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코스모스 아파트 침수 반 년…‘상처는 여전’

입력 2021.03.07 (07:01) 수정 2021.03.07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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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해 회복은커녕, 갈등만 더해진 '주민들의 삶'

새벽에 내린 폭우로 보금자리를 잃고, 구명보트를 타고 탈출해야 했던 대전 코스모스 아파트 주민들….

침수 피해가 발생한 지 반년이 넘게 지났지만, 그들의 삶은 여전히 고달팠습니다.

이들이 쥔 보상은 국가가 나눠준 재난지원금 200만 원이 전부. 침수로 고장 난 냉장고 한 대 마련하기도 어려운 금액이었습니다.

그나마 200만 원이라도 받은 주민은 사정이 나은 편이었습니다. 아파트 내 상가와 침수차량 78대는 보상 대상으로 인정받지 못하면서 본인이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아야 했습니다.

주민들은 어려움을 토로하면서, 동시에 대전 서구청이 담당하는 배수로 관리부실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아파트와 맞닿은 산책로 밑 복개천이 배수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했고, 그로 인해 불어난 물이 아파트 담벼락을 무너뜨리며 쏟아져 들어왔다는 주장이었습니다.

다만 담벼락 인근에는 CCTV가 없어, 증언만으로 과실 여부를 판단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 자연재해 vs 인재, '침수 피해 원인'을 추적하다

주민들은 서구청에 '영조물 배상' 즉, 공공시설물 관리부실로 인한 배상을 요청했지만 거부당했습니다. 서구청은 책임보험사인 삼성화재를 통해 해당 사건에 대해 검토한 뒤, '자연재해'로 결론 내렸습니다.

당일 많은 비가 '갑자기' 내렸고, 내려도 너무 많이 내려 대처할 수 없었다는 이유였습니다.

사고 직후 배수로인 복개천에서는 비닐과 토사 등 12,000톤의 폐기물이 나왔지만, 관리부실이 아니라 비로 인해 한꺼번에 내려온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기울어진 운동장, 취재진은 이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기로 했습니다. CCTV가 없다면 그에 준하는 검증을 해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학계 최고 전문가인 충남대학교 서동일 환경공학과 교수팀에 침수 원인을 규명해보자고 부탁했습니다.

당시 아파트 내부의 CCTV 영상을 토대로 침수량을 최대한 정확히 산출하기 위해 현장 실측을 진행했고, 아파트와 주변 지역의 배수 도면을 확보해 침수량 측정 시뮬레이션에 적용했습니다.


■ 아파트 내 침수량 944㎥, 전체 침수량 9,425㎥의 10% 불과

실험 결과는 충격적이었습니다. 먼저 강수량과 침수 면적 등을 계산해 당일 아파트에 들어찬 비의 양을 추산해보니 9,425㎥라는 결괏값이 나왔습니다.

이어 순수하게 아파트 내부에 내린 비의 양을 계산했습니다. 배수구가 꽉 막힌 상황을 가정했는데도, 자체 침수량은 944㎥에 불과했습니다.

90%가량의 빗물은 외부에서 유입됐다는 말이었습니다.

이 빗물은 주민들 주장대로 산책로에서 넘어왔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주변 50만㎡ 면적에 내리는 빗물은 모두 이 산책로를 통해 갑천으로 빠져나가게 설계돼있습니다.

애초에 부담이 상당하다 보니, 배수 능력보다 4천㎥가량의 물이 더 들어찬 것으로 추정됩니다.

여기에 배수로에 쌓여있던 비닐과 썩은 나무, 토사 등 폐기물 1만 2천 톤이 정상적인 배수능력을 방해하면서 8천㎥ 넘는 물이 아파트 담벼락을 무너뜨리고, 한꺼번에 쏟아져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는 게 전문가의 판단이었습니다.


■ "기상청 예보가 맞은 적이 있나요?" 서구청의 황당한 답변

물이 넘친 것으로 추정되는 산책로 밑 복개천은 뒷산의 인공수로와 연결됩니다.

