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주민 현상금 걸고 찾는 ‘전봇대 종’…누가 가져갔나?

입력 2021.02.21 (07:00) 수정 2021.02.21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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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 동구 매축지마을 전봇대에 걸려 있던 ‘전봇대 종’…사라지기 전의 모습 부산 동구 매축지마을 전봇대에 걸려 있던 ‘전봇대 종’…사라지기 전의 모습

"현상금 20만 원! 매축지마을 '전봇대 종'을 찾습니다!"

부산 근·현대사의 흔적을 오롯이 간직한 매축지마을에서 70년 넘게 마을을 지켜온 '전봇대 종'이 최근 감쪽같이 사라졌습니다.

주민은 물론 지역 작가, 예술가들까지 발벗고 나서 온·오프라인으로 종의 행방을 수소문하고 있다는데요.

도대체 무슨 사연일까요?

■ 대형화재 때 주민 살린 '전봇대 종'…매축지마을 상징되다!

부산 동구에 자리잡은 매축지마을. 태평양전쟁 때 만주로 군수물자를 실어나르기 위해 일제가 이곳에 막사와 마굿간을 지었던 곳입니다.

여전히 골목을 따라 걸으면 '시간이 멈춘 듯' 부산 근·현대 질곡의 역사와 마주하게 되는데요. '전봇대 종'은 이 마을 한가운데에 내걸려 70년 넘게 마을을 지켜왔습니다.

"땡땡땡, 땡땡! 불이야~" 1954년 4월 3일, 전봇대 종이 마을에 울려퍼집니다. 당시 부산진 좌천동 일대에 대형 화재가 발생한 겁니다.

미군 소방관 입회 아래 10여 명이 송유관을 수리하던 중이었는데,휘발유가 주변 개천으로 흘렀고, 성냥불이 붙으면서 난 화재였습니다.

37명이 죽고, 140명이 다쳤습니다. 불탄 집만 640채에 이릅니다. 엄청난 피해를 남겼지만, 그나마 화재 경보기가 없던 시절이라 전봇대 종이 주민 대피를 알렸던 것입니다.


■ "할매~ 종 저거 안 팝니까?"…종 사라진 지 벌써 40여 일

불이난 지 70년 가까이 흐를 동안, 종은 한 자리에서 매축지마을을 지켜왔습니다. 이후에는 한 번도 불이 난 적이 없다고 하니, 주민들에겐 마을 수호신이나 다름 없습니다.

그 종이 사라진 지 벌써 40여 일이 지나고 있습니다. 지나가던 낯선 이가 마을 할머니 한 분에게 '종을 팔지 않겠느냐'고 두어 차례 묻고 간 뒤 어느 날 아침 감쪽같이 사라진 겁니다.

CCTV에는 누군가 두꺼운 전깃줄을 끊고, 종을 떼어가는 장면이 포착됐지만, 아직까지 종의 행방은 묘연합니다.

■ 고철값은 해봤자 1~2만 원…종 가치는 셈할 수 없어

당장 주민들은 경찰에 신고를 해야 한다며 나섰고, 마을에서 20년 가까이 통영칠기를 만들고 있는 공예사 박영진 씨도 개인 현상금까지 내걸며 수집상을 통해 수소문에 나섰습니다.

매축지마을을 찾는 방문객이 오면 '마을해설사'를 자처하는 박 씨는 일하는 틈틈이 종 행방을 찾고 있습니다.

SNS를 하지 않는 박 씨는 아는 작가를 통해 온라인으로도 이 사실을 알렸습니다. 이 소식은 지역 작가와 예술인을 통해 점점 퍼지고 있습니다.

직접 SNS에 이 소식을 알린 김경화 작가는 "종의 가치는 이 마을의 가치와 함께 간다"고 말했습니다.

고철값이래봤자 1~2만 원이지만, 이 마을 주민에게 종은 저울에 달아 'kg당 얼마로' 매겨지는 고철값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가치가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 재개발로 곧 사라질 매축지마을…그 질곡의 역사 함께한 '종' 돌아올까?

몇 년 만에 다시 본 부산 동구 매축지마을은 그새 쪼그라들었습니다.

아파트로 빙 둘러쌓인 채 원형감옥에 갇힌 꼴입니다. 남은 곳도 곧 재개발됩니다. 머지 않아 '종이 사라지듯' 매축지마을도 사라질 운명입니다.

그래서 주민들은 더 안타까워합니다.

지금껏 마을과 함께 해왔듯이, 마을의 상징인 '종'도 마을이 사라질 때까지 끝까지 남았으면 했습니다. 마을이 사라지는 날, 마을의 살아있는 역사로 어느 곳이든 남겨두고 싶었습니다.

