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상기 없이 못 살아”…코로나19 아랑곳 않고 ‘군수’ 찬양

입력 2021.03.04 (16:02) 수정 2021.03.04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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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기 없음 못 살아"

지난 주말, 제보 영상을 받았습니다. 경남 하동군 소속 신규 공무원들의 공연 영상이었습니다.

영상 속의 남자 공무원 4명은 등에 "상기 없음 못 살아"라는 글자가 인쇄된 종이를 붙이고 있었습니다. 여자 공무원 2명은 반짝이 옷을 입고 노래를 불렀습니다.

트로트 가사를 바꿔 윤상기 하동군수를 찬양하는 노래였습니다.

이 영상은 지난해 7월 1일에 찍은 것입니다. '민선 7기 2주년 기념 정례조회' 때 열린 공연이었는데요. 코로나19 확산세 속에 윤상기 하동군수의 민선 7기 2주년을 기념하는 행사였습니다.

행사에 참석했던 한 군민은 정례조회를 위해 모인 자리에서 윤 군수를 찬양하는 공연을 보고 충격을 받아 영상을 촬영했다고 전했습니다.

당시에도 코로나19 위기경보가 '심각 단계'였습니다. 행사가 열렸을 즈음에는 광주광역시에서 하루 확진자가 수십 명씩 나왔던 상황이었는데요.

따라서 전남 또는 광주광역시 등과 지리적으로 멀지 않은 하동군에서도 긴장할 수밖에 없었지만, 하동군은 아랑곳하지 않고 대규모 대면 행사를 기획했습니다.


■ 하동군, 이장 등 군민 3백 명 참석 요청

하동군은 오히려 이 행사를 위해 군민 3백 명과 직원 3백 명 등 모두 6백 명의 참가를 독려했습니다. 하동군이 읍·면사무소에 보낸 공문에는 이장 등의 참석을 요청하는 문구가 적혀 있었습니다.

상남도가 지난해 6월, 각 시·군에 대면 행사를 자제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소용이 없었던 겁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가까운 사이라도 만나기가 꺼려졌던 시기, 윤 군수의 민선 7기 2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수백 명의 사람이 한 장소에 모여야만 했습니다.

일부 군민들은 불안했지만, 하동군에서 참석을 요청해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KBS가 확보한 영상에는 행사 참가자들이 최소한의 거리 두기도 없이 앉아 있었고,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들도 여러 명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 윤상기 하동군수, "아침마다 다리미로 얼굴 다려"

공무원들의 찬양 공연 이후 이어진 질의응답 시간도 낯뜨거운 광경이 펼쳐집니다. 공약 이행 여부나 코로나19 확산 차단을 위한 대책 등 공무와 연관성이 있는 질문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한 신규 공무원은 윤 군수에게 얼굴 피부관리 비결을 물었습니다. 이에 대해 윤 군수는 "아침마다 다리미로 얼굴을 다린다"는 농담으로 답했습니다.

확진자 발생 여부를 떠나서 코로나19 확산으로 지역 경기가 침체해 대책 마련이 시급한 상황에 노래로 윤 군수를 찬양하고, 농담을 주고받는 행사를 꼭 열어야 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취재차 하동군에 도착하기 전에 윤 군수에게 두 차례 전화했습니다. 윤 군수는 행사 자체를 기억하지 못해 만날 필요가 없다고 답했습니다. 자신을 위해 군민 수백 명이 모인 자리였는데 8개월이 지난 지금, 행사가 열렸는지조차 모른다는 겁니다.

윤 군수의 아내도 함께 참석했습니다. 본인이 마스크도 쓰지 않고 자신의 치적을 긴 시간 동안 홍보한 행사를 기억하지 못하는 주장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굳이 수백 명이 실내 공연장에 다닥다닥 붙어 앉아서 윤 군수의 성과를 1시간 넘게 듣고 있어야만 했는지 묻고 싶었지만 윤 군수도, 하동군도 명확한 답변을 내놓지 않았습니다.

지난 한해를 되돌아보면 코로나19는 '방심' 속에서 퍼졌습니다. 그래서 무엇보다 자발적으로 사회적 거리두기 등 방역수칙을 준수해야 하는데요. 코로나19가 쉽게 확산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지 않는 게 방역 수칙의 기본입니다.

대다수 지자체는 민선 7기 2주년 기념행사는 물론 업무와 직결된 회의나 행사도 비대면이나 간소한 방식으로 열었습니다. 코로나19 확산을 막자는 의지를 엿볼 수 있는 결정입니다.

앞서 윤상기 하동군수는 지난달 19일 소속 공무원 10여 명이 참가한 술자리에도 방문했다가 비판을 받자 공식 사과하기도 했습니다. 이번 보도를 계기로 하동군이 방역수칙을 더 철저히 지키는 모습을 보여주기를 기대해 봅니다.


