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혐오에 나치 물타기까지…정보기관 감시 대상된 독일 제1야당

입력 2021.03.05 (08:00) 수정 2021.03.05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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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우리 부엌에는 어울리지 않아.” 무슬림을 비하하며 독일에서 내쫓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은 2017년 총선 당시 독일 대안당 선거 포스터“이슬람? 우리 부엌에는 어울리지 않아.” 무슬림을 비하하며 독일에서 내쫓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은 2017년 총선 당시 독일 대안당 선거 포스터

■ 지독한 혐오·나치 시대 물타기…연방헌법수호청 감시 대상된 독일 제1야당

독일 제1야당 '독일을 위한 대안당(AfD)이 연방헌법수호청의 감시 대상에 올랐다고 독일 언론들이 3월 3일 보도했습니다. 대부분의 언론들은 당연한 일이라는 논조를 보이고 있습니다.

대안당은 극우정당으로 분류됩니다. 2013년 창당했는데 2017년 총선에서 반 난민 정서를 등에 업고 연방의회에 무려 94명의 의원을 입성시켰습니다.

당초 온건한 우파 정도였다는데 극우 포퓰리스트들이 당에 대거 참여하며 인종주의와 반유대주의, 반페미니즘 성향을 띄는 극우정당이 됐습니다.

독일 연방헌법수호청은 왜 제1야당을 감시대상으로 지정했을까요?

대안당의 전 대변인 크리스티안 뤼트가 지난해 2월 베를린의 한 바에서 유명 유튜버에게 한 말에 답이 있습니다.

"독일이 더 나빠질수록 대안당(AfD)은 더 좋아진다"
"이민자가 더 독일로 오는 것이 대안당에 이로운가?"
"그렇다. 우리는 나중에 그들을 모두 가스로 처리하거나 총으로 쏘거나, 어떤 방식으로든 죽일 수 있다"

문명사회에서 용납하기 힘든 발언입니다.

이후 대안당은 뤼트를 쫓아냈지만, 쏟아지는 비난을 모면하기 위한 면피성 조치였다는 게 중론입니다. 대안당 내에선 그동안 뤼트와 비슷한 수위의 발언이 수도 없이 쏟아져 나왔기 때문입니다.

대안당의 청년 조직인 '청년 대안당'은 기본강령인 '독일계획'에서 '남성 난민들에게 저녁 외출을 금지시켜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헤센주 청년 대안당 대표는 연방정부의 난민 정책을 두고 " 국민들의 핏값을 치르게 하는 정신 나간 국민실험"이라고 발언했습니다.

또 다른 이는 좌파 정당들에게 대안당이 정권을 잡을 경우 "(좌파들은) 제거될 것이다. 정치는 오로지 국민(여기서 국민은 난민 등 이주민을 제외한 원래 독일인) 들을 위해서만 이뤄질 것이다"고 협박하기도 했습니다.

나치 시대의 심각성을 희석하는 발언도 있었습니다.

나치 시대를 반성하는 독일 사회의 '죄책감 문화'를 없애야 하고 2차대전 당시 연합군의 드레스덴 공습으로 많은 독일인이 희생됐다는 주장입니다.

전쟁을 일으키고 수많은 유대인을 가스실로 몰아넣은 역사적 사실을 몰각한 채 "우리도 많이 희생됐다"는 '희생자 코스프레'를 하는 것이죠.

이런 주장, 태평양 전쟁 당시 원폭 피해만을 강조하는 일본의 극우의 모습을 떠올리게 합니다. '극우 멘털리티'는 어디나 비슷합니다.

대안당의 또 다른 하부조직 '플뤼겔'도 독일 내 이주민들을 모두 고향으로 돌려보내야 한다든지, 무슬림들은 강제추방해야 한다는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헌법수호청은 이 같은 행위들을 '헌법 적대적' 활동으로 판단하고 결국 대안당을 감시대상으로까지 지정한 겁니다.

독일 국내 정보를 담당하는 ‘연방헌법수호청’독일 국내 정보를 담당하는 ‘연방헌법수호청’

■ 감청·도청에 정보원 투입까지 모든 활동 감시

이런 조치는 갑자기 이뤄진 게 아닙니다. 연방헌법수호청은 독일 국내 정보 활동을 담당합니다. 말 그대로 '반헌법적 활동'을 하는 단체나 인물을 추적하고 법적 조치를 하는 기관입니다.

