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그저 운 없는 군인이었을까요?…안전사고로 매년 20명 사망

입력 2021.02.15 (21:25) 수정 2021.02.15 (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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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신성한 의무다, 가능하다면 피하고 싶다, 이 극과 극의 표현이 혼용되는 곳, 바로 군대입니다.

병역의 의무는 대다수 대한민국 남성에게 피할 수 없는 의무입니다.

입대를 고의로 피했다가는 처벌이 따르죠.

그렇다면 개인의 의무를 다 하는 청년들에게 국가는 책임을 다 하고 있는지, KBS는 올해 이 부분을 집중적으로 들여다보려 합니다.

가야만 하는 군대가 갈 만한 군대의 모습인가, 하는 질문입니다.

먼저 오늘(15일)은 '군은 안전한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합니다.

취재팀은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상황에서의 사고를 통해 군 내 안전 사고 실태는 어떤지 또, 사고 때 군의 대응은 적절하고, 충분한지 짚어봤습니다.

신선민, 조빛나 기자입니다.

[리포트]

[백현민/2012~2014년 육군 OO부대 행정병 복무 : "누울 때도 아프고, 앉아 있어도, 걸을 때도, 뭔가를 하고 의식이 있으면 계속 아프니까…"]

매일 찌르는 듯한 통증과 싸운다는 서른 살 백현민 씨.

하루 3번 진통제와 정신과 약을 복용할 때마다 그날이 떠오릅니다.

22살, 제대를 반년 앞둔 어느 날이었습니다.

폭설로 제설작업이 한창이던 부대, 취사장 지붕의 눈을 치우러 올라오라는 간부의 말에 백씨는 '네' 하고 삽을 들고 올라갔습니다.

지붕에 발을 내딛은 순간, 다른 발을 지탱하던 사다리가 접혔습니다.

그리고 3미터 아래 콘크리트 바닥에 추락했습니다.

[백현민 : "하필 떨어진 데가 눈을 다 치운 콘크리트 바닥이라…"]

손목뼈가 스무 조각으로 으스러져 긴 수술을 받았습니다.

삶은 이날 이전으론 돌아갈 수 없게 됐습니다.

손목을 굽힐 수 없게 됐고, 일상은 힘에 부칩니다.

[백현민 : "펜 잡고 계속 필기하는 게 저한테는 제일 어려웠던 것 같고, 문제가 왼손의 반 정도 밖에 힘을 못 써서…"]

입대 전 경호원을 꿈꾸며 경호학과에 진학했던 백씨, 꿈은 그야말로 꿈이 됐습니다.

제대 후 보훈보상 6급 판정으로 월 90여만원 연금을 받아 생활합니다.

[백현민 : "(연금) 90만 원 받는 것보다 내 힘으로 100만 원 받는 게 더 낫죠. 입대하기 전에 생각하던 장래희망 같은 건 이미 날아가 버린 것 같고…"]

당시 해당 부대 문서를 살펴봤습니다.

사고 사흘 전, 부대에는 '지붕위 작업 금지' 명령이 내려왔습니다.

지붕 위에 올라가더라도 로프를 쓰게 했습니다.

[백현민 : "정보공개 청구해서 (직접) 확인해보니까 (안전 지침이 있었습니다.) 간부라도‘너 그거 착용 안 하고 올라가면 안돼’딱 그런 식으로 제지라도 했을 텐데…"]

단순한 명령이 현장에서 무시된 결과, 20대 청년은 언제 나아질지 기약없는 후유증을 안게 됐습니다.

KBS 뉴스 신선민입니다.

▼ ‘요즘 군대’라지만 안전사고로 매년 20년 사망 ▼

군이 많이 좋아졌다고 하지만, 이렇게 눈을 치우다 사고가 나기도 합니다.

군 내 안전사고 현황을 확인해 봤더니, 최근 5년간, 한해 70건 정도의 사고가 나고, 해마다 20명 정도가 숨졌습니다.

육군에선 장갑차나 군용트럭을 몰다 나는 교통사고가 잦았고, 해군에선 함정이 입항할 때 배가 떠내려가지 않게 묶는 홋줄 작업을 하다 사고가 반복됐습니다.

군에선 장비 조작이 미숙했다, 부주의했다, 대부분 이렇게 평가합니다.

사고 원인이 개인 탓이 되는 건데요.

과연 그런지, 앞선 백현민씨 사례로 돌아가 봅니다.

기상관측 103년 만에 가장 긴 시간 내린 폭설, 당시 동해안에는 103년 만의 폭설이 내렸습니다.

군단에서 장비 없이 지붕위 작업을 하지 말라는 명령을 내렸는데도, 현장은 달랐습니다.

이렇게 병사가 지붕에서 무방비로 눈을 치우고 있었습니다.

다른 지역에서 찍힌 사진을 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제설이란 목표 앞에서 안전이란 명령은 밀린 겁니다.

[이동경/우송대 교수/국방안전자문위원 : "군은 존재의 목적이 전투력 향상과 훈련이겠죠. 너무 그것에만 중점을 두다보니까 장병들의 안전과 건강문제는 소홀해졌죠. 군에서의 안전에 대한 정착은 톱다운 방식입니다. 최고 경영자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느냐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국방부는 지난해, 안전 정책을 다룰 컨트롤타워를 만들었습니다.

사고가 나도 부대별로 수습하는데 급급했을 뿐, 체계적인 조사나 위험 관리가 없었다는 자체 진단에서입니다.

KBS 뉴스 조빛나입니다.

