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잃은 ‘5일장 살인사건’ 유족 민사소송 낸 이유는?

입력 2021.02.18 (07:01) 수정 2021.02.18 (2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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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제주시 오일장 인근 골목에서 생면부지 남성이 휘두른 흉기에 변을 당한 김 모 씨(39)의 가족들은 지난 주 설 명절에 다시 충격과 슬픔에 빠졌습니다. 세상을 떠난 딸을 만나러 양지공원 봉안실로 갈 채비를 하다가 김 씨의 어머니가 끝내 수십 분간 혼절했기 때문입니다.

20만 명 넘는 국민이 가해자 강 모 씨(30)를 엄벌해달라며 청와대 국민청원에 서명했던 '제주 오일장 귀가여성 살인 사건'이 발생한 지 반년 가까이 지났습니다.

항소심 첫 공판을 앞두고 지난 16일 기자를 만난 피해자 가족들은 '범인은 지금까지 흔한 사과 편지나 용서를 구하는 연락조차 없었다'며 울분을 토했습니다. 또 '1심 선고 형량이 무겁다며 항소한 범인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어 죗값의 무게를 느끼도록 민사 소송을 제기하기로 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사과 없는 살인범 '형량 지나치다'며 항소…유가족 고통 속 소송 제기

 피해자 김 씨의 어머니. 무릎 지병이 악화해 압박밴드를 찬 채 호텔 청소일을 하고 있다. 피해자 김 씨의 어머니. 무릎 지병이 악화해 압박밴드를 찬 채 호텔 청소일을 하고 있다.

벌이가 넉넉지 않은 편의점 아르바이트 일을 하면서도 함께 사는 노부모를 살뜰히 부양했던 김 씨.

지난해 8월 평소처럼 일을 마친 뒤 버스비를 아낄 겸 집까지 걸어가던 중 제주시 오일장 인근에서 뒤따라온 강 씨에게 지갑에 있던 현금 만 원을 빼앗기고 살해됐습니다. 강 씨는 범행 전 BJ들에게 선물을 주며 많은 돈을 탕진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전국적인 공분을 사기도 했습니다.

피해자 김 씨의 노부모는 이 사건 이후 일상이 무너져내렸습니다. 하지만 딸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어쩔 수 없이 무거운 삶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딸이 숨진 뒤 어머니 B 씨는 한동안 약 없인 잠을 못 이뤘고 최근엔 무릎 염증도 악화했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19로 일자리 구하기가 어려워 지면서 호텔 청소일을 잠시 쉬기도 했습니다.

더구나 범인의 재판이 열려 방청을 가야 하는 날엔 근무도 바꿔야 해서, 평소에 동료들에게도 미안함이 쌓였습니다.

피해자 가족들 "승소해도 배상 못 받지만, 죗값 무게 느끼게 해야"

 피해자 김 씨의 가족. 피해자 김 씨의 가족.

피해자 김 씨의 부모는 이 같은 '생계의 무게'는 버틸 수 있지만, 사과하지 않는 범인의 뻔뻔한 태도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재산보다 빚이 더 많은 강 씨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하기로 한 이윱니다.

피해자 가족을 돕고 있는 대한법률구조공단은 김 씨가 사망하지 않았다면 장래에 벌 수 있다고 추정되는 소득(일실소득) 4억 원과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 3억 원을 나눠서 민사소송을 진행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재판에서 피해자 가족이 이기면 가해자인 강 씨 명의 재산을 강제집행할 수 있게 됩니다.

피해자 가족들은 "승소하더라도 가진 돈도 거의 없는 범인이 배상금을 주지 못할 것을 안다"면서도 "지금까지 피해자 가족에겐 사과 편지 한 통 보내지 않으면서 죗값을 줄이려 항소하는 태도가 괘씸해 민사소송까지 준비하게 됐다"고 설명했습니다.

피해자 김 씨의 아버지가 지금까지 작성한 탄원서 뭉치.피해자 김 씨의 아버지가 지금까지 작성한 탄원서 뭉치.

