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쿨존에서 SUV에 깔려…7살 현승이의 잃어버린 2년
입력 2021.02.19 (06:00)
수정 2021.02.19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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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어린이 보호구역 횡단보도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치료를 받고 있는 현승 군
사고는 순식간이었다. 2019년 8월, 당시 7살이던 현승이는 어린이 보호구역(스쿨존) 횡단보도에서 길을 건너고 있었다. 평소 좋아하던 집 근처 보건소의 음악 줄넘기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이었다.
60대 여성 운전자가 몰던 SUV 차량은 현승이를 그대로 치었다. 차에 깔린 작은 체구가 바퀴에 끼어 끌려간 거리는 5m가량. 사고를 인지한 운전자가 차를 멈췄을 때, 현승이의 몸은 이미 곳곳이 부서지고 찢어진 뒤였다. 지나가던 중년 남성이 뛰어와 피투성이가 된 아이 곁에서 정신을 잃게 하지 않으려 "괜찮다"고 다독이던 중 119구급차가 도착했다.
곧바로 제주한라병원 권역외상센터로 옮겨졌지만, 현승이의 생명은 위독했다. 7살짜리 아이의 몸을 거대한 차체가 밟고 지나가며 갈비뼈가 전부 골절됐고, 뇌를 둘러싸고 있는 경막 안쪽 뇌혈관이 터져 피가 고이는 경막하출혈이 발생했다. 여기에 사고 후유증으로 안면마비가 찾아왔고, 기관지 협착증으로 좁아진 기도도 잘라내야 했다.
"차마 사고 장면을 볼 수 없을 정도였어요." 사고 당시를 떠올리던 현승 군의 엄마는 흐느끼며 말했다.
2019년 어린이 보호구역 횡단보도에서 교통사고를 당한 현승 군
열흘 넘게 중환자실에서 생사를 헤매다 기적적으로 살아난 현승 군은 극심한 스트레스로 원형탈모까지 왔다. 이후 제주에서 서울을 오가며 10개월 동안 10여 차례 수술을 진행한 끝에 겨우 일상생활로 돌아올 수 있었다.2019년 8월 13일 제주시 모 초등학교 정문 앞에서 벌어진 교통사고. 1년 반이 지났지만 현승 군은 여전히 서울을 오가며 남은 치료에 전념하고 있다. 정신과 진료도 병행하고 있다.
현승 군 엄마는 "지금까지 운전자로부터 직접적인 사과 한번 받지 못한 게 너무 억울하다"며 "무엇보다 현승이에게도 너무 미안하다"고 흐느꼈다.
2019년 어린이 보호구역 횡단보도에서 교통사고를 당한 현승 군.
■"회피 가능성 없었다"…법원 "주의 의무 다하지 않아"
60대 여성 운전자는 교통사고처리 특례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운전자 측은 "주의 의무를 위반한 과실이 없고, 예측 가능성과 회피 가능성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제주지방법원 형사2단독(이장욱 판사)은 유죄를 인정하고 여성 운전자에게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사고는 여름이던 8월 저녁 6시 20분쯤 발생했다. 재판부는 당시 주위가 밝고, 피고인의 반대편 차선에 여러 대의 차량이 신호 대기로 정차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이어 도로교통공단의 교통사고 분석결과 사고 직전 속도가 시속 32.5km로 나타났고,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감정 결과에서도 시속 32km로 나와 제한속도를 초과해 차량을 운행했다고 판정했다.
사고가 발생한 제주시 모 초등학교 어린이보호구역 내 횡단보도
재판부는 사고 장소가 초등학교 정문 앞이었고, 신호기가 설치되지 않아 언제든 보행자가 횡단할 수 있었던 점, 피해자 외에도 다른 어린이들이 횡단보도 쪽으로 걸어가고 있던 점, 피고인이 1995년부터 초등학교 바로 길 건너에 위치한 아파트에 거주해 도로 여건을 잘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토대로 주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판결문을 통해 어린이 보호구역을 지정하고 통행속도를 제한한 도로교통법의 취지도 명확히 설명했다.
