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옆자리 성범죄…경찰은 왜 ‘공연음란죄’만 적용?

입력 2021.02.16 (18:21)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고속버스 안 성범죄고속버스 안 성범죄

■ “무서웠고, 무력했다” 3시간 버스 여행 동안 옆자리서 성범죄

최근 달리는 고속버스 안에서 벌어진 성범죄입니다. 사뭇 혐오스럽고 거북한 장면이라 동영상 캡처 사진만 봐선 무슨 일인지 선뜻 알기 어렵게 편집했습니다.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는 글로 설명하겠습니다. 그마저도 행위 자체에 대해선 자세히 쓰진 않겠습니다.

부산에 사는 20대 여성 A 씨는 지난달 23일, 전북 전주로 가는 버스에 올라탔습니다. 창가 자리에 앉았는데, 곧 옆자리 주인이 와 나란히 앉게 됐습니다. 30대 남성이었습니다. 코로나19 탓에 만원 버스가 불편했지만, 진짜 불편과 공포는 곧 다른 일로 찾아왔습니다. 옆자리 남성이 갑자기 자신의 신체를 드러낸 겁니다.

■ 용기 내 경찰 신고…휴대전화 촬영으로 증거 남겨

A 씨는 버스가 어서 휴게소에 들르길 바랐습니다. 화장실에 다녀오는 척 자리를 바꿔 앉을 계산이었는데, 그러나 막상 휴게소에 도착했을 때 빈자리 없는 만석임을 확인하고 또 좌절했습니다. 결국, 원래 자리로 가 앉았고 버스가 출발하자 옆자리 남성은 다시 그 일을 벌였습니다.

버스 기사를 붙들고 도움을 청하지 못했던 건 갇힌 공간, 달리는 버스 안에서 남성으로부터 어떤 해코지를 당할지 가늠이 어려워서였다고 A 씨는 고백합니다.

무력감과 공포감 속에 A 씨는 용기를 짜내 경찰에 문자메시지로 이 남성을 신고했습니다. 두려웠지만, 어떻게든 증거를 남기려는 안간힘으로 휴대전화를 꺼내 들어 몰래 끔찍한 상황을 촬영했습니다.

피해자 A 씨가 받은 수사결과 통지서피해자 A 씨가 받은 수사결과 통지서

■ 성범죄 피해 극심한데…경찰은 ‘공연음란’만 적용?

3시간 만에 버스는 터미널에 도착했고, 남성은 경찰에 붙잡혔습니다. 현장에서 검거된 데다 피해 사실이 진술에 그치지 않고 명백한 증거까지 갖춘 덕에 A 씨는 남성이 호된 처벌을 받을 걸로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남성은 얼마간의 조사 뒤 곧 풀려났고, 경찰이 적용한 혐의는 '공연음란'에 그쳤습니다.

A 씨는 반발합니다. 사건 직후부터 정신과 치료와 약물치료를 받고 있지만, 상태는 나아지지 않고 무의식에 헛구역질을 반복하고 있다고 호소합니다. 폭력에 대한 피해가 심각하다는 증언입니다.

또 A 씨는 남성의 범행이 자신을 향한 완벽한 고의였다고 말합니다. 동영상을 보면 남성은 자신의 옷으로 한쪽은 가린 채 온전히 A 씨를 향해서 신체를 노출했습니다. A 씨는 이게 왜 '강제추행'이 아닌지 답답해하고 있습니다.

이제 '공연음란'과 '강제추행'의 차이를 따져보겠습니다.


■ ‘바바리맨’은 공연음란일까, 성추행일까?

제22장 성풍속에 관한 죄
제245조(공연음란) 공연히 음란한 행위를 한 자는 1년 이하의 징역, 500만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에 처한다.

제32장 강간과 추행의 죄
제298조(강제추행)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에 대하여 추행을 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불특정한 누군가 볼 수 있는 곳에서 공공연히 음란행위를 한 '바바리맨'은 '공연음란죄'로 처벌받습니다. 이 죄를 꾸짖어 지키고자 하는 건 선량한 성도덕과 성풍속이라는 공공의 안녕이지요. 그러니까 공연음란죄를 두고 벌할 땐 특정인만 피해자가 된 것으로는 판단하지 않겠다는 배경이 있습니다.

