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영화제 포스터에서 왜 ‘표절논란’ 도쿄올림픽 로고가 보일까?

입력 2021.02.23 (16:43) 수정 2021.02.23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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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회 전주국제영화제 공식 포스터제22회 전주국제영화제 공식 포스터

■ 제22회 전주국제영화제 포스터 공개 〈'J' 형상화〉

올해 22회를 맞는 전주국제영화제 공식 포스터가 바로 지난주 공개됐습니다. 빨강 바탕에 몇 개의 도형들이 놓인 모습인데, 여러 의미가 녹아있습니다.

가장 큰 두 개의 도형, 완만하게 깎인 세로 기둥과 그 앞에 곧추선 사각형은 '전주'의 영문 첫머리 'J'를 형상화했습니다.

각 도형 마다 나타내는 건 또 따로 있습니다. 전통적 영화 스크린 비례를 가진 세로 기둥은 모바일로 옮겨가는 영화 매체의 미래를 상징한다고 하고, 앞에 놓인 사각형에는 디지털 스크린 화소 단위인 '픽셀'을 본떠 만들었다는 설명이 덧붙여졌습니다.

그럼, 사진 한 장을 더 보여드리겠습니다.

‘Rebuild Japan’ 2011 / 출처 : Hey Studio‘Rebuild Japan’ 2011 / 출처 : Hey Studio

■ 어디서 봤더라?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기반을 둔 디자인 업체 Hey Studio가 2011년에 낸 작품 'Rebuild Japan'입니다.

"대지진 뒤 '일본의 재건'을 기념하고자 했다"고, 작품 배경이 설명돼 있는데 역시 도형들을 배치해 의미를 부여했네요.

심오한 뜻은 따로 있을 테고, 일단 눈으로 보이는 도형들이 'Japan'을 가리키는 건 쉽게 알 수 있겠습니다. 깎인 기둥과 그 앞에 놓인 빨간 원이 보는 이로 하여금 'J'-'일장기'-'Japan'의 의식 흐름을 차례로, 빠르게 안내합니다.

그런데 〈완만하게 깎인 기둥과 그 앞에 놓인 작은 도형〉, 앞서 본 영화제 포스터와 묘하게 닮았습니다.

이제 두 디자인을 나란히 붙여보겠습니다.

두 디자인 비교두 디자인 비교

■ 도쿄올림픽 엠블럼 표절 논란 '그때 그 로고'

사실 Hey Studio의 위 작품은 이미 한차례 표절 논란의 주인공이 된 적 있습니다. 〈2020 도쿄올림픽 엠블럼 표절 논란〉 기억하시는지요?

2015년 7월, 일본 도쿄올림픽 조직위원회는 'T'를 형상화한 디자인을 공식 엠블럼으로 내놨습니다. 'Tokyo, Team, Tomorrow' 세 가지 의미를 담았다고 했는데, 일주일 만에 표절 논란에 휘말립니다.

벨기에 리에주 극장(Théâtre de Liège)의 로고와 정말 닮았기 때문입니다. 리에주 극장 로고를 디자인한 올리비에 도비는 NHK와 인터뷰에서 "디자인의 구도와 글씨체가 비슷하다"며 "그대로 베꼈다고 말하기 어렵지만 내 작품을 한 번도 보지 않았다고는 생각하기 어렵다"고 일침을 놨습니다.

 ‘표절 시비’ 도쿄올림픽 엠블럼(중앙). 당시에도 Hey studio 작품(오른쪽)이 비교되며 논란이 일었다. ‘표절 시비’ 도쿄올림픽 엠블럼(중앙). 당시에도 Hey studio 작품(오른쪽)이 비교되며 논란이 일었다.

이렇게 불붙은 표절 시비가 앞서 소개한 Hey Studio의 'Rebuild Japan'으로도 이어집니다.

각각 'T'와 'J'를 형상화했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완만하게 깎인 기둥과 원, 색상 조합이 디자인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보아도 괜한 의심을 품게 합니다.

결과는 잘 알려진 대로입니다. 표절 시비 한 달 만에 도쿄올림픽 조직위원회는 문제의 엠블럼을 폐기했습니다.

표절 시비에 결국 철거되는 도쿄올림픽 엠블럼 / 출처 : 연합뉴스표절 시비에 결국 철거되는 도쿄올림픽 엠블럼 / 출처 : 연합뉴스

■ "유사성 없습니다"…"논란되겠는데요?"

