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증거없다…실수” 램지어가 스스로 오류를 ‘일부’ 인정하기까지

입력 2021.02.27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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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는 포주와 계약을 한 자발적인 매춘부였다."
"한국인 위안부에 일본 정부는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

하버드 로스쿨 램지어 교수의 논문은 망언이었습니다. 논문을 뒷받침하는 근거는 1차 증거도, 2차 증거도, 심지어 이를 증언하는 내용(3차 증거)도 없었습니다. 한국인들이 분노하는 건 당연합니다. 그런데 램지어 교수의 논문에 문제가 있다며 이를 시간을 들여 입증하고, 저널에서 철회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미국 학계를 중심으로 번져나갔습니다.

그리고 오늘(26일) 미국의 유명 잡지인 [더 뉴요커]에 램지어 교수의 논문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글이 실립니다. 그것도 온라인 한가운데, 따지자면 1면입니다. 상당히 긴 글로 A4 10장이 넘는 분량입니다. 미국 주류 매체에서 처음으로 의제화된 겁니다.
제목은 "위안부, 진실을 찾아서." 램지어와 동료로 같이 일하고 있는 하버드대 로스쿨 석지영 교수가 기고한 겁니다.

석 교수는 전세계 학자들과 램지어 교수의 논문을 검증했던 내용, 램지어 교수와의 대화, 램지어를 지지했던 학자들의 입장 변화, 논문을 발간한 저널 측의 이야기까지를 차분하게 풀어놓으며 "지난 한 달 간 여기에 매달렸다"고 시인합니다.
 석지영 하버드대 로스쿨 종신교수가 [뉴요커]에 기고한 “위안부, 진실을 찾아서” 석지영 하버드대 로스쿨 종신교수가 [뉴요커]에 기고한 “위안부, 진실을 찾아서”

실제로 석 교수의 기고문에는 촘촘하게 "위안부 논쟁"의 앞면과 뒷면이 담겨있습니다.

시작은 하버드 역사학자인 에커트와 고든 교수 두 사람이었습니다. 이들은 램지어 교수의 논문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해 저널 측에 "철회해야 한다, 사실이 아니다"라고 문제를 제기합니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저널 측에서 "우려가 된다"는 두어 줄 짜리 글을 추가한 것에 불과했습니다.

이는 학자들의 행동을 불러왔습니다. 에커트와 고든을 포함해 스탠리 교수, 코네티켓 대학의 역사학자인 더든 교수, 호주 국립대학의 테사 스즈키 교수 등 동아시아 역사 연구로는 세계에서 내로라 하는 학자들이 팔을 걷어부쳤습니다.

램지어 교수가 인용한 계약서는 1938년 일본의 바(주점) 계약서다.
전쟁 당시의 상황에 맞지 않을 뿐더러, 위안소의 계약서도 아니다.

- 하버드 역사학자 에커트, 고든의 성명서 중

여기에 경제학자들도, 일본 내의 역사학자들도 가세했습니다.
램지어가 "자발적 매춘부"의 예로 든 열살 소녀의 증언 원본을 찾아본 겁니다.
[램지어의 논문 中 열살 매춘부 채록]
"오사키가 열 살이 되었을 때, 한 신병 모집인이 그녀에게 들러, 만약 그녀가 해외에 나가겠다고 하면, 그녀에게 300엔을 선불로 주겠다고 했다. 채용 담당자는 열 살 때조차 그 일이 무엇을 수반하는지 알고 있었다."
램지어가 버젓이 쓴 글 입니다.

석 교수는 "램지어는 열살 짜리 아이의 성접대 능력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고 담담히 서술하며 실제 오사키의 증언록은 이랬다고 부연합니다.

[램지어가 쓰지 않은 실제 열살 오사키 증언 채록]

"그녀와 다른 소녀들이 저항했다. 당신은 그런 종류의 일을 전혀 언급하지 않고 우리를 여기로 데려왔고, 이제 당신은 우리에게 손님들을 데려가라고 말합니다. 이 거짓말쟁이! 소녀는 더 나아가 "첫 번째 밤을 보낸 후, 우리는 두려웠습니다. 우리는 이것이 남자와 여자가 하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너무 끔찍해서 믿을 수가 없었다"

램지어는 같은 증언록을 본 게 맞을까요?

