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치해 사망’사건에 과실치사 적용…‘착한 사마리아인 법’은?

입력 2021.03.04 (14:12) 수정 2021.03.04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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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싸움 벌이다 쓰러진 지인 모텔에 방치해 숨져…처벌 어렵다?

지난해 10월 14일, 밤 11시를 훌쩍 넘긴 시각. 술자리를 가진 일행 간에 사소한 말다툼이 벌어졌습니다. 이 다툼은 말로 그치지 않고 바깥에서 주먹다짐까지 벌어졌는데요.

그러던 중 20대 남성 한 명이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일행은 어쩐 일인지 이 남성을 병원으로 옮기거나 집으로 보내지 않고, 모텔로 데리고 갔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이 남성은 옮겨진 모텔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습니다.

경찰은 당시 직접 폭행을 했던 20대 남성을 상해치사 혐의로 구속 기소했습니다. 나머지 일행 4명은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했는데요.

유가족 등은 당시 쓰러진 남성을 모텔로 옮기고도 구호조치를 적절히 하지 않은 일행 모두에게 법적 처벌을 요구하는 국민청원을 올렸습니다.

경찰은 고심에 빠졌습니다. 이들에게 적용할 수 있는 혐의가 마땅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경찰, "단순 방관 행위 넘었다"…일행 4명 과실치사 혐의 적용

당시 검안의는 숨진 피해자의 사망 추정시각을 새벽 2시로 봤습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피해자의 사인을 "물리적 충격에 의한 외상성 뇌출혈"로 밝혔는데요.

일행이 쓰러진 남성을 모텔로 옮긴 시각은 자정쯤입니다.

당시 유족 측에 따르면 이들이 119 신고를 하지 않고 방을 구했고, 피해자를 옮기는 장면도 일부 확인됐습니다. 또 모텔에서는 숨진 피해자 옆에 담배꽁초도 잇따라 발견됐습니다.

만약 바로 병원으로 옮겼다면 피해자의 목숨을 구했을지도 모릅니다.

경찰은 사건이 발생한지 넉 달이 지난 지난 달 말 모텔 방치 사망 사건의 일행 4명을 과실치사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습니다.

경찰은 외부 전문 위원 등이 참여하는 법률자문위원회를 열고 일행에게도 피해자를 숨지게 한 책임이 있는지 판단했습니다. 그 결과, 이들의 행위가 단순 방관이나 구조 조치 불이행을 넘어 유기에 가담한 것으로 결론지었습니다.


구호 조치 미흡해도 처벌 조항 없어…긴급 상황 판단 "주관적" vs "생명권 존중"

직접 폭행을 가한 남성 외에 일행에 대한 처벌 조항을 두고 경찰은 자그마치 넉 달 동안 법리적 판단을 거쳐야 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다른 사람의 생명이나 신체에 위험이 발생한 것을 보고도 구조에 나서지 않은 사람을 처벌하는 소위 '착한 사마리아인 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같은 구조 불이행 죄가 명시되지 않아 처벌을 피한 사례는 이뿐만이 아닙니다.

지난 2016년에는 대전에서 차 안에 쓰러진 택시운전사를 놔두고 승객들이 떠나 택시운전사가 숨졌습니다. "비행기를 놓칠까 걱정돼 자리를 떠났다"는 진술로 수많은 국민들을 분노하게 했는데요.

또 지난해 6월에는 응급환자를 싣고 달리던 구급차와 접촉 사고가 난 택시운전사가 진로를 막아 응급환자가 숨지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영업방해 등 부가적인 내용에 대한 처벌이 있었을 뿐 구호 조치에 대한 처벌은 도덕적 판단으로 밀려났습니다.

법조계에서는 착한 사마리아인 법을 도입하는 것에 대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긴급한 상황'인지를 판단하는 것이 주관적인 영역에 속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재난 상황 등에서 구조행위를 방해하는 행위는 법적으로 처벌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견도 힘을 얻고 있는데요.

