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이번엔 세계 첫 ‘소녀상 공원’…日우익 “계획 단계부터 저지”
입력 2021.03.06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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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소녀상은 과거 역사를 넘어 일본과 한국이 앞으로 건설적인 관계를 구축하는데 있어 장벽의 상징으로 인식하고 있다. (중략) 특히 미테구 공공장소에 설치하는 건 충격적인 사실로 받아들인다." |
일본 시마네(島根)현에는 쓰와노마치(津和野町)라는 작은 마을이 있습니다. 이곳의 시타모리 히로유키(下森博之) 읍장은 지난해 10월 1일, 슈테판 폰 다쎌(Stephan von Dassel) 독일 베를린 미테구청장에게 이런 내용의 편지를 보냈습니다.
당시는 미테구 공공장소에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에 대해 일본 정부와 주 독일 일본대사관 등이 전방위 방해 공작과 철거 작전을 벌이던 때였습니다.
일본 시마네현 쓰나와마치 읍장이 지난해 10월 1일, 독일 베를린 미테구청장에게 소녀상 철거를 요구하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제공=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 전국행동〉
■ "위안부상은 장벽의 상징"
일본 쓰와노마치와 독일 미테구, 두 지역은 1995년 8월부터 25년째 자매결연을 맺은 상태였습니다.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와 함께 일본 근대문학의 거장으로 꼽히는 모리 오가이( 森鴎外·1862년~1922년)에 대한 기억을 공유한 덕분입니다.
쓰나와마치 출신의 모리는 육군 군의관으로 독일에서 유학(1884년~88년)했습니다. 그곳에서 문학과 미술 등에 관심을 가지게 됐고, 이 체험은 소설가가 되는데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베를린에는 '모리 오가이 기념관'도 있습니다.
편지는 이 문제를 거론합니다.
"미테구와 교류 관계를 맺고 있어 전국에서 항의 전화가 쇄도한다. 모리 선생을 인연으로 한 우호 관계는 이후에도 바뀌지 않을 거라고 믿으나, 쓰나와마치가 직면한 괴로운 처지를 헤아려 빠르게 대응해 달라."
완곡한 표현을 썼지만, 뒤집어보면 소녀상이 철거되지 않으면 뭔가 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뜻도 더불어 읽히는 대목입니다.
일본 시마네현 쓰나와마치 읍장이 지난해 11월, 독일 베를린 미테구청장에게 소녀상 철거를 요구하는 내용의 두 번째 편지를 보냈다. 〈제공=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 전국행동〉
■ '철거 압박' 편지, 뒤늦게 공개
이 뿐만이 아닙니다. 시타모리 읍장은 한 달 뒤 다시 편지를 보냅니다. 소녀상이 철거될 거라는 당초 기대와 달리, 미테구의회가 지난해 11월 1일 전체 회의에서 소녀상을 영구적으로 유지하도록 촉구하는 결의안을 의결한 직후입니다.
"특히 유감스러운 건 일·한 문제가 다른 나라, 게다가 긴 세월에 걸쳐 우호 관계에 있던 미테구마저 휩쓸리게 한 사태가 되어 버렸다는 점이다. 다쎌 구청장에게 본의 아니게 심적 고통을 끼쳤다." |
상대의 처지를 이해하는 듯한 표현이지만, 이 역시 뒤집어 보면 한·일 양자 문제에 왜 제3국이 끼어들어 논란을 자초하느냐는 식으로 해석될 수 있는 대목입니다.
쓰나와마치는 그동안 구체적인 편지 내용을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최근 한 시민이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편지들을 받아냈고, 이게 다시 일본 시민단체인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 전국행동' 측에 전달됐습니다.
앞서 일본 나고야(名古屋)시를 비롯해 도쿄(東京) 신주쿠(新宿)구, 히가시오사카(東大阪)시 등 자매결연을 맺은 다른 지자체들도 미테구에 일제히 항의 편지를 보냈는데, 그 내용은 이미 공개된 상태입니다.
미국 필라델피아 퀸빌리지에 조성될 ‘소녀상 공원’ 조감도. 〈출처=필라델피아 소녀상건립추진위원회〉
■ 세계 첫 '위안부 공원' 美에 조성
해묵은 편지를 다시 소개하는 데는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일본의 소녀상 철거 압박이 무대를 옮겨 재현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지난해가 독일 베를린이었다면 올해는 미국 필라델피아입니다. 무엇보다 이번엔 단순 '소녀상'이 아닌 세계 최초의 '소녀상 공원'입니다.
지난달 10일,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시에 거주 중인 한인교포들로 구성된 소녀상 건립추진위원회(위원회)는 시 당국으로부터 '소녀상 공원 건립 계획'에 대한 '원론적 승인'(conceptual approval)을 받았습니다.