석 교수가 이 증언록을 램지어에게 보내자 그는 "당황스럽고 괴롭다"며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는 모르지만, 이 부분은 실수다"라고 시인합니다.
한국인 위안부의 계약서를 갖고 있냐는 질문에도
램지어 교수는 "없다. 있었으면 좋았을걸!"이라고 답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왜, 계약서도 없는데, 자발적 계약이냐고 썼냐는 석 교수의 질문에 램지어는 "1931년도 일본 계약서를 근거로 추론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실상 증거가 없었다는 걸 인정한 겁니다.

그러나 램지어는 끝까지 본인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고 합니다.
자신을 지지하는 한국의 학자들과 일본 학자들의 서신을 석교수에게 보내며 "관점이 다른 이들이 있다"고 주장했다는 겁니다. 석 교수는 이들의 이름을 하나씩 찾아봤습니다. 누군가는 기자의 뺨을 때린 사람이었고, 다른 누군가는 집회에서 망언을 일삼는 사람이었다고, 일본 학자들은 극우로 이름난 사람들이었다고 했습니다.
여기에 석 교수는 힘을 빼지 않았습니다.

대신 미국에서 저명한 교수임에도 램지어 교수를 지지한다는 뜻을 밝혔다는 2명의 교수에게 사실을 알렸습니다.
버클리 대학의 명예교수인 메리 베리 교수, 컬럼비아대학의 데이비드 와인스타인 교수는 학자들이 램지어 논문을 검증하고 반박한 내용을 본 뒤, 지지를 철회하고 입장을 바꿨습니다.
램지어는 오류를 바로잡아야 할 것 같다, 저널은 해당 논문을 철회하는 것이 맞다는 방향으로 180도 선회한 겁니다.

석 교수는 램지어 논문을 이미 온라인에 출간했고, 실제 인쇄본도 출간을 강행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저널 [국제법경제 리뷰]에 대해선 이렇게만 썼습니다.
노스웨스턴 로스쿨의 알렉스 리 교수는 해당 저널의 편집자 중 하나인데, 해당 논문의 리뷰에는 관여하지 않았지만 이 사실을 알게되자 끔찍하다며 저널 편집자에서 사임했다.
"저널이 이를 철회하지 않는다면 이는 무책임하고 비윤리적인 행동이다. 수정주의 역사 주장 조차 걸러내지 못한다면 학술지로서 자격이 없다" 는 내용을 저널에 밝혔다.
이에 대해 학술지 측은 "답변하기를 거절했다"

석 교수는 램지어의 입장에서 지난 한 달 간 모든 문장들을 여러 번 벼리며 읽어보고, 또 검증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일본 학자들의 도움까지 받아 일본어로 된 자료까지 수합해 검증이 끝나갈 무렵, 램지어에게 마지막으로 다시금 연락을 취했습니다.

"이제 서로 간에 발전된 논거를 가지고 이해하는 폭이 넓어지지 않았을까요?"
석 교수가 묻자 램지어는
"이번 대화는 패스하겠습니다. 나름의 시간을 통해 설명하겠다"고 답변했다고 합니다.

석 교수는 "위안부, 진실을 찾아서"라는 긴 글의 마무리로 이용수 할머니의 목소리를 빌어왔습니다.
"그랜마 이용수"라고 표현된 이용수 할머니는 램지어 사태에 직접 나서 "일본이 역사를 부정하면 부정할 수록 더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킨다"며 "그 친구 덕분에 위안부 역사에 더 많은 관심이 쏟아졌으니 간악한 축복"이라고 말했다는 대목입니다.

우물 안에서 맴돌던 위안부 피해자 관련 증언, 학자들의 반박이 미 주류 미디어에서 다뤄진 건 처음입니다.

"위안부 문제는 종종 한국과 일본의 문제로 여겨지지만, 이는 사실 학자적 책임이 핵심이다. 학문을 연구하고 주장을 입증해야 하는 학자가 이렇게 근거없이, 날조된 논문을 발간해도 된다면, 이는 학자의 존재 이유를 부정하는 것"이라는 전세계 수많은 학자들의 목소리가 모이지 않았다면, 램지어는 자신의 주장을 조금이라도 굽혔을까요?


