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가는 죽음에 대하여’…대학생들이 취재한 ‘최 일병 사건’

입력 2021.02.22 (09:00) 수정 2021.02.22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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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군대 내에서 일어난 자살 사건을 취재한 대학생들이 있습니다.

대학교 방송국 취재팀인 이들은 지난해 7월, 취재 내용을 23분짜리 다큐멘터리로 제작해 세상에 공개했습니다.

제목은 '말라가는 죽음에 대하여'.

최 일병의 사망 사건을 취재한 대학생들을 만나 9개월 간의 취재 기록을 들어봤습니다.

고려대학교 교욱방송국 시사다큐멘터리 ‘군 집중조명: 1부 말라가는 죽음에 대하여’ 썸네일 화면고려대학교 교욱방송국 시사다큐멘터리 ‘군 집중조명: 1부 말라가는 죽음에 대하여’ 썸네일 화면

■ 대학 취재팀의 9개월간 다큐멘터리 제작 대장정... "유가족에 대한 죄책감"

지난 18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학교 중앙광장 오후 12시. 학위수여식이 한창인 캠퍼스에는 꽃다발을 들고 사진을 찍고 있는 가족들이 드문드문 보였다.

이 대학교 방송국에서 각각 기자와 PD로 활동하는 박나리, 이나영 학생을 학교 구내 카페에서 만났다.

취재진과 인터뷰 중인 고려대학교 박나리 학생(우). 취재진과 인터뷰 중인 고려대학교 박나리 학생(우).

두 명의 학생은 같은 학교 학생이던 최 모 일병이 군대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후, 그의 어머니가 학교 후문에서 1인 피켓시위를 하는 광경을 목격했다.

당시 교내 영어영문학과 학생회를 중심으로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TF팀이 꾸려져 활동이 진행 중인 상황. 이들은 학내 방송국에서 이 사건을 자세히 취재하기로 했다고 한다.

2019년 12월부터 두 학생은 1,800쪽에 달하는 재판 자료와 변사사건 조사기록을 입수해 읽어보며, 같은 학교 학생인 최 일병의 죽음에 대해 차근 차근 분석해 봤다.

사전조사 과정에서 이와 비슷한 여러 사례도 발견할 수 있었다. 커뮤니티를 통해 이와 비슷한 사례들을 접수받았다고 했다.

박나리 양은 “사건 자체가 지휘관한테 괴롭힘을 당한 건데, 상담을 받더라도 그 내용이 다시 그 지휘관한테 보고가 되는 순환고리에서 너무 힘들어서 스스로 목숨을 끊을 생각을 했다는 말을 들었어요”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9개월간의 제작 기간 끝에 23분 분량의 다큐멘터리가 완성됐다. 두 명이 취재, 촬영, 편집을 모두 맡았다.

이들은 취재 중에 사망한 최 일병의 사체가 있던 안치실을 직접 가기도 했다.

"안치실에 갔을 때가 충격적으로 기억에 남았어요. 그 차가운 공기가... 제 또래니까 마음이 너무 아프더라고요."라고 박나리 양이 말했다.

영상 제작을 맡은 이나영 양은 취재했던 유가족들에게 죄책감을 느낀다고 전했다.

이 양은 "저희가 다큐멘터리를 만들면서 해결방안을 마련해보고 싶었는데 그게 생각보다 쉽지 않았어요. "라고 말했다.

■ 병영 생활 전문상담관 등 섭외 쉽지 않아

취재 중 만난 다양한 전문가들의 인터뷰. 방송 갈무리취재 중 만난 다양한 전문가들의 인터뷰. 방송 갈무리

대학생 신분이었기 때문에 섭외부터 쉬울리 없었다.

하지만 이들은 매일 섭외 요청을 거듭한 끝에 한국국방연구원 연구원, 군 상담심리사, 병영 생활 전문상담관, 국가인권위원회 군 인권 조사관, 전 국방부 군 인권 자문위원 등을 만나 여러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박 양은, "병영 생활 전문상담관은 국방부에서 자살 방지를 위해 시행하는 중요한 대책 중의 하나라고 생각되는데, 문제의식이 있다 해도 제도적으로 자기 소리를 낼 수 있는 구조가 아니고, 강력하게 조처를 할 수 있는 권한도 없는 것 같더라고요." 라고 말했다.

학생들의 인터뷰에 응한 정신과 전문의는 "최 일병이 정신적인 가혹행위로 인해 분노와 절망감을 느꼈을 것"이라고 말한다. 각종 검사에서 최 학우는 괴롭힘 피해, 괴롭힘 목격, 수면 문제에 대해 이상 반응을 보였다고 답했지만, 부대 주임원사와의 면담에서 최 일병은 '항목을 착각했다'며 넘어갔다고 전했다.

