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의 ‘또 경계 실패’ 뒤엔…‘어디서 본 듯’한 대책?

입력 2021.02.24 (07:00) 수정 2021.02.24 (0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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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동해 민통선 인근에서 신원이 확보된 월남자가 우리 군의 감시 장비에 8번 포착될 때까지 적절한 조치가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또, 해안을 따라 침투를 막기 위한 철책이 설치돼 있었지만, 이 남성은 철책 아래 배수로를 통과했습니다. 현재 이 지역을 맡은 군은 이 배수로의 존재를 몰랐습니다.


■8번 감시장비 찍히도록 '수상한 거동' 놓친 軍

이 남성이 강원도 고성 통일 전망대 인근 우리 해안에 상륙한 건 새벽 1시 5분쯤. 해안 철책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오면서 잠수복과 오리발을 버렸습니다.

이 과정에서 오전 1시 5분부터 38분 사이 군 감시카메라 4대에 5번 포착됐고, 경계시스템 경보도 2차례 작동했습니다. 하지만 적절한 조치는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근무자가 바람으로 인한 오작동으로 생각한 것 같다는 게 군의 설명입니다.

이후 해안 철책 아래 배수로를 통과한 북한 남성은 철로와 7번 국도를 따라 남쪽으로 이동했고, 이후 오전 4시 12분~14분쯤 7번 도로를 비추는 해군 합동작전지원소 울타리 경계용 CCTV에 3차례 추가 포착됐습니다.

하지만 경보는 울리지 않았고 위병소 근무자도 이 남성을 인지하지 못했습니다. 이 남성이 9번째, 10번째로 CCTV에 찍히고 나서야 군은 수상한 움직임을 포착했습니다.

감시 장비 화면을 살피는 軍 (자료화면)감시 장비 화면을 살피는 軍 (자료화면)

■'전수조사'했다던 배수로, 있는지도 몰라

배수로 관리도 부실했습니다. 지난해 7월 강화도에서 한 남성이 군의 경계지역 안에 있는 배수로를 통과해 북한으로 헤엄쳐 월북한 일이 발생했습니다. 군은 전방지역 배수로를 전수조사했습니다. 고성 지역의 인근 배수로 45곳 또한 전수조사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현장 검열에서 군의 관리 목록에 없어 당시 조사 대상에서 빠졌던 배수로 3곳이 발견됐습니다. 과거 부대 교대 시 제대로 인수인계가 되지 않아 현재 이곳에서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부대는 배수로가 있다는 것도 몰랐습니다.

군은 이 배수로 끝이 외부로 돌출되지 않아 맨눈으로 잘 식별되지 않았다고 설명했습니다. 배수로가 있는 곳이 미확인 지뢰지대이다 보니 평소 수색 지역도 아니었다고 해명했습니다. 군 관계자는 현장 간부들이 이 배수로를 인근 상가에서 나오는 오수가 흐르는 관으로 생각했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런데 하필 이 배수로는 월남자가 상륙한 지점으로부터 가까운 곳에 있었고, 또, 하필 철책 바깥(해안선 쪽)에서는 배수로 구멍이 보였습니다. 월남자는 바로 이 배수로를 통과했습니다. 차단물이 있었지만 부식 상태를 고려할 때 이미 전부터 훼손된 상태였던 것으로 군은 추정했습니다.

■'수영으로 이동' 추정…근거는?

군은 이 월남자가 북한 모처에서 출발해 수영으로 우리 측 해안에 왔다고 판단했습니다. 상륙 지점 근처에서는 고무로 된 잠수복과 오리발이 발견됐습니다. 수경과 호흡을 위한 빨대는 발견되진 않았지만 수영 당시 착용했을 것으로 군은 추정했습니다.

겨울 바다에서 장시간 어떻게 수영했는지 의문이 제기됐지만, 군은 잠수복 안에 패딩 형태의 옷을 입어 체온을 유지하고 물에 뜨는 데 도움이 됐다고 설명했습니다.