인공수로 주변에는 주민들이 일구는 텃밭 등이 있어 평소에도 비닐과 각종 끈 등이 배수로로 유실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폭우 전날, 기상청은 새벽 시간 대전과 충남 남부지역에 시간당 최고 80㎜ 비가 올 수 있다고 예보했습니다. 저지대 침수와 산사태, 축대 붕괴 등의 피해를 조심하라는 충고도 잊지 않았습니다.

대전에서도 알아주는 저지대에 있는 코스모스 아파트, 산과 연결된 인공수로에다 그 주변에 있는 농경지까지. 모든 상황을 알고 있는 서구청은 그럼에도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습니다. 비가 많이 오던 당일 새벽에는 순찰 지역에서조차 제외됐습니다.

취재진은 침수 피해가 예견되는데, 왜 아무런 선제조치를 하지 않았느냐고 물었습니다.

서구청 관계자는 "기상청 예보가 그렇게 맞은 적이 있냐?"라며 사람 좋게 웃어 보였습니다. 차마 같이 웃을 수는 없었습니다.


■ 주민들 결국 소송전 준비, 피해 보상 가능할까?

주민들은 서구를 상대로 소송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황망하게 목숨을 잃은 다섯 아이의 아버지, 50대 A 씨의 몫도 있을 겁니다.

가득 찬 빗물에 아파트 담벼락이 무너지지 않았더라면, 산책로 복개천이 넘치지 않았더라면, 복개천 배수로 관리가 잘 됐더라면, 비가 오기 전날 사전조치가 있었더라면….

저 수많은 '라면' 중 하나만 막아냈다면, 다섯 아이는 아버지를 잃을 일도, 갑작스러운 생계 절벽에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는 일도 없었을 겁니다. 이 아이들의 피해와 상처, 하늘이 보상해야 할까요?


[연관기사][추적 6분] “인재” vs “자연재해” 코스모스 아파트 침수 원인을 추적하다
http://news.kbs.co.kr/news/view.do?ncd=513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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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코스모스 아파트 침수 반 년…‘상처는 여전’
    • 입력 2021-03-07 07:01:24
    • 수정2021-03-07 07:02:42
    취재후·사건후

■ 피해 회복은커녕, 갈등만 더해진 '주민들의 삶'

새벽에 내린 폭우로 보금자리를 잃고, 구명보트를 타고 탈출해야 했던 대전 코스모스 아파트 주민들….

침수 피해가 발생한 지 반년이 넘게 지났지만, 그들의 삶은 여전히 고달팠습니다.

이들이 쥔 보상은 국가가 나눠준 재난지원금 200만 원이 전부. 침수로 고장 난 냉장고 한 대 마련하기도 어려운 금액이었습니다.

그나마 200만 원이라도 받은 주민은 사정이 나은 편이었습니다. 아파트 내 상가와 침수차량 78대는 보상 대상으로 인정받지 못하면서 본인이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아야 했습니다.

주민들은 어려움을 토로하면서, 동시에 대전 서구청이 담당하는 배수로 관리부실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아파트와 맞닿은 산책로 밑 복개천이 배수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했고, 그로 인해 불어난 물이 아파트 담벼락을 무너뜨리며 쏟아져 들어왔다는 주장이었습니다.

다만 담벼락 인근에는 CCTV가 없어, 증언만으로 과실 여부를 판단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 자연재해 vs 인재, '침수 피해 원인'을 추적하다

주민들은 서구청에 '영조물 배상' 즉, 공공시설물 관리부실로 인한 배상을 요청했지만 거부당했습니다. 서구청은 책임보험사인 삼성화재를 통해 해당 사건에 대해 검토한 뒤, '자연재해'로 결론 내렸습니다.

당일 많은 비가 '갑자기' 내렸고, 내려도 너무 많이 내려 대처할 수 없었다는 이유였습니다.