최 일병의 속마음은 달랐다. 군 동기에게는 면담이 장난스러운 분위기로 진행되어, 솔직하게 답해도 달라질 것 같지 않아 말하지 않았다고 털어놓았다고 한다.

승급이 걸려 있어 솔직하게 응답하지 못한 부사관도 마찬가지다. 병영 생활 전문상담관을 찾아 피해 사실을 호소했지만, 이는 결국 간부에게 보고돼 다시 질책을 당했다고 전했다.

■ 수상 상금 "군대 내에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치료센터 있다면 '기부'할 생각"

두 학생은 학교생활과 병행하며 도전한 첫 다큐멘터리의 취재 과정 내내 고민이 많았다고 했다.

인터뷰 중인 이나영 학생인터뷰 중인 이나영 학생

이 양은 이 주제로 다큐멘터리를 제작한다고 했을 때, 주변 사람들로부터 '왜?'라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고 전했다.

특히 전역한 남자 선배들이 "이게 이야기가 될 수 있을까?"라고 물었다고 했다. '과거의 군대에 비하면 요즘 힘든 건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생각 때문으로, 군에서의 정신적 피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 같은 분위기를 느꼈다고 전했다.

"요즘 체육계 내 학교폭력이 이슈가 많이 되는데, 그 사람들도 힘들었던 걸 호소하는 이유가 '폐쇄적인 문화' 때문이잖아요. 그 사람들한테는 당시의 환경만 눈에 들어왔을 테고, 그 밖에 세상을 보긴 어려웠을 텐데... 군대는 탈영을 할 수도 없고 얼마나 폐쇄적이에요.
그런 메시지를 가장 전달하고 싶었어요. 사실."

박 양은 다큐멘터리 제작 이후 유가족 어머니들로부터 고맙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고 말했다.

최 일병의 어머니. 방송 갈무리최 일병의 어머니. 방송 갈무리

"어디 크게 알려진 것도 아니고, 보는 사람만 보는 그 영상이 왜 고마울까 하고 생각을 해봤는데..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힘이 되는구나 싶었어요."라고 전했다.

두 사람이 제작한 다큐멘터리 '말라가는 죽음에 대하여'는 제9회 한국디지털저널리즘어워드 대학저널리즘 부문, 제12회 시사인대학기자상 영상 부문에서 수상했다. 두 사람은 수상 상금을 군대 내에서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사람들의 치료를 위해 쓰고 싶다고 말했다.


[연관 기사] 입대한 지 6개월 된 공군 병사…‘괴롭힘 피해’로 결국
http://news.kbs.co.kr/news/view.do?ncd=51227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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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말라가는 죽음에 대하여’…대학생들이 취재한 ‘최 일병 사건’
    • 입력 2021-02-22 09:00:49
    • 수정2021-02-22 21:02:42
    취재K
군대 내에서 일어난 자살 사건을 취재한 대학생들이 있습니다.<br /><br />대학교 방송국 취재팀인 이들은 지난해 7월, 취재 내용을 23분짜리 다큐멘터리로 제작해 세상에 공개했습니다.<br /><br />제목은 <strong>'말라가는 죽음에 대하여'.</strong><br /><br />최 일병의 사망 사건을 취재한 대학생들을 만나 9개월 간의 취재 기록을 들어봤습니다. <br />
고려대학교 교욱방송국 시사다큐멘터리 ‘군 집중조명: 1부 말라가는 죽음에 대하여’ 썸네일 화면
■ 대학 취재팀의 9개월간 다큐멘터리 제작 대장정... "유가족에 대한 죄책감"

지난 18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학교 중앙광장 오후 12시. 학위수여식이 한창인 캠퍼스에는 꽃다발을 들고 사진을 찍고 있는 가족들이 드문드문 보였다.

이 대학교 방송국에서 각각 기자와 PD로 활동하는 박나리, 이나영 학생을 학교 구내 카페에서 만났다.

취재진과 인터뷰 중인 고려대학교 박나리 학생(우).
두 명의 학생은 같은 학교 학생이던 최 모 일병이 군대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후, 그의 어머니가 학교 후문에서 1인 피켓시위를 하는 광경을 목격했다.

당시 교내 영어영문학과 학생회를 중심으로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TF팀이 꾸려져 활동이 진행 중인 상황. 이들은 학내 방송국에서 이 사건을 자세히 취재하기로 했다고 한다.

2019년 12월부터 두 학생은 1,800쪽에 달하는 재판 자료와 변사사건 조사기록을 입수해 읽어보며, 같은 학교 학생인 최 일병의 죽음에 대해 차근 차근 분석해 봤다.

사전조사 과정에서 이와 비슷한 여러 사례도 발견할 수 있었다. 커뮤니티를 통해 이와 비슷한 사례들을 접수받았다고 했다.

