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가구 37%는 못 받은 ‘맞춤형’ 생계지원금

입력 2021.02.18 (07:01) 수정 2021.02.18 (2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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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이냐 선별이냐를 두고 갈피를 못 잡던 코로나19 4차 재난지원금의 방향이 맞춤형 선별지원으로 정리됐습니다.

그제(16일)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소상공인 지원에 대한 매출 기준을 기존 연 매출 4억 원 이하에서 10억 원 이하로 완화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언급하면서, 지급 대상을 선별하되 지원 수준은 2차나 3차 재난지원금보다 더 높이는 방향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옵니다.

■ 선별지원, 제대로 이뤄지고 있을까?

재난지원금을 둘러싼 ‘보편 대 선별’ 논의는 코로나19 이후 네 번째입니다. 지난해 봄 지급된 1차 재난지원금은 전 국민에게 보편적으로 지급됐고 2, 3차 때는 피해를 본 계층을 선별해 지원됐습니다.

선별 지원은 소상공인과 중소기업 등 코로나19로 피해를 많이 본 사람들에게 더 많은 지원금이 가도록 하겠다는 취지입니다. 이 취지에 맞게 예산이 집행되고 있을까요?

KBS 취재진은 보건복지부를 통해 2차 재난지원금 중 ‘위기 가구 긴급생계지원금’ 집행률을 확보해, 선별지원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 살펴봤습니다. 이른바 ‘사각지대 지원금’ 역할을 했던 지원금입니다.

■ ‘사각지대 지원금’ 생계지원금, 37%는 못 받아

잠시 지난해 하반기로 돌아가 볼까요. 2차 재난지원금이 선별지원으로 가닥을 잡자 사각지대에 대한 우려가 나왔습니다. 소상공인과 프리랜서·특수고용노동자 등 지원 대상 20여 곳을 선정하고 나면, 이 중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은 취약계층은 어떡하느냐는 겁니다.

그래서 만들어진 게 이 ‘위기 가구 긴급생계지원금’이었습니다. 본인의 소득을 증명하기 어려운 일용직 노동자와 아르바이트, 노점이나 좌판 등 무등록 소상공인이라 매출이 줄었다는 것을 증명하기 어려운 경우가 이 지원금 대상이었습니다.

코로나19로 소득이 25% 이상 감소했다면 가구당 100만 원씩을 지원하기로 하고, 총 55만여 가구가 신청할 것으로 추산해 예산 4천억 원이 배정됐습니다.


그런데 자료를 살펴보니 전국 집행률은 63%였습니다. 10가구 중 4가구는 이 지원금을 받지 못했습니다. 전국 17개 광역시·도 중 예산 절반도 집행하지 못한 곳이 5곳이었습니다. 위기 가구에 지급돼야 할 천2백억 원은 정부 예산으로 고스란히 남은 겁니다.

한 취업 준비생의 사례를 보면 이 사각지대 지원금이 제대로 집행되지 않은 이유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 “일용직이 고용주 서명을 어떻게 받나”

전남 순천에 사는 취업준비생 26살 임 모 씨는 일용직 행사 지원 아르바이트로 매달 30~40만 원을 벌어 생활비에 보태왔습니다. 하지만 코로나19 이후로 일자리가 끊겨 월수입이 몇만 원에 불과한 날들이 이어졌습니다.


인근 국가 정원에서 열리는 행사들이 젊은 계층 아르바이트 자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소도시 특성상, 다른 자리를 구하기도 쉽지 않았습니다. 결국 난생처음 대출까지 받은 임 씨에게 2차 재난지원금 소식은 가뭄 속 단비 같았습니다.

모든 서류를 준비했지만, 소득이 25% 이상 줄었다는 걸 입증하라는 마지막 서류 한 장이 발목을 잡았습니다. 고용주의 직접 서명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일용직 특성상 근로계약서는 받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고 모집 공고도 삭제돼버렸습니다. 고용 업체의 연락처는 물론 이름도 찾기 어려웠습니다.


결국, 임 씨는 지원금을 포기했습니다. ‘없는 돈 치자’며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그 돈이 있었다면 한 달 치 공과금을 내고 마스크도 살 수 있다 생각하니 속이 쓰렸습니다.

■ 대상자 선별 어려워

포기한 건 임 씨뿐 아닙니다. 서울의 한 구청 관계자는 “일용근로자들은 회사가 정해져 있지 않아 거기까지 가서 받아오는 건 어려움이 있었고, 영세사업자는 영세사업자 특성상 객관적 서류로 소득이나 매출을 증명할 수 없는 분들도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결국, 상당수가 발길을 돌렸습니다.