강제추행죄는 다릅니다. 이는 성적 자유 침해에 대한 범죄이므로 피해자가 분명히 있습니다. 또 범행을 저지르면서 협박이나 폭행을 수단으로 썼는지를 따집니다. 강제추행이 당연히 더 무거운 죄입니다. 공연음란죄는 형량이 최고 징역 1년, 강제추행죄는 최고 10년입니다. 여기에 신상정보 공개와 취업제한 명령도 함께 청구할 수 있습니다.

두 죄목이 구분된다면, 이제 최근 나온 법원 판결을 하나 소개합니다. 한 20대 남성이 버스정류장 의자에 앉아있던 여고생 뒤로 다가가 음란행위를 하고 흔적을 남겼습니다. 이 남성은 여고생을 건드리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바바리맨' 이야기처럼 얼핏 공연음란죄로 볼 여지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남성은 '강제추행죄'로 처벌됐습니다.

■ “직접 닿지 않아도, ‘물리력’ 없어도 강제추행”

앞서 소개한 판결에서 재판부는 "의도적으로 피해자를 향해 음란행위를 했으며, 이는 신체 접촉을 한 경우와 동등한 정도의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불러일으킨다고 볼 수 있다"고 판시했습니다.

범인이 실제 물리적 힘을 가했는지, 그 정도가 저항할 수 없을 정도였는지만을 '폭행이나 협박'의 기준으로 삼지 않겠다는 취지입니다. 강제추행을 폭넓게 인정한 사례이지요.

여기까지 읽어보셨다면, 이제 이번 '고속버스 음란행위' 사건을 두고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성적 수치심과 혐오감을 느꼈을 피해자는 A 씨로 특정될 여지가 큽니다. 특히 갇힌 공간에서의 압박감은 물리력은 없었으나 충분히 폭력적이었을 것으로 해석하는 것 역시 가능합니다.

사건은 검찰에 넘겨졌습니다. '공연음란죄'와 '강제추행' 과연 어떤 죄목으로 옆자리 남자를 법 심판대 위에 세울지 궁금해집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버스 옆자리 성범죄…경찰은 왜 ‘공연음란죄’만 적용?
    • 입력 2021-02-16 18:21:27
    취재K
고속버스 안 성범죄
■ “무서웠고, 무력했다” 3시간 버스 여행 동안 옆자리서 성범죄

최근 달리는 고속버스 안에서 벌어진 성범죄입니다. 사뭇 혐오스럽고 거북한 장면이라 동영상 캡처 사진만 봐선 무슨 일인지 선뜻 알기 어렵게 편집했습니다.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는 글로 설명하겠습니다. 그마저도 행위 자체에 대해선 자세히 쓰진 않겠습니다.

부산에 사는 20대 여성 A 씨는 지난달 23일, 전북 전주로 가는 버스에 올라탔습니다. 창가 자리에 앉았는데, 곧 옆자리 주인이 와 나란히 앉게 됐습니다. 30대 남성이었습니다. 코로나19 탓에 만원 버스가 불편했지만, 진짜 불편과 공포는 곧 다른 일로 찾아왔습니다. 옆자리 남성이 갑자기 자신의 신체를 드러낸 겁니다.

■ 용기 내 경찰 신고…휴대전화 촬영으로 증거 남겨

A 씨는 버스가 어서 휴게소에 들르길 바랐습니다. 화장실에 다녀오는 척 자리를 바꿔 앉을 계산이었는데, 그러나 막상 휴게소에 도착했을 때 빈자리 없는 만석임을 확인하고 또 좌절했습니다. 결국, 원래 자리로 가 앉았고 버스가 출발하자 옆자리 남성은 다시 그 일을 벌였습니다.

버스 기사를 붙들고 도움을 청하지 못했던 건 갇힌 공간, 달리는 버스 안에서 남성으로부터 어떤 해코지를 당할지 가늠이 어려워서였다고 A 씨는 고백합니다.

무력감과 공포감 속에 A 씨는 용기를 짜내 경찰에 문자메시지로 이 남성을 신고했습니다. 두려웠지만, 어떻게든 증거를 남기려는 안간힘으로 휴대전화를 꺼내 들어 몰래 끔찍한 상황을 촬영했습니다.

