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62시간 과로사 故장덕준…“친구들은 여전히 쿠팡서 일하고 있다”

입력 2021.02.18 (18:58) 수정 2021.02.18 (2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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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18일) 오후 두시 서울 송파구의 쿠팡 본사 앞. 체감온도 영하 5도의 맹추위에도 故 장덕준 씨의 부모가 마이크를 들었습니다. 이들은 쿠팡에 실효성 있는 과로사 재발 방지 대책을 요구했습니다.

■ "덕준이 친구들은 아직 쿠팡에서 일하고 있으니까"

덕준 씨는 1년 넘게 쿠팡 물류센터에서 일해오다 지난해 10월 급성 심근경색으로 숨졌습니다. 최근 근로복지공단은 덕준 군의 죽음이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했습니다. 쿠팡 측에서도 근로여건 개선 방안을 제시했습니다.

하지만 덕준 씨의 부모님은 아직도 할 말이 많습니다. 덕준 씨의 친구들은 여전히 쿠팡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10월, 쿠팡 칠곡 물류센터에서 야간 근무를 마치고 온 27살 청년 장덕준 씨가 욕실에서 쓰러진 채 발견됐습니다. 덕준 씨 부모님의 신고로 119구급대가 출동했으나 사망했습니다.

유족들은 덕준 씨가 1년 넘게 쿠팡에서 일하는 동안 살이 많이 빠져 몸무게가 15kg 가량 줄었고 자주 피로를 호소했다며, 덕준 씨의 죽음이 과로로 인한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쿠팡 물류센터에서 일하는 사이 덕준 씨의 바지 사이즈는 여러 차례 줄었습니다. [사진 제공: 고 장덕준 씨 유족]쿠팡 물류센터에서 일하는 사이 덕준 씨의 바지 사이즈는 여러 차례 줄었습니다. [사진 제공: 고 장덕준 씨 유족]

하지만 쿠팡 측은 보도자료를 내고 "최근 3개월 간 고인의 주당 평균 근무 시간은 약 44시간이었다"라고 반박했습니다. 유족들은 산업재해를 신청했습니다.

■ '44시간 근무'라던 쿠팡… 사실은 62시간

신청 석 달 여만인 이달 9일, 덕준 씨의 죽음이 산업재해로 인정됐습니다. 근로복지공단은 덕준 군의 유족이 낸 산재 신청에 대해 대구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이하 '판정위') 심의를 거쳐 업무상 질병으로 인한 산재로 인정했습니다

덕준 씨에 대한 업무상질병판정서를 보면 당시 노동환경이 얼마나 열악했는지가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덕준 씨는 대구칠곡물류센터 9동 7층에서 출고 지원업무를 맡았습니다. 바구니 운반, 빈 카트 정리, 포장 박스와 비닐 등 포장 부자재 보충, 층간 부자재 업무 등입니다.

고인은 무게 4~5kg 가량의 박스와 포장 부자재를 하루 80~100회 옮기고, 20~30kg의 물건을 '수동 자키'라는 기기를 이용해 하루 20~40회 옮겼습니다. 판정위는 이를 '육체적 강도가 높은 업무'에 해당한다고 적시했습니다.


이 같은 업무는 사망 전 석달여 동안 주당 평균 58시간 18분 이뤄졌습니다. 사망 전 일주일 동안은 62시간에 달했습니다. '고인의 주당 평균 근무시간은 44시간'이라던 쿠팡 측 설명은 거짓말로 드러났습니다.

■ 사인은 급성심근경색… 근육 녹아내리기도

유족들은 쿠팡 물류센터의 환경도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핫팩 '하나' 혹은 '둘'로 매서운 추위를 견뎌내는 쿠팡 노동자들의 실태는 이미 KBS가 보도한 바 있죠.
[연관기사][취재후] 핫팩에 의존한 쿠팡 노동자가 남긴 네 가지 물음표 - KBS 이유민 기자

덕준 씨가 일한 곳도 상황은 비슷했습니다. 대구·칠곡의 지난해 여름은 하루 최고기온이 30도 이상이던 날이 35일, 이중 열대야가 13일에 달할 만큼 더웠습니다. 고인이 일했던 곳은 물류센터 내부인 만큼 바깥 기온보다는 높았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럼에도 전체적으로 냉방 설비가 돼있지 않고 이동식 에어컨과 서큘레이터가 곳곳에 비치돼있을 뿐이었습니다.