재판부는 "어린이는 지각능력과 상황 판단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돌발적으로 차도에 뛰어들거나, 주행 중인 차량을 고려하지 않고 길을 건너려 하거나, 달려오는 차량의 속도를 오판해 길을 건너는 등 위험 행동을 할 우려가 있어 운전자로 하여금 더 높은 주의를 기울이도록 한 것"이라고 법 취지를 강조했다.
재판부는 "사고 후 오랜 시간이 지난 현재까지도 계속 치료를 받고 있고, 피해자의 부모가 엄벌을 탄원하고 있다"며 다만 고의로 저지른 범행이 아닌 점, 차량이 종합보험에 가입돼있는 점, 형사처벌 전력이 없는 점 등을 고려해 형을 선고했다고 밝혔다.
■ 어린이 보호구역 내 횡단보도 '무조건 일시 정지' 추진
지난해 11월 광주광역시 북구 운암동의 한 아파트 단지 어린이 보호구역 횡단보도에서도 유모차를 끌던 엄마와 삼 남매가 화물차에 치이면서 두 살배기가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사고 현장에는 꽃과 함께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 "하늘에서는 아픔 없이 따뜻하길 바랄게."라는 내용이 적힌 손편지가 내걸렸다.
더불어민주당 김영배 의원은 지난해 8월 어린이 보호구역 내에 설치된 횡단보도 앞에서 보행자의 횡단 여부와 상관없이 일시 정지해야 한다는 내용 등을 담은 '도로교통법 일부 개정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횡단보도에 사람이 없어도 혹시 모를 안전사고에 대비해 차를 멈춘 뒤 출발하도록 교통문화를 높이자는 취지다.
김 의원은 법률 제안이유에서 "어린이 보호구역 내의 횡단보도의 경우 갑자기 도로로 진입하는 경우가 있어 일률적인 일시 정지 의무를 부과해야 한다"고 밝혔다. 법안은 계류 중이다.
정미숙 도로교통공단 제주지부 교수는 "운전자가 아닌 보행자 중심의 인식변화가 필요하다"며 "1995년 어린이 보호구역에 관한 법률이 제정된 뒤 20년이 흘러서야 어린이 보호구역에 대한 인식이 바뀌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어 "일시 정지에 5초가 걸리는데, 이 5초에 대한 인식이 변화하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법률 강화와 함께 연구와 시설물 개발이 뒤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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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는 순식간이었다. 2019년 8월, 당시 7살이던 현승이는 어린이 보호구역(스쿨존) 횡단보도에서 길을 건너고 있었다. 평소 좋아하던 집 근처 보건소의 음악 줄넘기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이었다.
60대 여성 운전자가 몰던 SUV 차량은 현승이를 그대로 치었다. 차에 깔린 작은 체구가 바퀴에 끼어 끌려간 거리는 5m가량. 사고를 인지한 운전자가 차를 멈췄을 때, 현승이의 몸은 이미 곳곳이 부서지고 찢어진 뒤였다. 지나가던 중년 남성이 뛰어와 피투성이가 된 아이 곁에서 정신을 잃게 하지 않으려 "괜찮다"고 다독이던 중 119구급차가 도착했다.
곧바로 제주한라병원 권역외상센터로 옮겨졌지만, 현승이의 생명은 위독했다. 7살짜리 아이의 몸을 거대한 차체가 밟고 지나가며 갈비뼈가 전부 골절됐고, 뇌를 둘러싸고 있는 경막 안쪽 뇌혈관이 터져 피가 고이는 경막하출혈이 발생했다. 여기에 사고 후유증으로 안면마비가 찾아왔고, 기관지 협착증으로 좁아진 기도도 잘라내야 했다.
"차마 사고 장면을 볼 수 없을 정도였어요." 사고 당시를 떠올리던 현승 군의 엄마는 흐느끼며 말했다.
열흘 넘게 중환자실에서 생사를 헤매다 기적적으로 살아난 현승 군은 극심한 스트레스로 원형탈모까지 왔다. 이후 제주에서 서울을 오가며 10개월 동안 10여 차례 수술을 진행한 끝에 겨우 일상생활로 돌아올 수 있었다.
