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섬과 짜장면…오래된 그림과 뉴스로 본 ‘밤섬의 추억’

입력 2021.02.25 (08:02) 수정 2021.02.25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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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미련 다 내려놓고 한강에 뛰어든 가련한 남자 김씨. 그런데 아뿔싸! 어설픈 투신은 소동으로 끝나고, 김씨는 대도시의 강 한가운데 작은 섬에 표류하죠. 세상을 등지려 했던 김씨는 그곳에서 생존의 길을 모색합니다.

문명의 이기나 혜택과는 거리가 먼 외딴 섬에서 천신만고끝에 만들어 먹은 짜장면 한 그릇. 단언컨대 한국 영화 역사상 가장 빛나는 먹방으로 기록될 김씨의 짜장면 흡입 장면은 그 자체로 말할 수 없는 감동을 안겨주었습니다.

여의도에 있는 직장에 20년을 다녔고, 한강을 건널 때마다 숱하게 봤던 강 한가운데 작은 섬 '밤섬'.

실체도 애틋함도 없이 그냥 민물에 떠 있는 무인도일 뿐이었던 밤섬은 그러나 <김씨표류기>라는 영화를 본 뒤론 어떤 '동경의 대상' 같은 강렬한 이미지로 남았습니다.

줄창 물고기만 건져먹다가 어느 날 물가에 떼밀려온 죽은 새를 구워 맛있게 섭취하는 장면에 겹쳐지는 촌철살인의 독백. "진화라는 건 어쩌면 맛있어지는 과정이 아닐까요?"

말 나온 김에 2009년 5월에 개봉한 영화 <김씨표류기>를 소개한 뉴스를 다시 열어봅니다.


조선 시대 문헌 기록을 보면 밤섬은 율주(栗洲) 또는 율도(栗島)로 불렸습니다. 섬의 모양이 마치 밤알을 까놓은 것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죠.

조선 시대에는 지금처럼 여의도와 분리되지 않은 한 덩어리였고, 집중호우나 장마로 강물이 불어나면 밤섬과 여의도 사이에 물길이 생겼다고 합니다.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 수록된 도성 지도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 수록된 도성 지도

조선 지도의 대부 고산자 김정호(金正浩, 1804~1864)가 1861년에 제작한 불멸의 업적 《대동여지도》에 도성을 그린 지도가 있습니다.

지금의 여의도가 표시돼 있고, 오른쪽으로 '율도'라는 이름이 보이죠. 지도상으로도 여의도와 밤섬이 따로 떨어져 있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종묵 서울대 국문과 교수가 《한강의 섬》(마티, 2009)이란 책에 실은 <조선 시대의 밤섬과 여의도>라는 글을 읽어 보면, 그 시절의 밤섬은 한강에서 뱃놀이하는 양반네와 선비들에게 꽤 유명한 관광지로 각광받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일일이 거론하지 힘들 만큼 많은 유명 시인과 묵객이 밤섬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시(詩)를 남겼죠. 그 가운데 조선 중기에 이름을 날린 시인 이행(李荇, 1478~1534)의 시를 옮겨봅니다.

舟人報道栗島好 뱃사공이 밤섬 좋다 일러 주면서
白沙十里淸而幽 백사장 십리가 맑고 호젓하다지.
雲陰䤃䤁水光立 구름은 어둑어둑 물빛은 곧은데
暝色熹微煙木稠 희미한 어둠 속에 나무숲이 빼곡하네.

조선 시대 내내 이름난 문인들이 저마다 그 멋과 아름다움을 상찬해 마지않았다면, 화가들의 그림 속에도 남아 있지 않을까. 궁금하던 차에 얼마 전 미술사학자 최열의 《옛 그림으로 본 서울》(혜화1117, 2020)에 소개된 그림 한 점을 만났습니다.