해당 지원금은 공적자료를 통해 어려움을 증명하기 어려운 저소득층을 위한 것이었는데, 되려 공적 자료를 엄밀하게 요구하다 보니 정작 지원금이 필요한 사람들이 도움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 된 겁니다.

힘든 건 신청하는 사람들뿐 아니었습니다. 또 다른 구청 관계자는 “서류를 통해 소득감소 25%를 입증한다는 건 굉장히 어려웠다”며 “민원을 처리하는 입장에서도 신청하는 민원인 입장에서도 쉽지 않았다”고 회상했습니다.

■ 부랴부랴 조건 완화

상황이 이렇다 보니 마감 나흘 전까지도 신청률이 10%에 그쳤습니다. 정부는 부랴부랴 지원 조건을 완화했습니다. 소득이 25% 이상 줄어야 한다는 기준을 대폭 완화해 소득이 1원이라도 줄었다면 증명서류를 따로 내지 않아도 신청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지원 마감 기한도 두 차례나 늘렸습니다.


대신 각 지자체에 설치된 긴급복지심의위원회가 신청자들을 검토해 지원 여부를 결정하는 절차를 추가로 만들었는데, 대부분의 자치구에서 별도의 심사 없이 서면 심의만으로 전원 통과시켰습니다.

하지만 이런 난관을 거치고도 최종 신청률은 63%에 불과했습니다. 이 지원금을 신청하리라 예상했던 10가구 중 4가구는 신청을 하지 않은 채 사업이 끝난 겁니다.

■ 취약 계층일수록 스스로 피해 입증 어려워

해당 사업의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는 “소득 감소를 신청인이 직접 증명하도록 한 부분이 크게 작용한 것 같다”며, “이후에 진행된 재난지원금에는 이런 성격의 생계지원금은 없어졌다”고 설명했습니다.

사회복지 전문가들도 취약한 계층일수록 본인의 피해 상황을 입증하기 어렵다는 점을 짚었습니다.

정순둘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정말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 대해 정확히 진단하지 못 했던 것”이라며, “시급성을 고려하더라도 전달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봉주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일용직이나 아르바이트 등 근로 조건이 불규칙하고 불안정한 분들일수록 소득 감소를 입증하기가 더 어렵다”며, “말 그대로 재난지원금인 만큼 특수한 상황을 고려해 선정 기준이나 입증 서류를 대폭 간소화·유연화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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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기가구 37%는 못 받은 ‘맞춤형’ 생계지원금
    • 입력 2021-02-18 07:01:33
    • 수정2021-02-18 22:22:34
    취재K

보편이냐 선별이냐를 두고 갈피를 못 잡던 코로나19 4차 재난지원금의 방향이 맞춤형 선별지원으로 정리됐습니다.

그제(16일)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소상공인 지원에 대한 매출 기준을 기존 연 매출 4억 원 이하에서 10억 원 이하로 완화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언급하면서, 지급 대상을 선별하되 지원 수준은 2차나 3차 재난지원금보다 더 높이는 방향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옵니다.

■ 선별지원, 제대로 이뤄지고 있을까?

재난지원금을 둘러싼 ‘보편 대 선별’ 논의는 코로나19 이후 네 번째입니다. 지난해 봄 지급된 1차 재난지원금은 전 국민에게 보편적으로 지급됐고 2, 3차 때는 피해를 본 계층을 선별해 지원됐습니다.

선별 지원은 소상공인과 중소기업 등 코로나19로 피해를 많이 본 사람들에게 더 많은 지원금이 가도록 하겠다는 취지입니다. 이 취지에 맞게 예산이 집행되고 있을까요?

KBS 취재진은 보건복지부를 통해 2차 재난지원금 중 ‘위기 가구 긴급생계지원금’ 집행률을 확보해, 선별지원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 살펴봤습니다. 이른바 ‘사각지대 지원금’ 역할을 했던 지원금입니다.

■ ‘사각지대 지원금’ 생계지원금, 37%는 못 받아

잠시 지난해 하반기로 돌아가 볼까요. 2차 재난지원금이 선별지원으로 가닥을 잡자 사각지대에 대한 우려가 나왔습니다. 소상공인과 프리랜서·특수고용노동자 등 지원 대상 20여 곳을 선정하고 나면, 이 중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은 취약계층은 어떡하느냐는 겁니다.

그래서 만들어진 게 이 ‘위기 가구 긴급생계지원금’이었습니다. 본인의 소득을 증명하기 어려운 일용직 노동자와 아르바이트, 노점이나 좌판 등 무등록 소상공인이라 매출이 줄었다는 것을 증명하기 어려운 경우가 이 지원금 대상이었습니다.