이런 기관이 2019년 1월 대안당 하부조직 '청년대안당'과 '플뤼겔'을 집중감시 대상으로 규정하면서 대안당은 '조사사례'에 해당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조사사례는 혐의가 확실하지 않지만, 조사의 필요성이 있기 때문에 앞으로 체계적으로 혐의를 조사해 나겠다는 의미입니다.

대안당은 바로 반발하며 쾰른 행정법원에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혐의를 특정할 수 없는데 '조사사례'라고 발표한 것만으로도 정치적 경쟁에서 심대한 타격을 입게 된다는 겁니다.

쾰른 법원은 이 주장을 받아들여 대안당을 조사사례로 발표하지 말라고 명령했습니다. 대안당이 극우적 행위를 했는지는 별론으로 하고 헌법수호청의 발표에 절차상 하자가 있다고 판단한 겁니다.

조사사례라고 발표할 수 없을 뿐 조사사례에서 제외되는 것도 아닙니다.

법원의 명령을 수용한 헌법수호청은 조용히 2년 동안 구체적 사례들을 수집해 올해 3월 무려 800페이지에 달하는 보고서를 내고 대안당을 집중감시 대상에 올려놨습니다.

보고서의 내용에는 '인간의 존엄성과 민주주의 원칙에 대한 대안당의 위반 사례'가 담긴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럼 집중감시 대상이 된다는 건 어떤 걸까요?

헌법수호청은 감시 대상으로 3단계로 나누고 있습니다.

▲1단계 감사사안(Prueffall)은 공개된 정보만을 토대로 감시
▲2단계 혐의사안(Verdachtsfall)은 의심스러운 점이 있을 경우 감청, 도청, 미행 등까지 가능
▲3단계 (집중)감시사안(Beobachtungsfall)은 감청, 도청, 미행뿐만 아니라 정보원(V-mann) 투입작전 등 헌법수호청의 모든 감시수단을 사용하는 게 가능합니다.

한마디로 집중감시대상이 되면 탈곡기에서 낟알 털리듯 '탈탈 털리'게 되는 겁니다.

2년 전 집중감시대상이 됐던 플뤼겔은 곧바로 해산을 선언했습니다. 조직이 사라지면 감시 대상이 사라지게 되는 거니까요.

한편 헌법수호청은 현재 독일 내 극우주의자수는 약 32,000명이고, 이 중 13,000명은 폭력성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독일을 위한 대안당’ 로고. 오른쪽 위로 치솟은 화살표는 대안당의 지향점이 무엇이진 상징한다.‘독일을 위한 대안당’ 로고. 오른쪽 위로 치솟은 화살표는 대안당의 지향점이 무엇이진 상징한다.

■ 총선 앞둔 대안당 "야당 탄압"…존폐 위기 놓인 극우정당

대안당은 비상이 걸렸습니다. 올해 9월 총선이 있는데 헌법수호청의 감시는 대형 악재인 셈이죠. 당장 이 당의 원내대표인 알렉산더 가우란트와 티노 크루팔라는 제 1 야당에 대한 파괴 행위라고 헌법수호청을 비난했습니다.

대안당에게는 선거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습니다. 헌법수호청의 대대적 감시활동으로 혐의가 확실해지면 기소가 될 거고, 헌법재판소의 정당해산 심판까지도 예상됩니다. 당의 존폐가 달린 일이죠.

하지만 당이 문을 닫게 될지는 미지수입니다.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독일 연방상원은 2013년 헌법재판소에 신나치당이라는 악명을 가지고 있던 독일 국가민주당(NPD)에 대한 위헌정당해산 심판을 청구했는데 헌재는 심리 3년여 만인 2017년 이 청구를 기각했습니다.

헌재는 "NPD가 과거 위헌적 목표를 추구했을지라도, 지금 볼 때 그 구체적인 증거가 없고 이 정당의 활동이 그런 위헌적 목표를 성공에 이르게 하지 못한다"고 기각사유를 밝혔습니다.

당시에도 헌법수호청의 정보원(V-mann)이 NPD 내부에 침투해 정보를 수집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2017년 독일 총선에서 정부의 난민 정책 등으로 시민들의 불안 심리를 자극해 돌풍을 일으켰던 대안당. 이제는 반헌법 행위로 감시를 받는 처지가 됐습니다.

