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가·쓰레기 더미 가운데 어린이집 통학로…우리 아이 안전은?

입력 2021.02.22 (11:41) 수정 2021.02.22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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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집 통학로 옆 방치된 쓰레기와 빈집. 재개발로 이미 주민 대부분이 이주를 마쳤다.어린이집 통학로 옆 방치된 쓰레기와 빈집. 재개발로 이미 주민 대부분이 이주를 마쳤다.

■"이 근처가 지금 전부 폐가예요. 애들 데리고 다니는 것도 겁나요."

주거환경 개선사업으로 곧 철거에 들어가는 부산 남구의 문현2구역. 이곳에는 원아 80명이 다니는 작은 국공립 어린이집이 있습니다. 1980년대 지어져 지금까지 줄곧 원아들의 돌봄을 맡아왔는데요.

행정구역상 부산 부산진구 소속이지만 남구와 인접해 이번 사업 지구에 포함됐습니다. 탁 트인 전망과 넓은 야외 놀이터로 남구와 부산진구 학부모들 모두가 선호하던 곳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재개발로 주변 주택들은 텅텅 비었고, 길가에는 사람들이 무단 투기한 쓰레기들이 넘칩니다. 주변 주택에는 노숙자들이 연탄을 피우고 잠시 머무른 흔적도 남아있었는데요. 통학로 주변이 슬럼화하면서 아이들을 어린이집으로 보내는 학부모들의 걱정도 큽니다.

애초 계획대로라면 지난해 5월 다른 곳으로 어린이집을 옮겼어야 하지만, 어린이집은 여전히 쓰레기 더미 속, 또 안전이 담보되지 않은 이곳에 그대로 머물러 있습니다. 주변에는 이 원아들을 받아 줄 어린이집도 없는데요. 어쩌다 재개발구역 한가운데 어린이집이 방치된 걸까요?

전포보람어린이집 이전 관련 추진 사항 문건. LH가 통학로 안전 등을 이유로 2019년 3월 부산진구에 부지 이전을 요청했다.전포보람어린이집 이전 관련 추진 사항 문건. LH가 통학로 안전 등을 이유로 2019년 3월 부산진구에 부지 이전을 요청했다.

내 아이 다니는 어린이집인데…"어디로 옮기는지도 몰랐다"

재개발 사업자인 한국토지주택공사, LH 측은 2019년 3월, 어린이집터에 안전 문제가 있다며 부산 부산진구에 어린이집 이전 예정지를 바꿔야 한다고 요구합니다. 어린이집이 들어설 자리 바로 옆으로 공사 차량 진입로가 들어선다는 이유였습니다.

비산먼지와 석면 해체 작업 등이 남아있던 터라 부산진구는 이 요구를 받아들였습니다. 이 때문에 새 터를 찾게 됐는데요. 여기서부터 문제가 발생합니다.

학부모들은 2020년 5월까지, 부산진구와 LH가 어린이집 이전 예정지를 변경하는지 까맣게 몰랐습니다. 구청에서나 LH로부터 예정대로 이전이 진행되는 거로만 들었다는 건데요. 2020년 5월은 어린이집이 이전하기로 한 때입니다. 그러니까, 어린이집 이전 직전까지 학부모들과는 전혀 상의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확전된 것이 없다"며 시간 끌기만 한 LH 측은 결국 6월에 학부모들에게 변경된 어린이집 이전지를 발표합니다.

LH 측이 매입한 대체 부지. 이곳에 원아 80명을 모집하려면 건물을 4층까지 지어야 한다.LH 측이 매입한 대체 부지. 이곳에 원아 80명을 모집하려면 건물을 4층까지 지어야 한다.

불통 행정에 피해는 결국 아이들 몫

LH가 새로 구했다는 터, 학부모들은 계획안이 발표되자마자 집단 반발했습니다. 새로 정한 이전 예정지는 건물 높이를 4층까지 올려야 원아 80명이 겨우 다닐 수 있을 정도로 좁았습니다.

특히 LH는 아이들 놀이터를 옥상에 짓겠다고 계획했습니다. 좁은 터 탓에 엘리베이터도 못 짓는 이 건물, 아이들이 걸어서 놀이터를 오르락내리락 해야 합니다. 학부모들은 무엇보다 엘리베이터가 없어 화재 등 안전사고가 나면 대피하기도 쉽지 않다고 분통을 터뜨립니다.

형평성 문제도 제기됐습니다. 새로 짓는다는 어린이집 예정지, 길 건너편에 이미 국공립 어린이집이 있습니다. 특정 지역에 국공립 어린이집이 쏠린다는 우려가 나왔습니다. 여기에다 일부 아이들은 지금보다 평균 2배 넘는 통학시간이 걸리게 됩니다.

결국, 학부모들은 반발했고, 부산진구는 계획을 원점으로 돌리겠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원래대로 돌아가기도 쉽지 않아졌습니다. LH는 이미 시공사와도 어린이집은 빠진다는 전제하에 계약을 마친 뒤였습니다. LH 측은 임시 이전 등 다양한 대안을 마련 중이라고 했지만, 이마저도 다시 구청과 시공사 간의 협의가 필요합니다.

이 협의가 끝나고 어린이집 이전이 끝나기까지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이 걸릴지는 알 수 없습니다.

일부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남구 주거 환경 개선사업지구에 포함되는 사업이라 부산진구 소속의 어린이집을 일부러 배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는데요. 실제 LH 측은 "남구 예산은 남구에 써야 한다"고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이 같은 주장에 부산진구의회는 지난해 말, 어린이집 위탁운영 재승인 당시 "원안대로 어린이집이 옮겨가지 않으면 부산진구 행정구역을 무턱대고 넘겨줄 수는 없다"고 선을 긋기도 했습니다.