필라델피아시 중심부 '퀸빌리지' 지역 근린공원을 소녀상 공원으로 탈바꿈시겠다는 '공공예술 설치안'(콘셉트 디자인)입니다.
소녀상 공원은 미국의 독립을 기리기 위해 조성된 필라델피아 '국립독립기념역사공원'에서 1마일(1.6km) 정도 밖에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시 중심부에 터를 잡게 돼 더욱 값진 의미를 더합니다.
미국 필라델피아 퀸빌리지에 조성될 ‘소녀상 공원’ 내 조형물 개념도. 〈출처=필라델피아 소녀상건립추진위원회〉
■ 4년간 비공개 진행…"007작전 방불"
위원회 측은 이 사업을 4년간 비공개로 진행했습니다.
설익은 단계에서 계획이 알려지지 않도록 대외 홍보 등도 자제했습니다. 각국에서 일본의 반대 로비로 소녀상 설치가 난항을 겪는 모습을 목격해 왔기 때문이죠.
시 당국에서 공모하는 '공공예술 설치 프로젝트'에 응모하는 방식의 우회로를 택한 것이 이런 이유였다고 합니다.
공원 착공 목표는 올해 연말입니다. 앞으로 시공계획서 평가와 면허 검사 절차가 남았습니다. 두 과정 모두 비용 충당이 관건인 행정 절차입니다.
모금만 제대로 이뤄지면 착공에 별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위원회는 시공과 준공 이후 공원 유지·보수를 위해 36만 달러(4억 원)가 들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세계 최초의 ‘소녀상 공원’ 건립 계획에 대해 원론적 승인한 미국 필라델피아 예술 위원회 홈페이지.
■ 日우익 "계획 단계부터 저지"
이에 대한 일본 정부의 공식 반응은 아직 나오지 않았습니다. 다만, 소식을 접한 일본 우익들은 화들짝 놀란 인상입니다. 실제로 일본의 대표적 극우 민간단체인 '나데시코액션'의 경우 3월 3일 홈페이지에 이런 공지글을 올렸습니다.
"필라델피아 예술위원회 회의 영상을 보면, 위원들은 소녀상이 정치적 문제가 되어 있는 걸 전혀 알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한국계 단체들은 앞으로 자금 마련에 주력할 것이다. 소녀상 설치가 결정된 건 아니지만, 계획 단계에서 저지하지 않으면 안 된다." |
이번에도 일본 우익들은 세계 첫 '소녀상 공원'을 물거품으로 만들기 위해 집요한 방해 공작을 펼칠 것으로 보입니다.
일본 우익 사이트에는 이미 필라델피아 예술위원회 측 주소와 전화, 이메일 정보가 빠르게 공유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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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파원 리포트] 이번엔 세계 첫 ‘소녀상 공원’…日우익 “계획 단계부터 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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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1-03-06 07:01:21
"(위안부) 소녀상은 과거 역사를 넘어 일본과 한국이 앞으로 건설적인 관계를 구축하는데 있어 장벽의 상징으로 인식하고 있다. (중략) 특히 미테구 공공장소에 설치하는 건 충격적인 사실로 받아들인다." |
일본 시마네(島根)현에는 쓰와노마치(津和野町)라는 작은 마을이 있습니다. 이곳의 시타모리 히로유키(下森博之) 읍장은 지난해 10월 1일, 슈테판 폰 다쎌(Stephan von Dassel) 독일 베를린 미테구청장에게 이런 내용의 편지를 보냈습니다.
당시는 미테구 공공장소에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에 대해 일본 정부와 주 독일 일본대사관 등이 전방위 방해 공작과 철거 작전을 벌이던 때였습니다.
■ "위안부상은 장벽의 상징"
일본 쓰와노마치와 독일 미테구, 두 지역은 1995년 8월부터 25년째 자매결연을 맺은 상태였습니다.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와 함께 일본 근대문학의 거장으로 꼽히는 모리 오가이( 森鴎外·1862년~1922년)에 대한 기억을 공유한 덕분입니다.
쓰나와마치 출신의 모리는 육군 군의관으로 독일에서 유학(1884년~88년)했습니다. 그곳에서 문학과 미술 등에 관심을 가지게 됐고, 이 체험은 소설가가 되는데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베를린에는 '모리 오가이 기념관'도 있습니다.
편지는 이 문제를 거론합니다.
"미테구와 교류 관계를 맺고 있어 전국에서 항의 전화가 쇄도한다. 모리 선생을 인연으로 한 우호 관계는 이후에도 바뀌지 않을 거라고 믿으나, 쓰나와마치가 직면한 괴로운 처지를 헤아려 빠르게 대응해 달라."
