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당 세대’를 단속하라?…“새세대 인민군 통제 강화”

입력 2021.02.26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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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망이 걸린 운명… "새세대 인민군 통제 강화"

북한이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확대회의를 열었다고 북한 매체들이 어제(25일) 보도했습니다. 군사문제를 다루는 이번 회의 주제는 '도덕규율 확립'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 식으로 하면 군에서 자주 말하는 '기강 확립' 정도로 들릴 수도 있는데, 김정은 위원장의 발언을 보면 그 수위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지난해 10월 수해복구 현장에 투입된 북한군들의 모습. 조선중앙TV 화면. 지난해 10월 수해복구 현장에 투입된 북한군들의 모습. 조선중앙TV 화면.

김정은 위원장은 "군대 안에 혁명적인 도덕 규율을 확립하는 것은 단순한 실무적 문제가 아니라 인민군대의 존망과 군 건설과 군사 활동의 성패와 관련되는 운명적인 문제"라고 말했습니다. 또 "이를 해결하기 위해 무엇보다도 새세대 인민군 지휘 성원의 정치의식과 도덕 관점을 바로 세우기 위한 교양 사업과 통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군의 존망과 성패가 걸린 운명적인 문제'가 '새세대 인민군 지휘 성원'에 대한 교양과 통제에 달려 있다고 강조한 셈입니다. 김 위원장이 말한 '새세대 지휘 성원'은 누굴 지칭하는 것일까요?

한 전문가는 '지휘 성원'이 고위 간부보다는 초급 간부를 지칭하는 것이라고 해석했습니다. 북한군의 초급 장교, 흔히 '장마당 세대'라고 하는 20·30세대를 대상으로 한 발언이라는 것입니다.

■ "혼수 마련 못 하면 바보"…군 지휘관이 된 '장마당 세대'

'장마당 세대'는 보통 1990년대 북한이 최악의 기근을 겪은 '고난의 행군' 때 태어났거나 유년기를 보낸 세대를 가리킵니다.


배급제가 사실상 붕괴해 '장마당'에서 먹을 것을 구해야 하는 상황을 직접 겪거나 부모를 통해 겪었기 때문에, 사회주의식 배급제보다 오히려 시장경제에 익숙한 세대라는 증언이 탈북민 사이에서도 나옵니다. 무엇보다 기근으로 목숨을 잃는 걸 직접 목격한 것이 가치관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지난해 9월 촬영된 북한 양강도 혜산시 장마당의 모습. 주민들 대부분 마스크를 쓰고 있다. 연합뉴스 사진. 지난해 9월 촬영된 북한 양강도 혜산시 장마당의 모습. 주민들 대부분 마스크를 쓰고 있다. 연합뉴스 사진.

북한에서는 10대 후반에 군에 입대해 보통 20대 중반이 되면 소위가 된다고 하니, 현재 20~30대인 북한군의 위관급 장교 대부분이 장마당 세대에 해당합니다. 시장경제에 익숙하고 사상적 충성심은 약한 장마당 세대가 지휘관이 되는 것이 북한군으로서는 큰 부담이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사상 교육을 강조한 것이라는 게 전문가의 분석입니다.

탈북민들의 증언도 이런 분석을 뒷받침합니다. 최근 군에 입대하는 북한 젊은이들의 큰 목표가 경제적인 성공이라는 겁니다. 한 탈북민은 "(북중접경지역의) 국경수비대에 근무하면서, 혼수를 마련하지 못하면 바보라는 말이 있을 정도"라고 했습니다.


북한군은 자체적으로 무역회사를 운영하기도 하고 농장에서 식량을 생산하는가 하면 어업을 통해 수산물을 생산하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권에 개입할 기회가 그만큼 많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 "모든 것을 깡그리 바쳐라"…장마당 세대에겐?

장마당 세대의 성장은 당연히 군부뿐 아니라 북한 사회 전체가 겪는 일입니다. 북한이 최근 비사회주의 척결을 강조하고, 한류 유입을 겨냥한 반동문화배격법을 강화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해볼 수 있습니다.


노동신문은 24일 사설에서 "과업을 수행해나가는 과정에서 애로가 제기되면 국경 밖을 넘보거나 위만 쳐다볼 것이 아니"라고 하고 "사업 연한이 늘어날수록, 직위가 올라갈수록 당정책 관철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깡그리 다 바쳐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24일 열린 중앙군사위원회 제8기 제1차 확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는 김정은 위원장. 조선중앙TV 화면.24일 열린 중앙군사위원회 제8기 제1차 확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는 김정은 위원장. 조선중앙TV 화면.

북한 외부의 상황을 여러 경로를 통해 잘 알고 있고, 개인적이고 경제적인 성취에 관심이 있는 세대들에게 당에 대한 '헌신'을 요구한다는 해석이 지나치지는 않을 것입니다. 사설의 화자를 60~70대가 대부분인 북한 최고위층이라고 생각해보면 부모세대가 자식세대에게 하는 훈계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실제로 탈북민 사이에도 세대 차이가 있어서, 배급제에 익숙한 기성세대 탈북민과 장마당에 익숙한 젊은 탈북민들의 인식 차이가 생각보다 크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한 탈북민은 "요즘 젊은 친구들은 내가 남한에서 본 것보다 더 많은 남한 드라마를, 이미 북한에서 보고 왔더라"고 말했습니다. 시장경제에 미숙할 거란 남한 사람들의 편견과 달리, 젊은 탈북민일수록 이재에 밝다는 말도 했습니다.

