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저출산 예산 200조 원 썼다는데…전문가들 “착시 효과”

입력 2021.02.16 (08:00) 수정 2021.02.16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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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산 예산, 어디에 쓰였나?"

지난 15년간 저출산 예산 규모는 200조 원이 넘습니다. 올해는 46조 원가량이 저출산 예산으로 편성됐습니다.

하지만 정작 가정에 대한 '직접 지원'은 여전히 OECD 평균보다도 낮다는 KBS 보도가 나간 뒤 '그렇다면 저출산 예산은 도대체 어디에 쓰인 것이냐'는 의문이 많았습니다.

기사에 달린 한 댓글의 주장처럼, 지난해 저출산 예산은 40조 원인데 출생한 신생아 수는 28만 명입니다. 그렇다면 산술적으로는 신생아 한 명당 매해 1억 원 넘게 지급하는 것이 가능하단 계산이 나옵니다.

하지만 현실은 다릅니다. 모든 0세와 1세 영아에게 지급하는 양육수당은 매달 30만 원. 한해 360만 원으로 책정됐습니다.

기대와 현실 사이에 이처럼 큰 차이가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먼저 '저출산 예산'이란 개념 자체가 모호하다는 데 있습니다. '저출산 예산'은 학계나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개념이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만 정책의 편의를 위해 임의로 사용하는 용어입니다.

보건 복지 전문가들이나 OECD 등 국제기구는 육아나 보육에 '직접 지원'하는 예산만을, 우리가 통상 '저출산 예산'이라고 부르는 예산으로 인정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저출산을 막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사업에 투입되는 예산이면 모두 '저출산 예산' 범주에 포함합니다. 그렇다 보니 주거·고용 지원 등의 예산이 모두 '간접 지원' 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저출산 예산'으로 분류됩니다.


우리나라에만 있는 '저출산 예산'

여기에 '저출산 예산'을 산정하는 기준 역시 임의적입니다. 대표적인 '간접 지원' 예산인 주거 지원 사업의 경우 청년·신혼부부에 대한 주택자금 대출 사업과 임대주택사업이 핵심입니다.

그런데 대출 사업의 경우 대출 원금 전액을, 임대 주택 사업에는 주택 건축비를 반영합니다. 다시 보전이 되는 자본 예산이란 점이 반영되지 않아 예산 규모가 클 수밖에 없습니다.

5년 치 저출산 예산을 분석해보니, 청년·신혼부부 주거 지원 사업은 5년 새 8배 넘게 증가해 지난해 약 18조 원이 편성됐습니다. 지난해 저출산 예산의 44.8%를 차지합니다.

다른 '간접 지원' 예산인 고용과 교육 분야 예산도 큰 폭으로 증가했습니다. 한국형 실업 부조 예산이 지난해 2천 7백억 원에서 8천 2백억 원으로 199%가량 증가했고 고교 무상 교육 등 교육 분야 간접 지원 예산도 지난해 1조 5천억 원에서 올해 2조 천억 원으로 39% 넘게 증가했습니다.

그런데 청년·신혼부부 주거 지원, 한국형 실업부조와 고교 무상 교육 사업 등은 저출산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가 아니더라도, 투입돼야 할 예산들입니다.

한편 '직접지원' 예산은 오히려 줄어드는 추세입니다. 지난해 19조 원에서 올해 18조 8천억여 원으로 0.93% 줄었습니다.

영유아 보육료, 유아 교육비, 육아종합지원센터, 초등 돌봄 교실 확충 등 아이 돌봄을 위해 필수적인 사업 예산은 모두 지난해와 비교했을 때 같거나 줄었습니다.

특히 예방 접종 등 필수적인 의료 지원과 어린이집 등 서비스 지원을 뺀 순수 현금 지원은 6조 원 정도로 지난해보다 천억 원 넘게 줄었습니다.

정부가 매년 획기적으로 늘려 15년간 200조 원을 투입한 '저출산 예산'은 실제로 '저출산'에 대응하기 위해 '직접' 쓰이진 않았던 셈입니다. 신생아 한 명당 1억 원의 지원도 가능하단 일부의 기대가 어긋났던 이유기도 합니다.


■ "저출산 예산 편성, 정부 정책에 대한 불신만 키워"

전문가들은 이 같은 '착시 예산'의 책임은 예산을 편성하는 정부와 국회에 있다고 지적합니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저출산에 대응하는 정부의 정책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서 정부가 '저출산 예산'을 임의로 나눈 점이 있는데 이것이 오히려 실체도 없는 정책효과에 대한 불신을 조장하는 요인이 됐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아동이 성장하고 자라는 성장 환경의 질적 수준을 높일 수 있는 방향으로 예산을 집중적으로 투입하기 위해서는 OECD 기준 가족 지원 정책의 예산을 늘리는 방식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강미정 '정치하는 엄마들' 공동대표는 "저출산이 문제라고는 하지만 당장 투표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뒷순위로 밀린다"며 "정부 부처에서도 저출산을 막기 위해 노력하고 있단 것을 보여주기 위한 예산 편성에 나선 결과"라고 꼬집었습니다.

15년간 누적돼 온 '저출산 대책'에 대한 불신을 줄이기 위해서는, 가정에 직접적으로 보탬이 되지도 않으면서 규모만 키워온 '저출산 예산'의 착시 효과부터 거둬야 한다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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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저출산 예산 200조 원 썼다는데…전문가들 “착시 효과”
    • 입력 2021-02-16 08:00:07
    • 수정2021-02-16 08:00:38
    취재후·사건후

"저출산 예산, 어디에 쓰였나?"