사고 직후 배수로인 복개천에서는 비닐과 토사 등 12,000톤의 폐기물이 나왔지만, 관리부실이 아니라 비로 인해 한꺼번에 내려온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기울어진 운동장, 취재진은 이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기로 했습니다. CCTV가 없다면 그에 준하는 검증을 해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학계 최고 전문가인 충남대학교 서동일 환경공학과 교수팀에 침수 원인을 규명해보자고 부탁했습니다.

당시 아파트 내부의 CCTV 영상을 토대로 침수량을 최대한 정확히 산출하기 위해 현장 실측을 진행했고, 아파트와 주변 지역의 배수 도면을 확보해 침수량 측정 시뮬레이션에 적용했습니다.


■ 아파트 내 침수량 944㎥, 전체 침수량 9,425㎥의 10% 불과

실험 결과는 충격적이었습니다. 먼저 강수량과 침수 면적 등을 계산해 당일 아파트에 들어찬 비의 양을 추산해보니 9,425㎥라는 결괏값이 나왔습니다.

이어 순수하게 아파트 내부에 내린 비의 양을 계산했습니다. 배수구가 꽉 막힌 상황을 가정했는데도, 자체 침수량은 944㎥에 불과했습니다.

90%가량의 빗물은 외부에서 유입됐다는 말이었습니다.

이 빗물은 주민들 주장대로 산책로에서 넘어왔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주변 50만㎡ 면적에 내리는 빗물은 모두 이 산책로를 통해 갑천으로 빠져나가게 설계돼있습니다.

애초에 부담이 상당하다 보니, 배수 능력보다 4천㎥가량의 물이 더 들어찬 것으로 추정됩니다.

여기에 배수로에 쌓여있던 비닐과 썩은 나무, 토사 등 폐기물 1만 2천 톤이 정상적인 배수능력을 방해하면서 8천㎥ 넘는 물이 아파트 담벼락을 무너뜨리고, 한꺼번에 쏟아져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는 게 전문가의 판단이었습니다.


■ "기상청 예보가 맞은 적이 있나요?" 서구청의 황당한 답변

물이 넘친 것으로 추정되는 산책로 밑 복개천은 뒷산의 인공수로와 연결됩니다.

인공수로 주변에는 주민들이 일구는 텃밭 등이 있어 평소에도 비닐과 각종 끈 등이 배수로로 유실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폭우 전날, 기상청은 새벽 시간 대전과 충남 남부지역에 시간당 최고 80㎜ 비가 올 수 있다고 예보했습니다. 저지대 침수와 산사태, 축대 붕괴 등의 피해를 조심하라는 충고도 잊지 않았습니다.

대전에서도 알아주는 저지대에 있는 코스모스 아파트, 산과 연결된 인공수로에다 그 주변에 있는 농경지까지. 모든 상황을 알고 있는 서구청은 그럼에도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습니다. 비가 많이 오던 당일 새벽에는 순찰 지역에서조차 제외됐습니다.

취재진은 침수 피해가 예견되는데, 왜 아무런 선제조치를 하지 않았느냐고 물었습니다.

서구청 관계자는 "기상청 예보가 그렇게 맞은 적이 있냐?"라며 사람 좋게 웃어 보였습니다. 차마 같이 웃을 수는 없었습니다.


■ 주민들 결국 소송전 준비, 피해 보상 가능할까?

주민들은 서구를 상대로 소송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황망하게 목숨을 잃은 다섯 아이의 아버지, 50대 A 씨의 몫도 있을 겁니다.

가득 찬 빗물에 아파트 담벼락이 무너지지 않았더라면, 산책로 복개천이 넘치지 않았더라면, 복개천 배수로 관리가 잘 됐더라면, 비가 오기 전날 사전조치가 있었더라면….

저 수많은 '라면' 중 하나만 막아냈다면, 다섯 아이는 아버지를 잃을 일도, 갑작스러운 생계 절벽에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는 일도 없었을 겁니다. 이 아이들의 피해와 상처, 하늘이 보상해야 할까요?


[연관기사][추적 6분] “인재” vs “자연재해” 코스모스 아파트 침수 원인을 추적하다
http://news.kbs.co.kr/news/view.do?ncd=513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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