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약
대법원까지 올라가는 사건은 많지 않습니다. 우리 주변의 사건들은 대부분 1, 2심에서 해결되지만 특별한 사건이 아니면 잘 알려지지 않는 게 현실이죠. 재판부의 고민 끝에 나온 생생한 하급심 최신 판례, 눈길을 끄는 판결들을 소개합니다.
여행사가 여행지와 교통수단, 숙소 등을 지정해 여행객을 모집하는 걸 '기획 여행'이라고 부르는데요.
여기엔 여행사와 계약한 현지 가이드가 따라붙기도 합니다.
그런데 여행객이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면 여행사와 가이드의 책임을 어디까지 물을 수 있을까요? 관련된 최신 판례를 소개해 드립니다.
■ 스노클링 중 의식 잃은 남성…가이드 아닌 다른 여행객이 발견
앞서 2019년 6월, A 씨 가족은 한 여행사를 통해 푸켓으로 4박 5일간의 가족여행을 떠났습니다. 당시 여행사가 A 씨에게 제공한 약관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푸켓국제공항에 도착한 A 씨 가족은 현지 가이드의 안내를 받아 여행 일정을 진행했고, 푸켓 도착 3일째 되는 날 바나나비치에서 스노클링 체험을 하게 됐습니다. 이 해변은 지형상 바다 쪽으로 조금 들어가면 성인 가슴 높이 정도로 수심이 상당히 깊어지는 곳이 있었습니다.
A 씨는 만 74살의 고령이고 스노클링을 해본 경험이 없었습니다. 가이드는 A 씨를 비롯한 여행객들에게 스노클링 장비 착용방법 등에 관한 일반적인 설명을 했습니다.
이후 가이드는 특별히 A 씨의 움직임이나 상황을 살펴보진 않았고, A 씨가 스노클링 체험을 위해 물에 들어간 뒤 화장실에 가기 위해 현장을 비웠습니다.
A 씨는 어느 순간부터 친인척 등 일행들과 떨어진 상황에서 홀로 스노클링을 하다 물 속에서 의식을 잃었고, 다른 여행사의 여행객들이 A씨를 발견했습니다.
다른 여행사 가이드들은 A 씨를 육지로 옮겨 심폐소생술 등 응급처치를 했지만 A 씨는 결국 병원으로 이송된 뒤 급성 심부전으로 숨졌습니다.
■ 유족 "안전배려의무 위반"…여행사 "적절한 조치 다했다"
A 씨 유족들은 여행사를 상대로 1억 원을 청구하는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습니다.
유족들은 "여행사가 스노클링이 예정된 해변에 구급전문자격을 갖춘 안전요원을 배치하여 사고에 대비하였어야 함에도 안전요원을 배치하지 않았고, 스노클링을 하기 전 안전교육 및 준비운동 실시, 스노클링 장비 점검 및 관련 교육 실시 등의 조치를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어 "가이드가 사고 당시 사고현장에 상주하지 않고 뒤늦게 나타나 제대로 된 사후조치를 취하지 못했다"며 여행사가 여행계약에 따른 주의의무를 위반해 A 씨가 사망하게 됐다고 주장했습니다.
여행사 측은 그러나 "가이드가 A 씨 가족이 푸켓에 도착한 직후 태국여행 중 주의사항 및 안전사고 예방에 대한 안내를 했으며, 당일에도 요트를 타고 이동하는 중 안전수칙 및 준비운동 관련 안내를 했고, 해변에 도착해서는 스노클링 장비 및 구명조끼 착용방법을 설명하고 자신의 시야 안에서 스노클링을 할 것을 당부했다"고 맞섰습니다.
또 "해변에는 특수 잠수 다이버 자격증을 보유한 다이빙 강사들이 배치되어 있었으며 A 씨가 스노클링 진행 중 발목 깊이 정도의 물속에서 갑자기 쓰러졌고, 주변 다른 회사 가이드가 A 씨를 먼저 발견해 물 밖으로 옮겨 가이드와 현지 다이빙 강사가 스노클링 장비와 구명조끼를 벗기고 심폐소생술을 진행했다"며 안전배려의무를 제대로 이행했다고 주장했습니다.