실제 강 씨는 지난해 12월 열린 1심에서 '큰 죄를 저질렀다는 것을 알고 있고 마땅한 벌을 받아야 한다'는 취지로 최후 진술했지만, 강도살인죄가 적용돼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자 항소했습니다.

또 강 씨는 1심 공판이 시작된 뒤부터 최근까지 법원에 반성문을 10차례 제출했습니다. 특히 항소심 첫 공판일이 다가오자 최근엔 사나흘에 한 번꼴로 강 씨의 반성문이 법원에 접수됐습니다.

이에 대해 피해자 가족은 "형량을 결정하는 판사에게만 반성문을 올릴 뿐 피해자 가족들에겐 사과하지 않고 있다"며 "범인이 반성문을 올릴 때마다 엄벌을 바라는 탄원서를 제출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강력범죄 후 무너진 피해자 가족의 삶…정부 '구조금 제도' 지원

김 씨 가족처럼 형사사건 피해자와 그 가족이 가해자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하는 경우는 종종 있습니다. 2016년 전국적인 공분을 산 '강남역 살인 사건'의 피해자 부모는 범인 김 모 씨를 상대로 5억원을 배상하라고 민사소송을 제기해 다음 해 승소했습니다.

하지만 이들 부모 역시 실질적 배상을 기대하고 소송하진 않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피해자 가족이 직접 소송 소송을 해도 실질적인 피해 배상이 이뤄지기 힘든 점 등을 고려해 정부는 형사사건 피해자나 가족이 정부로부터 구조금 등을 받는 제도도 마련했습니다.

'범죄피해 구조금 제도'는 범죄로 인해 사망하거나 장해·중상해를 당하고서도 피해를 배상받지 못한 경우 국가가 범죄피해자나 유가족에게 구조금을 대신 지급하는 것으로, 법무부가 범죄피해자보호법에 근거해 범죄피해구조금 또는 치료비·생계비·학자금·장례비 등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담당 지방검찰청의 범죄 피해 구조심의회에 신청하면 되는데, 다만 범죄피해 발생을 안 날로부터 3년 내, 피해가 발생한 날로부터 10년 안에 신청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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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딸 잃은 ‘5일장 살인사건’ 유족 민사소송 낸 이유는?
    • 입력 2021-02-18 07:01:33
    • 수정2021-02-18 22:22:34
    취재K

지난해 제주시 오일장 인근 골목에서 생면부지 남성이 휘두른 흉기에 변을 당한 김 모 씨(39)의 가족들은 지난 주 설 명절에 다시 충격과 슬픔에 빠졌습니다. 세상을 떠난 딸을 만나러 양지공원 봉안실로 갈 채비를 하다가 김 씨의 어머니가 끝내 수십 분간 혼절했기 때문입니다.

20만 명 넘는 국민이 가해자 강 모 씨(30)를 엄벌해달라며 청와대 국민청원에 서명했던 '제주 오일장 귀가여성 살인 사건'이 발생한 지 반년 가까이 지났습니다.

항소심 첫 공판을 앞두고 지난 16일 기자를 만난 피해자 가족들은 '범인은 지금까지 흔한 사과 편지나 용서를 구하는 연락조차 없었다'며 울분을 토했습니다. 또 '1심 선고 형량이 무겁다며 항소한 범인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어 죗값의 무게를 느끼도록 민사 소송을 제기하기로 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사과 없는 살인범 '형량 지나치다'며 항소…유가족 고통 속 소송 제기

 피해자 김 씨의 어머니. 무릎 지병이 악화해 압박밴드를 찬 채 호텔 청소일을 하고 있다.
벌이가 넉넉지 않은 편의점 아르바이트 일을 하면서도 함께 사는 노부모를 살뜰히 부양했던 김 씨.

지난해 8월 평소처럼 일을 마친 뒤 버스비를 아낄 겸 집까지 걸어가던 중 제주시 오일장 인근에서 뒤따라온 강 씨에게 지갑에 있던 현금 만 원을 빼앗기고 살해됐습니다. 강 씨는 범행 전 BJ들에게 선물을 주며 많은 돈을 탕진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전국적인 공분을 사기도 했습니다.

