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은 바뀌었지만…목숨 걸고 일한다

입력 2021.02.28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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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가 난 동국제강 부산공장. 13t과 6.3t 코일 사이에 50대 노동자가 끼여 숨졌다.사고가 난 동국제강 부산공장. 13t과 6.3t 코일 사이에 50대 노동자가 끼여 숨졌다.

지난 16일, 동국제강 부산공장에서 50대 노동자가 숨졌습니다.

그가 가지고 있던 건 목걸이 리모컨과 커터칼 한 자루가 전부였습니다. 리모컨으로 공중에 매달린 코일의 위치를 바꿔가며 포장지를 잘라냈습니다. 회사에서는 그의 업무가 위험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혼자' 작업을 하도록 했습니다.

수년 동안 이 공장에서 일했던 그조차도 사고를 피하지는 못했습니다. 13t과 6.3t에 이르는 무거운 코일은 끝내 그의 목숨을 앗아갔습니다. 그는 몸이 끼이자 곧장 리모컨에 달린 비상사이렌을 울렸습니다. 하지만 넓은 공장에서 동료들이 뛰어왔을 때 그는 이미 의식을 잃은 뒤였습니다.

동국제강 부산공장. 사업주 측은 사고가 난 작업이 위험 업무가 아니라고 판단해 2인 1조 배치를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동국제강 부산공장. 사업주 측은 사고가 난 작업이 위험 업무가 아니라고 판단해 2인 1조 배치를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넓은 공장에 작업지휘자 단 한 명…위법 사항만 없으면 그만?

당시 3천㎡이 넘는 원자재 창고에는 단 한 명의 작업지휘자가 있었습니다. 노동자들의 업무를 관리감독해야 하지만 경찰 조사 결과 그조차도 사고현장과 떨어진 곳에서 다른 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산업안전보건법에서는 중량물을 취급할 경우 위험작업 13종에 포함돼 작업계획서를 작성하고, 이 계획을 지휘하도록 작업지휘자를 지정해야 합니다. 하지만 얼마나 넓은 작업장에서, 몇 명의 작업지휘자를 둬야 하는지에 대한 지침은 없습니다.

심형규 인천대학교 안전공학과 교수는 "법적 기준이 있지만 이것이 서류상의 요식행위로 그치면 결국 작업지휘자 역할을 할 수 없는 상황이 연출될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서류상 위법 사항이 없어도 현장에서 적용했을 때 실효성을 담보할 수 없다는 겁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지난 2018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하다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숨진 감용균 씨의 사고 이후 정부는 공공기관 위험 작업장에 대해 2인 1조 근무를 의무화했습니다. 하지만 민간기업에는 구체적인 규제가 없습니다.


민간 기업에 느슨한 규제…위험한 현장은 여전

"현장에서는 실제로 작업지휘자가 이름만 걸어놓고 다른 일을 굉장히 많이 하고 있어요. 아마 작업단가를 낮추기 위해서 그런 문제들이 계속 발생하고 있는 게 아닌가…."

민간 기업은 자체 내부 지침을 통해 2인 1조 작업 여부를 정할 수 있습니다. 법적 규정이 따로 없다다보니 이 기준은 자율적입니다. 노동자의 안전을 담보할 수 있는 세부 지침이 사업주에 의해 결정되는 구조인 셈입니다.

동국제강 사고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회사 관계자는 사고에 대해 "해당 작업이 위험한 업무라고 보지 않아 2인 1조 편성은 하지 않았다"고 답했습니다.

