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은 허용하고 관세청은 막고…‘리얼돌’은 어디로?

입력 2021.02.28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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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 재질에 사람과 비슷한 체구로 만들어 …(중략)…'리얼돌'도 100만 원 이상이며….

2003년 한 신문기사에 나온 리얼돌 관련 언급이다. 포털 사이트에서 '리얼돌'을 검색해보면 이 기사가 거의 최초로 리얼돌을 언급한 기사다.

리얼돌은 사람의 몸을 본떠 만든 성인용품이다. 기사를 보면 2000년대 초반부터 국내에 등장한 거로 보이지만, 본격적인 논란이 된 건 최근이다.

수입업체는 리얼돌을 국내에 들여오려고 하고, 관세청은 막고 있다. 2019년 대법원이 수입을 허용하라고 판결했는데도 관세청의 수입금지는 여전하다.

■관세청은 수입 금지…법원은 허용

'리얼돌 수입 논란'은 2017년부터 시작됐다. 수입업체 A사가 리얼돌 수입을 시도했고 세관이 막았다. A사 관계자는 "리얼돌을 본격적으로 수입하기 위해 법원 판단을 받아보려는 목적이었다"고 말했다.

세관이 리얼돌 수입을 막은 근거는 관세법 234조였다. 풍속을 해치는 물품을 수출과 수입을 금지할 수 있다는 조항이다. 리얼돌이 성도덕에서 벗어나고 미풍양속을 해친다고 본 것이다.

A사는 이에 불복해 소송을 냈고, 1심 법원은 세관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2심은 수입 허용 판결을 냈다. 2심은 "리얼돌이 문란하지만, 사람의 존엄성을 훼손했다고 볼 수는 없다"며 "개인의 사적이고 은밀한 영역을 국가 개입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이 판결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리얼돌 수입을 허용한 최초의 판결이다. 이 판결에 등장하는 리얼돌은 1천500만 원짜리였는데, 수입이 허용됐지만 실제로 수입이 되진 않았다. A사 관계자는 "소송 도중 관세청이 실수로 리얼돌을 파손했다"고 말했다.


■관세청 "대법원 판결 난 것만 수입 허용"

관세청은 대법원 판결 이후에도 리얼돌 통관 신청을 계속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법원 판단이 난 개별 물품에 대해서만 수입을 허용한다는 이유에서다. 관세청 관계자는 "리얼돌마다 생김새 등이 다 다르다"며 "이런 상황에서 모든 리얼돌을 다 같은 물품으로 보고 수입을 허용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관세청이 이런 태도를 보이는 건 리얼돌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판단에서다. 사람과 흡사한 리얼돌을 성인용품으로 우리 사회가 받아들일 것인지 결론이 나지 않았다는 얘기다.

노석환 관세청장은 지난 16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 출석해 "사회적인 합의나 입법 절차를 거쳐서 이런 부분(리얼돌 수입)의 기준이 명확하게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법적인 기준 등이 필요하다는 얘긴데 이 부분은 수입업체들도 원하고 있다. A사 관계자는 "대법원 판결이 2019년에 나서 거의 2년이 다 돼 가는데 여태까지 가이드 마련이나 의견 청취나 이런 게 한 번도 없었다"며 "거의 방치하다가 규정도 안 만들면서 규정이 없다는 이유를 대는 건 말이 안 된다"고 했다.


■또 다른 대법원 판결 줄줄이 이어질 듯

수입업체들은 리얼돌 수입을 위해 계속 소송에 나서고 있다. A사에서 진행 중인 소송만 21건이다. 관세청은 개인정보를 이유로 전체 리얼돌 소송 건수는 공개하지 않았다.

A사의 소송 21건 가운데 6건은 A사가 승소했고, 15건은 아직 1심 판결이 나지 않았다. 패소하더라도 대법원 판결까지 받아보는 게 관세청 방침이기 때문에 대법원 판결까지 나야 소송이 끝난다.

소송은 세관의 통관 보류 결정이 난 이후 바로 시작되는 게 아니라 관세청의 심사나 조세심판원의 심판 절차를 먼저 거쳐야 한다.

수입 1건을 가지고 세관 결정부터 대법원 판결까지 모두 다섯 차례 판단이 이뤄지는 건데, 이 과정에서 소송 비용이나 행정력 등 사회적 낭비가 심하다. 관세청이 패소하면 소송 비용은 세금으로 물어줘야 한다.

이런 낭비는 수입금지든 수입허용이든 아니면 일부 수입허용이든 정부가 규정을 명확히 만들면 막을 수 있는 부분이다. 정부가 리얼돌을 둘러싼 여러 찬반 의견을 듣고 규정을 빨리 내놓아야 하는 이유다.

여성가족부와 법무부 등 관련 부처는 대법원 판결 이후 규정 마련에 들어갔지만, 아직 결론이 나진 않았다.

1심 판결이 난 소송 6건은 이르면 올해 안에 줄줄이 대법원 판결이 날 가능성이 있는데, 어떤 판결이 나오든 사회적 혼란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혼란을 막기 위해 남은 시간이 많지 않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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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법원은 허용하고 관세청은 막고…‘리얼돌’은 어디로?
    • 입력 2021-02-28 09:01:11
    취재K

실리콘 재질에 사람과 비슷한 체구로 만들어 …(중략)…'리얼돌'도 100만 원 이상이며….