피해자 김 씨의 노부모는 이 사건 이후 일상이 무너져내렸습니다. 하지만 딸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어쩔 수 없이 무거운 삶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딸이 숨진 뒤 어머니 B 씨는 한동안 약 없인 잠을 못 이뤘고 최근엔 무릎 염증도 악화했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19로 일자리 구하기가 어려워 지면서 호텔 청소일을 잠시 쉬기도 했습니다.

더구나 범인의 재판이 열려 방청을 가야 하는 날엔 근무도 바꿔야 해서, 평소에 동료들에게도 미안함이 쌓였습니다.

피해자 가족들 "승소해도 배상 못 받지만, 죗값 무게 느끼게 해야"

 피해자 김 씨의 가족.
피해자 김 씨의 부모는 이 같은 '생계의 무게'는 버틸 수 있지만, 사과하지 않는 범인의 뻔뻔한 태도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재산보다 빚이 더 많은 강 씨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하기로 한 이윱니다.

피해자 가족을 돕고 있는 대한법률구조공단은 김 씨가 사망하지 않았다면 장래에 벌 수 있다고 추정되는 소득(일실소득) 4억 원과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 3억 원을 나눠서 민사소송을 진행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재판에서 피해자 가족이 이기면 가해자인 강 씨 명의 재산을 강제집행할 수 있게 됩니다.

피해자 가족들은 "승소하더라도 가진 돈도 거의 없는 범인이 배상금을 주지 못할 것을 안다"면서도 "지금까지 피해자 가족에겐 사과 편지 한 통 보내지 않으면서 죗값을 줄이려 항소하는 태도가 괘씸해 민사소송까지 준비하게 됐다"고 설명했습니다.

피해자 김 씨의 아버지가 지금까지 작성한 탄원서 뭉치.
실제 강 씨는 지난해 12월 열린 1심에서 '큰 죄를 저질렀다는 것을 알고 있고 마땅한 벌을 받아야 한다'는 취지로 최후 진술했지만, 강도살인죄가 적용돼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자 항소했습니다.

또 강 씨는 1심 공판이 시작된 뒤부터 최근까지 법원에 반성문을 10차례 제출했습니다. 특히 항소심 첫 공판일이 다가오자 최근엔 사나흘에 한 번꼴로 강 씨의 반성문이 법원에 접수됐습니다.

이에 대해 피해자 가족은 "형량을 결정하는 판사에게만 반성문을 올릴 뿐 피해자 가족들에겐 사과하지 않고 있다"며 "범인이 반성문을 올릴 때마다 엄벌을 바라는 탄원서를 제출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강력범죄 후 무너진 피해자 가족의 삶…정부 '구조금 제도' 지원

김 씨 가족처럼 형사사건 피해자와 그 가족이 가해자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하는 경우는 종종 있습니다. 2016년 전국적인 공분을 산 '강남역 살인 사건'의 피해자 부모는 범인 김 모 씨를 상대로 5억원을 배상하라고 민사소송을 제기해 다음 해 승소했습니다.

하지만 이들 부모 역시 실질적 배상을 기대하고 소송하진 않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피해자 가족이 직접 소송 소송을 해도 실질적인 피해 배상이 이뤄지기 힘든 점 등을 고려해 정부는 형사사건 피해자나 가족이 정부로부터 구조금 등을 받는 제도도 마련했습니다.

'범죄피해 구조금 제도'는 범죄로 인해 사망하거나 장해·중상해를 당하고서도 피해를 배상받지 못한 경우 국가가 범죄피해자나 유가족에게 구조금을 대신 지급하는 것으로, 법무부가 범죄피해자보호법에 근거해 범죄피해구조금 또는 치료비·생계비·학자금·장례비 등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담당 지방검찰청의 범죄 피해 구조심의회에 신청하면 되는데, 다만 범죄피해 발생을 안 날로부터 3년 내, 피해가 발생한 날로부터 10년 안에 신청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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