이미 현장에서는 수많은 작업지휘자들이 다른 일과 감독 업무를 병행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노동자의 목숨을 위협할 수 있는지 판단하는 몫은 그들의 것이 아닙니다. 이 때문에 사업주의 책임을 강화하기 위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적용 범위와 단서조항 등이 모호하다는 지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 사이 전국적으로 지난해만 70여 명이 끼임 사고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내년부터 시행되지만 재해를 예방할 수 있는 현장으로 가는 길은 여전히 멀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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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법은 바뀌었지만…목숨 걸고 일한다
    • 입력 2021-02-28 07:03:39
    취재K
사고가 난 동국제강 부산공장. 13t과 6.3t 코일 사이에 50대 노동자가 끼여 숨졌다.
지난 16일, 동국제강 부산공장에서 50대 노동자가 숨졌습니다.

그가 가지고 있던 건 목걸이 리모컨과 커터칼 한 자루가 전부였습니다. 리모컨으로 공중에 매달린 코일의 위치를 바꿔가며 포장지를 잘라냈습니다. 회사에서는 그의 업무가 위험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혼자' 작업을 하도록 했습니다.

수년 동안 이 공장에서 일했던 그조차도 사고를 피하지는 못했습니다. 13t과 6.3t에 이르는 무거운 코일은 끝내 그의 목숨을 앗아갔습니다. 그는 몸이 끼이자 곧장 리모컨에 달린 비상사이렌을 울렸습니다. 하지만 넓은 공장에서 동료들이 뛰어왔을 때 그는 이미 의식을 잃은 뒤였습니다.

동국제강 부산공장. 사업주 측은 사고가 난 작업이 위험 업무가 아니라고 판단해 2인 1조 배치를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넓은 공장에 작업지휘자 단 한 명…위법 사항만 없으면 그만?

당시 3천㎡이 넘는 원자재 창고에는 단 한 명의 작업지휘자가 있었습니다. 노동자들의 업무를 관리감독해야 하지만 경찰 조사 결과 그조차도 사고현장과 떨어진 곳에서 다른 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산업안전보건법에서는 중량물을 취급할 경우 위험작업 13종에 포함돼 작업계획서를 작성하고, 이 계획을 지휘하도록 작업지휘자를 지정해야 합니다. 하지만 얼마나 넓은 작업장에서, 몇 명의 작업지휘자를 둬야 하는지에 대한 지침은 없습니다.

심형규 인천대학교 안전공학과 교수는 "법적 기준이 있지만 이것이 서류상의 요식행위로 그치면 결국 작업지휘자 역할을 할 수 없는 상황이 연출될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서류상 위법 사항이 없어도 현장에서 적용했을 때 실효성을 담보할 수 없다는 겁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지난 2018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하다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숨진 감용균 씨의 사고 이후 정부는 공공기관 위험 작업장에 대해 2인 1조 근무를 의무화했습니다. 하지만 민간기업에는 구체적인 규제가 없습니다.


민간 기업에 느슨한 규제…위험한 현장은 여전

"현장에서는 실제로 작업지휘자가 이름만 걸어놓고 다른 일을 굉장히 많이 하고 있어요. 아마 작업단가를 낮추기 위해서 그런 문제들이 계속 발생하고 있는 게 아닌가…."

민간 기업은 자체 내부 지침을 통해 2인 1조 작업 여부를 정할 수 있습니다. 법적 규정이 따로 없다다보니 이 기준은 자율적입니다. 노동자의 안전을 담보할 수 있는 세부 지침이 사업주에 의해 결정되는 구조인 셈입니다.

동국제강 사고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회사 관계자는 사고에 대해 "해당 작업이 위험한 업무라고 보지 않아 2인 1조 편성은 하지 않았다"고 답했습니다.

이미 현장에서는 수많은 작업지휘자들이 다른 일과 감독 업무를 병행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노동자의 목숨을 위협할 수 있는지 판단하는 몫은 그들의 것이 아닙니다. 이 때문에 사업주의 책임을 강화하기 위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적용 범위와 단서조항 등이 모호하다는 지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 사이 전국적으로 지난해만 70여 명이 끼임 사고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내년부터 시행되지만 재해를 예방할 수 있는 현장으로 가는 길은 여전히 멀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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