전주국제영화제 포스터 얘기로 돌아와 이야기를 이어가겠습니다. 이번에 공개된 영화제 포스터와 Hey Studio의 2011년 작품, 모습이 비슷한 두 디자인의 관계를 전문가는 어떻게 평가할까요.

김거수 홍익대 시각디자인과 교수는 "유사성 없다"고 잘라 말합니다. 김 교수의 해석을 더 소개하면 이렇습니다.

"누구나 충분히 생각할 수 있는 디자인적 표현 방법이다. 뉴질랜드, 시카고, 어느 대학의 디자인 클래스라도 J를 이처럼 디자인한 사람은 수없이 많을 것이다. 누구라도 만들 법한 디자인을 두고 어느 순간 먼저 발표했다고 해서 '자기 것'을 주장할 수 없다"

하지만 디자인 도용 문제를 다루는 변리사에게 두 작품을 보여줬더니 의견이 사뭇 다릅니다.

" 논란이 될 가능성 있다. 전체적으로 유사하다. 같은 모습을 한 오른쪽 세로 기둥과 그 앞에 도형을 배치한 점이 특히 그렇다. 원작자가 저작권 문제로 접근하면 법적 다툼의 여지가 있다"


■ "도형 단순화 거듭하면 도달하는 지점 같아"

전주국제영화제 공식 포스터를 만든 디자이너에겐 불편한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10년 전 나온 디자인과 조금 비슷해 보인다는 말에 그는 "통상적으로 많이 쓰는 모듈의 조합"이라며 논란과 거리를 뒀습니다. 그러면서 "도형을 최소 단위로 단순화를 거듭하면 도달하는 지점이 같다"고 강조했습니다.

독창적이지 않을 순 있으나, '의도' 역시 없다는 강한 표현입니다. 다만, 포스터 시안을 제출하는 과정과 또 선정된 이후에 유사성에 대한 조사는 따로 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꼭 결론 내리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만큼 '표절 시비'는 판단이 어렵고 치열한 다툼이 뒤따릅니다.

'도쿄올림픽 엠블럼 표절 논란' 뒷얘기를 궁금해할 분들이 있을 것 같아 짤막히 적고 끝냅니다.

표절 소송을 낸 올리비에 도비는 반년 만에 소를 철회했습니다. "재판에서 이기더라도 소송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 회수할 수 없을 것"이란 게, 그녀가 법적 다툼을 포기한 이유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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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 영화제 포스터에서 왜 ‘표절논란’ 도쿄올림픽 로고가 보일까?
    • 입력 2021-02-23 16:43:28
    • 수정2021-02-23 20:28:15
    취재K
제22회 전주국제영화제 공식 포스터
■ 제22회 전주국제영화제 포스터 공개 〈'J' 형상화〉

올해 22회를 맞는 전주국제영화제 공식 포스터가 바로 지난주 공개됐습니다. 빨강 바탕에 몇 개의 도형들이 놓인 모습인데, 여러 의미가 녹아있습니다.

가장 큰 두 개의 도형, 완만하게 깎인 세로 기둥과 그 앞에 곧추선 사각형은 '전주'의 영문 첫머리 'J'를 형상화했습니다.

각 도형 마다 나타내는 건 또 따로 있습니다. 전통적 영화 스크린 비례를 가진 세로 기둥은 모바일로 옮겨가는 영화 매체의 미래를 상징한다고 하고, 앞에 놓인 사각형에는 디지털 스크린 화소 단위인 '픽셀'을 본떠 만들었다는 설명이 덧붙여졌습니다.

그럼, 사진 한 장을 더 보여드리겠습니다.

‘Rebuild Japan’ 2011 / 출처 : Hey Studio
■ 어디서 봤더라?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기반을 둔 디자인 업체 Hey Studio가 2011년에 낸 작품 'Rebuild Japan'입니다.

"대지진 뒤 '일본의 재건'을 기념하고자 했다"고, 작품 배경이 설명돼 있는데 역시 도형들을 배치해 의미를 부여했네요.

심오한 뜻은 따로 있을 테고, 일단 눈으로 보이는 도형들이 'Japan'을 가리키는 건 쉽게 알 수 있겠습니다. 깎인 기둥과 그 앞에 놓인 빨간 원이 보는 이로 하여금 'J'-'일장기'-'Japan'의 의식 흐름을 차례로, 빠르게 안내합니다.