군 관계자는 "미 해군 잠수 교본에는 수온 7도에서 5시간 정도 바다 활동이 가능한 것으로 돼있다"며 이 사람이 6시간 정도 수영한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어업과 관련한 부업에 종사했고, 물에 익숙한 사람"이라고도 했습니다.

당시 해류는 북에서 남으로 시속 0.37㎞ 속력으로 흘렀고 해수 온도는 6~8도였습니다.


■대책 발표…어디서 본 것 같은?

군이 최초로 월남자를 인지한 건 새벽 4시 16분쯤. 이때서야 보고를 거쳐 경계, 감시 형태를 격상했고, 새벽 6시 35분쯤엔 경계태세 1급, '진돗개'를 발령했습니다. 수색을 통해 신병을 확보한 건 7시 27분쯤입니다.

월남자가 우리 해안에 상륙해서 군이 인지하기까지 3시간 이상이, 신병을 확보하기까지는 6시간 20분이 걸렸습니다.


군은 경계실패를 인정했습니다. 경계작전 수행요원의 작전 기강을 확립하고, 과학과경계체계 운용 개념을 보완하고 철책 하단 배수로 수문에 대한 전수조사를 통해 조속히 보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군은 이번 상황을 엄중하게 인식하고, 환골탈태의 각오로 근본적인 보완 대책을 강도높게 추진하겠다고도 덧붙였습니다.

그런데 지난해 7월 강화도 수영 월북 사건이 발생했을 때도 군은 이런 대책을 내놓은 바 있습니다. 당시 내용을 그대로 싣습니다.

"감시 장비 운용요원 지속적으로 교육", "전 부대 수문·배수로 일제 점검해 근본적인 보완대책 강구", "철책 직후방이나 민간인 접근 가능 지역 일제 점검해 통제 대책 강구" 끝으로 "군은 이번 상황을 매우 엄중하게 인식하고 근본적인 보완대책을 최단시간 내에 강도 높게 추진하고 다양한 우발상황에도 대처할 수 있도록 만전을 기하겠다."

군은 이번 경계 실패와 관련해 관련자 문책 등 인사조치는 국방부 차원에서 추가적으로 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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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2-24 07:00:29
    • 수정2021-02-24 07:42:12
    취재K
지난 16일, 동해 민통선 인근에서 신원이 확보된 월남자가 우리 군의 감시 장비에 8번 포착될 때까지 적절한 조치가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또, 해안을 따라 침투를 막기 위한 철책이 설치돼 있었지만, 이 남성은 철책 아래 배수로를 통과했습니다. 현재 이 지역을 맡은 군은 이 배수로의 존재를 몰랐습니다.


■8번 감시장비 찍히도록 '수상한 거동' 놓친 軍

이 남성이 강원도 고성 통일 전망대 인근 우리 해안에 상륙한 건 새벽 1시 5분쯤. 해안 철책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오면서 잠수복과 오리발을 버렸습니다.

이 과정에서 오전 1시 5분부터 38분 사이 군 감시카메라 4대에 5번 포착됐고, 경계시스템 경보도 2차례 작동했습니다. 하지만 적절한 조치는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근무자가 바람으로 인한 오작동으로 생각한 것 같다는 게 군의 설명입니다.

이후 해안 철책 아래 배수로를 통과한 북한 남성은 철로와 7번 국도를 따라 남쪽으로 이동했고, 이후 오전 4시 12분~14분쯤 7번 도로를 비추는 해군 합동작전지원소 울타리 경계용 CCTV에 3차례 추가 포착됐습니다.

하지만 경보는 울리지 않았고 위병소 근무자도 이 남성을 인지하지 못했습니다. 이 남성이 9번째, 10번째로 CCTV에 찍히고 나서야 군은 수상한 움직임을 포착했습니다.