촬영기자:오범석·임태호/영상편집:박주연·이윤진/그래픽:채상우·최창준·고석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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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는 그저 운 없는 군인이었을까요?…안전사고로 매년 20명 사망
    • 입력 2021-02-15 21:25:06
    • 수정2021-02-15 22:04:30
    뉴스 9
[앵커]

신성한 의무다, 가능하다면 피하고 싶다, 이 극과 극의 표현이 혼용되는 곳, 바로 군대입니다.

병역의 의무는 대다수 대한민국 남성에게 피할 수 없는 의무입니다.

입대를 고의로 피했다가는 처벌이 따르죠.

그렇다면 개인의 의무를 다 하는 청년들에게 국가는 책임을 다 하고 있는지, KBS는 올해 이 부분을 집중적으로 들여다보려 합니다.

가야만 하는 군대가 갈 만한 군대의 모습인가, 하는 질문입니다.

먼저 오늘(15일)은 '군은 안전한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합니다.

취재팀은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상황에서의 사고를 통해 군 내 안전 사고 실태는 어떤지 또, 사고 때 군의 대응은 적절하고, 충분한지 짚어봤습니다.

신선민, 조빛나 기자입니다.

[리포트]

[백현민/2012~2014년 육군 OO부대 행정병 복무 : "누울 때도 아프고, 앉아 있어도, 걸을 때도, 뭔가를 하고 의식이 있으면 계속 아프니까…"]

매일 찌르는 듯한 통증과 싸운다는 서른 살 백현민 씨.

하루 3번 진통제와 정신과 약을 복용할 때마다 그날이 떠오릅니다.

22살, 제대를 반년 앞둔 어느 날이었습니다.

폭설로 제설작업이 한창이던 부대, 취사장 지붕의 눈을 치우러 올라오라는 간부의 말에 백씨는 '네' 하고 삽을 들고 올라갔습니다.

지붕에 발을 내딛은 순간, 다른 발을 지탱하던 사다리가 접혔습니다.

그리고 3미터 아래 콘크리트 바닥에 추락했습니다.

[백현민 : "하필 떨어진 데가 눈을 다 치운 콘크리트 바닥이라…"]

손목뼈가 스무 조각으로 으스러져 긴 수술을 받았습니다.

삶은 이날 이전으론 돌아갈 수 없게 됐습니다.

손목을 굽힐 수 없게 됐고, 일상은 힘에 부칩니다.

[백현민 : "펜 잡고 계속 필기하는 게 저한테는 제일 어려웠던 것 같고, 문제가 왼손의 반 정도 밖에 힘을 못 써서…"]

입대 전 경호원을 꿈꾸며 경호학과에 진학했던 백씨, 꿈은 그야말로 꿈이 됐습니다.

제대 후 보훈보상 6급 판정으로 월 90여만원 연금을 받아 생활합니다.

[백현민 : "(연금) 90만 원 받는 것보다 내 힘으로 100만 원 받는 게 더 낫죠. 입대하기 전에 생각하던 장래희망 같은 건 이미 날아가 버린 것 같고…"]

당시 해당 부대 문서를 살펴봤습니다.

사고 사흘 전, 부대에는 '지붕위 작업 금지' 명령이 내려왔습니다.

지붕 위에 올라가더라도 로프를 쓰게 했습니다.

[백현민 : "정보공개 청구해서 (직접) 확인해보니까 (안전 지침이 있었습니다.) 간부라도‘너 그거 착용 안 하고 올라가면 안돼’딱 그런 식으로 제지라도 했을 텐데…"]

단순한 명령이 현장에서 무시된 결과, 20대 청년은 언제 나아질지 기약없는 후유증을 안게 됐습니다.

KBS 뉴스 신선민입니다.

▼ ‘요즘 군대’라지만 안전사고로 매년 20년 사망 ▼

군이 많이 좋아졌다고 하지만, 이렇게 눈을 치우다 사고가 나기도 합니다.

군 내 안전사고 현황을 확인해 봤더니, 최근 5년간, 한해 70건 정도의 사고가 나고, 해마다 20명 정도가 숨졌습니다.

육군에선 장갑차나 군용트럭을 몰다 나는 교통사고가 잦았고, 해군에선 함정이 입항할 때 배가 떠내려가지 않게 묶는 홋줄 작업을 하다 사고가 반복됐습니다.

군에선 장비 조작이 미숙했다, 부주의했다, 대부분 이렇게 평가합니다.

사고 원인이 개인 탓이 되는 건데요.

과연 그런지, 앞선 백현민씨 사례로 돌아가 봅니다.

기상관측 103년 만에 가장 긴 시간 내린 폭설, 당시 동해안에는 103년 만의 폭설이 내렸습니다.

군단에서 장비 없이 지붕위 작업을 하지 말라는 명령을 내렸는데도, 현장은 달랐습니다.

이렇게 병사가 지붕에서 무방비로 눈을 치우고 있었습니다.

다른 지역에서 찍힌 사진을 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제설이란 목표 앞에서 안전이란 명령은 밀린 겁니다.

[이동경/우송대 교수/국방안전자문위원 : "군은 존재의 목적이 전투력 향상과 훈련이겠죠. 너무 그것에만 중점을 두다보니까 장병들의 안전과 건강문제는 소홀해졌죠. 군에서의 안전에 대한 정착은 톱다운 방식입니다. 최고 경영자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느냐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국방부는 지난해, 안전 정책을 다룰 컨트롤타워를 만들었습니다.

사고가 나도 부대별로 수습하는데 급급했을 뿐, 체계적인 조사나 위험 관리가 없었다는 자체 진단에서입니다.

KBS 뉴스 조빛나입니다.

촬영기자:오범석·임태호/영상편집:박주연·이윤진/그래픽:채상우·최창준·고석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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