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통일운동가 백기완 선생 떠나다

입력 2021.02.15 (11:34) 수정 2021.02.15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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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발의 거리 투사' 백기완 통일운동문제연구소장이 오늘(15일) 오전 별세했습니다. 향년 89세입니다.

백기완 선생은 1932년에 태어나, 통일 운동과 민주화 운동에 매진하며 굴곡진 우리 역사 곳곳에 큰 발자취를 남겼습니다.


■ '싸우는 조국을 두고 혼자 유학 갈 수 없다'…통일운동에 헌신한 삶

1932년에 황해도 은율군에서 태어난 백 소장은 남북 분단의 아픔을 오롯이 겪었습니다. 가족들이 1945년 해방을 기점으로 남한과 북한에 뿔뿔이 흩어졌기 때문입니다. 백 소장은 해방되면서 아버지를 따라 서울로 내려오게 됐습니다.

이런 아픔을 직접 겪으면서 백 소장은 독학으로 통일 문제를 공부해 통일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비록 국민학교만 졸업했지만, 군 복무를 한 뒤 '해외유학장려회'에서 해외 유학을 권유받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유학 기회를 거절했다고 합니다. '싸우는 조국을 두고 혼자 유학 갈 수 없다'라는 이유였습니다.

1960년 4·19 혁명은 백 소장이 본격적으로 통일·민주화 운동을 시작한 계기가 됐습니다. 이후 1964년 한일협정 반대운동에 앞장섰고, 1974년 유신 반대 1백만인 서명운동을 이끌었습니다.

결국, 긴급조치 1호를 위반했다며 12년형을 선고받고 투옥됐다가, 형 집행 정지로 1975년에 풀려났습니다.

투옥이 백 소장의 투지를 꺾지는 못했습니다.

백 소장은 1979년 `YMCA 위장결혼 사건'과 1986년 `부천 권인숙 양 성고문 폭로 대회'를 주도한 혐의로 또 체포돼 옥고를 치렀습니다. 군사정권에 저항해 옥고를 치룬 대가는 혹독했습니다.

80kg이 넘던 백 소장의 몸무게가 40kg 아래로 줄었을 정도였습니다.


■ '임을 위한 행진곡'처럼…현대사 속에서 살아온 삶

시민과 학생들의 부름으로 백 소장은 두 차례 대선에 도전하기도 했습니다. 1987년 독자 민중후보로 출마했는데, 김영삼·김대중 후보의 단일화를 호소하며 사퇴했습니다.

4년 뒤, 독자 후보로 대선에 한 번 더 출마했습니다. 그 뒤로는 통일문제연구소를 설립하고 소장으로 지내왔습니다.


백 소장은 한국 민주화운동을 대표하는 민중가요 '임을 위한 행진곡'의 가사 원작자기도 합니다.

소설가 황석영 선생이 백 소장이 서울 서대문구치소에서 옥중 생활을 하면서 쓴 장편 시 <묏비나리>의 일부를 빌려 가사를 썼기 때문입니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데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앞서서 가나니 산 자여 따르라
앞서서 가나니 산 자여 따르라

-<임을 위한 행진곡> 가사


■ '이라크 파병 반대 집회·용산 참사 투쟁·광화문 촛불집회'…멈추지 않은 거리의 투사

백 소장은 진보 진영의 투쟁에 함께하는 '거리의 투사'였습니다. 2000년대에 들어서도 그의 발걸음은 거침없었습니다.

비정규직·해고 노동자들의 투쟁부터 이라크 파병 반대운동, 용산 참사 투쟁, 밀양 송전탑 반대운동 등 수많은 투쟁현장에 직접 함께했습니다.


이명박 정권퇴진운동과 박근혜 탄핵 촛불집회에서도 앞자리를 지켰습니다. 박 전 대통령의 탄핵을 요구한 광화문 촛불집회에는 23차례 모두 참여했습니다.

백 소장은 여러 소설과 평론·수필집을 낸 작가이기도 합니다. 가장 최근에 낸 책은 2019년에 출판한 <버선발 이야기>입니다. 이 소설에서 백 소장은 한자어와 외래어 하나 없이 순우리말로만 민중의 이야기를 한 글자씩 담았습니다.

"여보게, 아 여보게, 자네가 바로 참짜 노나메기일세, 노나메기.
야 이놈들아, 남의 목숨인 박땀, 안간 땀, 피땀만 뺏어 먹으려 들지 말고 너도 사람이라고 하면 너도나도 다 함께 박땀, 안간 땀, 피땀을 흘리자.
그리하여 너도 잘살고 나도 잘살되 올바로 잘사는 벗나래를 만들자. "

-소설 <버선발 이야기> 가운데 발췌

'너도 잘살고 나도 잘사는' 그런 벗나래(세상)을 꿈꾸며 직접 행동했던 백기완 소장의 뜻은 오랫동안 남아있을 것입니다.