그런데 〈완만하게 깎인 기둥과 그 앞에 놓인 작은 도형〉, 앞서 본 영화제 포스터와 묘하게 닮았습니다.

이제 두 디자인을 나란히 붙여보겠습니다.

두 디자인 비교
■ 도쿄올림픽 엠블럼 표절 논란 '그때 그 로고'

사실 Hey Studio의 위 작품은 이미 한차례 표절 논란의 주인공이 된 적 있습니다. 〈2020 도쿄올림픽 엠블럼 표절 논란〉 기억하시는지요?

2015년 7월, 일본 도쿄올림픽 조직위원회는 'T'를 형상화한 디자인을 공식 엠블럼으로 내놨습니다. 'Tokyo, Team, Tomorrow' 세 가지 의미를 담았다고 했는데, 일주일 만에 표절 논란에 휘말립니다.

벨기에 리에주 극장(Théâtre de Liège)의 로고와 정말 닮았기 때문입니다. 리에주 극장 로고를 디자인한 올리비에 도비는 NHK와 인터뷰에서 "디자인의 구도와 글씨체가 비슷하다"며 "그대로 베꼈다고 말하기 어렵지만 내 작품을 한 번도 보지 않았다고는 생각하기 어렵다"고 일침을 놨습니다.

 ‘표절 시비’ 도쿄올림픽 엠블럼(중앙). 당시에도 Hey studio 작품(오른쪽)이 비교되며 논란이 일었다.
이렇게 불붙은 표절 시비가 앞서 소개한 Hey Studio의 'Rebuild Japan'으로도 이어집니다.

각각 'T'와 'J'를 형상화했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완만하게 깎인 기둥과 원, 색상 조합이 디자인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보아도 괜한 의심을 품게 합니다.

결과는 잘 알려진 대로입니다. 표절 시비 한 달 만에 도쿄올림픽 조직위원회는 문제의 엠블럼을 폐기했습니다.

표절 시비에 결국 철거되는 도쿄올림픽 엠블럼 / 출처 : 연합뉴스
■ "유사성 없습니다"…"논란되겠는데요?"

전주국제영화제 포스터 얘기로 돌아와 이야기를 이어가겠습니다. 이번에 공개된 영화제 포스터와 Hey Studio의 2011년 작품, 모습이 비슷한 두 디자인의 관계를 전문가는 어떻게 평가할까요.

김거수 홍익대 시각디자인과 교수는 "유사성 없다"고 잘라 말합니다. 김 교수의 해석을 더 소개하면 이렇습니다.

"누구나 충분히 생각할 수 있는 디자인적 표현 방법이다. 뉴질랜드, 시카고, 어느 대학의 디자인 클래스라도 J를 이처럼 디자인한 사람은 수없이 많을 것이다. 누구라도 만들 법한 디자인을 두고 어느 순간 먼저 발표했다고 해서 '자기 것'을 주장할 수 없다"

하지만 디자인 도용 문제를 다루는 변리사에게 두 작품을 보여줬더니 의견이 사뭇 다릅니다.

" 논란이 될 가능성 있다. 전체적으로 유사하다. 같은 모습을 한 오른쪽 세로 기둥과 그 앞에 도형을 배치한 점이 특히 그렇다. 원작자가 저작권 문제로 접근하면 법적 다툼의 여지가 있다"


■ "도형 단순화 거듭하면 도달하는 지점 같아"

전주국제영화제 공식 포스터를 만든 디자이너에겐 불편한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10년 전 나온 디자인과 조금 비슷해 보인다는 말에 그는 "통상적으로 많이 쓰는 모듈의 조합"이라며 논란과 거리를 뒀습니다. 그러면서 "도형을 최소 단위로 단순화를 거듭하면 도달하는 지점이 같다"고 강조했습니다.

독창적이지 않을 순 있으나, '의도' 역시 없다는 강한 표현입니다. 다만, 포스터 시안을 제출하는 과정과 또 선정된 이후에 유사성에 대한 조사는 따로 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꼭 결론 내리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만큼 '표절 시비'는 판단이 어렵고 치열한 다툼이 뒤따릅니다.

'도쿄올림픽 엠블럼 표절 논란' 뒷얘기를 궁금해할 분들이 있을 것 같아 짤막히 적고 끝냅니다.

표절 소송을 낸 올리비에 도비는 반년 만에 소를 철회했습니다. "재판에서 이기더라도 소송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 회수할 수 없을 것"이란 게, 그녀가 법적 다툼을 포기한 이유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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