올 9월 총선에서 이 극우정당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판가름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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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 리포트] 혐오에 나치 물타기까지…정보기관 감시 대상된 독일 제1야당
    • 입력 2021-03-05 08:00:12
    • 수정2021-03-05 13:49:55
    특파원 리포트
“이슬람? 우리 부엌에는 어울리지 않아.” 무슬림을 비하하며 독일에서 내쫓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은 2017년 총선 당시 독일 대안당 선거 포스터
■ 지독한 혐오·나치 시대 물타기…연방헌법수호청 감시 대상된 독일 제1야당

독일 제1야당 '독일을 위한 대안당(AfD)이 연방헌법수호청의 감시 대상에 올랐다고 독일 언론들이 3월 3일 보도했습니다. 대부분의 언론들은 당연한 일이라는 논조를 보이고 있습니다.

대안당은 극우정당으로 분류됩니다. 2013년 창당했는데 2017년 총선에서 반 난민 정서를 등에 업고 연방의회에 무려 94명의 의원을 입성시켰습니다.

당초 온건한 우파 정도였다는데 극우 포퓰리스트들이 당에 대거 참여하며 인종주의와 반유대주의, 반페미니즘 성향을 띄는 극우정당이 됐습니다.

독일 연방헌법수호청은 왜 제1야당을 감시대상으로 지정했을까요?

대안당의 전 대변인 크리스티안 뤼트가 지난해 2월 베를린의 한 바에서 유명 유튜버에게 한 말에 답이 있습니다.

"독일이 더 나빠질수록 대안당(AfD)은 더 좋아진다"
"이민자가 더 독일로 오는 것이 대안당에 이로운가?"
"그렇다. 우리는 나중에 그들을 모두 가스로 처리하거나 총으로 쏘거나, 어떤 방식으로든 죽일 수 있다"

문명사회에서 용납하기 힘든 발언입니다.

이후 대안당은 뤼트를 쫓아냈지만, 쏟아지는 비난을 모면하기 위한 면피성 조치였다는 게 중론입니다. 대안당 내에선 그동안 뤼트와 비슷한 수위의 발언이 수도 없이 쏟아져 나왔기 때문입니다.

대안당의 청년 조직인 '청년 대안당'은 기본강령인 '독일계획'에서 '남성 난민들에게 저녁 외출을 금지시켜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헤센주 청년 대안당 대표는 연방정부의 난민 정책을 두고 " 국민들의 핏값을 치르게 하는 정신 나간 국민실험"이라고 발언했습니다.

또 다른 이는 좌파 정당들에게 대안당이 정권을 잡을 경우 "(좌파들은) 제거될 것이다. 정치는 오로지 국민(여기서 국민은 난민 등 이주민을 제외한 원래 독일인) 들을 위해서만 이뤄질 것이다"고 협박하기도 했습니다.

나치 시대의 심각성을 희석하는 발언도 있었습니다.

나치 시대를 반성하는 독일 사회의 '죄책감 문화'를 없애야 하고 2차대전 당시 연합군의 드레스덴 공습으로 많은 독일인이 희생됐다는 주장입니다.

전쟁을 일으키고 수많은 유대인을 가스실로 몰아넣은 역사적 사실을 몰각한 채 "우리도 많이 희생됐다"는 '희생자 코스프레'를 하는 것이죠.

이런 주장, 태평양 전쟁 당시 원폭 피해만을 강조하는 일본의 극우의 모습을 떠올리게 합니다. '극우 멘털리티'는 어디나 비슷합니다.

대안당의 또 다른 하부조직 '플뤼겔'도 독일 내 이주민들을 모두 고향으로 돌려보내야 한다든지, 무슬림들은 강제추방해야 한다는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헌법수호청은 이 같은 행위들을 '헌법 적대적' 활동으로 판단하고 결국 대안당을 감시대상으로까지 지정한 겁니다.

독일 국내 정보를 담당하는 ‘연방헌법수호청’
■ 감청·도청에 정보원 투입까지 모든 활동 감시

이런 조치는 갑자기 이뤄진 게 아닙니다. 연방헌법수호청은 독일 국내 정보 활동을 담당합니다. 말 그대로 '반헌법적 활동'을 하는 단체나 인물을 추적하고 법적 조치를 하는 기관입니다.

