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폭 가해자 사과 강제는 인권 침해?…법원 직권 ‘위헌심판제청’

입력 2021.02.18 (12:08) 수정 2021.02.18 (2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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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폭력 논란을 인정하고 사과한 이재영·이다영 자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학교폭력 논란을 인정하고 사과한 이재영·이다영 자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에 현직 배구선수에게서 학교 폭력을 당했다는 글이 게시됐습니다.

중학교 재학 시절 가해자가 상습적으로 욕설하고 경기에서 지고 왔을 때는 집합을 시켜 벌을 줬다는 등의 내용이었습니다.

해당 글에서 지칭한 가해자는 이재영·이다영 선수라는 의혹이 제기됐고 결국 이재영·이다영 자매는 SNS에 자필 사과문을 게시했습니다.

사과문에서 이들 선수는 "철 없었던 지난날 저질렀던 행동이지만 이 때문에 고통의 시간을 보낸 분들께 죄송하다"며 잘못을 인정하고 사죄했습니다.

이처럼 학교 폭력을 저지른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사과하고 잘못을 반성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해 보입니다. 비록 오래전 일일지라도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고 피해자에게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기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최근 학교폭력 가해 학생이 피해 학생에게 서면사과를 하도록 강제하는 규정은 위헌적 요소가 있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습니다.


■ 법원 "학교폭력 가해자에게 서면사과 강제는 위헌 요소"

대전지법 행정2부(오영표 부장판사)는 학교폭력 가해 학생에 대한 조처 가운데 '피해 학생에 대한 서면사과'를 명시한 학교폭력예방법에 대해 위헌 여부의 심판을 받아보기 위해 직권으로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습니다.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 제17조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 제17조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 17조에는 피해학생의 보호와 가해학생의 선도·교육을 위해 가해학생에 대해 9가지 조치 가운데 하나를 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 조치 가운데 하나가 피해학생에 대한 서면사과인데 법원이 위헌 요소가 있다고 본 겁니다.


■ 가해학생 "서면사과는 헌법상 양심의 자유나 인격권 침해" 소송 제기

앞서 충남 지역 고등학생 A 군은 지난해 5월쯤 페이스북 단체 대화방에서 다른 동급생을 모욕하는 메시지에 동조했다는 등의 이유로 출석정지와 함께 "피해 학생에게 서면으로 사과의 글을 써야 한다"는 취지로 학교장 이름의 긴급 조치 처분을 받았습니다.

A 군은 "피해 학생에 대한 서면사과는 헌법상 양심의 자유나 인격권을 침해한다"는 취지로 지역 교육지원청 교육장을 상대로 학교폭력 처분 취소 청구 소송을 냈습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서면사과 강제가 학교 폭력을 했다고 믿지 않는 학생에게도 본심에 반해 '깊이 사과한다'고 하면서 사죄 의사표시를 강요하는 행위로 판단했습니다.


■ 재판부 "서면사과, 민·형사소송에서 불리하게 쓰일 위험도 있어"


재판부는 "서면사과 강제는 겉과 속이 다른 이중인격 형성의 강요로 볼 수 있다"며 "사과한다는 행위는 윤리적 판단과 감정이기 때문에 본질에서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와야 한다"고 판시했습니다.

또 "적어도 사과의 문구가 포함되면 그것이 마음에 없는 것일 때에는 당사자 자존심에 큰 상처이자 치욕일 것"이라며 "이 때문에 헌법에서 보장된 인격의 존엄과 가치에 큰 위해가 된다고 볼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특히 학교폭력을 저지르지 않았다고 생각하거나 사과할 마음이 없는 가해 학생으로서는 서면사과 내용이 별도 민·형사소송의 불리한 자료로 쓰일 위험까지 감수해야 하는 점도 고려 대상이 됐습니다.

재판부는 서면사과 강제를 "수단의 적합성, 침해의 최소성 원칙과 법익 균형성 원칙을 지키지 않은 것으로 볼 수 있다"며 "헌법 37조 2항의 과잉금지 원칙에 위배돼 가해 학생에 대한 양심의 자유와 인격권을 지나치게 침해한다고 볼 여지가 충분하다"고 덧붙였습니다.