박나리 양은 “사건 자체가 지휘관한테 괴롭힘을 당한 건데, 상담을 받더라도 그 내용이 다시 그 지휘관한테 보고가 되는 순환고리에서 너무 힘들어서 스스로 목숨을 끊을 생각을 했다는 말을 들었어요”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9개월간의 제작 기간 끝에 23분 분량의 다큐멘터리가 완성됐다. 두 명이 취재, 촬영, 편집을 모두 맡았다.

이들은 취재 중에 사망한 최 일병의 사체가 있던 안치실을 직접 가기도 했다.

"안치실에 갔을 때가 충격적으로 기억에 남았어요. 그 차가운 공기가... 제 또래니까 마음이 너무 아프더라고요."라고 박나리 양이 말했다.

영상 제작을 맡은 이나영 양은 취재했던 유가족들에게 죄책감을 느낀다고 전했다.

이 양은 "저희가 다큐멘터리를 만들면서 해결방안을 마련해보고 싶었는데 그게 생각보다 쉽지 않았어요. "라고 말했다.

■ 병영 생활 전문상담관 등 섭외 쉽지 않아

취재 중 만난 다양한 전문가들의 인터뷰. 방송 갈무리
대학생 신분이었기 때문에 섭외부터 쉬울리 없었다.

하지만 이들은 매일 섭외 요청을 거듭한 끝에 한국국방연구원 연구원, 군 상담심리사, 병영 생활 전문상담관, 국가인권위원회 군 인권 조사관, 전 국방부 군 인권 자문위원 등을 만나 여러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박 양은, "병영 생활 전문상담관은 국방부에서 자살 방지를 위해 시행하는 중요한 대책 중의 하나라고 생각되는데, 문제의식이 있다 해도 제도적으로 자기 소리를 낼 수 있는 구조가 아니고, 강력하게 조처를 할 수 있는 권한도 없는 것 같더라고요." 라고 말했다.

학생들의 인터뷰에 응한 정신과 전문의는 "최 일병이 정신적인 가혹행위로 인해 분노와 절망감을 느꼈을 것"이라고 말한다. 각종 검사에서 최 학우는 괴롭힘 피해, 괴롭힘 목격, 수면 문제에 대해 이상 반응을 보였다고 답했지만, 부대 주임원사와의 면담에서 최 일병은 '항목을 착각했다'며 넘어갔다고 전했다.

최 일병의 속마음은 달랐다. 군 동기에게는 면담이 장난스러운 분위기로 진행되어, 솔직하게 답해도 달라질 것 같지 않아 말하지 않았다고 털어놓았다고 한다.

승급이 걸려 있어 솔직하게 응답하지 못한 부사관도 마찬가지다. 병영 생활 전문상담관을 찾아 피해 사실을 호소했지만, 이는 결국 간부에게 보고돼 다시 질책을 당했다고 전했다.

■ 수상 상금 "군대 내에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치료센터 있다면 '기부'할 생각"

두 학생은 학교생활과 병행하며 도전한 첫 다큐멘터리의 취재 과정 내내 고민이 많았다고 했다.

인터뷰 중인 이나영 학생
이 양은 이 주제로 다큐멘터리를 제작한다고 했을 때, 주변 사람들로부터 '왜?'라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고 전했다.

특히 전역한 남자 선배들이 "이게 이야기가 될 수 있을까?"라고 물었다고 했다. '과거의 군대에 비하면 요즘 힘든 건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생각 때문으로, 군에서의 정신적 피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 같은 분위기를 느꼈다고 전했다.

"요즘 체육계 내 학교폭력이 이슈가 많이 되는데, 그 사람들도 힘들었던 걸 호소하는 이유가 '폐쇄적인 문화' 때문이잖아요. 그 사람들한테는 당시의 환경만 눈에 들어왔을 테고, 그 밖에 세상을 보긴 어려웠을 텐데... 군대는 탈영을 할 수도 없고 얼마나 폐쇄적이에요.
그런 메시지를 가장 전달하고 싶었어요. 사실."

박 양은 다큐멘터리 제작 이후 유가족 어머니들로부터 고맙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고 말했다.

최 일병의 어머니. 방송 갈무리
"어디 크게 알려진 것도 아니고, 보는 사람만 보는 그 영상이 왜 고마울까 하고 생각을 해봤는데..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힘이 되는구나 싶었어요."라고 전했다.

두 사람이 제작한 다큐멘터리 '말라가는 죽음에 대하여'는 제9회 한국디지털저널리즘어워드 대학저널리즘 부문, 제12회 시사인대학기자상 영상 부문에서 수상했다. 두 사람은 수상 상금을 군대 내에서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사람들의 치료를 위해 쓰고 싶다고 말했다.


[연관 기사] 입대한 지 6개월 된 공군 병사…‘괴롭힘 피해’로 결국
http://news.kbs.co.kr/news/view.do?ncd=51227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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