일제 수탈의 현장, 매축지마을 그 질곡의 역사를 마지막까지 증언해줄 '전봇대 종'을 보신 분은 매축지마을 통영칠기 박영진 사장을 찾아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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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을 주민 현상금 걸고 찾는 ‘전봇대 종’…누가 가져갔나?
    • 입력 2021-02-21 07:00:30
    • 수정2021-02-21 16:53:43
    취재K
 부산 동구 매축지마을 전봇대에 걸려 있던 ‘전봇대 종’…사라지기 전의 모습
"현상금 20만 원! 매축지마을 '전봇대 종'을 찾습니다!"

부산 근·현대사의 흔적을 오롯이 간직한 매축지마을에서 70년 넘게 마을을 지켜온 '전봇대 종'이 최근 감쪽같이 사라졌습니다.

주민은 물론 지역 작가, 예술가들까지 발벗고 나서 온·오프라인으로 종의 행방을 수소문하고 있다는데요.

도대체 무슨 사연일까요?

■ 대형화재 때 주민 살린 '전봇대 종'…매축지마을 상징되다!

부산 동구에 자리잡은 매축지마을. 태평양전쟁 때 만주로 군수물자를 실어나르기 위해 일제가 이곳에 막사와 마굿간을 지었던 곳입니다.

여전히 골목을 따라 걸으면 '시간이 멈춘 듯' 부산 근·현대 질곡의 역사와 마주하게 되는데요. '전봇대 종'은 이 마을 한가운데에 내걸려 70년 넘게 마을을 지켜왔습니다.

"땡땡땡, 땡땡! 불이야~" 1954년 4월 3일, 전봇대 종이 마을에 울려퍼집니다. 당시 부산진 좌천동 일대에 대형 화재가 발생한 겁니다.

미군 소방관 입회 아래 10여 명이 송유관을 수리하던 중이었는데,휘발유가 주변 개천으로 흘렀고, 성냥불이 붙으면서 난 화재였습니다.

37명이 죽고, 140명이 다쳤습니다. 불탄 집만 640채에 이릅니다. 엄청난 피해를 남겼지만, 그나마 화재 경보기가 없던 시절이라 전봇대 종이 주민 대피를 알렸던 것입니다.


■ "할매~ 종 저거 안 팝니까?"…종 사라진 지 벌써 40여 일

불이난 지 70년 가까이 흐를 동안, 종은 한 자리에서 매축지마을을 지켜왔습니다. 이후에는 한 번도 불이 난 적이 없다고 하니, 주민들에겐 마을 수호신이나 다름 없습니다.

그 종이 사라진 지 벌써 40여 일이 지나고 있습니다. 지나가던 낯선 이가 마을 할머니 한 분에게 '종을 팔지 않겠느냐'고 두어 차례 묻고 간 뒤 어느 날 아침 감쪽같이 사라진 겁니다.

CCTV에는 누군가 두꺼운 전깃줄을 끊고, 종을 떼어가는 장면이 포착됐지만, 아직까지 종의 행방은 묘연합니다.

■ 고철값은 해봤자 1~2만 원…종 가치는 셈할 수 없어

당장 주민들은 경찰에 신고를 해야 한다며 나섰고, 마을에서 20년 가까이 통영칠기를 만들고 있는 공예사 박영진 씨도 개인 현상금까지 내걸며 수집상을 통해 수소문에 나섰습니다.

매축지마을을 찾는 방문객이 오면 '마을해설사'를 자처하는 박 씨는 일하는 틈틈이 종 행방을 찾고 있습니다.

SNS를 하지 않는 박 씨는 아는 작가를 통해 온라인으로도 이 사실을 알렸습니다. 이 소식은 지역 작가와 예술인을 통해 점점 퍼지고 있습니다.

직접 SNS에 이 소식을 알린 김경화 작가는 "종의 가치는 이 마을의 가치와 함께 간다"고 말했습니다.

고철값이래봤자 1~2만 원이지만, 이 마을 주민에게 종은 저울에 달아 'kg당 얼마로' 매겨지는 고철값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가치가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 재개발로 곧 사라질 매축지마을…그 질곡의 역사 함께한 '종' 돌아올까?

몇 년 만에 다시 본 부산 동구 매축지마을은 그새 쪼그라들었습니다.

아파트로 빙 둘러쌓인 채 원형감옥에 갇힌 꼴입니다. 남은 곳도 곧 재개발됩니다. 머지 않아 '종이 사라지듯' 매축지마을도 사라질 운명입니다.

그래서 주민들은 더 안타까워합니다.

지금껏 마을과 함께 해왔듯이, 마을의 상징인 '종'도 마을이 사라질 때까지 끝까지 남았으면 했습니다. 마을이 사라지는 날, 마을의 살아있는 역사로 어느 곳이든 남겨두고 싶었습니다.

일제 수탈의 현장, 매축지마을 그 질곡의 역사를 마지막까지 증언해줄 '전봇대 종'을 보신 분은 매축지마을 통영칠기 박영진 사장을 찾아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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