북한은 경제 제재와 코로나19로 인한 초유의 봉쇄 속에서도, 연이어 자립을 외치고 단결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남한 드라마를 즐겨보면서 혼수 장만을 걱정하는 북한의 장마당 세대들은 코로나19로 겪게 된 새로운 어려움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지 궁금해지는 대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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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마당 세대’를 단속하라?…“새세대 인민군 통제 강화”
    • 입력 2021-02-26 08:00:47
    취재K
■ 존망이 걸린 운명… "새세대 인민군 통제 강화"

북한이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확대회의를 열었다고 북한 매체들이 어제(25일) 보도했습니다. 군사문제를 다루는 이번 회의 주제는 '도덕규율 확립'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 식으로 하면 군에서 자주 말하는 '기강 확립' 정도로 들릴 수도 있는데, 김정은 위원장의 발언을 보면 그 수위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지난해 10월 수해복구 현장에 투입된 북한군들의 모습. 조선중앙TV 화면.
김정은 위원장은 "군대 안에 혁명적인 도덕 규율을 확립하는 것은 단순한 실무적 문제가 아니라 인민군대의 존망과 군 건설과 군사 활동의 성패와 관련되는 운명적인 문제"라고 말했습니다. 또 "이를 해결하기 위해 무엇보다도 새세대 인민군 지휘 성원의 정치의식과 도덕 관점을 바로 세우기 위한 교양 사업과 통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군의 존망과 성패가 걸린 운명적인 문제'가 '새세대 인민군 지휘 성원'에 대한 교양과 통제에 달려 있다고 강조한 셈입니다. 김 위원장이 말한 '새세대 지휘 성원'은 누굴 지칭하는 것일까요?

한 전문가는 '지휘 성원'이 고위 간부보다는 초급 간부를 지칭하는 것이라고 해석했습니다. 북한군의 초급 장교, 흔히 '장마당 세대'라고 하는 20·30세대를 대상으로 한 발언이라는 것입니다.

■ "혼수 마련 못 하면 바보"…군 지휘관이 된 '장마당 세대'

'장마당 세대'는 보통 1990년대 북한이 최악의 기근을 겪은 '고난의 행군' 때 태어났거나 유년기를 보낸 세대를 가리킵니다.


배급제가 사실상 붕괴해 '장마당'에서 먹을 것을 구해야 하는 상황을 직접 겪거나 부모를 통해 겪었기 때문에, 사회주의식 배급제보다 오히려 시장경제에 익숙한 세대라는 증언이 탈북민 사이에서도 나옵니다. 무엇보다 기근으로 목숨을 잃는 걸 직접 목격한 것이 가치관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지난해 9월 촬영된 북한 양강도 혜산시 장마당의 모습. 주민들 대부분 마스크를 쓰고 있다. 연합뉴스 사진.
북한에서는 10대 후반에 군에 입대해 보통 20대 중반이 되면 소위가 된다고 하니, 현재 20~30대인 북한군의 위관급 장교 대부분이 장마당 세대에 해당합니다. 시장경제에 익숙하고 사상적 충성심은 약한 장마당 세대가 지휘관이 되는 것이 북한군으로서는 큰 부담이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사상 교육을 강조한 것이라는 게 전문가의 분석입니다.

탈북민들의 증언도 이런 분석을 뒷받침합니다. 최근 군에 입대하는 북한 젊은이들의 큰 목표가 경제적인 성공이라는 겁니다. 한 탈북민은 "(북중접경지역의) 국경수비대에 근무하면서, 혼수를 마련하지 못하면 바보라는 말이 있을 정도"라고 했습니다.


북한군은 자체적으로 무역회사를 운영하기도 하고 농장에서 식량을 생산하는가 하면 어업을 통해 수산물을 생산하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권에 개입할 기회가 그만큼 많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 "모든 것을 깡그리 바쳐라"…장마당 세대에겐?

장마당 세대의 성장은 당연히 군부뿐 아니라 북한 사회 전체가 겪는 일입니다. 북한이 최근 비사회주의 척결을 강조하고, 한류 유입을 겨냥한 반동문화배격법을 강화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해볼 수 있습니다.


노동신문은 24일 사설에서 "과업을 수행해나가는 과정에서 애로가 제기되면 국경 밖을 넘보거나 위만 쳐다볼 것이 아니"라고 하고 "사업 연한이 늘어날수록, 직위가 올라갈수록 당정책 관철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깡그리 다 바쳐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24일 열린 중앙군사위원회 제8기 제1차 확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는 김정은 위원장. 조선중앙TV 화면.
북한 외부의 상황을 여러 경로를 통해 잘 알고 있고, 개인적이고 경제적인 성취에 관심이 있는 세대들에게 당에 대한 '헌신'을 요구한다는 해석이 지나치지는 않을 것입니다. 사설의 화자를 60~70대가 대부분인 북한 최고위층이라고 생각해보면 부모세대가 자식세대에게 하는 훈계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실제로 탈북민 사이에도 세대 차이가 있어서, 배급제에 익숙한 기성세대 탈북민과 장마당에 익숙한 젊은 탈북민들의 인식 차이가 생각보다 크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한 탈북민은 "요즘 젊은 친구들은 내가 남한에서 본 것보다 더 많은 남한 드라마를, 이미 북한에서 보고 왔더라"고 말했습니다. 시장경제에 미숙할 거란 남한 사람들의 편견과 달리, 젊은 탈북민일수록 이재에 밝다는 말도 했습니다.

북한은 경제 제재와 코로나19로 인한 초유의 봉쇄 속에서도, 연이어 자립을 외치고 단결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남한 드라마를 즐겨보면서 혼수 장만을 걱정하는 북한의 장마당 세대들은 코로나19로 겪게 된 새로운 어려움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지 궁금해지는 대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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