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 성추행’ 교원대 사건, 신고 2년이나 지났지만…

입력 2021.02.23 (07:00) 수정 2021.02.23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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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 열풍이 거세던 2018년, 충북 청주 한국교원대학교에서 한 대학원생이 교수의 성추행 의혹을 폭로했다. 1심과 2심 재판부는 가해 교수에게 ‘징역 1년’을 선고했다 (그래픽: 김소영 디자이너).미투 열풍이 거세던 2018년, 충북 청주 한국교원대학교에서 한 대학원생이 교수의 성추행 의혹을 폭로했다. 1심과 2심 재판부는 가해 교수에게 ‘징역 1년’을 선고했다 (그래픽: 김소영 디자이너).

■ 대학원생 A 씨, "담당 교수가 수차례 성추행" 주장

"나도 당했다."

학교 내 성폭력 고발, 이른바 '미투(Me, too)' 운동이 들불처럼 번지던 지난 2018년 8월, 국가가 설립한 교원 양성소인 충북 청주의 한국교원대학교에서도 교수의 성추행 의혹이 제기됐습니다. 한국교원대에 다니던 대학원생 A 씨가 끔찍했던 기억을 용기 있게 털어놨습니다.

2015년 3월, 한국교원대 대학원에 입학한 A 씨.
A 씨는 현직 교사 신분의 대학원생이 아니라, 교사가 되기 위해 일반 전형으로 대학원에 진학한 대학원생이었습니다.

입학 직후, A 씨는 당시 한국교원대 B 전(前) 교수의 지시로 조교 업무를 맡게 됐습니다. 앞으로 석·박사 과정을 무사히 마쳐야, 진로가 결정되는 불확실한 갈림길에 서 있었던 A 씨는 "조교로 생활하면 하면 조금이나마 진로 선택에 도움이 될까 싶어 업무를 맡았다"고 말합니다.

"조교 일을 시작한 지 1년쯤 지난 뒤부터 B 교수의 성추행이 시작됐다"고 A 씨는 주장합니다. "B 전 교수가 '논문 지도'를 핑계로 자신의 연구실로 불러들인 뒤, "안마해달라"고 요구하는 등 수차례 성추행을 일삼았다"는 겁니다."

"여자는 당할 때 성적 판타지가 있다."
"내가 만질 때 싫어하는 여자는 없었다."

"B 전 교수의 성적 발언과 추행 정도는 날이 갈수록 점점 심해졌다"고도 주장합니다. 하지만 " 교수에게 잘 못 보이면 교사의 꿈을 이루지 못할까 두려웠기 때문에 강하게 거절할 수 없었다"고 밝혔습니다.

반 년간 이어진 끔찍한 기억이 시간이 흘러도 잊히지 않았다던 A 씨.
사건 발생 2년 뒤, '미투' 운동이 이어지자 용기를 내고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 B 전 교수, "피해자와 연인 관계" 주장

하지만 신고한 지 2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사건은 '현재 진행 중'입니다.

법정에 선 B 전 교수가 "피해자와 연인 관계였고, 피해자가 악의적으로 폭로했다"고 계속 주장하고 있어서입니다.

지난해 2월, 1심 재판부는 제자를 성추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B 씨에게 징역 1년을 선고했습니다. 재 판부는 "피고인과 피해자의 관계, 정도 등에 비춰볼 때 위력으로 추행했음을 인정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2016년 초반에 벌어진 범행은 유죄로 봤지만, 이후 벌어진 추행은 "B 전 교수와 피해자와의 관계가 변했을 가능성도 있고,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피해가 입증돼야 한다"면서 일부 무죄 판결을 내렸습니다.

또, B 전 교수가 "피해자와 내연관계였다"고 주장하는 등 사건을 두고 다투는 점 등을 이유로 법정 구속하지 않았습니다.

이후 징역 5년을 구형했던 검사와 B 전 교수 모두 항소했지만, 모두 기각됐습니다. 항소심 재판부는 "두 사람이 연인 관계였다는 피고인의 주장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면서 원심을 유지했는데요.

