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 된 향나무 ‘싹둑’…대전시·충남도·문체부 충돌한 이유는?
입력 2021.02.19 (08:00)
수정 2021.02.19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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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충청남도 청사
천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변호인>의 촬영지, 옛 충남도청사입니다. 1932년 지어진 근대건축물로 고풍스러운 외관 덕에 영화 속 곳곳에서 존재감을 발휘했는데요.
옛 충남도청사를 둘러싸고 있던 수령 70~80년 된 향나무가 한꺼번에 싹둑 잘려져 나가 논란입니다.
■ 세입자가 집주인 허락 없이 공사?
대전 구도심 한복판에 있는 옛 충남도청사는 충청남도가 2012년 내포 신도시로 이전하면서 현재 대전시가 빌려 쓰고 있습니다. 현재는 충청남도 소유지만 오는 7월에는 문화체육관광부로 소유권이 넘어갑니다.
그런데 청사를 빌려 쓰고 있는 대전시가 소유주인 충청남도와 협의도 없이 지난해 여름, 청사를 둘러싸고 있던 향나무 172그루 가운데 128그루를 베고 44그루는 다른 곳으로 이식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진 겁니다.
대전시는, 행정안전부 공모사업을 통해 국비 57억 원을 지원받게 된 뒤, 옛 충남도청사 의회동과 부속 건물을 '소통협력공간'으로 조성하는 증·개축 공사를 하면서 벌어진 일이라고 해명했습니다.
시민들이 쉽게 '소통협력공간'을 이용할 수 있도록 담장을 허물면서 담장을 둘러싸고 있던 향나무도 베어냈다는 것입니다.
대전시가 옛 충청남도 청사에 공사중인 ‘소통협력공간’
하지만 이 과정에서 충청남도나 문체부와 사전에 공문서를 주고받는 협의 절차를 진행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돼 충청남도와 문화체육관광부까지 발칵 뒤집혔습니다. 세입자가 집주인과 상의도 하지 않고 집을 뜯어고친 셈입니다.
뒤늦게 향나무가 잘려나간 걸 알게 된 충청남도는 지난 15일, 공사 중지와 원상 복구를 요청하는 공문을 대전시에 보냈습니다.
대전시는 "구두로 협의했지만, 문서를 남기지 못했다"며 미숙한 행정을 인정하고 공식 사과했습니다.
■ 시민단체 출신 공무원의 시민단체 챙기기?…'셀프 감사' 비아냥까지
대전시가 이렇게 무리한 공사를 강행한 배경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이번 사업을 실질적으로 주도한 강영희 대전시 지역공동체과장이, 자신이 몸담았던 기관에서 쓸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무리수를 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겁니다.
강 과장은 개방형 공무원으로 임용되기 전 대전시 사회적자본지원센터의 센터장으로 일했는데. 현재 증·개축중인 건물에 이 사회적자본지원센터 등이 입주할 예정입니다.
대전시가 잘라낸 70~80년된 향나무
논란이 확산되자 대전시는, 해당 업무를 추진했던 시민공동체국 업무 전반에 대해 감사에 착수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대전시는 감사 착수 발표로 파문이 일단락되기를 기대했지만, 논란은 꼬리를 물고 있습니다.
공모를 통해 내정된 이성규 신임 대전시 감사위원장이 이번 사업이 한창 추진되던 지난해 시민공동체국장을 역임하며 전결권을 행사했기 때문입니다.
'셀프 감사'라는 비아냥이 나오자, 대전시는 이 신임 위원장 역시 징계 대상이라며 이번 감사위원에서 제외할 것이라고 해명했습니다.
이 신임 위원장은 임명과 동시에 감사 대상이 되는, 대전시 감사관실 역사상 초유의 사례의 주인공으로 기록되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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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0년 된 향나무 ‘싹둑’…대전시·충남도·문체부 충돌한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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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1-02-19 08:00:17
- 수정2021-02-19 22:10:38
천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변호인>의 촬영지, 옛 충남도청사입니다. 1932년 지어진 근대건축물로 고풍스러운 외관 덕에 영화 속 곳곳에서 존재감을 발휘했는데요.
옛 충남도청사를 둘러싸고 있던 수령 70~80년 된 향나무가 한꺼번에 싹둑 잘려져 나가 논란입니다.
■ 세입자가 집주인 허락 없이 공사?
대전 구도심 한복판에 있는 옛 충남도청사는 충청남도가 2012년 내포 신도시로 이전하면서 현재 대전시가 빌려 쓰고 있습니다. 현재는 충청남도 소유지만 오는 7월에는 문화체육관광부로 소유권이 넘어갑니다.
그런데 청사를 빌려 쓰고 있는 대전시가 소유주인 충청남도와 협의도 없이 지난해 여름, 청사를 둘러싸고 있던 향나무 172그루 가운데 128그루를 베고 44그루는 다른 곳으로 이식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진 겁니다.
대전시는, 행정안전부 공모사업을 통해 국비 57억 원을 지원받게 된 뒤, 옛 충남도청사 의회동과 부속 건물을 '소통협력공간'으로 조성하는 증·개축 공사를 하면서 벌어진 일이라고 해명했습니다.
시민들이 쉽게 '소통협력공간'을 이용할 수 있도록 담장을 허물면서 담장을 둘러싸고 있던 향나무도 베어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충청남도나 문체부와 사전에 공문서를 주고받는 협의 절차를 진행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돼 충청남도와 문화체육관광부까지 발칵 뒤집혔습니다. 세입자가 집주인과 상의도 하지 않고 집을 뜯어고친 셈입니다.
뒤늦게 향나무가 잘려나간 걸 알게 된 충청남도는 지난 15일, 공사 중지와 원상 복구를 요청하는 공문을 대전시에 보냈습니다.
대전시는 "구두로 협의했지만, 문서를 남기지 못했다"며 미숙한 행정을 인정하고 공식 사과했습니다.
■ 시민단체 출신 공무원의 시민단체 챙기기?…'셀프 감사' 비아냥까지
대전시가 이렇게 무리한 공사를 강행한 배경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이번 사업을 실질적으로 주도한 강영희 대전시 지역공동체과장이, 자신이 몸담았던 기관에서 쓸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무리수를 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겁니다.
강 과장은 개방형 공무원으로 임용되기 전 대전시 사회적자본지원센터의 센터장으로 일했는데. 현재 증·개축중인 건물에 이 사회적자본지원센터 등이 입주할 예정입니다.
논란이 확산되자 대전시는, 해당 업무를 추진했던 시민공동체국 업무 전반에 대해 감사에 착수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대전시는 감사 착수 발표로 파문이 일단락되기를 기대했지만, 논란은 꼬리를 물고 있습니다.
공모를 통해 내정된 이성규 신임 대전시 감사위원장이 이번 사업이 한창 추진되던 지난해 시민공동체국장을 역임하며 전결권을 행사했기 때문입니다.
'셀프 감사'라는 비아냥이 나오자, 대전시는 이 신임 위원장 역시 징계 대상이라며 이번 감사위원에서 제외할 것이라고 해명했습니다.
이 신임 위원장은 임명과 동시에 감사 대상이 되는, 대전시 감사관실 역사상 초유의 사례의 주인공으로 기록되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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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은 기자 mulan8@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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