코로나19로 소득이 25% 이상 감소했다면 가구당 100만 원씩을 지원하기로 하고, 총 55만여 가구가 신청할 것으로 추산해 예산 4천억 원이 배정됐습니다.


그런데 자료를 살펴보니 전국 집행률은 63%였습니다. 10가구 중 4가구는 이 지원금을 받지 못했습니다. 전국 17개 광역시·도 중 예산 절반도 집행하지 못한 곳이 5곳이었습니다. 위기 가구에 지급돼야 할 천2백억 원은 정부 예산으로 고스란히 남은 겁니다.

한 취업 준비생의 사례를 보면 이 사각지대 지원금이 제대로 집행되지 않은 이유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 “일용직이 고용주 서명을 어떻게 받나”

전남 순천에 사는 취업준비생 26살 임 모 씨는 일용직 행사 지원 아르바이트로 매달 30~40만 원을 벌어 생활비에 보태왔습니다. 하지만 코로나19 이후로 일자리가 끊겨 월수입이 몇만 원에 불과한 날들이 이어졌습니다.


인근 국가 정원에서 열리는 행사들이 젊은 계층 아르바이트 자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소도시 특성상, 다른 자리를 구하기도 쉽지 않았습니다. 결국 난생처음 대출까지 받은 임 씨에게 2차 재난지원금 소식은 가뭄 속 단비 같았습니다.

모든 서류를 준비했지만, 소득이 25% 이상 줄었다는 걸 입증하라는 마지막 서류 한 장이 발목을 잡았습니다. 고용주의 직접 서명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일용직 특성상 근로계약서는 받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고 모집 공고도 삭제돼버렸습니다. 고용 업체의 연락처는 물론 이름도 찾기 어려웠습니다.


결국, 임 씨는 지원금을 포기했습니다. ‘없는 돈 치자’며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그 돈이 있었다면 한 달 치 공과금을 내고 마스크도 살 수 있다 생각하니 속이 쓰렸습니다.

■ 대상자 선별 어려워

포기한 건 임 씨뿐 아닙니다. 서울의 한 구청 관계자는 “일용근로자들은 회사가 정해져 있지 않아 거기까지 가서 받아오는 건 어려움이 있었고, 영세사업자는 영세사업자 특성상 객관적 서류로 소득이나 매출을 증명할 수 없는 분들도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결국, 상당수가 발길을 돌렸습니다.

해당 지원금은 공적자료를 통해 어려움을 증명하기 어려운 저소득층을 위한 것이었는데, 되려 공적 자료를 엄밀하게 요구하다 보니 정작 지원금이 필요한 사람들이 도움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 된 겁니다.

힘든 건 신청하는 사람들뿐 아니었습니다. 또 다른 구청 관계자는 “서류를 통해 소득감소 25%를 입증한다는 건 굉장히 어려웠다”며 “민원을 처리하는 입장에서도 신청하는 민원인 입장에서도 쉽지 않았다”고 회상했습니다.

■ 부랴부랴 조건 완화

상황이 이렇다 보니 마감 나흘 전까지도 신청률이 10%에 그쳤습니다. 정부는 부랴부랴 지원 조건을 완화했습니다. 소득이 25% 이상 줄어야 한다는 기준을 대폭 완화해 소득이 1원이라도 줄었다면 증명서류를 따로 내지 않아도 신청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지원 마감 기한도 두 차례나 늘렸습니다.


대신 각 지자체에 설치된 긴급복지심의위원회가 신청자들을 검토해 지원 여부를 결정하는 절차를 추가로 만들었는데, 대부분의 자치구에서 별도의 심사 없이 서면 심의만으로 전원 통과시켰습니다.

하지만 이런 난관을 거치고도 최종 신청률은 63%에 불과했습니다. 이 지원금을 신청하리라 예상했던 10가구 중 4가구는 신청을 하지 않은 채 사업이 끝난 겁니다.

■ 취약 계층일수록 스스로 피해 입증 어려워

해당 사업의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는 “소득 감소를 신청인이 직접 증명하도록 한 부분이 크게 작용한 것 같다”며, “이후에 진행된 재난지원금에는 이런 성격의 생계지원금은 없어졌다”고 설명했습니다.

사회복지 전문가들도 취약한 계층일수록 본인의 피해 상황을 입증하기 어렵다는 점을 짚었습니다.

정순둘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정말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 대해 정확히 진단하지 못 했던 것”이라며, “시급성을 고려하더라도 전달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봉주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일용직이나 아르바이트 등 근로 조건이 불규칙하고 불안정한 분들일수록 소득 감소를 입증하기가 더 어렵다”며, “말 그대로 재난지원금인 만큼 특수한 상황을 고려해 선정 기준이나 입증 서류를 대폭 간소화·유연화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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