2003년 한 신문기사에 나온 리얼돌 관련 언급이다. 포털 사이트에서 '리얼돌'을 검색해보면 이 기사가 거의 최초로 리얼돌을 언급한 기사다.

리얼돌은 사람의 몸을 본떠 만든 성인용품이다. 기사를 보면 2000년대 초반부터 국내에 등장한 거로 보이지만, 본격적인 논란이 된 건 최근이다.

수입업체는 리얼돌을 국내에 들여오려고 하고, 관세청은 막고 있다. 2019년 대법원이 수입을 허용하라고 판결했는데도 관세청의 수입금지는 여전하다.

■관세청은 수입 금지…법원은 허용

'리얼돌 수입 논란'은 2017년부터 시작됐다. 수입업체 A사가 리얼돌 수입을 시도했고 세관이 막았다. A사 관계자는 "리얼돌을 본격적으로 수입하기 위해 법원 판단을 받아보려는 목적이었다"고 말했다.

세관이 리얼돌 수입을 막은 근거는 관세법 234조였다. 풍속을 해치는 물품을 수출과 수입을 금지할 수 있다는 조항이다. 리얼돌이 성도덕에서 벗어나고 미풍양속을 해친다고 본 것이다.

A사는 이에 불복해 소송을 냈고, 1심 법원은 세관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2심은 수입 허용 판결을 냈다. 2심은 "리얼돌이 문란하지만, 사람의 존엄성을 훼손했다고 볼 수는 없다"며 "개인의 사적이고 은밀한 영역을 국가 개입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이 판결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리얼돌 수입을 허용한 최초의 판결이다. 이 판결에 등장하는 리얼돌은 1천500만 원짜리였는데, 수입이 허용됐지만 실제로 수입이 되진 않았다. A사 관계자는 "소송 도중 관세청이 실수로 리얼돌을 파손했다"고 말했다.


■관세청 "대법원 판결 난 것만 수입 허용"

관세청은 대법원 판결 이후에도 리얼돌 통관 신청을 계속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법원 판단이 난 개별 물품에 대해서만 수입을 허용한다는 이유에서다. 관세청 관계자는 "리얼돌마다 생김새 등이 다 다르다"며 "이런 상황에서 모든 리얼돌을 다 같은 물품으로 보고 수입을 허용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관세청이 이런 태도를 보이는 건 리얼돌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판단에서다. 사람과 흡사한 리얼돌을 성인용품으로 우리 사회가 받아들일 것인지 결론이 나지 않았다는 얘기다.

노석환 관세청장은 지난 16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 출석해 "사회적인 합의나 입법 절차를 거쳐서 이런 부분(리얼돌 수입)의 기준이 명확하게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법적인 기준 등이 필요하다는 얘긴데 이 부분은 수입업체들도 원하고 있다. A사 관계자는 "대법원 판결이 2019년에 나서 거의 2년이 다 돼 가는데 여태까지 가이드 마련이나 의견 청취나 이런 게 한 번도 없었다"며 "거의 방치하다가 규정도 안 만들면서 규정이 없다는 이유를 대는 건 말이 안 된다"고 했다.


■또 다른 대법원 판결 줄줄이 이어질 듯

수입업체들은 리얼돌 수입을 위해 계속 소송에 나서고 있다. A사에서 진행 중인 소송만 21건이다. 관세청은 개인정보를 이유로 전체 리얼돌 소송 건수는 공개하지 않았다.

A사의 소송 21건 가운데 6건은 A사가 승소했고, 15건은 아직 1심 판결이 나지 않았다. 패소하더라도 대법원 판결까지 받아보는 게 관세청 방침이기 때문에 대법원 판결까지 나야 소송이 끝난다.

소송은 세관의 통관 보류 결정이 난 이후 바로 시작되는 게 아니라 관세청의 심사나 조세심판원의 심판 절차를 먼저 거쳐야 한다.

수입 1건을 가지고 세관 결정부터 대법원 판결까지 모두 다섯 차례 판단이 이뤄지는 건데, 이 과정에서 소송 비용이나 행정력 등 사회적 낭비가 심하다. 관세청이 패소하면 소송 비용은 세금으로 물어줘야 한다.

이런 낭비는 수입금지든 수입허용이든 아니면 일부 수입허용이든 정부가 규정을 명확히 만들면 막을 수 있는 부분이다. 정부가 리얼돌을 둘러싼 여러 찬반 의견을 듣고 규정을 빨리 내놓아야 하는 이유다.

여성가족부와 법무부 등 관련 부처는 대법원 판결 이후 규정 마련에 들어갔지만, 아직 결론이 나진 않았다.

1심 판결이 난 소송 6건은 이르면 올해 안에 줄줄이 대법원 판결이 날 가능성이 있는데, 어떤 판결이 나오든 사회적 혼란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혼란을 막기 위해 남은 시간이 많지 않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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