학창 시절부터 태권도와 등산을 즐겨했고 흡연도 하지 않았던 덕준 씨지만, 이 같이 육체적 강도가 높은 업무가 업무 부담을 가중했을 것으로 판정위는 판단했습니다.

판정위는 고인의 사망이 급성심근경색증에 의한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또 근육을 많이 사용해 근육이 급성으로 녹아내리는 '횡문근융해증'도 의심된다고 적었습니다.

■ 쿠팡이 제시한 대책은?

사건 이후 쿠팡 측은 덕준 씨 유족들과 택배노동자과로사대책위를 만나 '물류센터 근로여건 개선방안'을 제시했습니다.

노동자의 연속 근로일수를 제한하고 일용직 근로자에 대한 특수 건강진단을 체계화하겠다는 겁니다. 또 업무량을 확인하는 '시간당 생산량(UPH)'를 폐지하겠다고도 했습니다.

하지만 유족 측은 덕준 씨 산재사고 주 원인인 장시간 야간근로에 대한 대책이 없다는 점, 일방적 연속근로 제한은 임금삭감안과 같다는 점 등을 지적했습니다. 또 근본적으로 처우와 고용 조건이 개선돼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 '유니콘' 쿠팡, 그 안에서 오늘도 벌어지는 일

유족들이 덕준 씨의 죽음을 충분히 애도할 시간도 없이 산재를 가지고 싸우는 사이, 쿠팡이 미국 증시에 상장한다는 새로운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쿠팡의 상장 신청서에는 쿠팡이 얼마나 대단하고 멋진 기업인지에 대해 적혀 있습니다. 7년 만에 275배에 달하는 초고속 성장을 이뤘고, 지난해 거래액은 20조 원 안팎으로 추정된다니 그야말로 엄청납니다.

고 장덕준 씨의 부모님고 장덕준 씨의 부모님

이 '유니콘' 기업 쿠팡에 대해, 덕준 씨의 유족들은 오늘도 묻습니다. "지금도 덕준 씨의 친구들이 쿠팡 물류센터에서 일하고 있는데 열악한 환경과 과도한 업무량에 대해, 개선할 의지가 있는 것이 있느냐"고 말입니다. 쿠팡에 대한 국회 산업재해 청문회는 오는 22일 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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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2-18 18:58:34
    • 수정2021-02-18 22: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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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18일) 오후 두시 서울 송파구의 쿠팡 본사 앞. 체감온도 영하 5도의 맹추위에도 故 장덕준 씨의 부모가 마이크를 들었습니다. 이들은 쿠팡에 실효성 있는 과로사 재발 방지 대책을 요구했습니다.

■ "덕준이 친구들은 아직 쿠팡에서 일하고 있으니까"

덕준 씨는 1년 넘게 쿠팡 물류센터에서 일해오다 지난해 10월 급성 심근경색으로 숨졌습니다. 최근 근로복지공단은 덕준 군의 죽음이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했습니다. 쿠팡 측에서도 근로여건 개선 방안을 제시했습니다.

하지만 덕준 씨의 부모님은 아직도 할 말이 많습니다. 덕준 씨의 친구들은 여전히 쿠팡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10월, 쿠팡 칠곡 물류센터에서 야간 근무를 마치고 온 27살 청년 장덕준 씨가 욕실에서 쓰러진 채 발견됐습니다. 덕준 씨 부모님의 신고로 119구급대가 출동했으나 사망했습니다.

유족들은 덕준 씨가 1년 넘게 쿠팡에서 일하는 동안 살이 많이 빠져 몸무게가 15kg 가량 줄었고 자주 피로를 호소했다며, 덕준 씨의 죽음이 과로로 인한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쿠팡 물류센터에서 일하는 사이 덕준 씨의 바지 사이즈는 여러 차례 줄었습니다. [사진 제공: 고 장덕준 씨 유족]
하지만 쿠팡 측은 보도자료를 내고 "최근 3개월 간 고인의 주당 평균 근무 시간은 약 44시간이었다"라고 반박했습니다. 유족들은 산업재해를 신청했습니다.