이번에도 B 전 교수는 법정 구속을 면했습니다. 재판부가 코로나19 상황 등을 이유로 법정 구속하지 않겠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전국 각지의 교도소에서 확진자가 잇따르자, 집단 감염 우려로 수형자의 밀집도를 줄이기 위해 이같이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22일 오전 청주지방법원 앞에서 피고인의 법정 구속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22일 오전 청주지방법원 앞에서 피고인의 법정 구속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 "여전히 가해자 중심 사고… 위계에 의한 성범죄 엄벌해야"

B 전 교수가 두 번이나 법정 구속을 면한 데 대해 지역 여성단체는 즉각 반발했습니다.

충북여성연대는 기자회견을 열고, "교도소 상황이 코로나19로 매우 어려워 B 전 교수를 법정 구속하지 않은 항소심 판결은 용기를 낸 피해자에게 내린 명백한 인격 살인"이라고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또, "실형을 받은 피고인을 법정 구속하지 않은 건 '선별적 법정 구속'으로, 피고인에 대한 사법부의 선별적 복지"라고 주장하면서 엄중히 처벌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에 대해 청주지방법원 관계자는 "재판부가 재량껏 법정 구속 여부 등을 판단할 수 있다"며 "확정 판결이 나면 형을 집행할 수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내게 남은 모든 것들을 포기하는 데 2년이 걸렸다"

위계에 의한 수직적인 관계 속에서 피해를 즉각 호소할 수 없었다던 A 씨.
"앞으로 교사의 꿈을 이루지 못할 수도 있지만, 자신과 같은 피해자가 또 나올까 봐 용기를 냈다"고 말합니다.

A 씨의 폭로 직후, 한국교원대학교 게시판 등에는 또 다른 피해자들의 증언이 잇따랐습니다. 같은 해인 2018년 10월, 대학 측은 징계위원회를 열고 B 교수를 '파면'했습니다.

하지만 '무죄'를 주장하고 있는 B 전 교수는 학교를 상대로 '파면 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한 상태입니다.
또, B 전 교수는 여전히 "피해자와 연인 관계였다"고 주장하면서 대법원에 상고했습니다.

성범죄 피해로 도망치듯 학교를 떠나야 했던 A 씨는 지금도 여전히 대인기피증에 시달리고 있다고 호소합니다. 어렵게 용기를 냈지만 신고한 지 2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괴로웠던 순간을 되새기면서 치열한 공방을 이어가야만 합니다.

성추행 사건이 있고 나서 6번째 봄을 맞았지만, A 씨는 여전히 사건이 처음 발생했던 시린 겨울 한가운데에 머물러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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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자 성추행’ 교원대 사건, 신고 2년이나 지났지만…
    • 입력 2021-02-23 07:00:51
    • 수정2021-02-23 20:28:29
    취재K
미투 열풍이 거세던 2018년, 충북 청주 한국교원대학교에서 한 대학원생이 교수의 성추행 의혹을 폭로했다. 1심과 2심 재판부는 가해 교수에게 ‘징역 1년’을 선고했다 (그래픽: 김소영 디자이너).
■ 대학원생 A 씨, "담당 교수가 수차례 성추행" 주장

"나도 당했다."

학교 내 성폭력 고발, 이른바 '미투(Me, too)' 운동이 들불처럼 번지던 지난 2018년 8월, 국가가 설립한 교원 양성소인 충북 청주의 한국교원대학교에서도 교수의 성추행 의혹이 제기됐습니다. 한국교원대에 다니던 대학원생 A 씨가 끔찍했던 기억을 용기 있게 털어놨습니다.

2015년 3월, 한국교원대 대학원에 입학한 A 씨.
A 씨는 현직 교사 신분의 대학원생이 아니라, 교사가 되기 위해 일반 전형으로 대학원에 진학한 대학원생이었습니다.

입학 직후, A 씨는 당시 한국교원대 B 전(前) 교수의 지시로 조교 업무를 맡게 됐습니다. 앞으로 석·박사 과정을 무사히 마쳐야, 진로가 결정되는 불확실한 갈림길에 서 있었던 A 씨는 "조교로 생활하면 하면 조금이나마 진로 선택에 도움이 될까 싶어 업무를 맡았다"고 말합니다.

"조교 일을 시작한 지 1년쯤 지난 뒤부터 B 교수의 성추행이 시작됐다"고 A 씨는 주장합니다. "B 전 교수가 '논문 지도'를 핑계로 자신의 연구실로 불러들인 뒤, "안마해달라"고 요구하는 등 수차례 성추행을 일삼았다"는 겁니다."