■ 법원 "위험·사고대처방법 등 구체적 고지 안 해…안전배려의무 위반"
이에 대해 서울고등법원 제27민사부(부장판사 정승규)는 최근 여행사와 가이드가 안전배려의무를 위반한 것이 인정된다며, 배상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법원은 "기본적인 수영 능력과 스노클을 이용한 호흡 방법을 익히지 않은 사람이 스노클링에 임할 경우 스노클의 내부에 바닷물이 들어옴으로써 수중호흡에 곤란을 겪는 등으로 사고를 당할 수 있는 위험을 수반하는 활동으로 반드시 짝을 이루어 잠수를 해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재판부는 또 "여행사로선 A 씨가 스노클링 포함 여행상품을 선택하는 경우 사고 발생 위험성을 고지해 위험을 인식한 전제에서 이용 여부를 결정할 수 있도록 하고, 현지 가이드로 하여금 위와 같은 사고 발생의 위험성 및 안전수칙, 사고 발생시 대처 방법 등에 대해 철저한 사전교육을 하도록 할 주의의무가 있었다"면서 "그러나 가이드는 일반적인 안전수칙 및 준비운동 관련 고지를 하였을 뿐, 해변 지형상 안으로 들어가면 수면이 급격하게 깊어져 사고가 발생할 위험이 있다거나 사고발생시 대처 방법 등에 대한 구체적 고지는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습니다.
재판부는 이어 "A 씨 가족은 푸켓에 도착해 여행 중 주의사항 및 안전사고 예방에 관한 안내문을 받고 가이드로부터 관련 설명을 들은 것으로 보이나, 추상적 내용만 기재되어 있을 뿐 구체적으로 스노클링 사고의 위험성이나 관련 안전수칙이 기재돼 있지 않다"며 "A 씨 가족 일부는 위 안내문을 제대로 고지받지 못했다고 진술하기도 한 바 안내문 중요성에 대해 충분한 설명을 하지도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습니다.
따라서 "안내문 고지만으로 스노클링 발생과 관련한 모든 위험으로부터 여행사가 면책될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여행사는 A 씨의 사망이 기저질환 탓이라고도 주장했지만 법원은 이 역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법원은 "A 씨가 지병이 있지만 일상생활 영위에 별다른 문제가 없었던 것으로 보이고 심혈관 병증이 없었으며 관련 질환으로 치료받은 적도 없었다"면서 "사고 이틀 전 푸켓에 도착해 다음날 하루종일 관광을 했는데 별다른 신체적 이상 없이 일정에 참여했으며 가이드나 일행에게 신체 이상을 호소하지도 않았다"고 덧붙였습니다.
여행사 측은 "A 씨 가족이 받은 '여행 중 주의사항 및 안전사고 예방에 관한 안내문'에는 △영유아 및 노약자는 반드시 보호자 입회하에 물놀이를 행한다 △노약자 및 해당시설 이용에 지장이 있는 환자는 반드시 그 사실을 가이드에게 알려야 한다는 등의 문구가 기재되어 있고, 그 하단에는 여행자는 위 안전수칙에 대해 내용을 들었으며 숙지하였음, 및 일행 확인란이 기재되어 있다"며 면책을 주장했지만 법원은 이 역시 배척했습니다.
법원은 "A 씨 및 그 친인척 여행객 10명 가운데 사고 발생 이전 문서에 서명한 사람은 4명에 불과하고, 나머지 여행객들은 사고 발생 이전에는 서명을 하지 않은 것으로 여겨지므로 사고 당사자가 문서 주의사항을 제대로 숙지하였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혔습니다.
또 "설령 A 씨가 위 주의사항을 읽었더라도 스노클링의 위험성이나 안전수칙, 사고발생시 대처법 등에 별다른 기재가 없는 점을 감안하면 가이드의 과실을 인정하는 데 방해가 된다고 보기 어렵다"며 여행사가 A 씨 유족에게 약 1억 원을 지급하라고 판단했습니다.