감시 장비 화면을 살피는 軍 (자료화면)
■'전수조사'했다던 배수로, 있는지도 몰라

배수로 관리도 부실했습니다. 지난해 7월 강화도에서 한 남성이 군의 경계지역 안에 있는 배수로를 통과해 북한으로 헤엄쳐 월북한 일이 발생했습니다. 군은 전방지역 배수로를 전수조사했습니다. 고성 지역의 인근 배수로 45곳 또한 전수조사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현장 검열에서 군의 관리 목록에 없어 당시 조사 대상에서 빠졌던 배수로 3곳이 발견됐습니다. 과거 부대 교대 시 제대로 인수인계가 되지 않아 현재 이곳에서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부대는 배수로가 있다는 것도 몰랐습니다.

군은 이 배수로 끝이 외부로 돌출되지 않아 맨눈으로 잘 식별되지 않았다고 설명했습니다. 배수로가 있는 곳이 미확인 지뢰지대이다 보니 평소 수색 지역도 아니었다고 해명했습니다. 군 관계자는 현장 간부들이 이 배수로를 인근 상가에서 나오는 오수가 흐르는 관으로 생각했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런데 하필 이 배수로는 월남자가 상륙한 지점으로부터 가까운 곳에 있었고, 또, 하필 철책 바깥(해안선 쪽)에서는 배수로 구멍이 보였습니다. 월남자는 바로 이 배수로를 통과했습니다. 차단물이 있었지만 부식 상태를 고려할 때 이미 전부터 훼손된 상태였던 것으로 군은 추정했습니다.

■'수영으로 이동' 추정…근거는?

군은 이 월남자가 북한 모처에서 출발해 수영으로 우리 측 해안에 왔다고 판단했습니다. 상륙 지점 근처에서는 고무로 된 잠수복과 오리발이 발견됐습니다. 수경과 호흡을 위한 빨대는 발견되진 않았지만 수영 당시 착용했을 것으로 군은 추정했습니다.

겨울 바다에서 장시간 어떻게 수영했는지 의문이 제기됐지만, 군은 잠수복 안에 패딩 형태의 옷을 입어 체온을 유지하고 물에 뜨는 데 도움이 됐다고 설명했습니다.

군 관계자는 "미 해군 잠수 교본에는 수온 7도에서 5시간 정도 바다 활동이 가능한 것으로 돼있다"며 이 사람이 6시간 정도 수영한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어업과 관련한 부업에 종사했고, 물에 익숙한 사람"이라고도 했습니다.

당시 해류는 북에서 남으로 시속 0.37㎞ 속력으로 흘렀고 해수 온도는 6~8도였습니다.


■대책 발표…어디서 본 것 같은?

군이 최초로 월남자를 인지한 건 새벽 4시 16분쯤. 이때서야 보고를 거쳐 경계, 감시 형태를 격상했고, 새벽 6시 35분쯤엔 경계태세 1급, '진돗개'를 발령했습니다. 수색을 통해 신병을 확보한 건 7시 27분쯤입니다.

월남자가 우리 해안에 상륙해서 군이 인지하기까지 3시간 이상이, 신병을 확보하기까지는 6시간 20분이 걸렸습니다.


군은 경계실패를 인정했습니다. 경계작전 수행요원의 작전 기강을 확립하고, 과학과경계체계 운용 개념을 보완하고 철책 하단 배수로 수문에 대한 전수조사를 통해 조속히 보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군은 이번 상황을 엄중하게 인식하고, 환골탈태의 각오로 근본적인 보완 대책을 강도높게 추진하겠다고도 덧붙였습니다.

그런데 지난해 7월 강화도 수영 월북 사건이 발생했을 때도 군은 이런 대책을 내놓은 바 있습니다. 당시 내용을 그대로 싣습니다.

"감시 장비 운용요원 지속적으로 교육", "전 부대 수문·배수로 일제 점검해 근본적인 보완대책 강구", "철책 직후방이나 민간인 접근 가능 지역 일제 점검해 통제 대책 강구" 끝으로 "군은 이번 상황을 매우 엄중하게 인식하고 근본적인 보완대책을 최단시간 내에 강도 높게 추진하고 다양한 우발상황에도 대처할 수 있도록 만전을 기하겠다."

군은 이번 경계 실패와 관련해 관련자 문책 등 인사조치는 국방부 차원에서 추가적으로 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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