이런 기관이 2019년 1월 대안당 하부조직 '청년대안당'과 '플뤼겔'을 집중감시 대상으로 규정하면서 대안당은 '조사사례'에 해당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조사사례는 혐의가 확실하지 않지만, 조사의 필요성이 있기 때문에 앞으로 체계적으로 혐의를 조사해 나겠다는 의미입니다.

대안당은 바로 반발하며 쾰른 행정법원에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혐의를 특정할 수 없는데 '조사사례'라고 발표한 것만으로도 정치적 경쟁에서 심대한 타격을 입게 된다는 겁니다.

쾰른 법원은 이 주장을 받아들여 대안당을 조사사례로 발표하지 말라고 명령했습니다. 대안당이 극우적 행위를 했는지는 별론으로 하고 헌법수호청의 발표에 절차상 하자가 있다고 판단한 겁니다.

조사사례라고 발표할 수 없을 뿐 조사사례에서 제외되는 것도 아닙니다.

법원의 명령을 수용한 헌법수호청은 조용히 2년 동안 구체적 사례들을 수집해 올해 3월 무려 800페이지에 달하는 보고서를 내고 대안당을 집중감시 대상에 올려놨습니다.

보고서의 내용에는 '인간의 존엄성과 민주주의 원칙에 대한 대안당의 위반 사례'가 담긴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럼 집중감시 대상이 된다는 건 어떤 걸까요?

헌법수호청은 감시 대상으로 3단계로 나누고 있습니다.

▲1단계 감사사안(Prueffall)은 공개된 정보만을 토대로 감시
▲2단계 혐의사안(Verdachtsfall)은 의심스러운 점이 있을 경우 감청, 도청, 미행 등까지 가능
▲3단계 (집중)감시사안(Beobachtungsfall)은 감청, 도청, 미행뿐만 아니라 정보원(V-mann) 투입작전 등 헌법수호청의 모든 감시수단을 사용하는 게 가능합니다.

한마디로 집중감시대상이 되면 탈곡기에서 낟알 털리듯 '탈탈 털리'게 되는 겁니다.

2년 전 집중감시대상이 됐던 플뤼겔은 곧바로 해산을 선언했습니다. 조직이 사라지면 감시 대상이 사라지게 되는 거니까요.

한편 헌법수호청은 현재 독일 내 극우주의자수는 약 32,000명이고, 이 중 13,000명은 폭력성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독일을 위한 대안당’ 로고. 오른쪽 위로 치솟은 화살표는 대안당의 지향점이 무엇이진 상징한다.
■ 총선 앞둔 대안당 "야당 탄압"…존폐 위기 놓인 극우정당

대안당은 비상이 걸렸습니다. 올해 9월 총선이 있는데 헌법수호청의 감시는 대형 악재인 셈이죠. 당장 이 당의 원내대표인 알렉산더 가우란트와 티노 크루팔라는 제 1 야당에 대한 파괴 행위라고 헌법수호청을 비난했습니다.

대안당에게는 선거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습니다. 헌법수호청의 대대적 감시활동으로 혐의가 확실해지면 기소가 될 거고, 헌법재판소의 정당해산 심판까지도 예상됩니다. 당의 존폐가 달린 일이죠.

하지만 당이 문을 닫게 될지는 미지수입니다.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독일 연방상원은 2013년 헌법재판소에 신나치당이라는 악명을 가지고 있던 독일 국가민주당(NPD)에 대한 위헌정당해산 심판을 청구했는데 헌재는 심리 3년여 만인 2017년 이 청구를 기각했습니다.

헌재는 "NPD가 과거 위헌적 목표를 추구했을지라도, 지금 볼 때 그 구체적인 증거가 없고 이 정당의 활동이 그런 위헌적 목표를 성공에 이르게 하지 못한다"고 기각사유를 밝혔습니다.

당시에도 헌법수호청의 정보원(V-mann)이 NPD 내부에 침투해 정보를 수집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2017년 독일 총선에서 정부의 난민 정책 등으로 시민들의 불안 심리를 자극해 돌풍을 일으켰던 대안당. 이제는 반헌법 행위로 감시를 받는 처지가 됐습니다.

올 9월 총선에서 이 극우정당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판가름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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