이 사건은 여행사 측이 상고해 대법원이 심리에 들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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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판결남] 여행 중 숨진 70대 남성…자리 비운 가이드 책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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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1-03-06 08:05:44
대법원까지 올라가는 사건은 많지 않습니다. 우리 주변의 사건들은 대부분 1, 2심에서 해결되지만 특별한 사건이 아니면 잘 알려지지 않는 게 현실이죠. 재판부의 고민 끝에 나온 생생한 하급심 최신 판례, 눈길을 끄는 판결들을 소개합니다.
여행사가 여행지와 교통수단, 숙소 등을 지정해 여행객을 모집하는 걸 '기획 여행'이라고 부르는데요.
여기엔 여행사와 계약한 현지 가이드가 따라붙기도 합니다.
그런데 여행객이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면 여행사와 가이드의 책임을 어디까지 물을 수 있을까요? 관련된 최신 판례를 소개해 드립니다.
■ 스노클링 중 의식 잃은 남성…가이드 아닌 다른 여행객이 발견
앞서 2019년 6월, A 씨 가족은 한 여행사를 통해 푸켓으로 4박 5일간의 가족여행을 떠났습니다. 당시 여행사가 A 씨에게 제공한 약관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푸켓국제공항에 도착한 A 씨 가족은 현지 가이드의 안내를 받아 여행 일정을 진행했고, 푸켓 도착 3일째 되는 날 바나나비치에서 스노클링 체험을 하게 됐습니다. 이 해변은 지형상 바다 쪽으로 조금 들어가면 성인 가슴 높이 정도로 수심이 상당히 깊어지는 곳이 있었습니다.
A 씨는 만 74살의 고령이고 스노클링을 해본 경험이 없었습니다. 가이드는 A 씨를 비롯한 여행객들에게 스노클링 장비 착용방법 등에 관한 일반적인 설명을 했습니다.
이후 가이드는 특별히 A 씨의 움직임이나 상황을 살펴보진 않았고, A 씨가 스노클링 체험을 위해 물에 들어간 뒤 화장실에 가기 위해 현장을 비웠습니다.
A 씨는 어느 순간부터 친인척 등 일행들과 떨어진 상황에서 홀로 스노클링을 하다 물 속에서 의식을 잃었고, 다른 여행사의 여행객들이 A씨를 발견했습니다.
다른 여행사 가이드들은 A 씨를 육지로 옮겨 심폐소생술 등 응급처치를 했지만 A 씨는 결국 병원으로 이송된 뒤 급성 심부전으로 숨졌습니다.
■ 유족 "안전배려의무 위반"…여행사 "적절한 조치 다했다"
A 씨 유족들은 여행사를 상대로 1억 원을 청구하는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습니다.
유족들은 "여행사가 스노클링이 예정된 해변에 구급전문자격을 갖춘 안전요원을 배치하여 사고에 대비하였어야 함에도 안전요원을 배치하지 않았고, 스노클링을 하기 전 안전교육 및 준비운동 실시, 스노클링 장비 점검 및 관련 교육 실시 등의 조치를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어 "가이드가 사고 당시 사고현장에 상주하지 않고 뒤늦게 나타나 제대로 된 사후조치를 취하지 못했다"며 여행사가 여행계약에 따른 주의의무를 위반해 A 씨가 사망하게 됐다고 주장했습니다.
여행사 측은 그러나 "가이드가 A 씨 가족이 푸켓에 도착한 직후 태국여행 중 주의사항 및 안전사고 예방에 대한 안내를 했으며, 당일에도 요트를 타고 이동하는 중 안전수칙 및 준비운동 관련 안내를 했고, 해변에 도착해서는 스노클링 장비 및 구명조끼 착용방법을 설명하고 자신의 시야 안에서 스노클링을 할 것을 당부했다"고 맞섰습니다.
또 "해변에는 특수 잠수 다이버 자격증을 보유한 다이빙 강사들이 배치되어 있었으며 A 씨가 스노클링 진행 중 발목 깊이 정도의 물속에서 갑자기 쓰러졌고, 주변 다른 회사 가이드가 A 씨를 먼저 발견해 물 밖으로 옮겨 가이드와 현지 다이빙 강사가 스노클링 장비와 구명조끼를 벗기고 심폐소생술을 진행했다"며 안전배려의무를 제대로 이행했다고 주장했습니다.