2019년 8월 13일 제주시 모 초등학교 정문 앞에서 벌어진 교통사고. 1년 반이 지났지만 현승 군은 여전히 서울을 오가며 남은 치료에 전념하고 있다. 정신과 진료도 병행하고 있다.
현승 군 엄마는 "지금까지 운전자로부터 직접적인 사과 한번 받지 못한 게 너무 억울하다"며 "무엇보다 현승이에게도 너무 미안하다"고 흐느꼈다.
■"회피 가능성 없었다"…법원 "주의 의무 다하지 않아"
60대 여성 운전자는 교통사고처리 특례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운전자 측은 "주의 의무를 위반한 과실이 없고, 예측 가능성과 회피 가능성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제주지방법원 형사2단독(이장욱 판사)은 유죄를 인정하고 여성 운전자에게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사고는 여름이던 8월 저녁 6시 20분쯤 발생했다. 재판부는 당시 주위가 밝고, 피고인의 반대편 차선에 여러 대의 차량이 신호 대기로 정차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이어 도로교통공단의 교통사고 분석결과 사고 직전 속도가 시속 32.5km로 나타났고,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감정 결과에서도 시속 32km로 나와 제한속도를 초과해 차량을 운행했다고 판정했다.
재판부는 사고 장소가 초등학교 정문 앞이었고, 신호기가 설치되지 않아 언제든 보행자가 횡단할 수 있었던 점, 피해자 외에도 다른 어린이들이 횡단보도 쪽으로 걸어가고 있던 점, 피고인이 1995년부터 초등학교 바로 길 건너에 위치한 아파트에 거주해 도로 여건을 잘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토대로 주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판결문을 통해 어린이 보호구역을 지정하고 통행속도를 제한한 도로교통법의 취지도 명확히 설명했다.
재판부는 "어린이는 지각능력과 상황 판단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돌발적으로 차도에 뛰어들거나, 주행 중인 차량을 고려하지 않고 길을 건너려 하거나, 달려오는 차량의 속도를 오판해 길을 건너는 등 위험 행동을 할 우려가 있어 운전자로 하여금 더 높은 주의를 기울이도록 한 것"이라고 법 취지를 강조했다.
재판부는 "사고 후 오랜 시간이 지난 현재까지도 계속 치료를 받고 있고, 피해자의 부모가 엄벌을 탄원하고 있다"며 다만 고의로 저지른 범행이 아닌 점, 차량이 종합보험에 가입돼있는 점, 형사처벌 전력이 없는 점 등을 고려해 형을 선고했다고 밝혔다.
■ 어린이 보호구역 내 횡단보도 '무조건 일시 정지' 추진
지난해 11월 광주광역시 북구 운암동의 한 아파트 단지 어린이 보호구역 횡단보도에서도 유모차를 끌던 엄마와 삼 남매가 화물차에 치이면서 두 살배기가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사고 현장에는 꽃과 함께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 "하늘에서는 아픔 없이 따뜻하길 바랄게."라는 내용이 적힌 손편지가 내걸렸다.
더불어민주당 김영배 의원은 지난해 8월 어린이 보호구역 내에 설치된 횡단보도 앞에서 보행자의 횡단 여부와 상관없이 일시 정지해야 한다는 내용 등을 담은 '도로교통법 일부 개정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횡단보도에 사람이 없어도 혹시 모를 안전사고에 대비해 차를 멈춘 뒤 출발하도록 교통문화를 높이자는 취지다.
김 의원은 법률 제안이유에서 "어린이 보호구역 내의 횡단보도의 경우 갑자기 도로로 진입하는 경우가 있어 일률적인 일시 정지 의무를 부과해야 한다"고 밝혔다. 법안은 계류 중이다.
정미숙 도로교통공단 제주지부 교수는 "운전자가 아닌 보행자 중심의 인식변화가 필요하다"며 "1995년 어린이 보호구역에 관한 법률이 제정된 뒤 20년이 흘러서야 어린이 보호구역에 대한 인식이 바뀌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어 "일시 정지에 5초가 걸리는데, 이 5초에 대한 인식이 변화하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법률 강화와 함께 연구와 시설물 개발이 뒤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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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준영 기자 mjy@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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