완곡한 표현을 썼지만, 뒤집어보면 소녀상이 철거되지 않으면 뭔가 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뜻도 더불어 읽히는 대목입니다.
■ '철거 압박' 편지, 뒤늦게 공개
이 뿐만이 아닙니다. 시타모리 읍장은 한 달 뒤 다시 편지를 보냅니다. 소녀상이 철거될 거라는 당초 기대와 달리, 미테구의회가 지난해 11월 1일 전체 회의에서 소녀상을 영구적으로 유지하도록 촉구하는 결의안을 의결한 직후입니다.
"특히 유감스러운 건 일·한 문제가 다른 나라, 게다가 긴 세월에 걸쳐 우호 관계에 있던 미테구마저 휩쓸리게 한 사태가 되어 버렸다는 점이다. 다쎌 구청장에게 본의 아니게 심적 고통을 끼쳤다." |
상대의 처지를 이해하는 듯한 표현이지만, 이 역시 뒤집어 보면 한·일 양자 문제에 왜 제3국이 끼어들어 논란을 자초하느냐는 식으로 해석될 수 있는 대목입니다.
쓰나와마치는 그동안 구체적인 편지 내용을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최근 한 시민이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편지들을 받아냈고, 이게 다시 일본 시민단체인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 전국행동' 측에 전달됐습니다.
앞서 일본 나고야(名古屋)시를 비롯해 도쿄(東京) 신주쿠(新宿)구, 히가시오사카(東大阪)시 등 자매결연을 맺은 다른 지자체들도 미테구에 일제히 항의 편지를 보냈는데, 그 내용은 이미 공개된 상태입니다.
■ 세계 첫 '위안부 공원' 美에 조성
해묵은 편지를 다시 소개하는 데는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일본의 소녀상 철거 압박이 무대를 옮겨 재현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지난해가 독일 베를린이었다면 올해는 미국 필라델피아입니다. 무엇보다 이번엔 단순 '소녀상'이 아닌 세계 최초의 '소녀상 공원'입니다.
지난달 10일,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시에 거주 중인 한인교포들로 구성된 소녀상 건립추진위원회(위원회)는 시 당국으로부터 '소녀상 공원 건립 계획'에 대한 '원론적 승인'(conceptual approval)을 받았습니다.
필라델피아시 중심부 '퀸빌리지' 지역 근린공원을 소녀상 공원으로 탈바꿈시겠다는 '공공예술 설치안'(콘셉트 디자인)입니다.
소녀상 공원은 미국의 독립을 기리기 위해 조성된 필라델피아 '국립독립기념역사공원'에서 1마일(1.6km) 정도 밖에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시 중심부에 터를 잡게 돼 더욱 값진 의미를 더합니다.
■ 4년간 비공개 진행…"007작전 방불"
위원회 측은 이 사업을 4년간 비공개로 진행했습니다.
설익은 단계에서 계획이 알려지지 않도록 대외 홍보 등도 자제했습니다. 각국에서 일본의 반대 로비로 소녀상 설치가 난항을 겪는 모습을 목격해 왔기 때문이죠.
시 당국에서 공모하는 '공공예술 설치 프로젝트'에 응모하는 방식의 우회로를 택한 것이 이런 이유였다고 합니다.
공원 착공 목표는 올해 연말입니다. 앞으로 시공계획서 평가와 면허 검사 절차가 남았습니다. 두 과정 모두 비용 충당이 관건인 행정 절차입니다.
모금만 제대로 이뤄지면 착공에 별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위원회는 시공과 준공 이후 공원 유지·보수를 위해 36만 달러(4억 원)가 들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 日우익 "계획 단계부터 저지"
이에 대한 일본 정부의 공식 반응은 아직 나오지 않았습니다. 다만, 소식을 접한 일본 우익들은 화들짝 놀란 인상입니다. 실제로 일본의 대표적 극우 민간단체인 '나데시코액션'의 경우 3월 3일 홈페이지에 이런 공지글을 올렸습니다.
"필라델피아 예술위원회 회의 영상을 보면, 위원들은 소녀상이 정치적 문제가 되어 있는 걸 전혀 알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한국계 단체들은 앞으로 자금 마련에 주력할 것이다. 소녀상 설치가 결정된 건 아니지만, 계획 단계에서 저지하지 않으면 안 된다." |
이번에도 일본 우익들은 세계 첫 '소녀상 공원'을 물거품으로 만들기 위해 집요한 방해 공작을 펼칠 것으로 보입니다.
일본 우익 사이트에는 이미 필라델피아 예술위원회 측 주소와 전화, 이메일 정보가 빠르게 공유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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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현택 기자 news1@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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