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램지어는 위안부 할머니를 직접 만나라”…‘위안부 다큐 제작’ 중국인 프로듀서

입력 2021.02.26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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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중국인 위안부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있는 중국인 류양 프로듀서중국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중국인 위안부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있는 중국인 류양 프로듀서

중국 후난성에 사는 올해 93살 류츠쥔 할머니에게는 떠올리기 싫은 악몽같은 기억이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77년 전 16살의 나이에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갔던 경험입니다.

강제로 끌려간 일본군 위안소에서 1년 동안 차마 입에 담기 힘든 고초를 겪었습니다. 류 할머니는 강제로 성폭행 당한 뒤 자신을 성폭행한 군인과 같이 자야 했다고 증언했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류츠쥔 할머니. 강제로 성폭행 당했다며 강제성을 증언했다. (사진 제공=다큐 제작팀 ‘후이셩’)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류츠쥔 할머니. 강제로 성폭행 당했다며 강제성을 증언했다. (사진 제공=다큐 제작팀 ‘후이셩’)

지옥같은 1년 간의 위안부 생활 끝에 가까스로 중국 군인들에게 구조된 할머니는 중국군에 합류해 군 간호사로 항일 전선에 뛰어들었습니다. 일본군에 대한 적개심 때문이었을 겁니다.

■ "강제로 성폭행" "눈 멀었는데도 끌고 가"...이어지는 중국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 증언

올해 92살인 펑주잉 할머니도 1944년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 고초를 겪었습니다. 불과 14살 어린 나이였습니다. 펑 할머니는 심지어 눈이 먼 상태였습니다. 어릴적 일본군의 화학무기 때문에 시력을 잃었다고 펑 할머니는 말합니다.

눈이 먼 채 끌려가 일본군 위안부 생활을 했던 펑주잉 할머니 (사진 제공=다큐 제작팀 ‘후이셩’)눈이 먼 채 끌려가 일본군 위안부 생활을 했던 펑주잉 할머니 (사진 제공=다큐 제작팀 ‘후이셩’)

펑 할머니는 세상을 떠난 자신의 언니도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갔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은 "일본 정부의 사과를 기다린다, 사과하지 않으면 미울 뿐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이처럼 중국에도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간 할머니들이 있습니다. 중국 상하이 사범대 위안부 연구센터와 난징 위안부 박물관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파악하고 있습니다. 생존해 있는 10여명 위안부 할머니들의 평균 연세는 94살로 지금도 의사 소통이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상황이 너무도 가슴 아팠던 중국의 청년들이 지금 중국인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유언과도 같은 육성을 담아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있습니다. 중심 인물은 올해 서른살의 젊은 프로듀서 류양 씨입니다.

류양 씨는 10대 말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뒤 실리콘밸리에서 적잖은 돈을 벌었고, 이제는 중국 베이징에서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던 그가 지난해부터 제작팀을 구성해 자비를 보태가며 중국인 위안부 할머니들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찍기 시작한 것은 한국과 관련 있습니다.

■ 중국인 다큐 프로듀서 "한국처럼 중국에서도 위안부 문제가 널리 알려지길 바랐다"

류양 씨는 KBS와의 인터뷰에서 한국과 달리 중국에서는 위안부 문제가 널리 알려져 있지 않은데 문제 의식을 가졌다고 밝혔습니다. 역사를 계승하지 않는다면 기억해야할 역사가 잊혀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습니다. 또 전쟁의 아픔을 알아야 오늘의 평화를 소중히 여길 것이라며 이것이 자신의 초심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류양 씨의 작업은 중국은 물론 우리에게도 큰 의미가 있습니다. 위안부 문제가 전 세계를 아우르는 인도적 문제이기도 하지만, 중국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증언은 같은 시기, 같은 제도에 신음한 한국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실태를 밝힐 중요한 방증이 되기 때문입니다.

KBS 취재팀에게 다큐멘터리 원본을 보여주며 인터뷰에 응한 류양 프로듀서(2021년 2월 베이징) KBS 취재팀에게 다큐멘터리 원본을 보여주며 인터뷰에 응한 류양 프로듀서(2021년 2월 베이징)

류양 씨의 작업이 더욱 의미가 있는 것은 할머니들이 조만간 모두 세상을 떠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류양씨가 지난해 인터뷰한 할머니 일곱분 가운데 세분은 이미 세상을 떠났습니다.