■ '44시간 근무'라던 쿠팡… 사실은 62시간

신청 석 달 여만인 이달 9일, 덕준 씨의 죽음이 산업재해로 인정됐습니다. 근로복지공단은 덕준 군의 유족이 낸 산재 신청에 대해 대구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이하 '판정위') 심의를 거쳐 업무상 질병으로 인한 산재로 인정했습니다

덕준 씨에 대한 업무상질병판정서를 보면 당시 노동환경이 얼마나 열악했는지가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덕준 씨는 대구칠곡물류센터 9동 7층에서 출고 지원업무를 맡았습니다. 바구니 운반, 빈 카트 정리, 포장 박스와 비닐 등 포장 부자재 보충, 층간 부자재 업무 등입니다.

고인은 무게 4~5kg 가량의 박스와 포장 부자재를 하루 80~100회 옮기고, 20~30kg의 물건을 '수동 자키'라는 기기를 이용해 하루 20~40회 옮겼습니다. 판정위는 이를 '육체적 강도가 높은 업무'에 해당한다고 적시했습니다.


이 같은 업무는 사망 전 석달여 동안 주당 평균 58시간 18분 이뤄졌습니다. 사망 전 일주일 동안은 62시간에 달했습니다. '고인의 주당 평균 근무시간은 44시간'이라던 쿠팡 측 설명은 거짓말로 드러났습니다.

■ 사인은 급성심근경색… 근육 녹아내리기도

유족들은 쿠팡 물류센터의 환경도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핫팩 '하나' 혹은 '둘'로 매서운 추위를 견뎌내는 쿠팡 노동자들의 실태는 이미 KBS가 보도한 바 있죠.
[연관기사][취재후] 핫팩에 의존한 쿠팡 노동자가 남긴 네 가지 물음표 - KBS 이유민 기자

덕준 씨가 일한 곳도 상황은 비슷했습니다. 대구·칠곡의 지난해 여름은 하루 최고기온이 30도 이상이던 날이 35일, 이중 열대야가 13일에 달할 만큼 더웠습니다. 고인이 일했던 곳은 물류센터 내부인 만큼 바깥 기온보다는 높았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럼에도 전체적으로 냉방 설비가 돼있지 않고 이동식 에어컨과 서큘레이터가 곳곳에 비치돼있을 뿐이었습니다.

학창 시절부터 태권도와 등산을 즐겨했고 흡연도 하지 않았던 덕준 씨지만, 이 같이 육체적 강도가 높은 업무가 업무 부담을 가중했을 것으로 판정위는 판단했습니다.

판정위는 고인의 사망이 급성심근경색증에 의한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또 근육을 많이 사용해 근육이 급성으로 녹아내리는 '횡문근융해증'도 의심된다고 적었습니다.

■ 쿠팡이 제시한 대책은?

사건 이후 쿠팡 측은 덕준 씨 유족들과 택배노동자과로사대책위를 만나 '물류센터 근로여건 개선방안'을 제시했습니다.

노동자의 연속 근로일수를 제한하고 일용직 근로자에 대한 특수 건강진단을 체계화하겠다는 겁니다. 또 업무량을 확인하는 '시간당 생산량(UPH)'를 폐지하겠다고도 했습니다.

하지만 유족 측은 덕준 씨 산재사고 주 원인인 장시간 야간근로에 대한 대책이 없다는 점, 일방적 연속근로 제한은 임금삭감안과 같다는 점 등을 지적했습니다. 또 근본적으로 처우와 고용 조건이 개선돼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 '유니콘' 쿠팡, 그 안에서 오늘도 벌어지는 일

유족들이 덕준 씨의 죽음을 충분히 애도할 시간도 없이 산재를 가지고 싸우는 사이, 쿠팡이 미국 증시에 상장한다는 새로운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쿠팡의 상장 신청서에는 쿠팡이 얼마나 대단하고 멋진 기업인지에 대해 적혀 있습니다. 7년 만에 275배에 달하는 초고속 성장을 이뤘고, 지난해 거래액은 20조 원 안팎으로 추정된다니 그야말로 엄청납니다.

고 장덕준 씨의 부모님
이 '유니콘' 기업 쿠팡에 대해, 덕준 씨의 유족들은 오늘도 묻습니다. "지금도 덕준 씨의 친구들이 쿠팡 물류센터에서 일하고 있는데 열악한 환경과 과도한 업무량에 대해, 개선할 의지가 있는 것이 있느냐"고 말입니다. 쿠팡에 대한 국회 산업재해 청문회는 오는 22일 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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