지난 15년간 저출산 예산 규모는 200조 원이 넘습니다. 올해는 46조 원가량이 저출산 예산으로 편성됐습니다.

하지만 정작 가정에 대한 '직접 지원'은 여전히 OECD 평균보다도 낮다는 KBS 보도가 나간 뒤 '그렇다면 저출산 예산은 도대체 어디에 쓰인 것이냐'는 의문이 많았습니다.

기사에 달린 한 댓글의 주장처럼, 지난해 저출산 예산은 40조 원인데 출생한 신생아 수는 28만 명입니다. 그렇다면 산술적으로는 신생아 한 명당 매해 1억 원 넘게 지급하는 것이 가능하단 계산이 나옵니다.

하지만 현실은 다릅니다. 모든 0세와 1세 영아에게 지급하는 양육수당은 매달 30만 원. 한해 360만 원으로 책정됐습니다.

기대와 현실 사이에 이처럼 큰 차이가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먼저 '저출산 예산'이란 개념 자체가 모호하다는 데 있습니다. '저출산 예산'은 학계나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개념이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만 정책의 편의를 위해 임의로 사용하는 용어입니다.

보건 복지 전문가들이나 OECD 등 국제기구는 육아나 보육에 '직접 지원'하는 예산만을, 우리가 통상 '저출산 예산'이라고 부르는 예산으로 인정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저출산을 막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사업에 투입되는 예산이면 모두 '저출산 예산' 범주에 포함합니다. 그렇다 보니 주거·고용 지원 등의 예산이 모두 '간접 지원' 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저출산 예산'으로 분류됩니다.


우리나라에만 있는 '저출산 예산'

여기에 '저출산 예산'을 산정하는 기준 역시 임의적입니다. 대표적인 '간접 지원' 예산인 주거 지원 사업의 경우 청년·신혼부부에 대한 주택자금 대출 사업과 임대주택사업이 핵심입니다.

그런데 대출 사업의 경우 대출 원금 전액을, 임대 주택 사업에는 주택 건축비를 반영합니다. 다시 보전이 되는 자본 예산이란 점이 반영되지 않아 예산 규모가 클 수밖에 없습니다.

5년 치 저출산 예산을 분석해보니, 청년·신혼부부 주거 지원 사업은 5년 새 8배 넘게 증가해 지난해 약 18조 원이 편성됐습니다. 지난해 저출산 예산의 44.8%를 차지합니다.

다른 '간접 지원' 예산인 고용과 교육 분야 예산도 큰 폭으로 증가했습니다. 한국형 실업 부조 예산이 지난해 2천 7백억 원에서 8천 2백억 원으로 199%가량 증가했고 고교 무상 교육 등 교육 분야 간접 지원 예산도 지난해 1조 5천억 원에서 올해 2조 천억 원으로 39% 넘게 증가했습니다.

그런데 청년·신혼부부 주거 지원, 한국형 실업부조와 고교 무상 교육 사업 등은 저출산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가 아니더라도, 투입돼야 할 예산들입니다.

한편 '직접지원' 예산은 오히려 줄어드는 추세입니다. 지난해 19조 원에서 올해 18조 8천억여 원으로 0.93% 줄었습니다.

영유아 보육료, 유아 교육비, 육아종합지원센터, 초등 돌봄 교실 확충 등 아이 돌봄을 위해 필수적인 사업 예산은 모두 지난해와 비교했을 때 같거나 줄었습니다.

특히 예방 접종 등 필수적인 의료 지원과 어린이집 등 서비스 지원을 뺀 순수 현금 지원은 6조 원 정도로 지난해보다 천억 원 넘게 줄었습니다.

정부가 매년 획기적으로 늘려 15년간 200조 원을 투입한 '저출산 예산'은 실제로 '저출산'에 대응하기 위해 '직접' 쓰이진 않았던 셈입니다. 신생아 한 명당 1억 원의 지원도 가능하단 일부의 기대가 어긋났던 이유기도 합니다.


■ "저출산 예산 편성, 정부 정책에 대한 불신만 키워"

전문가들은 이 같은 '착시 예산'의 책임은 예산을 편성하는 정부와 국회에 있다고 지적합니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저출산에 대응하는 정부의 정책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서 정부가 '저출산 예산'을 임의로 나눈 점이 있는데 이것이 오히려 실체도 없는 정책효과에 대한 불신을 조장하는 요인이 됐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아동이 성장하고 자라는 성장 환경의 질적 수준을 높일 수 있는 방향으로 예산을 집중적으로 투입하기 위해서는 OECD 기준 가족 지원 정책의 예산을 늘리는 방식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강미정 '정치하는 엄마들' 공동대표는 "저출산이 문제라고는 하지만 당장 투표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뒷순위로 밀린다"며 "정부 부처에서도 저출산을 막기 위해 노력하고 있단 것을 보여주기 위한 예산 편성에 나선 결과"라고 꼬집었습니다.

15년간 누적돼 온 '저출산 대책'에 대한 불신을 줄이기 위해서는, 가정에 직접적으로 보탬이 되지도 않으면서 규모만 키워온 '저출산 예산'의 착시 효과부터 거둬야 한다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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