심사정 〈밤섬〉,18세기, 24.5×27.0cm,개인 소장심사정 〈밤섬〉,18세기, 24.5×27.0cm,개인 소장

조선 후기 남종문인화의 대가로 불리는 현재 심사정(沈師正, 1707~1769)의 그림입니다.

1988년 서울 인사동에서 열린 기획전 '조선시대 회화 명품전'에서 공개된 작품으로, 한양의 명승지 여덟 곳을 그려 묶은 화첩 《경구팔경첩》 수록작입니다.

그림 속 섬이 도대체 어디를 가리키는 것인지 몰랐다가, 2017년에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윤진영 연구원이 《경강: 광나루에서 양화진까지》(서울역사박물관, 2017)에 실은 <진경산수화로 보는 경강의 명소>란 글에서 처음으로 '밤섬'이라는 견해를 발표합니다.

핵심은 조선 시대 한강에 사람이 살았던 저 정도 작은 섬은 밤섬밖에 달리 없고, 그림 왼쪽에 보이는 표암 강세황(姜世晃, 1713~1791)의 글을 읽어 보면 밤섬이라고 볼 수밖에 없어 보입니다.

물 속 외로운 섬에 어부들의 시골집이 점으로 이어져 있고 그 가운데 평평한 호수와 낮은 산은 매우 아름다운 운치가 있다. (중략) 사람으로 하여금 조각배에서 한가로움을 즐기는 흥취가 있게 만들었다. 내 장차 노를 저어 한 번 찾아가리라. 표암.

그렇다면 이 그림은 조선 시대 유일의 밤섬 그림이라고 할 수 있겠죠. 밤섬을 묘사한 그림이 그래도 한 점이나마 남아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그 뒤로 오랜 세월이 흘러 밤섬이 다시 역사의 전면에 등장한 희대의 사건이 있었습니다.

1968년 2월 10일,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밤섬은 형체로 없이 사라지고 맙니다. 여의도를 개발할 목적으로 밤섬을 폭파해 한강의 물흐름을 살리고 토석과 모래는 여의도에 제방을 쌓는 데 쓰였죠.

당시 밤섬에 집을 짓고 살던 원주민 62가구 443명은 지금의 마포구 창전동 밤섬마을로 삶의 터전을 옮겨야 했습니다. 당시 영상을 KBS 영상실록에서 확인해 보시죠.


그렇게 지도에서 영영 사라진 줄로만 알았던 밤섬이 어느 순간 다시 물 위로 고개를 내밀었습니다. 자연이 스스로 만들어낸 이 기적과도 같은 재생의 시나리오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기에 더 큰 놀라움을 안겨줬죠.

이미 1980년대에 다시 모습을 드러낸 밤섬에 철새들이 날아들고, 사람들은 철새가 떠나기 전 먹이주기 행사를 열기도 했습니다. KBS 뉴스 홈페이지에서 확인되는 가장 오래된 뉴스에서 그때 그 시절 밤섬의 모습을 만나볼까요.


그렇게 다시 살아난, 더 정확하게는 생겨난 밤섬을 가장 반긴 사람들은 당연히 1968년 밤섬에서 강제로 이주해야 했던 실향민들이었을 겁니다.

1998년 10월 14일, 옛 밤섬 주민들은 30년 만에 고향 땅을 다시 밟은 감격을 누립니다. 당시 큰 화제가 됐을 원주민들의 밤섬 방문 장면 역시 KBS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겼습니다.


갈수록 풍요로움을 더해가는 밤섬의 생태계 복원에 주목한 서울시는 1999년 8월 10일 밤섬을 '생태경관보전지역'으로 정해 일반인의 출입을 금지했습니다.

이어 2012년 6월 26일, 밤섬은 우리나라의 도시 내부 습지로는 드물게 18번째 람사르습지에 등록됐습니다. 2014년 서울시 조사에서 밤섬의 면적은 폭파 직전인 1996년 4만 5천㎡였다가 2014년 현재 27만 9천㎡로 6배나 넓어졌습니다.