참, 램지어는 자신의 논문이"새로운 지식"이라는 주장을 굽히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참고로 더뉴요커는 유료 잡지인데, 석교수의 글을 무료로 공개해놓고 있습니다. 헤밍웨이, 수잔 손택 등이 정기기고했던 잡지고, 몇 해 전에는 미국의 미투 관련 취재를 끈질기게 쏟아내 큰 상을 받기도 했던 곳입니다.
링크는 여기있습니다. https://www.newyorker.com/culture/annals-of-inquiry/seeking-the-true-story-of-the-comfort-women-j-mark-ramsey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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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 리포트] “증거없다…실수” 램지어가 스스로 오류를 ‘일부’ 인정하기까지
    • 입력 2021-02-27 11:45:47
    특파원 리포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는 포주와 계약을 한 자발적인 매춘부였다."
"한국인 위안부에 일본 정부는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

하버드 로스쿨 램지어 교수의 논문은 망언이었습니다. 논문을 뒷받침하는 근거는 1차 증거도, 2차 증거도, 심지어 이를 증언하는 내용(3차 증거)도 없었습니다. 한국인들이 분노하는 건 당연합니다. 그런데 램지어 교수의 논문에 문제가 있다며 이를 시간을 들여 입증하고, 저널에서 철회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미국 학계를 중심으로 번져나갔습니다.

그리고 오늘(26일) 미국의 유명 잡지인 [더 뉴요커]에 램지어 교수의 논문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글이 실립니다. 그것도 온라인 한가운데, 따지자면 1면입니다. 상당히 긴 글로 A4 10장이 넘는 분량입니다. 미국 주류 매체에서 처음으로 의제화된 겁니다.
제목은 "위안부, 진실을 찾아서." 램지어와 동료로 같이 일하고 있는 하버드대 로스쿨 석지영 교수가 기고한 겁니다.

석 교수는 전세계 학자들과 램지어 교수의 논문을 검증했던 내용, 램지어 교수와의 대화, 램지어를 지지했던 학자들의 입장 변화, 논문을 발간한 저널 측의 이야기까지를 차분하게 풀어놓으며 "지난 한 달 간 여기에 매달렸다"고 시인합니다.
 석지영 하버드대 로스쿨 종신교수가 [뉴요커]에 기고한 “위안부, 진실을 찾아서”
실제로 석 교수의 기고문에는 촘촘하게 "위안부 논쟁"의 앞면과 뒷면이 담겨있습니다.

시작은 하버드 역사학자인 에커트와 고든 교수 두 사람이었습니다. 이들은 램지어 교수의 논문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해 저널 측에 "철회해야 한다, 사실이 아니다"라고 문제를 제기합니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저널 측에서 "우려가 된다"는 두어 줄 짜리 글을 추가한 것에 불과했습니다.

이는 학자들의 행동을 불러왔습니다. 에커트와 고든을 포함해 스탠리 교수, 코네티켓 대학의 역사학자인 더든 교수, 호주 국립대학의 테사 스즈키 교수 등 동아시아 역사 연구로는 세계에서 내로라 하는 학자들이 팔을 걷어부쳤습니다.

램지어 교수가 인용한 계약서는 1938년 일본의 바(주점) 계약서다.
전쟁 당시의 상황에 맞지 않을 뿐더러, 위안소의 계약서도 아니다.

- 하버드 역사학자 에커트, 고든의 성명서 중

여기에 경제학자들도, 일본 내의 역사학자들도 가세했습니다.
램지어가 "자발적 매춘부"의 예로 든 열살 소녀의 증언 원본을 찾아본 겁니다.
[램지어의 논문 中 열살 매춘부 채록]
"오사키가 열 살이 되었을 때, 한 신병 모집인이 그녀에게 들러, 만약 그녀가 해외에 나가겠다고 하면, 그녀에게 300엔을 선불로 주겠다고 했다. 채용 담당자는 열 살 때조차 그 일이 무엇을 수반하는지 알고 있었다."
램지어가 버젓이 쓴 글 입니다.

석 교수는 "램지어는 열살 짜리 아이의 성접대 능력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고 담담히 서술하며 실제 오사키의 증언록은 이랬다고 부연합니다.

[램지어가 쓰지 않은 실제 열살 오사키 증언 채록]

"그녀와 다른 소녀들이 저항했다. 당신은 그런 종류의 일을 전혀 언급하지 않고 우리를 여기로 데려왔고, 이제 당신은 우리에게 손님들을 데려가라고 말합니다. 이 거짓말쟁이! 소녀는 더 나아가 "첫 번째 밤을 보낸 후, 우리는 두려웠습니다. 우리는 이것이 남자와 여자가 하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너무 끔찍해서 믿을 수가 없었다"

램지어는 같은 증언록을 본 게 맞을까요?