18대 국회부터 몇 차례나 구조 불이행죄를 신설하는 내용의 형법 개정안 등이 발의됐지만, 아직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방치되서 죽지 않도록, 외면당해 죽는 생명이 없도록 그 기준을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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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3-04 14:12:20
    • 수정2021-03-04 14:14:25
    취재K

몸싸움 벌이다 쓰러진 지인 모텔에 방치해 숨져…처벌 어렵다?

지난해 10월 14일, 밤 11시를 훌쩍 넘긴 시각. 술자리를 가진 일행 간에 사소한 말다툼이 벌어졌습니다. 이 다툼은 말로 그치지 않고 바깥에서 주먹다짐까지 벌어졌는데요.

그러던 중 20대 남성 한 명이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일행은 어쩐 일인지 이 남성을 병원으로 옮기거나 집으로 보내지 않고, 모텔로 데리고 갔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이 남성은 옮겨진 모텔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습니다.

경찰은 당시 직접 폭행을 했던 20대 남성을 상해치사 혐의로 구속 기소했습니다. 나머지 일행 4명은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했는데요.

유가족 등은 당시 쓰러진 남성을 모텔로 옮기고도 구호조치를 적절히 하지 않은 일행 모두에게 법적 처벌을 요구하는 국민청원을 올렸습니다.

경찰은 고심에 빠졌습니다. 이들에게 적용할 수 있는 혐의가 마땅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경찰, "단순 방관 행위 넘었다"…일행 4명 과실치사 혐의 적용

당시 검안의는 숨진 피해자의 사망 추정시각을 새벽 2시로 봤습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피해자의 사인을 "물리적 충격에 의한 외상성 뇌출혈"로 밝혔는데요.

일행이 쓰러진 남성을 모텔로 옮긴 시각은 자정쯤입니다.

당시 유족 측에 따르면 이들이 119 신고를 하지 않고 방을 구했고, 피해자를 옮기는 장면도 일부 확인됐습니다. 또 모텔에서는 숨진 피해자 옆에 담배꽁초도 잇따라 발견됐습니다.

만약 바로 병원으로 옮겼다면 피해자의 목숨을 구했을지도 모릅니다.

경찰은 사건이 발생한지 넉 달이 지난 지난 달 말 모텔 방치 사망 사건의 일행 4명을 과실치사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습니다.

경찰은 외부 전문 위원 등이 참여하는 법률자문위원회를 열고 일행에게도 피해자를 숨지게 한 책임이 있는지 판단했습니다. 그 결과, 이들의 행위가 단순 방관이나 구조 조치 불이행을 넘어 유기에 가담한 것으로 결론지었습니다.


구호 조치 미흡해도 처벌 조항 없어…긴급 상황 판단 "주관적" vs "생명권 존중"

직접 폭행을 가한 남성 외에 일행에 대한 처벌 조항을 두고 경찰은 자그마치 넉 달 동안 법리적 판단을 거쳐야 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다른 사람의 생명이나 신체에 위험이 발생한 것을 보고도 구조에 나서지 않은 사람을 처벌하는 소위 '착한 사마리아인 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같은 구조 불이행 죄가 명시되지 않아 처벌을 피한 사례는 이뿐만이 아닙니다.

지난 2016년에는 대전에서 차 안에 쓰러진 택시운전사를 놔두고 승객들이 떠나 택시운전사가 숨졌습니다. "비행기를 놓칠까 걱정돼 자리를 떠났다"는 진술로 수많은 국민들을 분노하게 했는데요.

또 지난해 6월에는 응급환자를 싣고 달리던 구급차와 접촉 사고가 난 택시운전사가 진로를 막아 응급환자가 숨지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영업방해 등 부가적인 내용에 대한 처벌이 있었을 뿐 구호 조치에 대한 처벌은 도덕적 판단으로 밀려났습니다.

법조계에서는 착한 사마리아인 법을 도입하는 것에 대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긴급한 상황'인지를 판단하는 것이 주관적인 영역에 속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재난 상황 등에서 구조행위를 방해하는 행위는 법적으로 처벌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견도 힘을 얻고 있는데요.

18대 국회부터 몇 차례나 구조 불이행죄를 신설하는 내용의 형법 개정안 등이 발의됐지만, 아직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방치되서 죽지 않도록, 외면당해 죽는 생명이 없도록 그 기준을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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