류양씨는 일본군 위안부가 자발적 매춘부라는 램지어 교수의 주장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자신이 인터뷰한 할머니들과 그 가족들은 구술을 통해 일본군에게 강제로 끌려가 성폭행을 당했다고 증언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류양 씨 등 중국 다큐팀이 2020년 중국인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와 가족을 만나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 제공=류양 프로듀서) 류양 씨 등 중국 다큐팀이 2020년 중국인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와 가족을 만나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 제공=류양 프로듀서)

■ "램지어가 위안부 피해자를 직접 만나면 관점 바뀔 것"

그러면서 램지어 교수가 위안부 피해자들을 직접 접촉해봤으면 한다고 말했습니다. 한국과 중국, 그리고 다른 나라에 사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비참했던 생활을 알게되면 램지어 교수의 관점이 크게 바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이같은 연구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면 램지어 교수의 관점은 무책임하며 인간에 대한 모독이라고 비판했습니다.

류양씨는 당초 지난해 다큐멘터리를 마무리할 생각이었지만 코로나19 때문에 작업이 지연중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올해는 반드시 다큐를 마무리할 계획이고, 일반 영화관에서 다큐를 상영하거나 바이두와 웨이보 등 다양한 디지털 플랫폼에 공개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중국에서도 지난 2014년 이후 위안부 박물관이 문을 열고 관련 서적 출판, 다큐멘터리 영화 상영 등 중국인 위안부 피해자를 조명하는 작업이 3,4년 정도 줄지어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이후 크게 주목받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일각에서는 일본과의 관계 악화를 우려한 중국 정부가 중국인 위안부 문제를 지나치게 부각하지 않으려 한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다만 이번 램지어 논란 이후 화춘잉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일본군 위안부는 강제 모집됐으며 이는 심각한 반인도적 범죄라고 강하게 비판한 바 있습니다.

류양 씨는 해외항일전쟁사료연구회의 이사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와 함께 중국인 위안부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있는 팀의 이름은 '후이셩', 한국 말로 '메아리'라는 뜻입니다. 그들의 의미있는 활동이 중국을 넘어 세계로, 그리고 후세에까지 메아리 치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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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 리포트] “램지어는 위안부 할머니를 직접 만나라”…‘위안부 다큐 제작’ 중국인 프로듀서
    • 입력 2021-02-26 08:00:46
    특파원 리포트
중국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중국인 위안부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있는 중국인 류양 프로듀서
중국 후난성에 사는 올해 93살 류츠쥔 할머니에게는 떠올리기 싫은 악몽같은 기억이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77년 전 16살의 나이에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갔던 경험입니다.

강제로 끌려간 일본군 위안소에서 1년 동안 차마 입에 담기 힘든 고초를 겪었습니다. 류 할머니는 강제로 성폭행 당한 뒤 자신을 성폭행한 군인과 같이 자야 했다고 증언했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류츠쥔 할머니. 강제로 성폭행 당했다며 강제성을 증언했다. (사진 제공=다큐 제작팀 ‘후이셩’)
지옥같은 1년 간의 위안부 생활 끝에 가까스로 중국 군인들에게 구조된 할머니는 중국군에 합류해 군 간호사로 항일 전선에 뛰어들었습니다. 일본군에 대한 적개심 때문이었을 겁니다.

■ "강제로 성폭행" "눈 멀었는데도 끌고 가"...이어지는 중국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 증언

올해 92살인 펑주잉 할머니도 1944년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 고초를 겪었습니다. 불과 14살 어린 나이였습니다. 펑 할머니는 심지어 눈이 먼 상태였습니다. 어릴적 일본군의 화학무기 때문에 시력을 잃었다고 펑 할머니는 말합니다.