석 교수가 이 증언록을 램지어에게 보내자 그는 "당황스럽고 괴롭다"며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는 모르지만, 이 부분은 실수다"라고 시인합니다.
한국인 위안부의 계약서를 갖고 있냐는 질문에도
램지어 교수는 "없다. 있었으면 좋았을걸!"이라고 답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왜, 계약서도 없는데, 자발적 계약이냐고 썼냐는 석 교수의 질문에 램지어는 "1931년도 일본 계약서를 근거로 추론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실상 증거가 없었다는 걸 인정한 겁니다.

그러나 램지어는 끝까지 본인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고 합니다.
자신을 지지하는 한국의 학자들과 일본 학자들의 서신을 석교수에게 보내며 "관점이 다른 이들이 있다"고 주장했다는 겁니다. 석 교수는 이들의 이름을 하나씩 찾아봤습니다. 누군가는 기자의 뺨을 때린 사람이었고, 다른 누군가는 집회에서 망언을 일삼는 사람이었다고, 일본 학자들은 극우로 이름난 사람들이었다고 했습니다.
여기에 석 교수는 힘을 빼지 않았습니다.

대신 미국에서 저명한 교수임에도 램지어 교수를 지지한다는 뜻을 밝혔다는 2명의 교수에게 사실을 알렸습니다.
버클리 대학의 명예교수인 메리 베리 교수, 컬럼비아대학의 데이비드 와인스타인 교수는 학자들이 램지어 논문을 검증하고 반박한 내용을 본 뒤, 지지를 철회하고 입장을 바꿨습니다.
램지어는 오류를 바로잡아야 할 것 같다, 저널은 해당 논문을 철회하는 것이 맞다는 방향으로 180도 선회한 겁니다.

석 교수는 램지어 논문을 이미 온라인에 출간했고, 실제 인쇄본도 출간을 강행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저널 [국제법경제 리뷰]에 대해선 이렇게만 썼습니다.
노스웨스턴 로스쿨의 알렉스 리 교수는 해당 저널의 편집자 중 하나인데, 해당 논문의 리뷰에는 관여하지 않았지만 이 사실을 알게되자 끔찍하다며 저널 편집자에서 사임했다.
"저널이 이를 철회하지 않는다면 이는 무책임하고 비윤리적인 행동이다. 수정주의 역사 주장 조차 걸러내지 못한다면 학술지로서 자격이 없다" 는 내용을 저널에 밝혔다.
이에 대해 학술지 측은 "답변하기를 거절했다"

석 교수는 램지어의 입장에서 지난 한 달 간 모든 문장들을 여러 번 벼리며 읽어보고, 또 검증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일본 학자들의 도움까지 받아 일본어로 된 자료까지 수합해 검증이 끝나갈 무렵, 램지어에게 마지막으로 다시금 연락을 취했습니다.

"이제 서로 간에 발전된 논거를 가지고 이해하는 폭이 넓어지지 않았을까요?"
석 교수가 묻자 램지어는
"이번 대화는 패스하겠습니다. 나름의 시간을 통해 설명하겠다"고 답변했다고 합니다.

석 교수는 "위안부, 진실을 찾아서"라는 긴 글의 마무리로 이용수 할머니의 목소리를 빌어왔습니다.
"그랜마 이용수"라고 표현된 이용수 할머니는 램지어 사태에 직접 나서 "일본이 역사를 부정하면 부정할 수록 더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킨다"며 "그 친구 덕분에 위안부 역사에 더 많은 관심이 쏟아졌으니 간악한 축복"이라고 말했다는 대목입니다.

우물 안에서 맴돌던 위안부 피해자 관련 증언, 학자들의 반박이 미 주류 미디어에서 다뤄진 건 처음입니다.

"위안부 문제는 종종 한국과 일본의 문제로 여겨지지만, 이는 사실 학자적 책임이 핵심이다. 학문을 연구하고 주장을 입증해야 하는 학자가 이렇게 근거없이, 날조된 논문을 발간해도 된다면, 이는 학자의 존재 이유를 부정하는 것"이라는 전세계 수많은 학자들의 목소리가 모이지 않았다면, 램지어는 자신의 주장을 조금이라도 굽혔을까요?


참, 램지어는 자신의 논문이"새로운 지식"이라는 주장을 굽히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참고로 더뉴요커는 유료 잡지인데, 석교수의 글을 무료로 공개해놓고 있습니다. 헤밍웨이, 수잔 손택 등이 정기기고했던 잡지고, 몇 해 전에는 미국의 미투 관련 취재를 끈질기게 쏟아내 큰 상을 받기도 했던 곳입니다.
링크는 여기있습니다. https://www.newyorker.com/culture/annals-of-inquiry/seeking-the-true-story-of-the-comfort-women-j-mark-ramsey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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