법원이 직권으로 신청한 위헌법률심판 제청에 대해 향후 헌법재판소가 어떤 결론을 낼 지 주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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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학폭 가해자 사과 강제는 인권 침해?…법원 직권 ‘위헌심판제청’
    • 입력 2021-02-18 12:08:12
    • 수정2021-02-18 22:22:29
    취재K

학교폭력 논란을 인정하고 사과한 이재영·이다영 자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에 현직 배구선수에게서 학교 폭력을 당했다는 글이 게시됐습니다.

중학교 재학 시절 가해자가 상습적으로 욕설하고 경기에서 지고 왔을 때는 집합을 시켜 벌을 줬다는 등의 내용이었습니다.

해당 글에서 지칭한 가해자는 이재영·이다영 선수라는 의혹이 제기됐고 결국 이재영·이다영 자매는 SNS에 자필 사과문을 게시했습니다.

사과문에서 이들 선수는 "철 없었던 지난날 저질렀던 행동이지만 이 때문에 고통의 시간을 보낸 분들께 죄송하다"며 잘못을 인정하고 사죄했습니다.

이처럼 학교 폭력을 저지른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사과하고 잘못을 반성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해 보입니다. 비록 오래전 일일지라도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고 피해자에게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기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최근 학교폭력 가해 학생이 피해 학생에게 서면사과를 하도록 강제하는 규정은 위헌적 요소가 있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습니다.


■ 법원 "학교폭력 가해자에게 서면사과 강제는 위헌 요소"

대전지법 행정2부(오영표 부장판사)는 학교폭력 가해 학생에 대한 조처 가운데 '피해 학생에 대한 서면사과'를 명시한 학교폭력예방법에 대해 위헌 여부의 심판을 받아보기 위해 직권으로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습니다.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 제17조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 17조에는 피해학생의 보호와 가해학생의 선도·교육을 위해 가해학생에 대해 9가지 조치 가운데 하나를 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 조치 가운데 하나가 피해학생에 대한 서면사과인데 법원이 위헌 요소가 있다고 본 겁니다.


■ 가해학생 "서면사과는 헌법상 양심의 자유나 인격권 침해" 소송 제기

앞서 충남 지역 고등학생 A 군은 지난해 5월쯤 페이스북 단체 대화방에서 다른 동급생을 모욕하는 메시지에 동조했다는 등의 이유로 출석정지와 함께 "피해 학생에게 서면으로 사과의 글을 써야 한다"는 취지로 학교장 이름의 긴급 조치 처분을 받았습니다.

A 군은 "피해 학생에 대한 서면사과는 헌법상 양심의 자유나 인격권을 침해한다"는 취지로 지역 교육지원청 교육장을 상대로 학교폭력 처분 취소 청구 소송을 냈습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서면사과 강제가 학교 폭력을 했다고 믿지 않는 학생에게도 본심에 반해 '깊이 사과한다'고 하면서 사죄 의사표시를 강요하는 행위로 판단했습니다.


■ 재판부 "서면사과, 민·형사소송에서 불리하게 쓰일 위험도 있어"


재판부는 "서면사과 강제는 겉과 속이 다른 이중인격 형성의 강요로 볼 수 있다"며 "사과한다는 행위는 윤리적 판단과 감정이기 때문에 본질에서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와야 한다"고 판시했습니다.

또 "적어도 사과의 문구가 포함되면 그것이 마음에 없는 것일 때에는 당사자 자존심에 큰 상처이자 치욕일 것"이라며 "이 때문에 헌법에서 보장된 인격의 존엄과 가치에 큰 위해가 된다고 볼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특히 학교폭력을 저지르지 않았다고 생각하거나 사과할 마음이 없는 가해 학생으로서는 서면사과 내용이 별도 민·형사소송의 불리한 자료로 쓰일 위험까지 감수해야 하는 점도 고려 대상이 됐습니다.

재판부는 서면사과 강제를 "수단의 적합성, 침해의 최소성 원칙과 법익 균형성 원칙을 지키지 않은 것으로 볼 수 있다"며 "헌법 37조 2항의 과잉금지 원칙에 위배돼 가해 학생에 대한 양심의 자유와 인격권을 지나치게 침해한다고 볼 여지가 충분하다"고 덧붙였습니다.

법원이 직권으로 신청한 위헌법률심판 제청에 대해 향후 헌법재판소가 어떤 결론을 낼 지 주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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