백 소장의 빈소는 서울대병원에 마련됐고 발인은 19일 오전 8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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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통일운동가 백기완 선생 떠나다
    • 입력 2021-02-15 11:34:10
    • 수정2021-02-15 17:39:04
    취재K

'백발의 거리 투사' 백기완 통일운동문제연구소장이 오늘(15일) 오전 별세했습니다. 향년 89세입니다.

백기완 선생은 1932년에 태어나, 통일 운동과 민주화 운동에 매진하며 굴곡진 우리 역사 곳곳에 큰 발자취를 남겼습니다.


■ '싸우는 조국을 두고 혼자 유학 갈 수 없다'…통일운동에 헌신한 삶

1932년에 황해도 은율군에서 태어난 백 소장은 남북 분단의 아픔을 오롯이 겪었습니다. 가족들이 1945년 해방을 기점으로 남한과 북한에 뿔뿔이 흩어졌기 때문입니다. 백 소장은 해방되면서 아버지를 따라 서울로 내려오게 됐습니다.

이런 아픔을 직접 겪으면서 백 소장은 독학으로 통일 문제를 공부해 통일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비록 국민학교만 졸업했지만, 군 복무를 한 뒤 '해외유학장려회'에서 해외 유학을 권유받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유학 기회를 거절했다고 합니다. '싸우는 조국을 두고 혼자 유학 갈 수 없다'라는 이유였습니다.

1960년 4·19 혁명은 백 소장이 본격적으로 통일·민주화 운동을 시작한 계기가 됐습니다. 이후 1964년 한일협정 반대운동에 앞장섰고, 1974년 유신 반대 1백만인 서명운동을 이끌었습니다.

결국, 긴급조치 1호를 위반했다며 12년형을 선고받고 투옥됐다가, 형 집행 정지로 1975년에 풀려났습니다.

투옥이 백 소장의 투지를 꺾지는 못했습니다.

백 소장은 1979년 `YMCA 위장결혼 사건'과 1986년 `부천 권인숙 양 성고문 폭로 대회'를 주도한 혐의로 또 체포돼 옥고를 치렀습니다. 군사정권에 저항해 옥고를 치룬 대가는 혹독했습니다.

80kg이 넘던 백 소장의 몸무게가 40kg 아래로 줄었을 정도였습니다.


■ '임을 위한 행진곡'처럼…현대사 속에서 살아온 삶

시민과 학생들의 부름으로 백 소장은 두 차례 대선에 도전하기도 했습니다. 1987년 독자 민중후보로 출마했는데, 김영삼·김대중 후보의 단일화를 호소하며 사퇴했습니다.

4년 뒤, 독자 후보로 대선에 한 번 더 출마했습니다. 그 뒤로는 통일문제연구소를 설립하고 소장으로 지내왔습니다.


백 소장은 한국 민주화운동을 대표하는 민중가요 '임을 위한 행진곡'의 가사 원작자기도 합니다.

소설가 황석영 선생이 백 소장이 서울 서대문구치소에서 옥중 생활을 하면서 쓴 장편 시 <묏비나리>의 일부를 빌려 가사를 썼기 때문입니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데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앞서서 가나니 산 자여 따르라
앞서서 가나니 산 자여 따르라

-<임을 위한 행진곡> 가사


■ '이라크 파병 반대 집회·용산 참사 투쟁·광화문 촛불집회'…멈추지 않은 거리의 투사

백 소장은 진보 진영의 투쟁에 함께하는 '거리의 투사'였습니다. 2000년대에 들어서도 그의 발걸음은 거침없었습니다.

비정규직·해고 노동자들의 투쟁부터 이라크 파병 반대운동, 용산 참사 투쟁, 밀양 송전탑 반대운동 등 수많은 투쟁현장에 직접 함께했습니다.


이명박 정권퇴진운동과 박근혜 탄핵 촛불집회에서도 앞자리를 지켰습니다. 박 전 대통령의 탄핵을 요구한 광화문 촛불집회에는 23차례 모두 참여했습니다.

백 소장은 여러 소설과 평론·수필집을 낸 작가이기도 합니다. 가장 최근에 낸 책은 2019년에 출판한 <버선발 이야기>입니다. 이 소설에서 백 소장은 한자어와 외래어 하나 없이 순우리말로만 민중의 이야기를 한 글자씩 담았습니다.

"여보게, 아 여보게, 자네가 바로 참짜 노나메기일세, 노나메기.
야 이놈들아, 남의 목숨인 박땀, 안간 땀, 피땀만 뺏어 먹으려 들지 말고 너도 사람이라고 하면 너도나도 다 함께 박땀, 안간 땀, 피땀을 흘리자.
그리하여 너도 잘살고 나도 잘살되 올바로 잘사는 벗나래를 만들자. "

-소설 <버선발 이야기> 가운데 발췌

'너도 잘살고 나도 잘사는' 그런 벗나래(세상)을 꿈꾸며 직접 행동했던 백기완 소장의 뜻은 오랫동안 남아있을 것입니다.

백 소장의 빈소는 서울대병원에 마련됐고 발인은 19일 오전 8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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