[연관 기사]“상기 없이 못 살아” 낯 뜨거운 대면 행사…하동군수 방역수칙 또 위반?
http://news.kbs.co.kr/news/view.do?ncd=5130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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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상기 없이 못 살아”…코로나19 아랑곳 않고 ‘군수’ 찬양
    • 입력 2021-03-04 16:02:17
    • 수정2021-03-04 16:49:39
    취재후·사건후

■ "상기 없음 못 살아"

지난 주말, 제보 영상을 받았습니다. 경남 하동군 소속 신규 공무원들의 공연 영상이었습니다.

영상 속의 남자 공무원 4명은 등에 "상기 없음 못 살아"라는 글자가 인쇄된 종이를 붙이고 있었습니다. 여자 공무원 2명은 반짝이 옷을 입고 노래를 불렀습니다.

트로트 가사를 바꿔 윤상기 하동군수를 찬양하는 노래였습니다.

이 영상은 지난해 7월 1일에 찍은 것입니다. '민선 7기 2주년 기념 정례조회' 때 열린 공연이었는데요. 코로나19 확산세 속에 윤상기 하동군수의 민선 7기 2주년을 기념하는 행사였습니다.

행사에 참석했던 한 군민은 정례조회를 위해 모인 자리에서 윤 군수를 찬양하는 공연을 보고 충격을 받아 영상을 촬영했다고 전했습니다.

당시에도 코로나19 위기경보가 '심각 단계'였습니다. 행사가 열렸을 즈음에는 광주광역시에서 하루 확진자가 수십 명씩 나왔던 상황이었는데요.

따라서 전남 또는 광주광역시 등과 지리적으로 멀지 않은 하동군에서도 긴장할 수밖에 없었지만, 하동군은 아랑곳하지 않고 대규모 대면 행사를 기획했습니다.


■ 하동군, 이장 등 군민 3백 명 참석 요청

하동군은 오히려 이 행사를 위해 군민 3백 명과 직원 3백 명 등 모두 6백 명의 참가를 독려했습니다. 하동군이 읍·면사무소에 보낸 공문에는 이장 등의 참석을 요청하는 문구가 적혀 있었습니다.

상남도가 지난해 6월, 각 시·군에 대면 행사를 자제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소용이 없었던 겁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가까운 사이라도 만나기가 꺼려졌던 시기, 윤 군수의 민선 7기 2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수백 명의 사람이 한 장소에 모여야만 했습니다.

일부 군민들은 불안했지만, 하동군에서 참석을 요청해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KBS가 확보한 영상에는 행사 참가자들이 최소한의 거리 두기도 없이 앉아 있었고,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들도 여러 명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 윤상기 하동군수, "아침마다 다리미로 얼굴 다려"

공무원들의 찬양 공연 이후 이어진 질의응답 시간도 낯뜨거운 광경이 펼쳐집니다. 공약 이행 여부나 코로나19 확산 차단을 위한 대책 등 공무와 연관성이 있는 질문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한 신규 공무원은 윤 군수에게 얼굴 피부관리 비결을 물었습니다. 이에 대해 윤 군수는 "아침마다 다리미로 얼굴을 다린다"는 농담으로 답했습니다.

확진자 발생 여부를 떠나서 코로나19 확산으로 지역 경기가 침체해 대책 마련이 시급한 상황에 노래로 윤 군수를 찬양하고, 농담을 주고받는 행사를 꼭 열어야 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취재차 하동군에 도착하기 전에 윤 군수에게 두 차례 전화했습니다. 윤 군수는 행사 자체를 기억하지 못해 만날 필요가 없다고 답했습니다. 자신을 위해 군민 수백 명이 모인 자리였는데 8개월이 지난 지금, 행사가 열렸는지조차 모른다는 겁니다.

윤 군수의 아내도 함께 참석했습니다. 본인이 마스크도 쓰지 않고 자신의 치적을 긴 시간 동안 홍보한 행사를 기억하지 못하는 주장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굳이 수백 명이 실내 공연장에 다닥다닥 붙어 앉아서 윤 군수의 성과를 1시간 넘게 듣고 있어야만 했는지 묻고 싶었지만 윤 군수도, 하동군도 명확한 답변을 내놓지 않았습니다.

지난 한해를 되돌아보면 코로나19는 '방심' 속에서 퍼졌습니다. 그래서 무엇보다 자발적으로 사회적 거리두기 등 방역수칙을 준수해야 하는데요. 코로나19가 쉽게 확산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지 않는 게 방역 수칙의 기본입니다.

대다수 지자체는 민선 7기 2주년 기념행사는 물론 업무와 직결된 회의나 행사도 비대면이나 간소한 방식으로 열었습니다. 코로나19 확산을 막자는 의지를 엿볼 수 있는 결정입니다.

앞서 윤상기 하동군수는 지난달 19일 소속 공무원 10여 명이 참가한 술자리에도 방문했다가 비판을 받자 공식 사과하기도 했습니다. 이번 보도를 계기로 하동군이 방역수칙을 더 철저히 지키는 모습을 보여주기를 기대해 봅니다.


[연관 기사]“상기 없이 못 살아” 낯 뜨거운 대면 행사…하동군수 방역수칙 또 위반?
http://news.kbs.co.kr/news/view.do?ncd=5130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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