피해자 A 씨가 받은 수사결과 통지서
■ 성범죄 피해 극심한데…경찰은 ‘공연음란’만 적용?

3시간 만에 버스는 터미널에 도착했고, 남성은 경찰에 붙잡혔습니다. 현장에서 검거된 데다 피해 사실이 진술에 그치지 않고 명백한 증거까지 갖춘 덕에 A 씨는 남성이 호된 처벌을 받을 걸로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남성은 얼마간의 조사 뒤 곧 풀려났고, 경찰이 적용한 혐의는 '공연음란'에 그쳤습니다.

A 씨는 반발합니다. 사건 직후부터 정신과 치료와 약물치료를 받고 있지만, 상태는 나아지지 않고 무의식에 헛구역질을 반복하고 있다고 호소합니다. 폭력에 대한 피해가 심각하다는 증언입니다.

또 A 씨는 남성의 범행이 자신을 향한 완벽한 고의였다고 말합니다. 동영상을 보면 남성은 자신의 옷으로 한쪽은 가린 채 온전히 A 씨를 향해서 신체를 노출했습니다. A 씨는 이게 왜 '강제추행'이 아닌지 답답해하고 있습니다.

이제 '공연음란'과 '강제추행'의 차이를 따져보겠습니다.


■ ‘바바리맨’은 공연음란일까, 성추행일까?

제22장 성풍속에 관한 죄
제245조(공연음란) 공연히 음란한 행위를 한 자는 1년 이하의 징역, 500만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에 처한다.

제32장 강간과 추행의 죄
제298조(강제추행)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에 대하여 추행을 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불특정한 누군가 볼 수 있는 곳에서 공공연히 음란행위를 한 '바바리맨'은 '공연음란죄'로 처벌받습니다. 이 죄를 꾸짖어 지키고자 하는 건 선량한 성도덕과 성풍속이라는 공공의 안녕이지요. 그러니까 공연음란죄를 두고 벌할 땐 특정인만 피해자가 된 것으로는 판단하지 않겠다는 배경이 있습니다.

강제추행죄는 다릅니다. 이는 성적 자유 침해에 대한 범죄이므로 피해자가 분명히 있습니다. 또 범행을 저지르면서 협박이나 폭행을 수단으로 썼는지를 따집니다. 강제추행이 당연히 더 무거운 죄입니다. 공연음란죄는 형량이 최고 징역 1년, 강제추행죄는 최고 10년입니다. 여기에 신상정보 공개와 취업제한 명령도 함께 청구할 수 있습니다.

두 죄목이 구분된다면, 이제 최근 나온 법원 판결을 하나 소개합니다. 한 20대 남성이 버스정류장 의자에 앉아있던 여고생 뒤로 다가가 음란행위를 하고 흔적을 남겼습니다. 이 남성은 여고생을 건드리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바바리맨' 이야기처럼 얼핏 공연음란죄로 볼 여지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남성은 '강제추행죄'로 처벌됐습니다.

■ “직접 닿지 않아도, ‘물리력’ 없어도 강제추행”

앞서 소개한 판결에서 재판부는 "의도적으로 피해자를 향해 음란행위를 했으며, 이는 신체 접촉을 한 경우와 동등한 정도의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불러일으킨다고 볼 수 있다"고 판시했습니다.

범인이 실제 물리적 힘을 가했는지, 그 정도가 저항할 수 없을 정도였는지만을 '폭행이나 협박'의 기준으로 삼지 않겠다는 취지입니다. 강제추행을 폭넓게 인정한 사례이지요.

여기까지 읽어보셨다면, 이제 이번 '고속버스 음란행위' 사건을 두고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성적 수치심과 혐오감을 느꼈을 피해자는 A 씨로 특정될 여지가 큽니다. 특히 갇힌 공간에서의 압박감은 물리력은 없었으나 충분히 폭력적이었을 것으로 해석하는 것 역시 가능합니다.

사건은 검찰에 넘겨졌습니다. '공연음란죄'와 '강제추행' 과연 어떤 죄목으로 옆자리 남자를 법 심판대 위에 세울지 궁금해집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