그때 이후 7년이 지난 지금, 밤섬에선 또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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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밤섬과 짜장면…오래된 그림과 뉴스로 본 ‘밤섬의 추억’
    • 입력 2021-02-25 08:02:47
    • 수정2021-02-25 10:35:57
    취재K
세상 미련 다 내려놓고 한강에 뛰어든 가련한 남자 김씨. 그런데 아뿔싸! 어설픈 투신은 소동으로 끝나고, 김씨는 대도시의 강 한가운데 작은 섬에 표류하죠. 세상을 등지려 했던 김씨는 그곳에서 생존의 길을 모색합니다.

문명의 이기나 혜택과는 거리가 먼 외딴 섬에서 천신만고끝에 만들어 먹은 짜장면 한 그릇. 단언컨대 한국 영화 역사상 가장 빛나는 먹방으로 기록될 김씨의 짜장면 흡입 장면은 그 자체로 말할 수 없는 감동을 안겨주었습니다.

여의도에 있는 직장에 20년을 다녔고, 한강을 건널 때마다 숱하게 봤던 강 한가운데 작은 섬 '밤섬'.

실체도 애틋함도 없이 그냥 민물에 떠 있는 무인도일 뿐이었던 밤섬은 그러나 <김씨표류기>라는 영화를 본 뒤론 어떤 '동경의 대상' 같은 강렬한 이미지로 남았습니다.

줄창 물고기만 건져먹다가 어느 날 물가에 떼밀려온 죽은 새를 구워 맛있게 섭취하는 장면에 겹쳐지는 촌철살인의 독백. "진화라는 건 어쩌면 맛있어지는 과정이 아닐까요?"

말 나온 김에 2009년 5월에 개봉한 영화 <김씨표류기>를 소개한 뉴스를 다시 열어봅니다.


조선 시대 문헌 기록을 보면 밤섬은 율주(栗洲) 또는 율도(栗島)로 불렸습니다. 섬의 모양이 마치 밤알을 까놓은 것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죠.

조선 시대에는 지금처럼 여의도와 분리되지 않은 한 덩어리였고, 집중호우나 장마로 강물이 불어나면 밤섬과 여의도 사이에 물길이 생겼다고 합니다.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 수록된 도성 지도
조선 지도의 대부 고산자 김정호(金正浩, 1804~1864)가 1861년에 제작한 불멸의 업적 《대동여지도》에 도성을 그린 지도가 있습니다.

지금의 여의도가 표시돼 있고, 오른쪽으로 '율도'라는 이름이 보이죠. 지도상으로도 여의도와 밤섬이 따로 떨어져 있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종묵 서울대 국문과 교수가 《한강의 섬》(마티, 2009)이란 책에 실은 <조선 시대의 밤섬과 여의도>라는 글을 읽어 보면, 그 시절의 밤섬은 한강에서 뱃놀이하는 양반네와 선비들에게 꽤 유명한 관광지로 각광받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일일이 거론하지 힘들 만큼 많은 유명 시인과 묵객이 밤섬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시(詩)를 남겼죠. 그 가운데 조선 중기에 이름을 날린 시인 이행(李荇, 1478~1534)의 시를 옮겨봅니다.

舟人報道栗島好 뱃사공이 밤섬 좋다 일러 주면서
白沙十里淸而幽 백사장 십리가 맑고 호젓하다지.
雲陰䤃䤁水光立 구름은 어둑어둑 물빛은 곧은데
暝色熹微煙木稠 희미한 어둠 속에 나무숲이 빼곡하네.

조선 시대 내내 이름난 문인들이 저마다 그 멋과 아름다움을 상찬해 마지않았다면, 화가들의 그림 속에도 남아 있지 않을까. 궁금하던 차에 얼마 전 미술사학자 최열의 《옛 그림으로 본 서울》(혜화1117, 2020)에 소개된 그림 한 점을 만났습니다.