"여자는 당할 때 성적 판타지가 있다."
"내가 만질 때 싫어하는 여자는 없었다."

"B 전 교수의 성적 발언과 추행 정도는 날이 갈수록 점점 심해졌다"고도 주장합니다. 하지만 " 교수에게 잘 못 보이면 교사의 꿈을 이루지 못할까 두려웠기 때문에 강하게 거절할 수 없었다"고 밝혔습니다.

반 년간 이어진 끔찍한 기억이 시간이 흘러도 잊히지 않았다던 A 씨.
사건 발생 2년 뒤, '미투' 운동이 이어지자 용기를 내고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 B 전 교수, "피해자와 연인 관계" 주장

하지만 신고한 지 2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사건은 '현재 진행 중'입니다.

법정에 선 B 전 교수가 "피해자와 연인 관계였고, 피해자가 악의적으로 폭로했다"고 계속 주장하고 있어서입니다.

지난해 2월, 1심 재판부는 제자를 성추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B 씨에게 징역 1년을 선고했습니다. 재 판부는 "피고인과 피해자의 관계, 정도 등에 비춰볼 때 위력으로 추행했음을 인정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2016년 초반에 벌어진 범행은 유죄로 봤지만, 이후 벌어진 추행은 "B 전 교수와 피해자와의 관계가 변했을 가능성도 있고,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피해가 입증돼야 한다"면서 일부 무죄 판결을 내렸습니다.

또, B 전 교수가 "피해자와 내연관계였다"고 주장하는 등 사건을 두고 다투는 점 등을 이유로 법정 구속하지 않았습니다.

이후 징역 5년을 구형했던 검사와 B 전 교수 모두 항소했지만, 모두 기각됐습니다. 항소심 재판부는 "두 사람이 연인 관계였다는 피고인의 주장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면서 원심을 유지했는데요.

이번에도 B 전 교수는 법정 구속을 면했습니다. 재판부가 코로나19 상황 등을 이유로 법정 구속하지 않겠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전국 각지의 교도소에서 확진자가 잇따르자, 집단 감염 우려로 수형자의 밀집도를 줄이기 위해 이같이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22일 오전 청주지방법원 앞에서 피고인의 법정 구속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 "여전히 가해자 중심 사고… 위계에 의한 성범죄 엄벌해야"

B 전 교수가 두 번이나 법정 구속을 면한 데 대해 지역 여성단체는 즉각 반발했습니다.

충북여성연대는 기자회견을 열고, "교도소 상황이 코로나19로 매우 어려워 B 전 교수를 법정 구속하지 않은 항소심 판결은 용기를 낸 피해자에게 내린 명백한 인격 살인"이라고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또, "실형을 받은 피고인을 법정 구속하지 않은 건 '선별적 법정 구속'으로, 피고인에 대한 사법부의 선별적 복지"라고 주장하면서 엄중히 처벌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에 대해 청주지방법원 관계자는 "재판부가 재량껏 법정 구속 여부 등을 판단할 수 있다"며 "확정 판결이 나면 형을 집행할 수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내게 남은 모든 것들을 포기하는 데 2년이 걸렸다"

위계에 의한 수직적인 관계 속에서 피해를 즉각 호소할 수 없었다던 A 씨.
"앞으로 교사의 꿈을 이루지 못할 수도 있지만, 자신과 같은 피해자가 또 나올까 봐 용기를 냈다"고 말합니다.

A 씨의 폭로 직후, 한국교원대학교 게시판 등에는 또 다른 피해자들의 증언이 잇따랐습니다. 같은 해인 2018년 10월, 대학 측은 징계위원회를 열고 B 교수를 '파면'했습니다.

하지만 '무죄'를 주장하고 있는 B 전 교수는 학교를 상대로 '파면 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한 상태입니다.
또, B 전 교수는 여전히 "피해자와 연인 관계였다"고 주장하면서 대법원에 상고했습니다.

성범죄 피해로 도망치듯 학교를 떠나야 했던 A 씨는 지금도 여전히 대인기피증에 시달리고 있다고 호소합니다. 어렵게 용기를 냈지만 신고한 지 2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괴로웠던 순간을 되새기면서 치열한 공방을 이어가야만 합니다.

성추행 사건이 있고 나서 6번째 봄을 맞았지만, A 씨는 여전히 사건이 처음 발생했던 시린 겨울 한가운데에 머물러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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