눈이 먼 채 끌려가 일본군 위안부 생활을 했던 펑주잉 할머니 (사진 제공=다큐 제작팀 ‘후이셩’)
펑 할머니는 세상을 떠난 자신의 언니도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갔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은 "일본 정부의 사과를 기다린다, 사과하지 않으면 미울 뿐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이처럼 중국에도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간 할머니들이 있습니다. 중국 상하이 사범대 위안부 연구센터와 난징 위안부 박물관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파악하고 있습니다. 생존해 있는 10여명 위안부 할머니들의 평균 연세는 94살로 지금도 의사 소통이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상황이 너무도 가슴 아팠던 중국의 청년들이 지금 중국인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유언과도 같은 육성을 담아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있습니다. 중심 인물은 올해 서른살의 젊은 프로듀서 류양 씨입니다.

류양 씨는 10대 말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뒤 실리콘밸리에서 적잖은 돈을 벌었고, 이제는 중국 베이징에서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던 그가 지난해부터 제작팀을 구성해 자비를 보태가며 중국인 위안부 할머니들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찍기 시작한 것은 한국과 관련 있습니다.

■ 중국인 다큐 프로듀서 "한국처럼 중국에서도 위안부 문제가 널리 알려지길 바랐다"

류양 씨는 KBS와의 인터뷰에서 한국과 달리 중국에서는 위안부 문제가 널리 알려져 있지 않은데 문제 의식을 가졌다고 밝혔습니다. 역사를 계승하지 않는다면 기억해야할 역사가 잊혀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습니다. 또 전쟁의 아픔을 알아야 오늘의 평화를 소중히 여길 것이라며 이것이 자신의 초심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류양 씨의 작업은 중국은 물론 우리에게도 큰 의미가 있습니다. 위안부 문제가 전 세계를 아우르는 인도적 문제이기도 하지만, 중국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증언은 같은 시기, 같은 제도에 신음한 한국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실태를 밝힐 중요한 방증이 되기 때문입니다.

KBS 취재팀에게 다큐멘터리 원본을 보여주며 인터뷰에 응한 류양 프로듀서(2021년 2월 베이징)
류양 씨의 작업이 더욱 의미가 있는 것은 할머니들이 조만간 모두 세상을 떠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류양씨가 지난해 인터뷰한 할머니 일곱분 가운데 세분은 이미 세상을 떠났습니다.

류양씨는 일본군 위안부가 자발적 매춘부라는 램지어 교수의 주장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자신이 인터뷰한 할머니들과 그 가족들은 구술을 통해 일본군에게 강제로 끌려가 성폭행을 당했다고 증언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류양 씨 등 중국 다큐팀이 2020년 중국인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와 가족을 만나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 제공=류양 프로듀서)
■ "램지어가 위안부 피해자를 직접 만나면 관점 바뀔 것"

그러면서 램지어 교수가 위안부 피해자들을 직접 접촉해봤으면 한다고 말했습니다. 한국과 중국, 그리고 다른 나라에 사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비참했던 생활을 알게되면 램지어 교수의 관점이 크게 바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이같은 연구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면 램지어 교수의 관점은 무책임하며 인간에 대한 모독이라고 비판했습니다.

류양씨는 당초 지난해 다큐멘터리를 마무리할 생각이었지만 코로나19 때문에 작업이 지연중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올해는 반드시 다큐를 마무리할 계획이고, 일반 영화관에서 다큐를 상영하거나 바이두와 웨이보 등 다양한 디지털 플랫폼에 공개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중국에서도 지난 2014년 이후 위안부 박물관이 문을 열고 관련 서적 출판, 다큐멘터리 영화 상영 등 중국인 위안부 피해자를 조명하는 작업이 3,4년 정도 줄지어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이후 크게 주목받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일각에서는 일본과의 관계 악화를 우려한 중국 정부가 중국인 위안부 문제를 지나치게 부각하지 않으려 한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다만 이번 램지어 논란 이후 화춘잉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일본군 위안부는 강제 모집됐으며 이는 심각한 반인도적 범죄라고 강하게 비판한 바 있습니다.

류양 씨는 해외항일전쟁사료연구회의 이사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와 함께 중국인 위안부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있는 팀의 이름은 '후이셩', 한국 말로 '메아리'라는 뜻입니다. 그들의 의미있는 활동이 중국을 넘어 세계로, 그리고 후세에까지 메아리 치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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