심사정 〈밤섬〉,18세기, 24.5×27.0cm,개인 소장
조선 후기 남종문인화의 대가로 불리는 현재 심사정(沈師正, 1707~1769)의 그림입니다.

1988년 서울 인사동에서 열린 기획전 '조선시대 회화 명품전'에서 공개된 작품으로, 한양의 명승지 여덟 곳을 그려 묶은 화첩 《경구팔경첩》 수록작입니다.

그림 속 섬이 도대체 어디를 가리키는 것인지 몰랐다가, 2017년에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윤진영 연구원이 《경강: 광나루에서 양화진까지》(서울역사박물관, 2017)에 실은 <진경산수화로 보는 경강의 명소>란 글에서 처음으로 '밤섬'이라는 견해를 발표합니다.

핵심은 조선 시대 한강에 사람이 살았던 저 정도 작은 섬은 밤섬밖에 달리 없고, 그림 왼쪽에 보이는 표암 강세황(姜世晃, 1713~1791)의 글을 읽어 보면 밤섬이라고 볼 수밖에 없어 보입니다.

물 속 외로운 섬에 어부들의 시골집이 점으로 이어져 있고 그 가운데 평평한 호수와 낮은 산은 매우 아름다운 운치가 있다. (중략) 사람으로 하여금 조각배에서 한가로움을 즐기는 흥취가 있게 만들었다. 내 장차 노를 저어 한 번 찾아가리라. 표암.

그렇다면 이 그림은 조선 시대 유일의 밤섬 그림이라고 할 수 있겠죠. 밤섬을 묘사한 그림이 그래도 한 점이나마 남아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그 뒤로 오랜 세월이 흘러 밤섬이 다시 역사의 전면에 등장한 희대의 사건이 있었습니다.

1968년 2월 10일,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밤섬은 형체로 없이 사라지고 맙니다. 여의도를 개발할 목적으로 밤섬을 폭파해 한강의 물흐름을 살리고 토석과 모래는 여의도에 제방을 쌓는 데 쓰였죠.

당시 밤섬에 집을 짓고 살던 원주민 62가구 443명은 지금의 마포구 창전동 밤섬마을로 삶의 터전을 옮겨야 했습니다. 당시 영상을 KBS 영상실록에서 확인해 보시죠.


그렇게 지도에서 영영 사라진 줄로만 알았던 밤섬이 어느 순간 다시 물 위로 고개를 내밀었습니다. 자연이 스스로 만들어낸 이 기적과도 같은 재생의 시나리오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기에 더 큰 놀라움을 안겨줬죠.

이미 1980년대에 다시 모습을 드러낸 밤섬에 철새들이 날아들고, 사람들은 철새가 떠나기 전 먹이주기 행사를 열기도 했습니다. KBS 뉴스 홈페이지에서 확인되는 가장 오래된 뉴스에서 그때 그 시절 밤섬의 모습을 만나볼까요.


그렇게 다시 살아난, 더 정확하게는 생겨난 밤섬을 가장 반긴 사람들은 당연히 1968년 밤섬에서 강제로 이주해야 했던 실향민들이었을 겁니다.

1998년 10월 14일, 옛 밤섬 주민들은 30년 만에 고향 땅을 다시 밟은 감격을 누립니다. 당시 큰 화제가 됐을 원주민들의 밤섬 방문 장면 역시 KBS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겼습니다.


갈수록 풍요로움을 더해가는 밤섬의 생태계 복원에 주목한 서울시는 1999년 8월 10일 밤섬을 '생태경관보전지역'으로 정해 일반인의 출입을 금지했습니다.

이어 2012년 6월 26일, 밤섬은 우리나라의 도시 내부 습지로는 드물게 18번째 람사르습지에 등록됐습니다. 2014년 서울시 조사에서 밤섬의 면적은 폭파 직전인 1996년 4만 5천㎡였다가 2014년 현재 27만 9천㎡로 6배나 넓어졌습니다.

그때 이후 7년이 지난 지금, 밤섬에선 또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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