결국, 어른들의 지루한 논의가 이어지는 동안, 아이들은 기약 없이 매일 위험한 통학로를 지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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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폐가·쓰레기 더미 가운데 어린이집 통학로…우리 아이 안전은?
    • 입력 2021-02-22 11:41:55
    • 수정2021-02-22 21:02:41
    취재K
어린이집 통학로 옆 방치된 쓰레기와 빈집. 재개발로 이미 주민 대부분이 이주를 마쳤다.
■"이 근처가 지금 전부 폐가예요. 애들 데리고 다니는 것도 겁나요."

주거환경 개선사업으로 곧 철거에 들어가는 부산 남구의 문현2구역. 이곳에는 원아 80명이 다니는 작은 국공립 어린이집이 있습니다. 1980년대 지어져 지금까지 줄곧 원아들의 돌봄을 맡아왔는데요.

행정구역상 부산 부산진구 소속이지만 남구와 인접해 이번 사업 지구에 포함됐습니다. 탁 트인 전망과 넓은 야외 놀이터로 남구와 부산진구 학부모들 모두가 선호하던 곳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재개발로 주변 주택들은 텅텅 비었고, 길가에는 사람들이 무단 투기한 쓰레기들이 넘칩니다. 주변 주택에는 노숙자들이 연탄을 피우고 잠시 머무른 흔적도 남아있었는데요. 통학로 주변이 슬럼화하면서 아이들을 어린이집으로 보내는 학부모들의 걱정도 큽니다.

애초 계획대로라면 지난해 5월 다른 곳으로 어린이집을 옮겼어야 하지만, 어린이집은 여전히 쓰레기 더미 속, 또 안전이 담보되지 않은 이곳에 그대로 머물러 있습니다. 주변에는 이 원아들을 받아 줄 어린이집도 없는데요. 어쩌다 재개발구역 한가운데 어린이집이 방치된 걸까요?

전포보람어린이집 이전 관련 추진 사항 문건. LH가 통학로 안전 등을 이유로 2019년 3월 부산진구에 부지 이전을 요청했다.
내 아이 다니는 어린이집인데…"어디로 옮기는지도 몰랐다"

재개발 사업자인 한국토지주택공사, LH 측은 2019년 3월, 어린이집터에 안전 문제가 있다며 부산 부산진구에 어린이집 이전 예정지를 바꿔야 한다고 요구합니다. 어린이집이 들어설 자리 바로 옆으로 공사 차량 진입로가 들어선다는 이유였습니다.

비산먼지와 석면 해체 작업 등이 남아있던 터라 부산진구는 이 요구를 받아들였습니다. 이 때문에 새 터를 찾게 됐는데요. 여기서부터 문제가 발생합니다.

학부모들은 2020년 5월까지, 부산진구와 LH가 어린이집 이전 예정지를 변경하는지 까맣게 몰랐습니다. 구청에서나 LH로부터 예정대로 이전이 진행되는 거로만 들었다는 건데요. 2020년 5월은 어린이집이 이전하기로 한 때입니다. 그러니까, 어린이집 이전 직전까지 학부모들과는 전혀 상의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확전된 것이 없다"며 시간 끌기만 한 LH 측은 결국 6월에 학부모들에게 변경된 어린이집 이전지를 발표합니다.

LH 측이 매입한 대체 부지. 이곳에 원아 80명을 모집하려면 건물을 4층까지 지어야 한다.
불통 행정에 피해는 결국 아이들 몫

LH가 새로 구했다는 터, 학부모들은 계획안이 발표되자마자 집단 반발했습니다. 새로 정한 이전 예정지는 건물 높이를 4층까지 올려야 원아 80명이 겨우 다닐 수 있을 정도로 좁았습니다.

특히 LH는 아이들 놀이터를 옥상에 짓겠다고 계획했습니다. 좁은 터 탓에 엘리베이터도 못 짓는 이 건물, 아이들이 걸어서 놀이터를 오르락내리락 해야 합니다. 학부모들은 무엇보다 엘리베이터가 없어 화재 등 안전사고가 나면 대피하기도 쉽지 않다고 분통을 터뜨립니다.

형평성 문제도 제기됐습니다. 새로 짓는다는 어린이집 예정지, 길 건너편에 이미 국공립 어린이집이 있습니다. 특정 지역에 국공립 어린이집이 쏠린다는 우려가 나왔습니다. 여기에다 일부 아이들은 지금보다 평균 2배 넘는 통학시간이 걸리게 됩니다.

결국, 학부모들은 반발했고, 부산진구는 계획을 원점으로 돌리겠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원래대로 돌아가기도 쉽지 않아졌습니다. LH는 이미 시공사와도 어린이집은 빠진다는 전제하에 계약을 마친 뒤였습니다. LH 측은 임시 이전 등 다양한 대안을 마련 중이라고 했지만, 이마저도 다시 구청과 시공사 간의 협의가 필요합니다.

이 협의가 끝나고 어린이집 이전이 끝나기까지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이 걸릴지는 알 수 없습니다.

일부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남구 주거 환경 개선사업지구에 포함되는 사업이라 부산진구 소속의 어린이집을 일부러 배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는데요. 실제 LH 측은 "남구 예산은 남구에 써야 한다"고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이 같은 주장에 부산진구의회는 지난해 말, 어린이집 위탁운영 재승인 당시 "원안대로 어린이집이 옮겨가지 않으면 부산진구 행정구역을 무턱대고 넘겨줄 수는 없다"고 선을 긋기도 했습니다.

결국, 어른들의 지루한 논의가 이어지는 동안, 아이들은 기약 없이 매일 위험한 통학로를 지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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