사고와 피해액이 1천만 원 이상인 사고)를 보면 , 한해 70건의 사고가 나고 20명 정도가 숨졌습니다. 전체 사고의 3분의 1 이상은 차 사고였고, 화재와 추락·충격, 항공·함정사고도 잦았습니다.



육군은 사고의 절반이 차 사고였는데 장갑차 같은 전투차량부터 지게차 같은 중장비, 군용트럭 등을 몰다 나는 사고가 반복됐습니다. 해군에선 함정이 입항할 때 배가 떠내려가지 않게 묶는 홋줄 작업을 하다 사고가 반복됐습니다. 공군에선 장비 점검 중 사고가 잦았습니다.

군이 파악한 사고 원인 80%는 부주의, 안전수칙·절차 미준수, 조작 미숙으로 분류됐습니다. 사고 원인의 상당한 부분이 개인 탓이라는 결론인 셈입니다.

■ 내 잘못만 있었을까?

다시 백 씨 이야기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2014년 2월, 계속된 폭설로 국방부 장관은 영동 지역에 있는 부대에 '가용자원을 총동원해 제설작업을 지원하라'는 특별 지시를 내렸습니다. 백 씨가 소속된 최상위부대인 군단에서도 2월 7일부터 폭설에 따른 단편 명령(간단한 작전명령)을 매일 예하 부대로 내려보냈는데, '안전 확보'라는 단어는 항상 빼놓지 않았습니다.

2월 9일 명령에는 '부대 막사, 취사장, 소초 등 붕괴 우려 시설 지붕의 적설 제거를 지시하면서 지붕 위에 올라가서 작업하지 말라'고 돼 있고 2월 15일에는 좀 구체적으로 '지붕 위 제설작업 시 낙상사고 방지교육, 방탄 헬멧 착용 등 안전대책 강구해 실시하라'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현장 상황은 어땠을까요? 당시 군부대 제설작전 사진을 확인해봤습니다. 백 씨의 소속 군단은 '지붕 위에 올라가지 말라'는 명령이 내려온 날 지붕 위에 올라가서 눈을 치우는 병사의 모습을 홍보'했습니다. 다른 지역에서 펼쳐진 제설작업에서도 병사들은 여전히 지붕 위에서 활동모(정글모) 하나만 쓴 채 열심히 눈을 치우는 모습이었습니다.

기자와 인터뷰 중인 백현민 씨(오른쪽)기자와 인터뷰 중인 백현민 씨(오른쪽)

■ 창군 70년 넘었는데....안전 관리는 '사고대응' 위주

국방부 안전자문위원을 맡은 이동경 우송대 소방안전학부 교수는 이렇게 진단합니다. "군은 존재의 목적이 전투력 향상과 그것을 위한 훈련이겠죠. 너무 그것에만 중점을 두다 보니까 장병들의 안전과 건강문제는 소홀히 한 것이지요. 병사들의 안전에 대한 욕구가 증대되는데 지휘 층에서 그것을 인식을 못 한다면 바로 사기 저하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창군 70년이 넘었지만, 육군은 2018년, 해군은 2019년에야 안전단이 꾸려졌습니다. 전 군을 아우르는 국방부 차원에서는 지난해 5월, 창설 이후 처음으로 안전정책을 총괄하는 '안전정책팀'을
신설했습니다. 안전에 대한 매뉴얼이 없지는 않았지만, 사고가 나면 개별 부대별로 대응하는 수준이었지, 위험 요소를 미리 파악해 사고 예방을 위한 위험 관리는 없었다는 진단에서입니다.

다음 취재에서는 이런 사고 이후, 그렇다면 군의 보상 시스템은 적절한지를 살펴봅니다.

●관련기사
[KBS 뉴스9] 저는 그저 운 없는 군인이었을까요?…안전사고로 매년 20명 사망
http://news.kbs.co.kr/news/view.do?ncd=5118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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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눈 치우려다…軍에서 22살 청년은 꿈을 잃었습니다
    • 입력 2021-02-15 07:03:15
    • 수정2021-02-16 15:04:42
    취재K

신성한 의무와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은 일, 이 극단의 표현 사이에 병역의 의무가 존재합니다.
입대를 고의로 피했다가는 처벌이 따르듯 병역은 대한민국 남성에게 피할 수 없는 의무입니다. 그렇다면 의무를 따르는 개인에게 군은 어떤 모습일까요. 안전하고, 부당하지 않으며, 문제가 생겼을 때 적절한 대응 시스템이 마련된, 국가의 책임을 다하는 곳일까요.
KBS는 올해 이 부분을 집중적으로 들여다보려 합니다.
가야만 하는 군대가 갈 만한 군대의 모습인가, 하는 질문입니다.
오늘은 먼저 '군은 안전한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합니다.

■ 103년 만의 폭설…. 그리고 사고가 났다

2014년 2월의 그 날을 백현민 씨는 지금도 생생히 기억합니다. "강원도에 며칠째 폭설이 내려서 계속 눈을 치웠어요. 부대 근처로 대민 지원을 나갔고 마지막에 부대 제설을 했어요. 지붕에 올라간 것은 오후에, 해 좀 높게 뜨고 나서였어요. 콘크리트로 튼튼하게 지어진 건물이 아니라 슬레이트라고 해야 하나? 그런 건물이어서 눈이 더 쌓이기 전에 지붕을 치우기 시작했어요. 간부고 병사고 할 것 없이 올라가서 치우더라고요. 위에 올라가 있던 간부가, '현민아, 너도 올라와서 치우자'라고 해서 사다리를 타고 지붕으로 올라갔어요. 그런데."