■ 법원 "위험·사고대처방법 등 구체적 고지 안 해…안전배려의무 위반"
이에 대해 서울고등법원 제27민사부(부장판사 정승규)는 최근 여행사와 가이드가 안전배려의무를 위반한 것이 인정된다며, 배상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법원은 "기본적인 수영 능력과 스노클을 이용한 호흡 방법을 익히지 않은 사람이 스노클링에 임할 경우 스노클의 내부에 바닷물이 들어옴으로써 수중호흡에 곤란을 겪는 등으로 사고를 당할 수 있는 위험을 수반하는 활동으로 반드시 짝을 이루어 잠수를 해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재판부는 또 "여행사로선 A 씨가 스노클링 포함 여행상품을 선택하는 경우 사고 발생 위험성을 고지해 위험을 인식한 전제에서 이용 여부를 결정할 수 있도록 하고, 현지 가이드로 하여금 위와 같은 사고 발생의 위험성 및 안전수칙, 사고 발생시 대처 방법 등에 대해 철저한 사전교육을 하도록 할 주의의무가 있었다"면서 "그러나 가이드는 일반적인 안전수칙 및 준비운동 관련 고지를 하였을 뿐, 해변 지형상 안으로 들어가면 수면이 급격하게 깊어져 사고가 발생할 위험이 있다거나 사고발생시 대처 방법 등에 대한 구체적 고지는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습니다.
재판부는 이어 "A 씨 가족은 푸켓에 도착해 여행 중 주의사항 및 안전사고 예방에 관한 안내문을 받고 가이드로부터 관련 설명을 들은 것으로 보이나, 추상적 내용만 기재되어 있을 뿐 구체적으로 스노클링 사고의 위험성이나 관련 안전수칙이 기재돼 있지 않다"며 "A 씨 가족 일부는 위 안내문을 제대로 고지받지 못했다고 진술하기도 한 바 안내문 중요성에 대해 충분한 설명을 하지도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습니다.
따라서 "안내문 고지만으로 스노클링 발생과 관련한 모든 위험으로부터 여행사가 면책될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여행사는 A 씨의 사망이 기저질환 탓이라고도 주장했지만 법원은 이 역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법원은 "A 씨가 지병이 있지만 일상생활 영위에 별다른 문제가 없었던 것으로 보이고 심혈관 병증이 없었으며 관련 질환으로 치료받은 적도 없었다"면서 "사고 이틀 전 푸켓에 도착해 다음날 하루종일 관광을 했는데 별다른 신체적 이상 없이 일정에 참여했으며 가이드나 일행에게 신체 이상을 호소하지도 않았다"고 덧붙였습니다.
여행사 측은 "A 씨 가족이 받은 '여행 중 주의사항 및 안전사고 예방에 관한 안내문'에는 △영유아 및 노약자는 반드시 보호자 입회하에 물놀이를 행한다 △노약자 및 해당시설 이용에 지장이 있는 환자는 반드시 그 사실을 가이드에게 알려야 한다는 등의 문구가 기재되어 있고, 그 하단에는 여행자는 위 안전수칙에 대해 내용을 들었으며 숙지하였음, 및 일행 확인란이 기재되어 있다"며 면책을 주장했지만 법원은 이 역시 배척했습니다.
법원은 "A 씨 및 그 친인척 여행객 10명 가운데 사고 발생 이전 문서에 서명한 사람은 4명에 불과하고, 나머지 여행객들은 사고 발생 이전에는 서명을 하지 않은 것으로 여겨지므로 사고 당사자가 문서 주의사항을 제대로 숙지하였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혔습니다.
또 "설령 A 씨가 위 주의사항을 읽었더라도 스노클링의 위험성이나 안전수칙, 사고발생시 대처법 등에 별다른 기재가 없는 점을 감안하면 가이드의 과실을 인정하는 데 방해가 된다고 보기 어렵다"며 여행사가 A 씨 유족에게 약 1억 원을 지급하라고 판단했습니다.
이 사건은 여행사 측이 상고해 대법원이 심리에 들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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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성 기자 isbaek@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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