백현민 상병은 순식간에 3m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한 발은 지붕, 한 발은 사다리에 걸친 상태였는데 갑자기 사다리가 접혔던 탓입니다. 오른 손목뼈가 20조각 이상 잘게 부서졌습니다.


백현민 씨는 손목을 완전히 굽힐 수 없게 됐습니다. 만기 제대 후 상이등급 6급 판정을 받았습니다. 아직도 한 달에 한 번 병원에 가고 매일 통증 치료 약을 먹습니다.

입대 전 백현민 씨는 대학 경호학과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경호원이 꿈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운동신경이 좋다는 장점을 살릴 만한 일자리는 찾기 어렵습니다. 방향을 틀어 사무직 일자리를 찾아보고는 있지만, 컴퓨터 키보드를 사용하는 것도, 글씨를 오래 쓰기도 어려워서 제대로 해낼 수 있을 지도 걱정입니다.

"연금 90만 원 받는 것보다 내 힘으로 백만 원 받는 게 더 낫죠. 입대하기 전에 생각하던 장래희망은 날아가 버리고 앞으로 뭐 해야 할지. 고민이 그냥 고민이 아니라 불안해서 고통스러울 정도여서… 인생의 방향을 갑자기 잡을 수도 없는 거잖아요."

■ 5년간 군 안전사고 현황 공개...차 사고 최다

특수하고 위험한 일도 아니었습니다. 겨울철 어느 군대에서든, 어느 장병이든 할 법한 눈을 치우다 생긴 일로 백현민 씨 삶은 군 생활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됐습니다. 사실 군에서는 훈련 외에도 부대관리업무나 다양한 대민지원 작전 등에 투입될 수 있습니다. 활동 범위가 상당히 넓은 만큼 곳곳에 안전사고 위험 요소들이 있습니다.

국회 국방위원회 이채익 위원실(국민의 힘)이 국방부로부터 제출받은 최근 5년간 안전사고 통계 (1명 이상의 중상자가 발생한 인전사고와 피해액이 1천만 원 이상인 사고)를 보면 , 한해 70건의 사고가 나고 20명 정도가 숨졌습니다. 전체 사고의 3분의 1 이상은 차 사고였고, 화재와 추락·충격, 항공·함정사고도 잦았습니다.



육군은 사고의 절반이 차 사고였는데 장갑차 같은 전투차량부터 지게차 같은 중장비, 군용트럭 등을 몰다 나는 사고가 반복됐습니다. 해군에선 함정이 입항할 때 배가 떠내려가지 않게 묶는 홋줄 작업을 하다 사고가 반복됐습니다. 공군에선 장비 점검 중 사고가 잦았습니다.

군이 파악한 사고 원인 80%는 부주의, 안전수칙·절차 미준수, 조작 미숙으로 분류됐습니다. 사고 원인의 상당한 부분이 개인 탓이라는 결론인 셈입니다.

■ 내 잘못만 있었을까?

다시 백 씨 이야기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2014년 2월, 계속된 폭설로 국방부 장관은 영동 지역에 있는 부대에 '가용자원을 총동원해 제설작업을 지원하라'는 특별 지시를 내렸습니다. 백 씨가 소속된 최상위부대인 군단에서도 2월 7일부터 폭설에 따른 단편 명령(간단한 작전명령)을 매일 예하 부대로 내려보냈는데, '안전 확보'라는 단어는 항상 빼놓지 않았습니다.

2월 9일 명령에는 '부대 막사, 취사장, 소초 등 붕괴 우려 시설 지붕의 적설 제거를 지시하면서 지붕 위에 올라가서 작업하지 말라'고 돼 있고 2월 15일에는 좀 구체적으로 '지붕 위 제설작업 시 낙상사고 방지교육, 방탄 헬멧 착용 등 안전대책 강구해 실시하라'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현장 상황은 어땠을까요? 당시 군부대 제설작전 사진을 확인해봤습니다. 백 씨의 소속 군단은 '지붕 위에 올라가지 말라'는 명령이 내려온 날 지붕 위에 올라가서 눈을 치우는 병사의 모습을 홍보'했습니다. 다른 지역에서 펼쳐진 제설작업에서도 병사들은 여전히 지붕 위에서 활동모(정글모) 하나만 쓴 채 열심히 눈을 치우는 모습이었습니다.

기자와 인터뷰 중인 백현민 씨(오른쪽)
■ 창군 70년 넘었는데....안전 관리는 '사고대응' 위주

국방부 안전자문위원을 맡은 이동경 우송대 소방안전학부 교수는 이렇게 진단합니다. "군은 존재의 목적이 전투력 향상과 그것을 위한 훈련이겠죠. 너무 그것에만 중점을 두다 보니까 장병들의 안전과 건강문제는 소홀히 한 것이지요. 병사들의 안전에 대한 욕구가 증대되는데 지휘 층에서 그것을 인식을 못 한다면 바로 사기 저하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창군 70년이 넘었지만, 육군은 2018년, 해군은 2019년에야 안전단이 꾸려졌습니다. 전 군을 아우르는 국방부 차원에서는 지난해 5월, 창설 이후 처음으로 안전정책을 총괄하는 '안전정책팀'을
신설했습니다. 안전에 대한 매뉴얼이 없지는 않았지만, 사고가 나면 개별 부대별로 대응하는 수준이었지, 위험 요소를 미리 파악해 사고 예방을 위한 위험 관리는 없었다는 진단에서입니다.

다음 취재에서는 이런 사고 이후, 그렇다면 군의 보상 시스템은 적절한지를 살펴봅니다.

●관련기사
[KBS 뉴스9] 저는 그저 운 없는 군인이었을까요?…안전사고로 매년 20명 사망
http://news.kbs.co.kr/news/view.do?ncd=5118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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